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6
선택 (4)
“형은 그게 귀여워? 귀여우면 형이 입든가.”
“얼굴까지 쓰는 것도 아니고, 잠깐 입는 건데······ 음악 방송 MC 하면 원래 컨셉 맞춰서 옷도 입고 그러는 거라. 의상이 그렇게 네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고······.”
“누가 음악 방송 MC하겠대? 배우하겠다니까.”
“너도 오케이 했잖아. 얼굴 알릴 수 있으면, 너도 좋다며.”
“인형탈 쓴다고는 안 했지. 싫어. 안 해. 난 못 해.”
“혜석아, 곧 방송인데 네가 갑자기 그러면······.”
두 사람의 대화가 가관이었다.
복도 앞을 지나는 이들은 모두 바빠 그런 두 사람을 힐끔 보고 지나칠 뿐이었다. 화가 난 연예인과 달래는 매니저, 한두 번 보는 광경도 아닐 터였다.
도준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한숨을 겨우 삼켰다.
제작진 측에서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 인형 탈 잠깐 입는 게 싫어서 찡찡대는 꼴에 도준은 어이가 없었다.
누군가는 정말로 원하는 자리일 것이다.
아무리 작은 배역이든, 별것 아니게 보이는 자리든 그 자리 하나 얻지 못해 절망하는 사람도, 그 자리에 뛸 듯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뮤직 카운트’ MC는 원하는 이들도 많은 자리였다.
웬만한 아이돌 가수나 신인 배우들이 어떻게든 이름을 알리고자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저런 식의 고집이라니. 이해조차 안 됐다.
속이 답답해 나왔는데, 더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대기실에서 나온 도준을 발견한 이혜석이 눈을 찌푸렸다.
“거기.”
이혜석이 매니저 너머로 도준을 불렀다.
도준은 순간 멈칫했다. 설마 했으나, 이혜석이 부른 건 도준이 맞았다.
“뭘 그렇게 봐. 듣보랑 일하는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인형 탈은 저런 듣보나 쓰라고 해.”
이혜석이 턱짓으로 도준을 가리켰다.
시비 거는 눈짓을 여러 번 모르는 척해주었더니, 도준을 우습게 본 모양이었다. 도준은 기가 찼다.
이혜석의 매니저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도준의 등 뒤로 당연히 진성현 실장이 따라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말릴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생각에 아찔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안 따라 나와서 다행이었다. 진성현 실장이라면, 오히려 더 화를 냈을 수도 있었다.
무조건적으로 감싸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신의 배우가 무시당하는 꼴은 못 보는 사람이었다.
“뭐. 내 말이 틀렸어?”
안 그래도 짜증에 가득 차 있던 이혜석이 반말로 되물었다.
“이혜석.”
도준의 낮은 목소리가 복도를 조용히 울렸다.
“씨.”
호칭을 붙인 게 아니라 욕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도준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더욱 그렇게 들리게 만들었다.
‘내가 사람을 너무 과대평가했어.’
일이 생각과는 다르다고 매니저가 달래야 할 만큼 짜증을 내고, 초면인 도준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는 인간이었다.
일에 있어서만큼은 프로 정신을 기대했던 게 아예 잘못이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뭐라고?”
“탈 쓰는 거, 그게 그렇게 구린 일 같으면 하지 말라고.”
도준은 차갑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이 일이 이혜석에게는 간절하지 않을 수도, 소중하지 않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남의 일까지 피해를 주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이혜석이 꼬장을 피우는 바람에 기분 좋게 MC를 봐야 할 지수도 눈치를 보고, 열심히 대본을 준비해와 설명하던 제작진도 기분이 상했다.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
도준이 차갑에 말했다.
“지금 당장 아무 대기실에나 들어가서 MC 하고 싶냐고 하면 다들 하고 싶다고 할걸. 대기실이 아니라 전화만 돌려도 당장 나오겠다는 신인들이 줄을 섰을 거다. 네가 뭔데 이 일을 우습게 봐.”
도준의 일침에 이혜석은 표정을 구겼다. 나름 잘생겼다고 생각했던 얼굴인데, 그 본성을 봐 버려서인지 생김새마저 못나 보였다.
“뭐, 이 자식이!”
“내가 보기엔 그 탈이 아니라 네가 구린 것 같다.”
