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4
인생 역전 (3)
***
백정한 회장을 찾아간 바로 그다음 날. 제작사를 찾은 도준은 또 한 번 충격에 빠졌다.
“아, 강도준 씨. 벌써 오셨네요. 안 그래도 오늘 안 오셔도 된다고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네? 왜······.”
“죄송하지만, 이번 계약은 힘들게 됐어요.”
“그게 무슨······ 이렇게 갑자기?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오늘 계약하자고 하셨잖습니까?”
“그랬죠······. 아무튼 죄송하게 됐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그럼.”
계약 담당인 이 실장이 난처한 얼굴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도준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출연 번복이라니.
“저, 그냥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실장님!”
자리를 피해 일어서 버리는 이 실장을 도준이 끈질기게 붙들었다.
“돌아가세요. 그만.”
“실장님! 이유라도 알려주세요. 왜 갑자기 저를 안 쓰시겠다는 건지······!”
“강도준 씨. 이거······ 참. 저도 모릅니다. 몰라요.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예요. 박 감독님 마음 바뀐 걸 수도 있고. 나도 갑자기 또 오디션 봐야 해서 피곤하니까. 그만 가세요. 네?”
이 실장의 답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준은 며칠간의 일들이 모두 꿈같이 느껴졌다. 어디서부터 깨지 않는 꿈일까. 멍하니 선 도준을 남겨두고 이 실장은 재빠르게 사무실을 나갔다.
박찬종 감독 영화 캐스팅 취소가 끝이 아니었다.
도준은 그 뒤로 어느 곳에서도 오디션을 볼 수 없었다. 심지어는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까지 도준을 불러주지 않았다.
종종 도준을 단역 대타로 부르던 극단도 연락이 뚝 끊겼다.
도준이 먼저 연락을 해도 모두 도준의 연락을 피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식의 차디찬 답만 돌아왔다.
어머니의 죽음은 여전히 때때로 도준을 슬프게 했지만, 슬픔도, 아버지의 존재도 당장 삶의 문제 앞에서는 흐릿해져 갔다.
‘왜 이렇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렇게 반년. 배우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일도 구할 수 없었다. 도준은 이제 배우지망생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평범한 택배원이었다.
아무리 외모의 제약이 있었다고 해도 이 정도로 아무 일도 하지 못했던 적은 없었다. 도준이 느끼기에도 무언가 이상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외적으로든, 외부적으로 가진 것 하나 없이 끈기 하나로 버텨온 삶이었다.
도준은 더 열심히 프로필을 돌리고,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여전히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아무리 도준이어도 지칠 대로 지쳐갔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하고 다녔는지는 몰라도 이제 연락 그만해. 나까지 찍힐까 겁나니까. 알았냐?”
“무슨 말이야?”
“네 이름 완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그런 거 없었어도 너 쓸 제작사 많지도 않았겠지만. 너 쓰면, 기업에서들 제작 지원 안 들어온다고 소문나 있더라.”
그러던 중 겨우 만나게 된 대학 선배로부터 도준은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다.
‘내가······ 찍혔다고? 블랙리스트?’
제대로 캐스팅도 된 적 없는 무명 배우가 블랙리스트에 오를 일이란 흔치 않았다.
선배의 말을 무시한 채, 신생 기획사에 프로필을 넣은 다음 날, 도준은 모르는 번호로부터 연락을 받게 됐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자신이 어디에 찍혔는지.
***
자정이 넘는 시각. 택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도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캄캄한 방에 불도 켜기 전이었다. 도준은 신발을 벗으며 전화부터 받았다.
―강도준 씨 되십니까?
“네. 맞는데요. 누구신지······.”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이쯤 했으면 알아서 조용히 사세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세상 밖으로 나올 생각하지 마시고. 이후 단 한 번이라도 세상에 얼굴이 알려지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 뒤는 장담할 수 없다고.
