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99
999화 쇠귀에 경 읽기
허공을 가르며 한참을 날아간 끝에 암적색의 거대한 구체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게 보였다.
직경 일만 리 정도 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의 구체였다.
그것은 원래 살던 세계에 있던 행성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었다.
자전을 하고 있었고, 대기층도 있었으며, 주위로 여덟 개의 만 장이나 되는 거대한 석상이 위성처럼 주위를 공전하고 있었다.
진양은 동술을 펼쳐 행성을 유심히 살폈다.
행성은 전체적으로 거대한 그물에 뒤덮여있었다.
허공에 존재하는 난폭한 힘이 행성 안쪽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막고, 허공을 떠다니는 운석이나 유성이 내부까지 날아들지 못하게 막는 용도인 듯했다.
게다가 적이 나타나면 일정 시간 방어하며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도 했다.
이 정도 기술을 가진 자들이라면 어느 정도 지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쯔쯧. 이런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뭐하러 추격수의 충견이 된 건지.’
외층 공간에는 온전한 지성을 가진 이족이 꽤 많이 있다.
이들은 결코 서로 뭉치는 경우가 없다.
대부분 외부인에 대해 심하게 배척하며, 설령 접촉한다고 하더라도 신중에 신중을 더한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아 번식까지 하고 있다는 건 이들이 결코 약한 자들이 아니라는 걸 증명한 셈이다.
아무리 추격수가 강하다고 해도 이러한 자들까지 완전히 수복시킨 건 아니다.
실제로 강한 힘을 가진 이족들은 추격수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했다.
“사람을 좀 더 불러오는 건 어떨까요? 아무래도 저희 둘이 해결하기엔 난이도가 클 것 같은데.”
“아마 불러도 올 사람이 없을 겁니다. 최근 들어 정세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거든요. 복수를 마치고 나면 곧바로 일족으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혹여나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거든요.”
아무래도 그는 한시라도 빨리 복수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당신은 정면에서 공격하세요.”
말을 마친 진양은 모습을 감추었다.
허공으로 숨어든 진양은 천천히 행성을 향해 다가갔다.
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을 건드리며 조금씩 행성 안쪽으로 향하려는 순간.
주위를 돌던 거대 석상 중 하나가 눈을 번쩍 떴다.
눈에서 흘러나온 두 개의 광선이 교차하며 진양이 서 있는 위치를 비추었다.
그러자 허공에 숨어있던 진양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진양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빠르게 석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수낭 동굴 염색방에서 얻어온 영수를 석상의 눈에 뿌렸다.
영수가 품고 있던 힘이 방출되며 석상의 눈은 오색빛깔로 물들었고, 눈에서 흘러나오던 광선은 곧바로 사라져버렸다.
진양의 모습은 또다시 허공 너머로 사라졌다.
허공에 몸을 숨긴 진양은 아래를 바라보며 빠르게 대지를 향해 하강했다.
* * *
같은 시각.
청우마는 만 장이나 되는 거대한 진신으로 변하며 진양에 의해 장님이 되어버린 조각상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행성 주위를 맴돌던 모든 석상들이 동시에 번쩍 눈을 떴다.
보이지 않던 방어진은 순식간에 실체화되며 고리를 이루었고, 여덟 개의 석상을 관통하며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빛이 튀어 올라 호수인신(虎首人身)의 이족 형상으로 변했다.
이들은 폭주하는 청우마와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 * *
진양은 아무도 모르게 대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다소 불그스름한 색을 띤 대지에서는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대지를 따라 뜨거운 용암의 강이 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외에 대기 중에는 인간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독이 퍼져있어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평범한 산이나 강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이족 외의 다른 생명체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지를 밟고 서 있으니 대황의 중력에 비하면 한참 약한 수준이었지만 중력이 느껴지긴 했다.
다만 이건 진법이나 공법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었다.
이로써 한 가지가 증명되었다.
겉보기엔 한없이 작은 조각은 사실 행성을 이루는 핵심이었던 것이었다.
잘 관리하여 수만 년 정도가 지나고 나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펼칠 수 있을 듯했다.
물론 이건 진양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얘기였지만.
진양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용암 호수를 향해 뛰어들어 하부로 향했다.
잠시 뒤.
하부에 도착한 진양은 지기진체 상태로 대지 안으로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속도가 그다지 빠르진 않았지만 이곳에 퍼져있는 땅의 기운에 익숙해지며 하강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그렇게 몇 시진 뒤.
단단한 대지는 사라지고 용암으로 이루어진 바다가 나타났다.
하지만 용암은 결국 대지가 녹아 만들어진 것들이다.
때문에 지기진체로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안으로 향할수록 주위의 온도는 더욱 뜨거워졌다.
지면에서는 별것 아니게 느껴졌던 중력도 어느새 몇 배나 더 강해져 있었다.
어느덧 진양이 아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 있는 무언가 진양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는 곧장 핵심으로 향해 강제로 성핵(星核)을 취할 생각이었으나 아무래도 계획을 바꿔야 할 듯했다.
우선 이곳을 폭파시키는 게 훨씬 더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면으로 올라온 진양은 이전에 있던 곳에서 했던 것처럼 분신과 훼멸구를 곳곳에 심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진양은 곧바로 허공으로 날아올라 지면과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이어서 굉음과 함께 거대한 행성이 뒤흔들렸고, 곳곳이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갈라진 틈에서 용암이 흘러나오며 거대한 파도를 이루었다.
