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5
선택 (3)
도준은 뒤늦게 혜석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냈다.
‘이혜석······ 이혜석이구나.’
오늘 도준과 함께 ‘뮤직 카운트’ 스페셜 MC가 된 이 중 한 명이었다.
유명 모델 출신으로 최근 방영했던 드라마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도준은 영화 준비에 바빠 챙겨 보지 못했던 드라마여서 이혜석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다.
그저 어제 진성현 실장이 함께 MC 볼 배우라고 해서 인터넷에 검색해 본 게 전부였다.
실제로 보니 프로필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키도 더 커 보이고, 얼굴도 작았다.
‘역시 모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도준은 그 정도로 이혜석을 평가했다.
자신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에 짜증을 내는 이혜석의 모습에 도준도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오늘 내내 함께 일하고, 다음 주에도 같이 MC를 봐야 했다.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시작도 전에 쓸데없는 곳에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 사람도 내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겠지.’
데뷔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고. 이전에 연기한다고 나섰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비난에 비하면, 사실 적시 수준이었다.
“컷트는 다 됐고, 염색 들어갈게요.”
직원이 조심스럽게 도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직원이 짜증을 낸 것도 아니었다. 도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거울 속 직원의 눈과 시선을 맞췄다. 자신은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표시였다.
도준의 미소에 직원이 다시 편안한 얼굴로 보조를 불러 함께 도준의 머리를 염색하기 시작했다.
마침 간식을 사러 편의점에 다녀왔던 진성현 실장이 돌아왔다.
“근데 오늘 저랑 MC 본다고 했던 이혜석 씨라고 했나?”
“어, 그 친구. 왜?”
“혹시 잘 아세요?”
“아니, 내가 아는 후배가 맡은 배우일걸. 갑자기 왜.”
진성현 실장도 이혜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잘 나가는 모델이었다지만, 배우로서는 신인이라 정보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잘 아는 사이였다면, 어제 부연 설명을 했을 것이다.
“아니에요. 같은 샵 다니나 봐요. 아까 안쪽에 지나가던데.”
“그래? 후배놈도 와 있겠네. 잠깐만.”
인사를 하기 위해서 진성현 실장이 다시 자리를 비웠다. 그사이 직원과 보조가 도준의 머리를 빠르게 완성시켰다.
***
샵을 나와 일찍 방송국에 도착한 도준은 주변을 살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주로 영화 촬영 현장에서 했기 때문에 이렇게 방송국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방송국 입구에 진을 치듯 선 기다란 줄은 그야말로 놀랄 만한 광경이었다.
“아직 아침인데 엄청 많이 왔네요. 설마 저게 다 팬들이에요?”
“그럼 뮤직 카운트 온 팬들이지.”
“진짜 많네요.”
입구에서 출입을 허락받는 그 잠깐 사이, 도준의 벤이 자신의 가수의 벤인지 확인하려 온 팬들의 얼굴이 창에 들이밀어졌다.
선팅을 세게 해 밖에서는 안 보이지만, 안에서는 얼굴이 명확하게 보였다. 도준은 깜짝 놀라 몸을 물렸다.
‘저 사람들이 다 앞에 있다는 거지······.’
영화도 많은 스태프 앞에서 연기하는 일이었지만, 이 정도의 숫자는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생방송.’
아무리 대본을 외워서 하는 연기라고 생각하라지만, MC는 분명히 다른 종류의 일이었다.
“아마 오늘 보이즈원이 나와서 더 그럴 거야.”
배우지망생이라고 해서 연예계 전반에 모두 빠삭한 건 아니었다.
특히나 도준은 생활비와 병원비를 버느라 택배 일을 포함해 다른 일도 많이 했기 때문에 오디션을 보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학창시절 인기가 있던 가수는 알았어도, 요즘 나온 가수들은 아주 유명한 가수가 아니면 잘 몰랐다.
“아, 보이즈원! 지난 주에 1위 한 가수죠?”
“맞아. 가수 잘 모른다며. 1위 한 것도 아네?”
그렇게 모르는 상태로 음악 프로그램 MC를 볼 수는 없다는 게 도준의 생각이었다.
도준은 영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도 며칠간 TV 다시보기로 ‘뮤직 카운트’ 최근 화를 시청했다. 덕분에 최근에 나온 가수들에 대한 공부가 꽤 잘 돼 있었다.