“도대체 무슨! 당신 누구야? 어?!”
―부친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도요. 평범하게 살게는 내버려 두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 아량이라고 하셨습니다.
전화는 일방적인 통보 후 끊겨버렸다. 백정한 회장이었다. 겨우 쥐구멍에 들어온 볕까지 막아버리고 이가 바로, 아비라는 자였다.
박찬종 감독 때 이 실장이 말한 ‘상부의 지시’가 도준의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이제까지 벌어진 모든 상황이 단번에 이해됐다.
어머니는 ‘이제는’ 아버지를 찾아도 괜찮을 거로 생각했다고 했다. 어머니가 도준을 가졌을 때만 해도 백정한은 현재의 백정아와 같이 SG 그룹의 실장급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회장이었고, 회장 자리 승계를 두고 한창 여러 말이 오갈 때였다. 그러니 서자인 도준의 존재가 백정한에게 반겨질 리 없었다.
그러나 이제 SG 그룹 내에서, 아니 대한민국 산업 전반에 걸쳐 무소불위, 절대 권력을 가진 백정한이었다.
서자가 들어온다고 입지가 흔들릴 리 없었고 거기에 도준이 나이가 어려 키워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다 큰 성인이었다.
물론 후계나 재산이나 그래서 더 문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환영하진 않아도, 아버지로서 최소한의 도리 정도는 해줄 것이라고, 어머니는 생각했던 것 같다.
도준도 그렇게 여겼다. 참으로 순진하고 멍청했다.
회장의 숨겨진 아들로 밝혀져 권력을 누리는 건 로또 당첨보다도 허황한 얘기였다. 괜히 잘못 걸려 망하지만 않아도 다행이었다.
“하······.”
도준은 분노로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휴대폰을 쥔 손이 그야말로 부들부들 떨렸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집 안에서 홀로 분노하며 도준은 결국 그 자리에서 무릎 꿇은 채 무너져 내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태어날 때부터 악조건이란 악조건은 다 가지고 태어났다. 아버지도, 돈도 없는 집안. 놀림만 받을 뿐, 여자 한번 못 사귀어볼 만큼 추한 얼굴. 그저 그런 공부 머리까지.
자신을 사랑해준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이었고,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도 없었고, 재능을 펼쳐 볼 기회가 완벽히 사라져 버렸다.
‘기자······ 기자한테라도 사실을 알려서 복수를······ 아냐.’
주먹을 꽉 쥔 채 도준은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한 번은 멍청했어도, 두 번은 멍청하지 말았어야 했다. SG 그룹의 백정한 회장을 상대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으면, 도준이 얻을 게 무엇이 있을까. 백 회장에게 복수가 되기는 할까.
“어머니······.”
도준은 어머니를 떠올리며 무릎 꿇은 채 눈을 감았다. 눈을 떠도, 감아도 캄캄했다.
어린 도준은 일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TV로 외로움을 달랬었다. 드라마 속, 영화 속 배우들이 도준의 친구가, 가족이 됐었다. 그렇게 키워 온 배우의 꿈이었다.
도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완벽하게 좌절했다.
도준은 결국, 한없이 나약해졌다.
스물아홉이 끝나가는 12월 31일 마지막 날 밤. 도준은 현대예술대상 시상식을 찾았다. 언젠가 배우가 되어 꼭 참석하고 싶었던 시상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평생 참석할 수 없을 것이다.
도준의 인생은 여기에서 끝이었으니까. 더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버지란 작자가 시상식에 도착해 있었다.
어머니의 편지와 자신의 유서를 품에 넣은 채 도준은 건물 아래로 아무런 미련도 없이 옥상 바깥으로 발을 내디뎠다.
“끼아아아아악!!!!!!”
쿵! 거대한 소음과 함께 비명이 울려 퍼졌다.
