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
인생 역전 (2)
***
평일 오후 시간의 지하철은 한산했다.
도준은 어머니가 남긴 편지를 손에 꼭 쥔 채 멍하니 앉아 목적지에 다다르길 기다렸다. 상주가 되어 장례를 치른 탓에 안 그래도 보기 흉한 도준의 몰골이 더 초췌해져 있었다.
어머니의 유골함을 납골당에 안치시킨 지 겨우 하루가 지났다. 죽음의 충격도 가시지 않은 도준에게 편지의 내용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도준은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긴 한지,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도 발걸음부터 내딛는 것은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긴 해야겠다는 생각 하나 때문이었다.
도준은 다시금 편지를 확인했다.
[······너를 가졌을 때는너무 경황도 없고, 무서웠어.
단 한 번의 만남이었는데,
아이가 생길 줄은 정말로 몰랐거든.
그래서 몰래 낳아 널 키운 거고.
아빠 없이 자라게 해 정말로 미안하다.
내가 세상에 없으면,
넌 혼자가 되겠지.
너도 다 컸고
이제는 네 아버지를 찾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진관동 강영순’이라고 하면 기억할 거야.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었지만,
내 생에 너를 만난 건 너무나 큰 행운이었어.
너를 키우면서 많이 행복했고,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내 아들.]
이미 사고를 당한 후에 쓴 탓에 글씨는 힘이 없고 기어가듯 흐물흐물했다.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도준은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믿기 힘든 사실이었지만, 돌아가신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었다.
―다음 역은 디지털미디어시티역, 디지털미디어시티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도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섰다.
SG 그룹 본사가 있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이었다.
‘내 아버지가 백정한 회장이라니······.’
***
벽면이 모두 유리로 된 SG 그룹 본사 건물은 그야말로 최첨단의 느낌이었다.
문화산업에 관련해서는 모든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SG 그룹이니만큼 제작사도, 매니지먼트사도 운영하고 있었다.
‘언젠가 SG에 올 날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이런 식일 줄이야.’
회전문 안으로 들어서며 도준은 생각했다. 지나는 사람들 모두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1층의 카페테리아에는 유명 드라마 PD와 배우도 있었다.
도준은 층별 안내도부터 확인했다. 역시나 가장 최상층. 그곳에 대표이사실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출입 카드부터 있어야 했다. 도준은 주먹을 꽉 쥔 채 안내대로 향했다.
미소가 생명인 안내원이었으나, 도준과 시선이 마주친 안내원의 표정은 가히 좋지 못했다. 확실히 처음 보는 이는 가까운 거리에서 두 눈 뜨고 마주하기 어려운 못생김이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회장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네?”
처음에는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되묻던 안내원의 얼굴이 곧 냉랭해졌다.
“백정한 회장님. 만나러 왔습니다.”
“선약 있으셨습니까?”
“‘진관동 강영순’ 씨 아들이 찾아왔다고 하면 만나주실 겁니다.”
“죄송하지만, 선약 없이는 갑자기 만나실 수 없습니다.”
“말만 전해주세요. 그럼 분명히 만나겠다고 하실 거니까.”
“죄송합니다.”
안내원은 무표정한 채 죄송하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죄송하다고 하고는 있지만, 잘도 너 같은 걸 만나주겠다, 하는 냉소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한 번만 부탁합니다. 그렇게 전해만 주시면 돼요. 사람 하나 살린다 치고······. 꼭 만나야 해서 그럽니다. 예?”
이제는 애원까지 하게 된 도준이었으나 안내원은 강경했다.
SG 그룹 회장이기 이전에 자신의 친부일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만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다니. 스물아홉 사는 동안 아버지 없이 살아온 것만으로도 한이 맺혔던 도준은 침통해졌다.
그때 한 무리의 화려한 인물들이 도준의 옆을 지나갔다. 안내원도 퍼뜩 데스크 앞으로 나와 허리가 90도가 되도록 인사하며 무리의 중심에 선 여자를 에스코트했다. 주변을 지나던 이들도 여자를 돌아보고 있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SG 그룹 전략기획실 실장이 된 백정아 실장이었다. 백정한 회장의 막내딸이었다. SG의 젊은 대표 얼굴로 각종 언론에 노출된 적이 많아 도준도 얼굴을 알았다.
“저기! 백정아 씨!”
방법을 가릴 게 없었다. 도준이 백정아를 부르자, 백정아와 무리가 걸음을 멈춘 채 도준을 쳐다보았다. 백정아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백정아와 눈이 마주친 도준이 백정아를 향해 한 걸음 내디디려 할 때였다. 주변에 있던 가드들이 순식간에 도준을 향해 달려들며 도준의 몸을 막았다. 백정아 앞에 가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뭡니까! 놔 봐요! 저 할 말이 있어서 그럽니다. 백정아 씨!”
소리쳐 봤자 도준을 막고 있는 가드들의 힘만 더욱 세졌다.
“······아시는 분입니까?”
“내가 저런······ 사람을 안다고요? 진짜 너무하네. 김 비서.”
백정아가 돌아보며 도준을 막고 있는 가드들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여기가 아무나 들어오는 데였습니까? 일들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백정아가 다시 돌아서고 있었다. 도준도 자신이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몰랐다. 도준이 울분에 차 소리를 질렀다.
“백정한 회장께 전하세요! 진관동 강영순 아들이 왔다고!”
카페테리아에 있던 이들도 소란에 로비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뭐 하는 사람이지?”