도준의 말에 숙연해진 것은 도리어 이혜석의 매니저였다. 톱 모델 출신이라고 너무 오냐오냐 하면서 데려왔다.
배우로서는 신인이니 다시 시작하는 거나 다름 없다고 자신이 가르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성현 실장의 배우인데다, 박찬종 감독 작품으로 데뷔한 도준도 저런 마음가짐인데, 자신의 배우를 보니 마음이 씁쓸했다.
“나랑 한번 해 보자는 거야?”
열받은 이혜석이 대뜸 도준의 앞으로 다가와 손을 들며 도준을 위협했다.
도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대신 이혜석의 팔을 쳐내며 돌아섰다.
“그럴 가치가 있을까.”
도준을 잡아채려는 이혜석을 이혜석의 매니저가 엄하게 불렀다.
“이혜석!”
그 목소리에 이혜석이 놀라 돌아보았다. 도준도 뒤쪽을 보았다. 이혜석의 매니저가 도준에게 사과했다.
“도준 씨, 폐 끼쳐서 죄송해요. 제가 따끔하게 혼내겠습니다.”
도준은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혜석 매니저가 제게 사과할 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가 관리하는 배우이기도 했다.
뒤늦게 대기실에서 나온 진성현 실장이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진성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쪽은 하기 싫은 거 안 해도 될 것 같네.”
“네? 그게 무슨 말씀······.”
이혜석의 매니저가 당황하며 진성현 실장에게 물었다.
“마스코트는 다른 형태로 도준이가 활용하기로 했어. 지금 급하게 제작 중이고. 도준이 넌 뭘 해도 상관없지?”
“아, 제가요? 전 당연히 괜찮아요.”
도준이 흔쾌히 대답했다.
차라리 잘됐다. 이혜석이 죽상을 하고, 하기 싫다고 뻗대는 걸 받아주다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근데 그 제가 이미지가 그렇게 귀여운 쪽은 아니라서······ 그게 걱정이네요.”
“넌 참 그 얼굴로 별 걱정을 다한다. 어차피 탈 입는 것도 아니야. 구리다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도준이 머쓱하게 웃었다.
진성현 실장이 자신의 배우를 보란 듯 이혜석 매니저를 보았다. 이혜석 매니저는 고개를 숙였다.
“대본은 바로 다시 뽑아서 준다더라. 두 사람 이름만 바꾸면 된대.”
이혜석의 매니저가 끄덕였다.
이혜석은 표현 못 할 기분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는 그렇게나 하기 싫던 인형 탈 입기였는데, 무언가 일을 뺏긴 기분이었다.
진성현 실장이 이혜석 매니저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배우 관리 잘하라는 선배의 따끔한 충고가 담긴 두드림이었다.
***
그렇게 ‘뮤직 카운트’의 생방송이 진행되었다.
뒤늦게 대본을 확인한 이혜석은 이를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도준과 이혜석의 분량 차이가 상당했다.
제작진으로서는 미리 내정돼 미팅도 했던 이혜석에게 당연히 더 많은 분량의 대사를 할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역할이 바뀌면서 분량도 완전히 뒤바뀌었다.
“뮤직~ 카운트! 안녕하세요, 오늘도 찾아온 뮤직 카운트, 지수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분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바로 바로 이혜석 씨!”
“안녕하세요! 이혜석입니다!”
그래도 생방송에 들어가자 이혜석은 마이크를 쥐고 웃으며 진행을 보았다. 이혜석이 인사를 하자 방청석에 있던 가수 팬들 사이에서 ‘귀엽다’, ‘잘생겼다’ 하는 외침이 들려 왔다.
“그리고, 또 한 분이 더 계신데요! 어디 계시지?!”
작은 사이렌 소리와 함께 도준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어?! 포돌이?! 경찰서에 안 있고 왜 여기 있어?!”
이미 뮤직 카운트 MC를 여러 달 보며 꽁트식 대본에 익숙해진 지수가 과장된 어투로 물었다. 도준은 제작진이 급하게 제작한 포돌이 가면을 얼굴에 쓰고 있었다.
“포돌이는 늘 여러분 곁에 있으니까요!”
“어, 이상하다. 포돌이 목소리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지수가 의심하는 척을 하자 도준이 때맞춰 가면을 벗었다.
