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30
“뭐야? 왜 이렇게 급해.”
“저, 도준 오빠 의상 반납하러 다녀왔었는데요. 그 이시후 디자이너 옷이요.”
수진의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바깥의 더운 날씨 때문인지 흥분해서인지 불분명했다. 아마도 후자에 가까운 듯했다.
함께 뉴욕에 다녀온 이후, 휴가를 다녀온 수진은 오늘 아침 이시후 디자이너가 운영하고 있는 수트 브랜드 ‘베니스 포 맨’의 의상실에 다녀왔다.
이시후 디자이너의 베니스 포 맨은 한국에서는 이미 유명세를 탄 지 오래고, 나름대로 수출도 하고 있는 잘나가는 브랜드였다. 사실 트렌디하면서도 클래식을 잃지 않는 센스 있는 브랜드라 한국 셀럽들 사이에서는 웬만한 명품 못지 않게 인기가 좋았다.
유명인이라고 해서 아무나 협찬해주지 않고, 브랜드와 이미지가 맞는지 검증 후 협찬하는 깐깐한 협찬 정책도 인기를 과열시키는 데 한몫한 건 분명했다.
‘소수’만 협찬을 받을 수 있으니 협찬받게 되면 특별한 느낌이 더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평범한 셀럽들의 얘기였다.
수진이 도준의 스타일리스트를 하면서 직업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도준의 배려도 배려였지만 도준이 어떤 브랜드, 어떤 디자이너의 의상이든 협찬 받을 수 있는 ‘프리패스’ 연예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베니스 포 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도준이 입을 옷이라고 하면 직원들은 깐깐하다는 이시후 디자이너의 결재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일단 골라 보라는 식이었다.
이시후 디자이너가 도준을 모델로 쓰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면서 말이다. 그러니 빌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반납 기간도 다른 연예인에 비해 배로 길었다.
덕분에 뉴욕에 다녀온 지 2주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 의상을 반납해도 됐던 것이다.
“그래, 근데 왜······.”
“저 여러번 갔었는데 이시후 디자이너는 못 봤었거든요. 거기 직원이나 소속 디자이너까지만 보고. 근데 이번에 이시후 디자이너가 저 온다고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널?”
“네. 도준 오빠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데 저 통해서 연락하는 게 맞는 거 같다고 하면서······. 그때 제인 안투랑 미팅할 때 도준 오빠가 베니스 포 맨 옷 입고 있었잖아요. 그거 보고 제인이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고.”
“그랬나?”
다른 것들에 집중하느라 옷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있었던 진성현 부장이었다.
“네. 그랬어요! 근데 그러고 진짜로 베니스 포 맨 마음에 들어서 알아 봤는지··· 제인 안투한테 추천받았다면서 이시후 디자이너한테 연락이 왔대요.”
“누구한테?”
“디얼 옴므한테요! 아시아 콜렉션 내면서 콜라보할 업체 찾고 있었다면서··· 아무튼 그래서 베니스 포 맨이 디얼이랑 콜라보 하고, 다음 달 커버 모델 화보 의상으로도 채택됐다고 하고. 오늘 기사도 나갈 거래요. 진짜 대박이죠?!”
흥분해 점점 말이 빨라지는 수진에 진성현 부장이 얼떨떨하게 “그러네” 하고 답했다.
“그날 도준이가 좀 멋있긴 했지······.”
미팅 날 도준을 떠올리며 진성현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뭐 특별히 멋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갖춰 입은 도준은 늘 그 정도는 했으니까.
아무튼 패션을 잘 모르는 진성현 부장이 보기에도 옷 맵시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진성현 부장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수진이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다시금 설명했다.
커버 화보 촬영에 의상이 쓰인 한국 브랜드도, JK 편집장인 제인 안투의 눈에 들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에 추천까지 받은 브랜드도 전무후무했기 때문이었다.
패션 업계에서는 도준이 JK 커버 모델이 된 것만큼이나 큰 일이었다. 벌써 소문이 깔렸는지 수진에게도 연락이 쏟아지고 있었다.
