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한 걸음 더 (1)
본격적으로 휴식을 갖기 전, 도준이 만난 이는 김철한 변호사였다.
시상식 이후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덕분에 김철한 변호사를 마주한 도준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잘 생각하셨네요.”
김철한 변호사의 사무실.
빙긋 웃으며 하는 말에 도준은 가볍게 웃었다. 기쁜 마음에 나오는 웃음은 아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싶은 자조도 있었고, 짐을 처리하니 후련한 마음도 있었다.
어쨌든 이 재산이 백 씨 남매에게 돌아가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여기. 사인하실 서류들입니다.”
책상 위에 올라온 서류가 상당히 많았다. 그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재산이 도준에게 귀속될 예정이었다.
법적인 문제에 관해서 전적으로 백정한 회장의 변호사였던 김철한 변호사만을 믿을 수는 없었다.
‘물론 누구보다 이런 일에 도가 텄겠지만…….’
일을 못 할까 봐 걱정인 게 아니라 혹 자신에게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었던 것이다. 백정한 회장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김철한 변호사에 대한 신뢰 또한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도준은 관련 서류를 미리 받아 진성현 대표에게 소개받은 믿을 만한 변호사에게 내용을 확인했다.
어차피 백정한 회장의 명의로 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확인을 받는 것 자체는 번거롭지 않았다.
도준은 차례대로 한 장씩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하기를 반복했다.
어마어마한 재산이 넘어오는 일이었음에도 도준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이걸 다 받으시면 국내 연예인 재산 순위 1위가 되시겠네요.”
묵묵히 사인하는 도준을 보며 김철한 변호사가 농담처럼 말했다. 도준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답했다.
“글쎄요. 지금은 아닐까요.”
도준이 근 5년간 벌어들인 출연료와 모델료는 굉장한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경쟁 상대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도준이 이렇게까지 자신 있어 하진 않을 터였다.
출연료와 모델료를 모아 투자로 증식시킨 재산이 더 어마어마했다.
부동산부터 주식에 이르기까지 도준의 투자 능력은 생각보다 탁월했다.
그런 식으로 재산을 불리며 도준은 예전에는 왜 자신과 어머니가 그렇게 가난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무리 돈을 모아도 모이지 않았는지 허무하게 깨달았다.
‘돈이 돈을 부르는 거니까.’
너무 적은 돈은 새로운 돈이 들어오기도 전에 수중에서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큰돈은 순식간에 더 큰돈을 불러왔다.
“하하. 그렇죠. 지금도 제대로 조사해 보면 연예인 중에서 단연 손꼽히시겠군요.”
건조한 도준의 답에 김철한 변호사는 더 큰 미소를 띠며 말했다.
대외적인 이미지만 알았기에 겸손하고 바른, 착하기만 한 이일 줄 알았는데 직접 만난 도준은 마냥 착해서 바보 같은 이미지는 절대로 아니었다.
냉철한 면도 있었고 과하게 자신을 낮추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예의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 올해 하반기에는 연예인 국내 개인 재산 순위에 이름을 올리게 되시겠군요.”
김철한 변호사가 그렇게 말했을 때 도준은 사인을 마치고 펜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제 재산이라고 생각 안 합니다.”
김철한 변호사가 무슨 말이냐는 듯 도준을 바라보았다.
‘내 노력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백정한의 재산…….’
그마저도 백정한이 땀 흘려 일군 재산은 아닐 게 분명한 재산이었다.
탐탁지 않은 이 재산의 사용처를 모두 생각해둔 도준이었지만, 굳이 김철한 변호사에게 말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해 도준은 그가 궁금해할 것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도준이 입을 다물자 김철한 변호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클리어 파일에 서류를 정리해 담았다.
“뭐, 어떻게 생각하시든 사인하셨으니 이제 이것 또한 전해드릴 수 있겠군요.”
김철한 변호사가 내민 건 여러 개의 도장이 찍힌 채 밀봉되어 있는 서류 봉투였다.
