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 Concept RAW novel - Chapter 53
28화.
“아니. 이 비싼 곳을 대체 왜 오자고 한 거니?”
경희는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 혀부터 내둘렀다. 도대체 이 두 아들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다.
“이런 곳 말고 그냥 고기 무한리필 집이나 가자. 이왕 나온 김에.”
아무리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비싼 소고기집에서 돈을 쓸 순 없었다.
“엄마. 괜찮아. 돈은 충분히 있어.”
“으응?”
“내가 돈 벌면 뭐부터 가장 하고 싶었는지 알아? 엄마 소고기 사주는 거. 그것도 최고급 한우로!”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얼른 일어나자니깐?”
경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걸 이번에는 천마가 붙잡았다.
“어머니. 앉으시지요. 괜찮습니다.”
“천웅이 너까지 왜 그래?”
“어머니가 맛있는 걸 드셔야 저희도 마음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앞으로 쭉 몸에 좋은 것만 드셔야 합니다. 소자와 아우가 열심히 보필해 드리겠습니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말투지만, 그래도 썩 나쁘진 않았다. 예전에는 말 한 마디도 붙이지 않았던 큰 아들이지 않은가.
비록 정신병에 걸렸지만, 오랜만에 경희는 장남이란 존재를 느낄 수가 있었다.
요즘 들어 부쩍 달라진 큰 아들 덕분에 경희는 그동안 우울했던 마음을 풀어냈다.
“그래. 너희들 마음은 잘 알겠다. 하지만 굳이 무리하면서 이런 곳에 오지 않아도 된단다. 이 엄마는 아무거나 잘 먹으니까.”
“괜찮아, 엄마. 절대 무리하는 거 아니라니깐?”
천강이 툭 하고 천마를 건들자, 그는 조심스레 통장 하나를 경희에게 건네주었다.
“응? 이게 뭐니?”
“열어봐, 엄마. 우리 형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경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통장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첫 장부터 찍혀 있는 금액에 눈이 번뜩 켜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뭐, 뭐야? 도대체 이 많은 돈이 어디서 난 거야?”
5천만원이란 돈은 경희에게 매우 큰돈이었다.
한 달 동안 식당에서 일을 해도 300만원 이란 돈을 벌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이 5천만 원이 들어 있는 통장을 떡하니 내놓았다.
사실, 천마는 아직 이곳 돈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경희의 놀란 눈을 보고 대충 큰 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 이 엄마는 절대 너희들을 탓하지 않을 테니까. 이 돈, 어디서 난 거니? 아무리 생활이 힘들다고 해도 절대 나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
“에이. 엄마는 우릴 뭐로 보고.”
천강은 말로 설명하는 대신, 뉴튜브에 있는 영상을 보여 주었다.
“이건······.”
“지금 찍고 있는 게 나고, 여기 나오는 게 형이야.”
경희는 눈을 껌뻑이다 말했다.
“이게 혹시 그 bj인가 뭔가 하는 그거니?”
“맞아. 지금 형 방송이 엄청 인기를 얻고 있어. 그 돈도 방송에서 나온 수익이야.”
“이렇게나 많이?”
“엄마. 진짜 유명한 BJ들은 한 달에 수십 억도 벌어. 형은 이제 시작이지. 그 돈에 100배가 되는 돈도 벌게 될 걸?”
천마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경희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냥 늠름한 척하면 되는 건가?
경희는 그런 천마를 빤히 쳐다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힘들지는 않니?”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천마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얼마의 돈을 벌어오는 것보다, 아들의 건강이 우선이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래서 천마도 참 오랜만에 따뜻함이란 걸 느껴봤다.
“괜찮습니다. 어머니가 하시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어머니.”
천마는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말을 이었다.
“이제 식당 일은 그만 두셔도 될 것 같습니다.”
“됐다. 아들들이 뼈 빠지게 일해서 벌어오는 돈을 흥청망청 쓰고 싶진 않구나.”
“아닙니다, 어머니. 솔직히 운이 좋았습니다. 소자가 무공을 찾으려고 게임을 하는 걸 아우가 방송을 하는 것뿐입니다.”