계속해서 두 동강이 난 대지는 훼멸구의 힘에 의해 크고 작은 조각으로 부서져 나갔다.
허공에서 한참 청우마와 싸움을 벌이던 이족들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눈이 뒤집혔다.
그러나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멍하게 눈앞에 일어나는 걸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끓어오르는 용암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외부로 흘러넘쳤고, 지금껏 단 한 번도 뚫은 적 없던 외부의 방어망까지 뚫고 나왔다.
진양은 민첩하게 움직이며 날아드는 용암을 피했고, 천천히 핵심을 향해 다가갔다.
조금 더 안쪽으로 가다 보니 새빨간 쇳물과 마주하게 되었다.
금속이 녹아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아주 살짝 스친 게 전부였을 뿐이나 강력한 타격을 받은 것처럼 진양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다시 돌아온 진양은 이번에는 한층 더 신중히 접근하기로 했다.
우선은 대지가 완전히 부서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겨우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곳에 이토록 강력한 성핵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겉보기엔 다소 투명한 색을 띠고 있는 붉은 쇳물에 불과했지만 웬만한 법보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강력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 * *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진양은 일전에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곳까지 접근했다.
사방을 강하게 억누르던 중압감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남은 건 혼란함뿐이었다.
두 시진 정도를 찾아 헤매는 사이 용암과 쇳물이 조금씩 소멸되며 마침내 핵심이 드러났다.
십 리 정도 되는 거대한 붉은 구체였다.
구체 표면에 있던 쇳물이 사라지며 구체도 자전을 멈추었다.
그리고 뜨겁게 끓어오르던 붉은 기운도 아주 느린 속도로 소멸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 소멸될 때까지 기다릴 만큼 여유는 없었다.
진양은 곧바로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진원을 뿜어 강제로 그것을 둘러쌌다.
뜨거운 기운에 의해 진원이 계속해서 타들어 갔지만, 지속적으로 쏟아부은 덕에 마침내 완전히 구체를 감쌀 수 있었다.
진양은 과감하게 습득 능력을 발동시켰다.
습득을 완료하자 구체는 빠른 속도로 축소되었고, 어느덧 주먹 세 개만 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진양은 그것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성낙진판의 핵심과 수십 개의 진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유일한 문제는 진판 그 자체였다.
이는 진판의 발전을 막는 가장 큰 장애 요소였다.
만약 성핵을 사용하여 진판을 만든다면 진판의 위력도 지금보다는 몇 배나 더 강해질 것이다.
‘기술로 안 된다면 재료로 비벼보는 수밖에.’
무사히 성핵을 손에 넣은 진양은 이어서 주변에 흩어져있는 대지 조각도 회수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허공에 흘러다니고 있는 용암도 모조리 회수했다.
지금은 용암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차갑게 식고 나면 충분히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귀한 재료들이었다.
몇 시진 후.
누군가 사방에 떠다니는 용암 사이에서 마침내 진양을 발견했다.
진양은 상대를 바라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뽑아 수십 개의 분신으로 만들어 계속해서 회수 작업을 이어가도록 했다.
* * *
진양은 쫓아온 이족 강자들을 매달고 이곳저곳을 한참 동안 돌았다.
그동안 분신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조각을 회수했다.
너무 큰 조각은 한 번에 회수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 회수했다.
대략 절반 정도 되는 조각이 회수되었을 즘.
행성을 지키고 있던 여덟 개의 조각상도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빛의 고리가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진양은 조각상까지 매달고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습득을 시도하며 연화 가능 여부를 살폈다.
* * *
한편 청우마는 홀로 몽둥이를 휘두르며 수십 명의 호수인신 이족 강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온몸이 상처 투성이었지만 상대가 불행해진 걸 보니 기분은 좋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적에게 입은 상처로부터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 *
여덟 개의 조각상을 매달고 한참을 도망치던 진양은 더 이상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곧바로 가장 가까이 있던 조각상을 연화시켜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허공에 몸을 숨긴 채 아직 회수되지 않은 대지 조각들을 부지런히 챙겼다.
한참 뒤.
여덟 개의 조각상과 웬만큼 큰 대지 조각은 모두 회수가 끝났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진양은 호양보종을 꺼내 진원을 불어넣었다.
둥-
웅장한 종소리와 함께 물결이 흘러나오며 무차별적으로 모든 이를 강타했다.
마지막 일격을 날린 진양은 기절한 청우마를 데리고 곧장 멀리 도망쳐버렸다.
진양은 결코 살생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있다면 최대한 살생은 자제했다.
* * *
하루 뒤.
기절했던 청우마가 정신을 차렸다.
“진 선생?”
“깨어나셨군요. 괜찮은 거죠?”
청우마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상처는 치유가 되어있었다.
심지어 체내의 기혈도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뱃속에서 작은 불덩이가 끊임없이 힘을 방출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 탕은 소고기로 만든 탕이 아니니까요.”
진양은 나름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었으나 청우마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한 모습이었다.
‘됐다. 더 얘기해봤자 쇠귀에 경 읽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