“백 회장님이 직접 강도준 씨 앞으로 남기신 겁니다.”
도준은 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김철한 변호사의 사무실을 나와 자신의 차에 올라탄 도준은 고민 없이 밀봉된 봉투를 뜯었다.
도준은 이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제게 쓸모없으리라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역시나였다.
봉투 속 든 서류는 유전자 검사 결과지였다.
검사 대상자 ‘백정한’과 ‘A’의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결과. 신분이 적혀 있지 않아도 A가 가리키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어디서 유전자 샘플을 구한…….’
그러한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났지만, 무의미한 궁금증이었다.
지난 생에서도 경찰서에 있던 도준의 유전자 샘플까지도 어렵지 않게 구한 백정한 회장이었으니까.
현재의 도준처럼 노출이 많은 상황이라면 더 쉬웠을 수도 있다.
생각하며 결과지를 넘기자 ‘나의 자식 누구에게나 SG 그룹 승계의 권한이 있다’고 친필로 쓰인 문서가 있었다. 문서에는 백정한 회장의 지장이 찍혀 있었다.
그게 백정한 회장이 제 아들에게, 농락했던 여인의 자식에게 남긴 유서였다.
도준은 쓰게 웃었다. 백정한은 백천과 백정아가 밀려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제 핏줄이 SG 그룹을 이어 가길 바랐을 것이다.
‘내게 그런 욕심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단 재산 상속에 사인을 하면 이것을 넘기라고 했겠지.’
자신의 자식임을 증명할 때 쓰이라고 남겨 둔 서류.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난 당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다 자신처럼 탐욕스러울 것이라 생각하는 게 우스웠다.
‘죽어서도 탐욕스럽구나.’
부욱- 도준은 고개를 내저으며 서류를 두 갈래로 찢었다. 변기에 내려 버릴 쓰레기였다.
* * *
[강도준 휴식 선언, 당분간 활동 계획 X…… 검토 중인 작품 없어]
[이제는 쉬어 갈 때, 한동안 강도준 못 본다…… 팬들 “아쉬워”]
[진 엑터스, 강도준 휴식은 일반적인 휴식일 뿐- “신변 문제 NO”]
[“잘 쉬고 돌아오겠습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휴식기 들어간 강도준]
[강도준 스케줄 중단 소식에 충무로, 방송가 난색……]
[ 데뷔 5주년 쉬지 않고 달려온 배우 강도준의 대기록]
도준의 소식은 비단 작품 출연 소식만 화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도준이 차기작 대신 휴식을 선택했다는 소식에 팬들은 물론이고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들, 감독, 작가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주연 배우 캐스팅 제1순위, 아니 0순위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으니 당연했다.
어떻게든 도준을 캐스팅해 흥행에 승부를 걸어 보려고 했던 이들에게는 희망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성현 대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여기저기서 연락을 받았는데 도준이 언제쯤 복귀하냐는 얘기였다.
몇몇 영화감독은 자기 작품은 도준이 아니면 안 된다면서 도준이 작품을 검토해 줄 때까지 다른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주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이도 있었다.
어떻게든 진성현 대표에게라도 눈도장을 찍겠다는 심산일 뿐, 물밑으로는 2순위, 3순위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넣고 있을 테지만 그 심정만은 진심이라는 것을 진성현 대표도 알고 있었다.
유독 영화감독들이 더 난리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야 김진숙 작가 작품이니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은 아니었지.’
이전까지 매니악한 감독으로 평가받던 문시열 감독은 을 통해 천만 영화감독으로 발돋움했다.
현재 차기작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간 문시열 감독의 충무로 입지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오래 공을 들여 본인이 작성한 시나리오 덕분도 있겠으나 이만큼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은 데는 분명히 도준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국내 영화가 저조한 성적을 내는 지금, 영화판 감독들은 어떻게든 강력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도준을 캐스팅하고 싶었던 것이다.