안부인사인 듯했으나 도준에게 의상을 언제든 협찬할 의사가 있으니 자신들의 브랜드를 잊지 말라는 일종의 청탁 연락이었다.
도준의 영향력이 업계를 넘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아, 그리고 이 디자이너님은 감사하다면서··· 도준 오빠는 평생 의상 전부를 무상 제공하겠다고 받아달래요. 언제든 쇼룸와서 옷 골라가라고요.”
국내 브랜드라지만 럭셔리 브랜드였기 때문에 셔츠 한 장에 백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도 많았다. 진성현 부장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 정도야?”
“네. 그 정도요!”
수진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도준 오빠한테도 연락해서 말할게요. 오빠도 뿌듯할 것 같은데······.”
“그렇지. 자기 때문에 브랜드 하나가 세계 시장에 완전히 발돋움하게 생겼는데.”
그렇게 말하며 진성현 부장은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계약서 사인 전이니 확정은 아니라지만 큰 문제만 없다면 도준은 곧 재벌 3세 ’전태진’ 역에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역할에 따라 고급 의상도 많이 필요할 테고.
“명품 쪽에서도 연락 많이 온다고?”
“네. 샤헬이나 루이뷔 같은 브랜드 매니저한테 먼저 연락받기는 또 처음이에요. 협찬이야 늘 잘해줬지만.”
“좋네. 연락 잘 받아 놔. 의상 협찬 받을 일 많을 것 같으니까.”
“오······ 무슨 행사 있어요? 아니면 작품?”
“곧 알게 될 거야.”
아직 확정 안 난 스케줄이구나, 생각하며 수진이 끄덕였다.
부장실을 나서며 도준에게 메시지를 넣는 수진의 어깨가 흥으로 들썩거렸다.
***
며칠 후.
문시열 감독이 소나무 엑터스 사무실을 직접 방문했다. 출연에 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예전 같았으면 도준과 함께 진성현 부장만 미팅에 참여했을 테지만 미팅 자리에는 규홍도 자리했다. 아직 진성현 부장처럼 수완이 좋다고까진 할 수 없었지만 막내일 때부터 도준의 매니저로 일한 지 벌써 몇 년이었다.
이제 업계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배우 케어도 꽤 능숙했다. 작품 보는 눈도 있는 편인 규홍을 진성현 부장이 제대로 키워보려 한다는 것을 아는 건 도준 정도였지만.
주문한 커피와 차를 쟁반에 들고 회의실로 들어오는 규홍을 보며 도준이 엷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고맙습니다. 매니저님.”
규홍이 각자의 앞에 컵을 놓자 도준과 문시열 감독이 차례로 인사했다. 규홍이 웃으며 쟁반을 한편에 치워놓고 저도 자리를 찾아 앉았다.
“도준 씨가 이렇게 출연을 결심해 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로서는 정말 큰 횡재했어요.”
“별말씀을. 시나리오가 좋아서 출연하고 싶었습니다.”
도준의 칭찬에 문시열 감독이 기분 좋게 웃었다.
“도준 씨가 ‘전태진’ 역 하고 싶다는 말 듣고 생각해 봤는데 저한테나 도준 씨한테나 좋은 도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쓰신 입장에서 이미지랑 너무 안 맞는다 싶으신 건 아닐지 걱정했습니다.”
“처음에 걱정했던 건 ‘전태진’이 야비한 인물이라는 거예요. 야비라는 단어랑 도준 씨는 너무 안 어울리니까.”
“하하. 좋게 봐 주신 거겠죠? 연기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야비한 모습.”
도준의 답에 문시열 감독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도준 씨 작품들 쭉 돌려 보다 보니까 이미 봤던 것도 다시 보니 조금 다른 느낌이 있더군요.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을 때··· 칼을 간다는 느낌이랄까··· 서늘한 느낌이 또 있더라고요.”
