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80
980화 꽤 실력있는 놈인가 보군
이틀 뒤.
자료를 모두 살펴본 진양이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청란이 다급한 모습으로 진양을 찾아왔다.
“내부 첩자가 죽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던데. 알고 계셨습니까?”
“어디서 들은 얘깁니까?”
“이미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서 들은 거냐고요.”
진양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제오 사장 황작에게 들었습니다.”
“…….”
진양은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입이 싼 놈이군.’
이런 식으로 소문을 퍼뜨려놓으면 앞으로 조사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누구든 이런 소식을 들으면 반응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조사 과정이 조금 더 번거로워질 듯했다.
그러나 진양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오히려 잘 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보단 변화가 일어나는 게 더 좋은 법이니까.
그리고 황작이 이러한 정보를 어디서 습득했고, 또 어째서 이토록 확신에 가득 찬 것인지도 알 것 같았다.
* * *
변화는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외층 전장에 집결한 이족 군단은 현재 진군 방어선 부근으로 이동 중이었다.
새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대연 신조의 외층 공간 거점에 있던 수도사들이 전멸을 당했다고 한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곳에 있던 수도사들은 대부분 편하게 말년을 보내기 위해 이곳에 온 자들이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들이 죽기 직전에 대황과 직통으로 연결된 통로를 파괴하고 죽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족이 대황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강풍층을 뚫고 지나가야만 한다.
역외의 이족들은 강할수록 강풍층에서 더욱 큰 제약을 받는데, 대황 사람들이 강풍층을 뚫고 지나가는 것보다 수백 배는 더 강한 제약을 받는다고 한다.
원래는 호량으로 통하는 안전 통로가 있었지만, 현재는 완전히 폐쇄되며 다른 대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진양은 역외의 강자들이 감히 대황으로 숨어드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 확신했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새어나가는 순간 수많은 이들의 표적이 되어 죽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대미문의 엄청난 수의 이족들이 한 곳에 모여있다.
마음 같아선 영제가 아직 살아있으니 오지 말라고 떠들고 싶었다.
물론 아무리 떠들어봤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영제가 대황뿐만 아니라 외층 공간의 이족에게도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영제의 죽음은 단순히 대황의 균형만 깬 것이 아니다.
외층 공간과의 균형도 깨버렸다.
가희의 힘으로 대황의 균형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외층 공간까지는 고려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렇게 소리 없이 시작된 변화는 오늘날이 되어서야 마침내 큰 변화가 되어 휘몰아쳤다.
진양은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건 진양보단 순천사들이 훨씬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금 진양이 할 수 있는 일은 내부의 첩자를 색출해내고, 이들이 중요한 순간에 일을 망치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것이다.
* * *
밖으로 나온 진양은 황작이 이제 막 거점을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다섯 명의 출전 사장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전장으로 나가야만 했다.
진양은 곧바로 비주를 꺼내 그의 뒤를 쫓아갔다.
반드시 그를 쫓아야만 한다.
그는 무언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추측해낸 것이라고 했지만 진양은 결코 믿지 않았다.
분명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는 게 확실했다.
비주를 전속력으로 움직인 덕분에 반나절 정도가 지나자 멀리 푸른 빛이 외층 전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노란 참새의 형상의 비행 인형 위로 황작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양은 선수에 서서 그를 향해 잠시 멈춰보라는 듯 손짓했다.
진양을 발견한 황작은 곧바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급하게 갈 것도 없었기에 비주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배에 오르진 않았다.
그는 비주의 방어막 밖에서 진양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진 선생도 외층 전장에 가시는 겁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그냥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버티고 있는 한 별일 없을 테니까요.”
“그게 아니라 급히 묻고 싶은 일이 있어서 온 겁니다. 내부 첩자가 죽지 않았다는 정보는 도대체 어디서 알아낸 겁니까?”
“알아내다뇨. 그냥 스스로 추측해낸 것뿐입니다.”
황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이내 기분이 상했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제가 그 정도도 추측해낼 수 없는 바보라고 뒤에서 떠들어대는 얘기를 그대로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진양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겠습니다. 대황으로 돌아가고 싶으시죠? 그럼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황작의 표정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놀라면서도 기쁜 표정이었으나 이내 망설여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양의 말대로 그는 대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 경지에서는 아무리 전투를 벌인다고 해도 더 높은 곳까지 경지를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마음 놓고 수련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 다른 강자와 교류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타인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그 무엇도 누릴 수가 없다.
황작이 망설이자 진양은 패를 하나 더 꺼내 들었다.
“아마 꽤 오랜 시간 동안 경지에 진전이 없으셨을 겁니다. 아무리 연체 수도사라고 해도 무작정 전투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스스로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하셨을 겁니다.
추후에 대황으로 돌아오시게 되면 오행산에 추천서를 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강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해드리죠.”
