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79
979화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상대는 진양을 목표로 삼고 있는 척하며 다른 곳에서 일을 벌였다.
하지만 상대가 진양을 죽이려 했다는 점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현재 순천사 거점은 외부와 단절되며 고립되어버렸다.
상대는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 셈이다.
이런 황금 같은 시기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허비할 리는 없다.
누군지는 몰라도 뼛속까지 자만심이 깃들어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단지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을 뿐.
상황이 이렇게 흐르니 진양은 자신이 상대의 흥미를 자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전처럼 아무렇게 죽일 리는 없다.
이대로라면 상대가 먼저 진양을 만나러 올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진양은 계속해서 기다렸다.
과연 누가 자신을 찾아올지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도중 주작이 나타났다.
비록 진양이 아닌 혈란을 찾아온 것이긴 했으나 크게 수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소문대로 지혜롭고, 친절하고, 상급자로서의 위압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충분한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여덟 명의 사장 중 유일하게 외층 전장에서 무패를 기록한 사람이다.
이 정도 능력을 가진 존재가 적란의 일에 대해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할 리 없다.
무엇보다 그녀는 적란의 일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다.
즉,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거점으로 돌아오고도 혈란을 찾아오지 않거나 내부 첩자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적어도 혈란은 이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주작의 모든 행동을 그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혈란의 말이 맞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고,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는 법.
물론 진양도 그녀가 찾아온 일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진양이 주작을 만나게 된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일단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했다.
지금까지의 종적, 그리고 기록들.
이것들을 살펴보다 보면 수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다.
심지어 실제로 만나보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본질을 파악할 수도 있다.
진양은 계속해서 자료를 읽어나갔고, 주작에 대해 꽤 많은 내용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는 온화한 모습을 보였지만 전장에서는 혈란에 버금가는 살기를 내뿜는 강자였다.
기록에 따르면 예전에 수백 년 전 평화의 시기가 이어지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주작이 상대의 매복에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퇴로마저 끊어지며 완전히 고립되었으나 그녀는 곧바로 함께 있던 부하 세 사람과 함께 적에게 반격을 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오히려 앞으로 나아간 덕분에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녀는 눈앞에 보이는 적을 모두 베어버리며 적진까지 진격했고, 적진이 무너진 틈을 타 도망가는 자들까지 남김없이 모두 처치해버렸다.
겨우 세 사람의 순천사의 손에 셀 수 없이 많은 적들이 쓰러져나갔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뒤따라온 다른 순천사들과 합류하여 남은 적까지 모두 소탕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당시 전투에서 주작이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점이다.
약간의 경상을 입긴 했으나 자신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함께 있던 세 명의 부하를 지켜주려다가 입은 상처들이었다.
하마터면 치욕적인 첫 패배를 안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주작은 무사히 버텨냈다.
심지어 자신과 동급인 고수를 무려 다섯이나 베어버렸다.
이 전투로 주작은 순천사들 사이에서 명성을 알리게 되었다.
하지만 전투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기재되어있지 않았다.
진양은 전투와 관련된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무려 세 번이나 살폈다.
이 외에 보관소 내에 있는 다른 자료들까지 전부 참고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주작이 자신의 실력을 어느 정도 숨기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경지를 숨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신통력이나 공법을 숨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사자결과 같이 어느 정도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마지막 패를 숨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현재 주작은 법상 최고봉의 경지에 오른 상태라고 한다.
법신까지 단 한 발자국만을 남겨두고 있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법상 경지에 머무르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현재 여덟 명의 사장 중 그녀보다 더 높은 경지를 가진 사장은 세 명이다.
이들은 전부 직접 전선에 나가 전투를 벌이는 사장들이다.
하지만 전적은 주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렇게 모든 자료를 살폈으나 마땅히 의심할 만한 부분은 없었다.
그녀는 확실히 우수한 순천사였다.
처음에는 미숙하거나 완벽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여러 방면으로 무섭게 성장했다.
“휴…….”
진양은 들고 있던 옥간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 봐야 할 옥간은 더 남아있었다.
이곳까지 들어온 이상 서둘러 모든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 * *
진양은 며칠에 걸쳐 모든 옥간을 살펴보았다.
기억할 수 있는 부분들은 전부 머릿속에 넣어두었고, 기억하지 못한 부분들은 따로 기억을 잘라내어 몽경 속에 보관했다.
이렇게 하면 언제든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다.
자료를 모두 살펴본 진양은 보관실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주작에게서 크게 수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실력을 숨기고 있다고 해서 수상하게 여길 순 없는 법.
보통 법상 수도사들은 법상의 능력을 숨기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진양은 일단 혈란의 서재로 향했다.
* * *
옥간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혈란은 진양을 발견하자마자 물었다.
“흑작이 올린 임무 기록을 보니 중간에 복귀 중인 주작과 마주쳤다고 하더군요.”
“혹시 어디 갔다가 복귀한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진법사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을 거예요.”
“그 정도로 주작을 믿으시는 건가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요?”
혈란은 아무 말이 없었다.