가면을 벗느라 머리가 흐트러진 탓에 도준이 살짝 고개를 흔들고는 빠르게 멘트를 쳤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페셜 MC를 맡게 된 강도준입니다!”
멘트를 치는 도준의 얼굴을 곧바로 카메라가 클로즈업했다. 가면을 벗은 도준의 등장에 방청석이 일순간 술렁였다.
가면을 쓰고 있다가 벗었기 때문에 더 얼굴에 시선이 집중되는 효과가 있었다.
“뭐야, 왜 저렇게 잘생겼어. 누구야?”
“와······.”
“친절한 오 사장 나오는 그, 그 사람 아냐? 교수 아들?”
“헐? 나 아직 그 영화 안 봤는데.”
“배우? 배우는 다르네.”
객석의 자세한 반응까지는 알 수 없었다. 도준은 생방송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뮤직 카운트 MC! 지수 씨가 눈치가 빠르신데요?”
지수를 보며 눈을 찡긋거리고 웃는 그 순간 지수는 도준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오빠였음에도 귀엽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웃었다.
가면 때문에 흐트러진 머리카락도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혜석이 질세라 끼어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밝은 미소로 멘트를 쳤다.
“경찰의 날 특집, 뮤직 카운트! 지금 시작합니다!”
그러나 너무 밝게 미소를 지으려던 탓인지 약간 어색해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도준이 곧바로 멘트를 이어나갔다.
“네, 오늘 1위 후보인 보이즈원과 대결도 놓치지 말고 기대해주세요!”
곧바로 옆쪽에서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카메라가 클로즈업 했던 도준의 얼굴에서 멀어지며 세 사람을 잡았다.
카메라를 쳐다보면 안 되는 영화 촬영과 달리 카메라의 빨간 불을 놓치지 않고 봐야 한다는 점이 생소했지만, 도준은 꽤 능숙하게 MC를 보고 있었다.
***
방송이 끝난 후, 당연하게도 이번에는 관계자 시사회때보다 더 빠르게 반응이 올라왔다. 거의 실시간 반응이었다.
곧바로 ‘세상에서 가장 훈훈한 포돌이’라는 제목으로 글과 함께 짤이 올라왔고, 한 커뮤니티에서 댓글이 천 개를 넘게 달리며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진짜 경찰이었으면 매일 범죄 저질러 버려
-미쳤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
-가면 벗을 때 숨 멈췄다 나
-포돌이 가면을 썼는데도 잘생김 안 숨겨져… 논란
-얼마 전에 친절한 오사장 짤 돌아다니는 거 봤는데 이렇게 보니까 또 다르네
-연기도 잘하던데 MC도 잘 보더라
-연기 그거 조금 한 것가지고는 모르는 거 아님?
-조금..이라기엔 너무 인상적인 연기였던 것 같은데.. 인터뷰 보니까 최민철이 칭찬하던..
-내 마음을 훔친 범인 같은데 포돌이시라고?;;; 해명 좀;;;
-가면 벗기 전에 포돌이 몸부터 이미 섹시했다!!!
-MC 진짜 잘보더라 딕션도 좋고 대성할 듯
-다음 작품 소식 있어? 얼굴 많이 보고 싶은데
-데뷔한 지 2주 됐는데 성격급한 것 보소
이혜석에 대해선 더 신경 쓸 것도 없었다. 도준에 비해 이혜석에 대한 반응은 무반응에 가까웠다.
첫 번째 방송 이후 ‘키도 크고 귀엽게 생겼는데 조금 더 MC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반응만 몇 개 있었다.
그 때문에 기가 조금은 죽었는지, 두 번째 MC를 볼 때에는 따로 어깃장을 놓진 않았다. 특집 방송이 아니라 특별한 내용이 없기도 했다.
도준은 MC 2주 차 방송 모니터링을 하며 괜히 팔을 긁었다.
‘오글거려······.’
방긋방긋 웃으며 브이를 하고, 한 톤 높은 목소리로 가수 소개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영 적응되지 않았다.
“그런 것치고 너무 잘하던데. 적성에 맞는 거 같아. 아예 고정 가야 하는 거 아냐?”
“적성······ 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도준의 답에 진성현 실장이 낄낄대며 웃었다.
“그럼 이제 진짜 적성을 찾아볼까.”
진성현 실장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세 개의 대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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