도준은 문시열 감독이 늘어놓는 자신에 대한 감상을 경청했다.
“어쩌면 도준 씨만큼 이 역할을 입체적으로 표현할 배우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태진’은 겉보기엔 누구보다 멀끔하고 수려한 사회인인데, 그 이면은 누구보다 야비하고 잔인한 캐릭터니까. 도준 씨도 그 때문에 자기 역할이라고 생각했나 싶고.”
역시 감독답게 ‘전태진’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한 줄이었다. 도준은 그것을 가슴에 새겼다.
“그러면 이진욱 형사 역 캐스팅은 어떻게 됩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진성현 부장이 가볍게 물었다.
“글쎄요. 이제 막 제작사랑 논의를 거치던 중이라··· 도준 씨가 캐스팅되면 또 얘기가 달라질 거라서요. 혹시 원하시는 배우가 있습니까?”
사실 도준 정도 톱급 배우가 되면 중요 배역 캐스팅 권한까지 일정 부분 생기기 마련이었다.
꼭 누구를 지목하지는 않더라도 ‘자신보다 키가 크면 안 된다.’, ‘급이 너무 낮으면 안 된다.’, ‘너무 급이 높아도 안 된다.’, ‘나이가 어리면 안 된다.’ 등 조건을 걸어 자신이 최고로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문 감독의 물음에 진성현 부장이 먼저 고개를 저었고, 도준이 답을 했다.
“아니요. 문 감독님이 원하시는 대로 캐스팅해 주세요.”
중요 배역일수록 배우가 상대 배역에 관여하기보다는 제작진이 원하는 대로 캐스팅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작품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도준이었다.
옳은 생각이기도 하지만 자신감이 있어야만 가능한 얘기라고 문시열 감독은 생각했다.
“그··· 그런데 이 영화 주제가 아무래도 좀. 실제 모델도 있고 하지 않습니까? 공식적인 것은 아니라도요.”
출연을 결정하며 도준에게 추가로 들은 얘기였다. 진성현 부장의 말에 문시열 감독이 표정을 흐리며 말했다.
“아······ 그렇죠. 사실 그래서 더 도준 씨 선택이 놀랍고 감사합니다만.”
무언가 문제가 있을까 문시열 감독이 걱정스럽게 말끝을 흐렸다.
“앞으로 이래저래 기사가 나가게 될 텐데 제작 완료하고 언시하기(언론 시사회) 전까지 홍보 방향에 있어 조금 페이크를 치면 어떨까 싶은데 제작사랑 논의 이전에 문 감독님이랑 먼저 상의드리고 싶어서요.”
“페이크라면······.”
“뭐, 진짜 거짓말을 하자는 건 아니고. 시나리오 내용이 최대한 새어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내용도 경찰이 범죄자를 쫓는, 자본주의의 병패를 다룬 영화 정도라고 소개하고요.”
진성현 부장의 말에 문시열 감독이 천천히 “아아···.” 하고 중얼거렸다. 그 의도를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일전에 을 찍을 때도 제작사 쪽에 강한 압력이 들어온 적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지어 대놓고 재벌가를 노린 영화였다.
“외압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강 배우가 출연하니 제작이 무산되는 일이야 없겠지만, 굳이 제작 때부터 어려움을 당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진성현 부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미 개봉 때 SG 쪽의 방해를 받은 바 있는 도준이었다. 심지어 얼마 전만 해도 SG 미디어가 도준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았던가.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사실 진 부장과 상의해 이러한 계획을 세운 건 도준이었다. 문시열 감독이 이해했다는 듯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게 좋겠네요.”
***
도준이 의 제작사와 출연 계약을 맺은 다음 날.
공교롭게도 도준의 차기작 소식보다 한 시간 빠르게 SG 미디어의 주연 캐스팅 기사가 나갔다.
덕분에 포털사이트 연예란은 정신 없이 업데이트가 되고, 실시간 검색어는 요동을 치고 있었다.
끝
ⓒ 천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