“백 회장한테 억울한 일이라도 당했나······. 왜 옛날에도 부당 해고 당해서······.”
“쉿, 이 대리. 입 조심해.”
SG 그룹 직원들의 수군거림은 다행히 백정아에게까지 닿지는 않았다.
백정아와 그 무리는 더는 돌아보지도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이거 완전 또라이 아냐.”
“운수가 더러워도 씨······. 하필 저 여자한테 걸렸으니 징계 먹게 생겼네.”
“그니까. 이봐요, 아저씨. 돌려면 혼자 곱게 돌아. 누굴 엿 먹이려고. 생긴 것도 뭐······ 씹다 버린 껌같이 생겨 가지곤.”
“바로 안 나가시면 경찰 부를 겁니다. 알겠어요?”
가드들이 도준을 끌어다 바닥에 내팽개치듯 던졌다. 도준은 씹다 버린 껌처럼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렇게 돌아가야 하는 건가?’
평생을 연 없이 살아온 아버지에게 부정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고 싶었고, 제 피의 반을 준 사람을 한 번쯤은 만나고 싶었다.
그 ‘한 번’도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
건물을 나온 도준은 가드들이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백정한 회장이 나오길 기다렸다. 범죄를 저지르려는 것도 아닌데 건물 뒤에 숨어 있는 꼴이 우습게 느껴졌다.
‘끝내 만나지 못하면······. 머리카락과 함께 우편물이라도 보내야 하는 건가.’
그러한 생각까지 하게 된 도준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도준의 우편물이 백정한 회장에게까지 전달될 리가 없었다. 미친놈이 보낸 잡스러운 편지로 분류될 것이다.
기둥이 가려주고는 있었지만, 뜨거운 초여름의 날씨가 열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도준의 등은 이미 땀으로 축축했다.
그때 건물 앞으로 무게감이 느껴지는 검은색 세단이 와 섰다. 양복의 사내가 조수석에서 내려 뒷문을 잡고 대기했다. 곧 회전문 안에서 한 무리의 가드들이 줄지어 나왔다. 도준을 밀친 이들도 섞여 있었다.
확실치는 않았지만, 건물 안에서 고위급 관리가 나오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도준은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세단 쪽으로 접근했다.
그때였다. 가드들과 견주어도 달리지 않은 거구의 장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정한 회장이다!’
비서와 가드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백정한 회장이 문을 나서고 있었다. 양복의 사내가 허리 숙여 인사하며 뒷문을 열고 대기했다.
“회장님―!!!”
그리도 도준은 단숨에 세단 앞으로, 백정한 회장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뭐야!”
“뭐야, 저놈 아직도 안 갔어?”
“제지해! 얼른.”
백 회장의 옆에 있던 두 명의 가드와 비서들이 백 회장을 가로막고, 네 명의 가드들이 일시에 도준을 둘러싸며 제지했다. 비서들이 백 회장을 엄호하며 차에 태우려고 했다.
“잠깐만! 백 회장님! 잠시만요!”
“여기가 어디라고. 조용히 못 해?!”
종종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시위한답시고 찾아와 길을 막아선 적이 있었기 때문에 백 회장은 눈도 깜박하지 않았다.
“회장님! 강영순 씨를 아시죠?!”
‘강영순’이라는 이름에 차에 올라타려던 백 회장이 멈칫하며 도준을 돌아보았다. 가드들 사이에서 도준의 얼굴을 확인한 백 회장은 눈을 흐렸다.
“진관동 강영순 씨······ 아들입니다. 믿지 못하시겠으면 유전자 검사를 하셔도 좋으니······.”
그러나 백 회장이 걸음을 멈춘 건 잠시뿐이었다. 도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 회장은 차에 올랐다.
탁, 차 문 닫히는 소리가 또렷했다. 세단은 빠르게 자리를 떠났고, 가드들 사이를 뚫고 나오려 발버둥 치던 도준의 몸에서도 힘이 빠졌다.
“아오 씨, 누구 밥줄을 끊을라고. 야! 막내! 이 새끼 이거, 경찰로 데려가.”
“네, 알겠습니다!”
가드 중 막내라고 불린 이가 도준을 잡아끌었다.
***
별다른 전과가 있었던 것도, 폭행하거나 기물파손을 한 것도 아니어서 도준은 경찰서에서 영업장 난동에 대한 경고 조치 정도만을 받았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도준은 그저 멍한 상태였다.
‘분명히 어머니의 이름을 듣고 멈춰 섰어······.’
자신의 존재를 어머니가 알리지 않았다는 것 외에, 도준이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인지,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지.
‘어머니를 까맣게 잊은 건가? 하긴 근 삼십 년 전의 일일 테니······.’
경찰서를 나서는 도준의 입안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이제 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없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였다.
‘내 인생에 아버지는 무슨······.’
도준은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도준도 도준의 인생이 있었다. 백 회장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일에만 매달릴 순 없었다.
[상을 당해서 내일 계약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런.. 그럼 가능하실 때 연락주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며칠 전 주고받은 영화 제작사 관계자와의 문자를 확인하며, 도준은 새로운 문자를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강도준입니다 저 이제 시간이 되는데 내일 제작사로 찾아봬도 될까요?]아버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안 것으로 일단은 만족해야 했다.
그것도 SG 그룹의 회장. 언젠가 배우로 이름이 알려지면, 그때에는 SG 건물 안에는 들어설 수 있겠지.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도준은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백정한 회장은 그날 밤 이미 유전자 검사까지 마친 상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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