또 지난 MC들이 MC 보는 것을 보며 집에서 혼자 따라하기도 했다.
지난 회차들을 보며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는 도준에 진성현 실장이 차를 세우며 칭찬을 늘어 놨다.
“노력 안 해도 되는 얼굴인데 노력파란 말이지. 잘했다, 잘했어. 난 할 일이 없네, 아주.”
도준은 피식 웃었다.
‘노력하지 않고는 안 됐었으니까.’
심지어 잘생겨졌다고 하더라도 얼굴이 다는 아니라는 걸 도준은 알고 있었다. 잘생긴 도준도 결국 스물 아홉에야 데뷔하지 않던가.
실력도, 운도, 노력까지도. 모두 필요했다.
그러니 도준은 지금의 모든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자리인지 알았다.
‘너무 안 어울려서 상상도 안 했던 자리인데. 잘해 봐야지.’
도준은 생각하며 벤에서 내렸다.
MC 대기실에 들어서자 곧바로 ‘뮤직 카운트’ 작가들이 찾아와 도준을 맞이했다.
급하게 잡힌 스케줄이다 보니 현장 미팅은 없었고, 사전에 전화로만 미팅을 했었던 사이였다.
“어머! 도준 씨, 염색하셨네! 잘하셨어요, 분위기가 훨씬 밝아 보여서 프로그램에 잘 맞네요.”
“세상에. 너무 잘생겼다.”
‘뮤직 카운트’의 작가들이 입을 모아 도준을 칭찬했다. 영화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도준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제가 오늘 처음이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잘 부탁드릴게요.”
“어머, 걱정 마세요. 안 어려워요.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맞아요. 연기 그렇게 잘하고, 목소리도 이렇게 좋은데. 그냥 읽기만 하면 돼요. 읽기만.”
이런 무조건적인 믿음과 신뢰, 호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 싶을 만큼 작가들은 방긋방긋 웃으며 도준을 대하고 있었다.
‘역시 얼굴일까.’
도준은 멍하니 작가들이 쏟아내는 말을 들었다.
“여기 대본이구요. 일단 대본 숙지해두시고, 이따 리허설 하면서 호흡 맞춰 보시면 금방 잘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오프닝 의상은, 의상팀이 준비해둔 거 아시죠? 오늘 컨셉이 경찰이라서.”
“아. 네.”
경찰 제복을 본 떠 만든 의상이 대기실 한편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남자 것 입으시면 돼요.”
남자용 제복 한 벌과 여자용 제복 한 벌. 총 두 벌이었다.
‘어? 남자 제복이 왜 한 벌뿐이지.’
도준은 이혜석을 떠올렸다. 오늘 MC는 이혜석과 도준, 그리고 원래 MC로 자리하고 있던 여자 아이돌 그룹 멤버인 지수가 있었다.
때마침 대기실 문이 열리며 지수와 이혜석이 차례로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매니저와 함께였다.
“어, 지수 왔어? 혜석 씨, 안녕하세요.”
“언니!”
이미 몇 달 동안 MC를 하고 있던 지수는 작가들과도 꽤 친분이 두터운 듯 언니라고 부르며 인사했다.
이혜석은 작가들의 인사에 꾸벅 형식적으로 인사했다.
“리허설 전에 인사드리러 왔어요. 의상도 갖고 가구.”
지수는 가수로 활동 중이었기 때문에 MC 대기실이 아닌 그룹 대기실을 사용했다.
도준의 옆에 있던 진성현 실장이 나서 도준을 소개했다. 도준보다 어린 지수였지만, MC로든, 데뷔로든 경력은 앞서 있었다.
“오늘 같이 MC 볼 강도준 배우예요. 2주지만 잘 부탁드려요, 지수 씨.”
“반갑습니다!”
지수가 생긋 웃으며 도준을 향해 인사했다. 청량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확실히 대세 여자 아이돌 그룹의 비주얼 멤버다웠다.
‘와, 진짜 예쁘네.’
몸속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순간 도준은 입을 벌리고 멍하니 지수를 쳐다볼 뻔했으나 얼른 정신을 차렸다.
“제가 먼저 찾아갔어야 하는데······. 반갑습니다.”