‘뭐…… 드라마 다음에는 영화를 할 거라고 지레짐작해서 더 연락해 오는 것도 있겠지만.’
사실 도준의 휴식에 아쉬움을 표명하고 있는 건 국내 업계만이 아니었다.
이후 도준은 할리우드 작품 제의를 받았었다.
당시에는 이신만큼 괜찮은 역할이 없었지만 그 이후로도 꾸준히 작품이 들어왔다.
더군다나 가 끝나면 미팅하기를 원하는 할리우드 유명 영화 제작사도 있는 상황.
이 부분만큼은 누구보다 도준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길 바랐던 진성현 대표도 아쉬웠다.
‘그렇지만 기회비용이란 건 어떤 것을 선택해도 생기는 거니까.’
여태까진 쉬는 것을 포기하고 작품 출연을 선택해 왔을 뿐이다.
도준이 이러한 사실들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고, 알고서도 휴식을 선택한 것이었으니 진성현 대표도 아쉬움을 지웠다.
인제 와서는 도준이 조금 쉬고 온다고 해도 사라길 기회도 아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쉬는 것도 난리네. 이런 게 스타구나. 많은 스타들 봐 왔지만 새삼 느낀다.”
스포츠 신문 지면에까지 실린 도준의 기사였다. 이제는 보는 사람도 잘 없는 커다란 신문을 접어 테이블 위에 놓으며 진성현 대표가 중얼거렸다.
촬영이 끝난 기념으로 진성현 대표가 도준에게 준 선물은 두 개였는데 하나는 지갑이었고, 하나는 고가의 소파였다.
도준이 같은 소파를 너무 오래 쓴 것 같아 집 안 분위기 환기도 시킬 겸 고른 것이었다.
오늘 아침 소파가 배달됐다는 소식에 선물이 어떻게 놓였을지도 보고, 도준의 휴가 계획도 물으려 진성현 대표는 직접 도준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러게 뭐 이렇게까지 대대적으로 기사를 내셨어요. 그냥 쉬는 건데.”
“우리라고 대대적으로 내고 싶었나? 소소하게 내고 싶어도 네 소식은 다 대대적으로 돼.”
맞은편에 앉으며 도준이 피식 웃었다.
“기사 하나 내면 일타쌍피니 안 낼 수가 있어야지.”
진성현 대표의 변명 같은 말에 도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은 뭐든 이슈를 이어 가면 좋으니까 낸 거고. 그리고 너 차기작 들어가기 전에는 거의 항상, 일 년에 한 번씩은 팬 미팅 했었잖아. 그래서 네 팬들이 팬 미팅 할 줄 알았나 봐. 진 엑터스로 옮겨서 안 하는 것 아니냐고 뭐라고 하잖아!”
차분하게 설명하던 진성현 대표가 조금 울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연락 오는 사람들한테 일일이 너 당분간 작품 검토 계획 없다고 말하는 것도 다 일이고. 믿지도 않고. 팬들과 관계자…… 둘 다 목 빠지지 말라고 낸 거야.”
“잘하셨어요.”
“그래서 너 휴가 계획은 뭐야.”
“일단 해외로 여행을 갈까 생각 중이에요.”
“여행? 좋네. 한국에 있으면 쉬는 게 쉬는 게 아닐 테니까. 알아보는 사람도 너무 많고.”
“네. 그래서 조금 멀리 나가 보려고요.”
“혼자?”
도준이 끄덕이자 진성현 대표는 걱정을 담아 말했다.
“너무 위험한 데는 가지 말고. 장소 옮기면 꼬박꼬박 연락해 주고.”
“걱정 마세요.”
구체적으로 자신이 가려고 생각해 둔 도시들을 얘기하던 때, 도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윤정훈]
전화의 발신인은 윤정훈이었다.
‘돈…… 때문인가?’
도준은 의아한 채로 진성현 대표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 171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