혈란을 고개를 젓더니 입을 열었다.
“비록 란 칭호를 받진 못했지만 어쨌든 비난삼위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성장해왔으니까요. 전 주작을 제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에요. 제가 죽고 나면 아마 주작이 제 뒤를 이어 순천사의 수존이 되겠죠.
진 선생 말대로 전 더 이상 주작을 의심하지 않고 있어요. 이미 그녀의 과거 삼천 년의 행적에 대해 몰래 조사를 해 봤거든요. 하지만 제 의견을 강요하진 않겠어요. 진 선생은 순천사의 사람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요. 그만큼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저를 포함한 누구든 의심해도 됩니다. 혹여나 제게도 이상한 징조가 보인다면 굳이 미리 물어볼 필요 없이 살수를 펼쳐도 상관없습니다.”
혈란은 상자를 하나 꺼내 진양에게 건넸다.
“이건 저에 대한 자료에요. 공개되지 않은 기록들도 모두 기록되어있고요. 가져가서 살펴보도록 하세요. 제 약점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혀있으니 꼼꼼히 살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진양은 차마 상자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저 놀란 눈으로 혈란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혈란은 매우 차분하게 자신의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진심이라는 건 목소리만 들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혈란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았다.
그녀가 수존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건 단순히 강력한 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닌 듯했다.
그녀의 이러한 모습을 볼수록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진양은 상자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소저의 약점이나 다른 비밀이 담겨있는 부분은 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한 게 아니라면 알고 싶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도 않거든요.”
이어서 돌아서 나가려던 진양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상황이 정말 그 정도로 심각한 건가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 * *
혈란의 방을 빠져나온 진양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비록 모르겠다는 대답을 듣긴 했으나 상황이 썩 낙관적이진 않은 듯했다.
최대한 상황을 제어하고 있긴 하나 이미 한계에 도달했을지도 모르고, 정보력의 한계에 부딪친 것일지도 모른다.
정보라고 하니 도문의 정보망이 떠올랐다.
도문의 정보망은 위풍과 몽의가 직접 관리하던 조직으로 대황을 넘어 사해황막까지도 널리 퍼져있다.
다만 이곳까지도 도문의 정보망이 펼쳐져 있을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 첩자까지 있는 마당에 도문의 정보원이 정보를 빼내는 게 불가능할 리 없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이내 단념하기로 했다.
확실하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정보원을 찾아다닐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설령 정보원이 있다고 해도 혈란보다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나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진양이 밖으로 향하고 있을 때, 한 깡마른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 진 선생이시군요.”
남자는 곧장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추었다.
“저는 황작이라고 합니다. 제오 사장이죠. 진 선생에 대해선 많이 들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직접 뵙고 싶었는데 여건이 안 돼서 찾아뵙지 못했었는데, 벌써 돌아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보강 작업은 모두 끝나신 겁니까?
아, 내 정신 좀 봐라. 아직 마치지 못하셨다면 돌아오셨을 리가 없겠지. 그나저나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요. 과연 실력자는 다른가 봅니다.”
자신을 황작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혼자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상대의 과한 반응에 진양은 부담을 느낄 정도였다.
“혈란 소저를 만나러 가시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누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말입니다. 아, 진 선생께선 외부인도 아니시고 마침 이곳에 갇히게 되셨으니 알아두셔도 나쁠 건 없을 듯하군요.”
황작은 주위를 살펴보곤 주위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못하게 정음(靜音) 결계를 펼쳤다.
“이건 진 선생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사실 내부 첩자가 아직 죽지 않다고 하더군요!”
“네?”
진양은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뭐야?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아무리 봐도 눈치가 빠른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데.’
“정말입니다. 우리 중에 아직 내부 첩자가 남아있다고 하더군요.”
황작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저는 아니니까 그런 눈으로 쳐다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최근에 외층 전장에는 다녀온 적이 전혀 없거든요.”
“그렇군요.”
“진 선생, 비밀은 절대로 지켜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신나게 재잘거리던 황작은 쌩- 하고 혈란의 서재로 가버렸다.
진양은 머리를 긁적이며 얼마 전에 보았던 그에 대한 자료를 떠올려보았다.
지금까지의 경력만 놓고 본다면 머리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전형적인 연체 수도사다.
외층 전장을 아무렇지 않게 누비고 다닐 정도로 육신을 단련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신통력도 함께 익혔기에 생존력 하나는 보장되어있는 실력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전장에서 상처를 입고 돌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최근 들어 전장에 나가지 않은 건 전장 출입을 자제하고 수련에 집중하라는 혈란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진양에게 과하게 열정적으로 나오는 이유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심성낙은 가희의 부름을 받고 이도로 왔고 곧바로 형부 상서가 되었다.
위험을 무릅쓸 필요도 없이 훌륭한 수련 조건도 갖추게 되었고, 권력도 쥐게 되었으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황작은 이러한 심성낙을 몹시 부러워했다.
때문에, 자신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줄 권한을 가진 진양에게 잘 보이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