그 뒤로 지수와 이혜석도 인사를 나누었다. 이혜석과 지수는 이미 사전 미팅을 해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반가워요, 혜석 씨.”
“아아-, 네.”
도준의 인사에 이혜석은 도도한 표정으로 답했다. 말투도, 아래로 내리 깔아 보는 시선도 기분 나빴지만, 도준은 모른 척했다.
‘이혜석도 모델계에선 탑을 찍었던 친구고······. 프로 정신이란 게 있겠지.’
도준은 이제 이혜석이 프로 정신을 갖고 있기를 바라게 됐다. 적어도 방송에서만큼은 제 기분을 티내지 않길 바랐다.
지수는 이제 갓 스물두 살이었고, 이혜석은 스물여섯이었다.
도준은 파릇한 이십 대 초중반 친구들에 비해 자신이 너무 ‘아저씨’처럼 보이진 않을지 그런 것이나 잠시 걱정했다.
그런 걱정을 했다가도 거울을 보면, 걱정이 사라졌다.
이혜석의 태도에 열이 받고 있는 건 진성현 실장이었다.
제아무리 모델에서 톱이었어도, 배우로서는 똑같이 신인이었다. 송정호나 최민철도 일적으로 만난 도준을 깔보지는 않았다.
‘감히 내 배우를 말이지······.’
샵에서 도준이 이혜석에 대해 물었던 것도 기억났다. 그때도 뭔가 무시를 받았나 싶어졌다.
도준은 일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기분 나빠도 별 신경 쓰지 않을 게 뻔했다.
‘작가들 나가면 한소리 해야겠어.’
진성현 실장이 이혜석의 매니저를 보며 생각했다.
작가들이 대본과 오늘 일정에 대해 열띠게 설명했다. 도준은 그사이 이혜석의 불편한 시선을 몇 번 받았다.
“······열 시에 간단하게 리허설 갈 거니까 그때까지 대본 숙지해주시면 돼요.”
작가들의 설명을 듣다 보니 이혜석이 이미 한 달 전 스페셜 MC 자리를 배정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인과 지수, 둘만 MC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도준이 나타난 상황이었다.
기분이 왜 상했는지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대본 보시면 알겠지만, 경찰의 날 특집이라서 포돌이 인형탈 입을 건데요. 얼굴은 아니고 몸만요. 혜석 씨가······.”
작가의 설명은 이어지지 못했다. 이혜석이 쥐고 있던 대본을 파삭, 꾸겼기 때문이었다.
“저요?”
“네······ 계속 입고 있는 건 아니고, 다섯 번째 타임에 한 번만 입는 건데.”
“형, 이게 무슨 소리야? 이런 말 없었잖아.”
이혜석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매니저가 난감한 채로 표정을 흐렸다.
대기실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웃고 있던 지수도 입을 다물고 이혜석의 눈치를 봤다.
“꼭 제가 해야 돼요?”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나 본데. 잠시만, 잠시만요.”
이혜석의 매니저가 난처해하며 이혜석을 데리고 복도로 나갔다.
“아! 너무 구리다고.” 하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이혜석의 목소리가 닫히는 문 사이로 들렸다.
결국 본성을 드러낸 것이다. 상황을 지켜 보는 진성현 실장은 낮게 혀를 찼다.
“······혜석 오빠 화났나 봐요.”
지수의 말에 작가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분위기 좋게 일하고자 웃는 것이지 예능 작가들이라고 해서 무한정 을은 아니었다.
심지어 이혜석은 모델계에서만 톱이었을 뿐, 배우로서 아직 크게 자리잡은 것도 아닐 터였다.
“뭐야, 구려? 나름 신경 써준 건데······.”
“그니까. 연하남 하고 싶다고, 귀여운 이미지 살려달랄 땐 언제고.”
작가들이 어깨를 으쓱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경찰의 날’ 특집으로 경찰에서 후원받은 코너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청 측에서 요구한 마스코트 홍보가 필수였다.
새로 섭외한 도준도 있었지만, 도준은 영화 속 이미지와 나이가 있으니 아무래도 귀여운 건 이혜석 쪽으로 몰자고 정하고 쓴 대본이었다. 주목도 더 받을 수 있었다.
“저······. 저도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도준은 찬물이 끼얹어진 대기실을 참지 못하고 문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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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는 이혜석의 매니저가 이혜석에게 애걸복걸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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