이제 저런 말투도 어느새 익숙해진 경희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 어미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식들 등골을 빼 먹고 살겠니. 그 돈은 너희들이 나중을 위해 저축해 놓으렴.”
“아니야, 엄마. 지금 이 추세라면 형은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거야. 그러니까 제발 이제 그만 일하세요. 나랑 형을 위해 평생 일만 하고, 엄마의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했잖아.”
“소자도 아우와 같은 마음입니다. 어머니께서도 이제 쉬실 때가 되었습니다. 부디 저희 형제의 뜻에 따라주십시오.”
천마가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리자 이내 경희는 눈물을 흘렸다.
“어, 엄마?”
“어머니?”
한참을 그렇게 울던 경희는 물이 아니라 소주를 벌컥 들이킨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후-. 이 어미가 그래도 자식 복은 있나 보구나. 너희 같은 아들들을 다 얻고.”
“엄마······.”
“그래. 너희들이 이 어미를 위해 그렇게 효도를 하겠다는데, 무시할 수만은 없지. 조금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이젠 이 엄마도 엄마 인생을 살아 보련다.”
“아주 좋은 판단이십니다, 어머니.”
“잘 생각했어, 엄마!”
경희는 자신 있게 메뉴판을 들었다.
여전히 살이 떨리는 가격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눈 딱 감고 시켜 보기로 결심했다.
두 아들이 그걸 바라고 있을 테니까.
“자. 오늘은 먹고 죽자. 오랜만에 두 아들이랑 술도 찐하게 마셔야겠네.”
“히히. 나야 좋지.”
“소자, 감사히 받겠습니다, 어머니.”
“너는 제발 그 말투부터 고치고!!”
경희가 부어 주는 소주를 처음 받아본 천마는 시큼한 냄새에 인상을 살짝 찌푸리다 잔을 쭉 들이켰다.
“······큽.”
예상은 했지만, 무림에서 먹던 술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 장남 원래 소주 잘 마시지 않았나? 맛 없으면 이걸로 마시렴.”
“아, 아니요. 소자는 괜찮······.”
“쯧. 어머니가 줄 땐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가, 감사합니다.”
경희는 바로 소주와 맥주를 황금 비율로 말아 천마에게 건네 주었다.
뭔가 내키지 않은 색깔을 띠고 있었지만, 천마는 꾹 참았다.
‘그래. 어머니가 주시는 잔인데!’
그리고 눈을 꼭 감고 한번에 들이켰다.
그런데 이건 뭔가 달랐다.
무언가가 시원하게 파도처럼 몰아친다고 해야 할까.
천마는 멍한 얼굴로 한동안 그 시원함을 뼛속까지 느꼈다.
“아우야.”
“응?”
그리고 고기를 우적우적 씹고 있던 천강에게 물었다.
“방금 어머니께서 주신 게 무엇이냐?”
“응? 소맥인데?”
아아. 그래.
이것이 소맥인가?
가히 천하제일의 술이로다.
* * *
천마는 기분 좋게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는 경희를 슬쩍 살펴보다 조용히 방 밖으로 나왔다.
동생은 밥을 먹고 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편집에 열중이었다.
“아우야. 많이 피곤할 텐데, 오늘은 쉬지 그러느냐?”
“응? 아니야. 괜찮아. 그렇지 않아도 오늘 이거 편집 하는 거 때문에 많이 안 마셨어. 형이나 좀 자. 아까 미친 듯이 술만 마시던데. 오늘 너무 마신 거 아니야?”
“크, 크흠.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니라.”
사실, 말하진 않았지만 지금 천마는 애써 쓰러지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소맥에 눈을 뜨고 말아 그만 연거푸 잔을 들이키고 말았다. 이 몸이 본래의 몸이 아니라는 걸 잊은 채로 말이다.
다행히 동생의 만류로 잔을 거두긴 했지만, 지금은 바닥에서 누워 자라고 해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난 괜찮으니까, 어서 가서 주무셔.”
“그래. 너도 조금만 하고 바로 자거라.”
“알겠어.”
천강은 다시 화면에 시선을 돌려 편집에 온힘을 쏟고 있었다.
천마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처음에는 이런 삶이 많이 낯설고, 분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렴 괜찮다.