황작은 한숨을 푹 쉬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걸 어디부터 어떻게 말씀드려야 될지 정말 모르겠군요. 혹시 제가 주작에게 몰래 듣고 온 얘기라고 말씀드린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못 믿죠.”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정말로 주작이 말하는 걸 몰래 엿들어서 알게 된 겁니다.
구체적인 건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생각하려고 해봐도 안개가 낀 것처럼 기억이 나질 않고요. 제게 주작에게 들키지 않고 이런 엄청난 정보를 몰래 엿들을 능력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건 저 스스로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게 사실인 걸 어쩌란 말입니까?”
진양이 꺼내든 패를 생각하니 황작은 내친김에 모두 털어놓기로 했다.
“예전에 몰래 주작을 훔쳐보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제 능력 밖의 일이라 실패하고 말았죠.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그러다 보니 오기도 생기고 대담해지기도 한 탓인지 점점 더 과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죠. 하지만 여전히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전 주작이 일부러 제게 들으라고 말한 줄 알았습니다. 허나 혈란 누님을 찾아가 물어보니 제가 듣고 온 건 주작이 한 얘기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당시 기억 속에 주작이 누구에게 이 일을 얘기하려고 한 건지 기억도 나질 않았고요.
어떻게 해야 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려버린 겁니다. 내부 첩자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 주의하라는 뜻에서 말이죠.”
“…….”
진양은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됐으니까 이만 가보셔도 좋습니다. 이걸 가져가세요. 어느 정도 도움은 될 겁니다.”
진양은 예전에 만들었던 후광 장비들을 황작에게 건네주었다.
비록 등급이 썩 높은 장비라고 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영혼 공격 정도는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너무 강력한 공격까지 막아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경계 용도로는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다.
황작은 장비를 받아들자마자 곧바로 착용해 보았다.
외관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기능이다.
그가 장비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진양은 재빨리 동술과 사자결을 펼치며 그를 살폈다.
하지만 그 순간 황작은 화들짝 놀라며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뭐 하고 있어요? 얼른 가보세요. 이러다 늦는 거 아니에요?”
“아, 별것 아닙니다. 갑자기 누군가 저를 몰래 꿰뚫어 보는 느낌이 나서 말입니다.”
황작을 보내고 난 뒤 진양은 멀리 허공을 바라보았다.
딱히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몸에 특별한 힘이 붙어있는 것도 아니었고, 방금 보였던 민감한 반응 역시 육신이 본능적으로 먼저 반응하며 일어난 반응이었다.
이건 진양도 잘 알고 있다.
연체 수도사가 가진 육신의 본능적 감각은 영혼, 이성, 오감 등의 감각보다 훨씬 먼저 위험을 알아차린다.
단지 자신을 몰래 훔쳐보던 사람이 진양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크게 놀란 것일 뿐이다.
물론 알아차리지 못했을 확률보단 알아차리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는 건 진양도 잘 알고 있다.
진양은 찰나의 순간에 동술과 사자결을 발휘하여 그를 살펴보았다.
이 정도 속도에 황작이 반응을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뒤늦게라도 반응을 했다는 건 그가 꽤 훌륭한 실력을 가진 연체 수도사라는 뜻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단련된 본능이라 그런지 대황에서 보았던 연체 수도사 고수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 보였다.
어쩌면 첩자의 함정에 걸려든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없던 기억이 갑자기 생겼을 수도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환상을 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잠식당한 건 아니다.
이성을 초월하는 본능을 가진 연체 수도사를 정신적으로 잠식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 *
진양은 다시 비주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반나절 정도 날아오니 멀리 여러 개의 역금자탑이 거점을 이루고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중 하나를 지나쳐 날아가는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서면서 강한 위기감이 느껴졌다.
잠잠하던 별의 힘이 돌연 난폭해지기 시작했고, 영기도 순식간에 희박해졌다.
진양은 동술을 펼치며 주위를 살폈다.
주변은 마치 얇은 안개가 내려앉은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심지어 진양이 시선을 움직일 때마다 잔잔하게 물결 비슷한 것이 일어나기도 했다.
진양이 눈을 가늘게 뜨자 눈에서 두 줄기의 빛이 쏘아졌다.
빛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허공을 베며 지나갔고, 모든 물결이 사라지며 안개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 역금자탑이 한 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거점 부근의 것이 아닌 진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역금자탑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외층 전장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진양은 피식 웃었다.
‘나의 감각을 완전히 속이고 정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게 만들다니. 꽤 실력이 있는 놈인가보군.’
어쩌면 황작도 단순히 상대에게 이용당한 게 아니라 진양을 이곳으로 끌어내기 위한 복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양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듯했으나 이내 멈춰 섰다.
진군이 작동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로써 진양은 완전히 가로막히게 되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앞으로 다가가는 순간 곧바로 공격을 당할 게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