***
―다음 역은 디지털미디어시티역, 디지털미디어시티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캄캄한 시야 속, 희미하게 들려오는 안내 방송에 도준이 번쩍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뭐지? 분명히 뛰어내렸는데 내가 왜 지하철에 있는 거지?’
멍한 채로 도준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평범한 지하철 안이었다. 맞은편의 여중생들이 멍한 표정의 도준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도준은 자신의 두 손, 두 발이 모두 멀쩡한 것까지 확인했다.
‘꿈속인가?’
그러나 꿈일 리는 없었다. 도준은 죽었으니까. 그럼 사후세계로 가는 길인가. 도준은 얼떨떨한 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부스럭거리며 손가락 사이로 봉투가 잡혔다. 도준은 봉투를 꺼냈다.
봉투는 하나뿐이었다. 봉투 속 편지를 확인하는 순간 현실감이 확 몰려 왔다. 어머니의 편지였다. 도준이 썼던 유서는 없었다.
“말도 안 돼.”
도준은 재빨리 다른 쪽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날짜를 확인해야 했다. 그사이 역에 도착한 지하철이 멈춰섰다.
―이번 역은 디지털미디어시티역, 디지털미디어시티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휴대폰에 찍힌 오늘의 날짜는 2월 15일 금요일. 그날이었다. 도준이 백정한 회장을 찾아간, 바로 그날.
도준은 놀라 굳은 채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정차했던 지하철의 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생생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죽었다가 다시 아버지를 찾기 직전의 시점으로 회귀라도 한 것처럼!
‘설마······.’
설마가 설마였다. 도준은 휴대폰 속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영화 제작사 이 실장과 주고받은 문자가 그대로였다. 그러나 아직 내일 가겠다는 문자는 없었다.
도준은 오른쪽 손등을 왼쪽 손으로 꼬집었다. 생생하게 아팠다. 미칠 노릇이었다. 회귀였다. 소설, 드라마, 영화 가리지 않고 벌어지던 그 일이 도준에게 정말로 벌어지고 만 것이다.
“미쳤다. 와······. 나 저렇게 생긴 사람 처음 봐.”
“진짜 대박.”
맞은편의 앉아 있던 여중생들이 소란스러웠다. 도준을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못생긴 외모로 인해 수군거림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어처구니없었다.
화가 난다기보다 제 인생이 처량해 웃음이 다 났다. 다시 돌아와 봐야 똑같이 빌어먹을 인생이었다.
“······찌푸려도 잘생겼네. 연예인인가?”
“연예인? 설마. 저렇게 생겼으면 데뷔하자마자 내가 벌써 이름 알았을 듯.”
“그럼 연습생인가?”
“아니아니. 사람 아니라 안드로이드인 듯.
“미친! 연습생이겠지? 언제 데뷔할까. 사진이라도 찍을까? 완전 소장각.”
“데뷔하면 대박일 듯.”
지하철은 다음 정류장을 향해 잘만 가고 있었다. 도준은 머쓱해졌다.
‘뭐야, 나 보고 수군거린 게 아니잖아?’
누가 그렇게 잘생겼다는 건지, 도준도 궁금해져 옆을 보았다. 그러나 옆자리에는 등산복을 입은 할아버지뿐이었다.
‘어?’
여중생의 휴대폰 카메라 렌즈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도준이었다. 도준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여중생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어떡해! 우리 본다!”
“심장 떨려. 야, 아이컨택 사진 빨리 찍어!”
도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호들갑을 떨고 있는 여중생들을 향해 다가갔다.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리며 여중생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눈으로 도준을 바라보았다.
“너희 지금.”
도준은 인상을 굳히며 말하려고 했다. 너희 지금 나를 왜 찍고 있냐고. 그러나 말하지 못했다. 그전에 휴대폰에 찍힌 자신의 얼굴을 봐 버렸기 때문이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꽃이 됐다는 나르키소스를 단박에 이해하고도 남을, 너무나 잘생긴 얼굴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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