오히려 지금의 삶을 포기하라고 하면 힘들 것 같았다.
한번도 가져보지 못 한 가족이란 것을 갑자기 또 포기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 몸의 주인은 어떻게 된 거지?”
영혼이 바뀐 것인가, 아니면 이 몸의 주인은 사라진 것인가.
뭐가 되었든, 천마는 내심 불안했다.
“이러다 갑자기 또 바뀌어 버리면······.”
그땐 인사도 없이 생이별을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끙. 이런 걱정을 다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막연한 두려움이 일면서도 지금 이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천마에게는 큰 의미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더 행복하게 웃는 것을 보려면 돈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흠. 열심히 하려고 해도 뭘 열심히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천마는 왜 그렇게 시청자들이 열광하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그것도 기초적인 것만 했을 뿐인데도 시청자들은 호들갑을 떤다.
즉, 천마가 무공을 찾는 것이 이들에게는 큰 볼거리라는 것.
딱히 무언가를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천마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 된다. 그럼,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되어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될 거야.”
뭔가 막히는 부분은 동생이 잘 조율을 해 주니, 천마에게는 큰 걱정이 없었다.
“그렇게 하다보면······.”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천마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천마는 사실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 * *
“자! 여러분! 오늘도 천마님의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천강의 멘트로 시작된 방송.
-천하!
-천하!!
-천마형!! 기다렸다굿!!
-뉴하!!
-오늘도 뉴튜브 하이!!
수많은 시청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방송에 유입되었다. 빠르게 올라가는 시청자들 숫자에 천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송을 시작했다.
“오늘도 역시 새로 오신 분이 많네요!”
-크으으 당연히 기다렸지!
-여기가 그 소문난 맛집인가요?
-꿀맛집 ㅇㅈ.
-검황님 보러 왔습니다!
-나도 검황님 보러옴 ㅋㅋㅋ
검황?
천강은 잠깐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가 뛰어난 검술을 보여 준 덕분에 커뮤니티와 뉴튜브에서는 천마를 검황이란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오늘은 저번에 예고해 드렸던 대로 히든 퀘스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꼭 끝까지 시청해 주세요!”
-검황좌의 방송이라면야
-갑자기 왠 검황?
-요즘 천마 형 별명임.
-저번 방송도 안 본 충이 있다?
“천마님도 시청자분들에게 인사 한번 해 주시죠!”
천강의 부름에 천마는 뭔가 의미심장한 눈동자를 띠었다.
“천마님?”
천강은 모르겠지만, 지금 천마는 경희의 얼굴을 떠올리며 열심히 하자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흠-. 오늘도 잘 보거라.”
“······?”
순간 당황한 건 천강이었지만, 천마는 이 정도면 인사를 잘 한 거라며 내심 뿌듯해했다.
“어흠흠. 여러분. 아무튼, 바로 진행하죠!”
-ㅋㅋㅋㅋㅋㅋ바로 칼진행ㅋㅋㅋㅋㅋ
-PD좌 당황ㅋㅋㅋ
-진짜 저럴 때면 간당간당해 보이지 않냐?
-선을 넘을까 말까 넘을까 말까
시청자들은 이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천마님. 오늘 시청자분들의 기대가 매우 크세요!”
마타하니 기사단이 있는 곳까지 가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천강은 아무 말이나 던져 보았다. 하지만 대답을 하는 천마는 그저 담담했다.
“그래.”
“오, 오늘의 각오 같은 건 있을까요?”
“딱히. 그냥 본좌의 수련을 방해하는 것들을 모조리 치워 버릴 뿐.”
저런 대답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아직 기사단까지의 거리는 좀 남아 있었다. 그동안 시간을 끌어야했다.
“지금 시청자들 사이에 천마님의 별명이 뭔지 아세요?”
“본좌의 별명?”
“예. 바로 검황이랍니다, 검황! 천마님이 저번 방송에서 보여 준 검술 때문에 사람들이 검황 그 자체라면서 칭송하고 있어요.”
천강은 천마에게서 ‘고맙다’ 라는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천마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이제껏 본 적 없는 험악한 표정으로 천강을 노려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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