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5
인생 역전 (4)
***
깨닫고 보니 여중생들만 도준을 보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반대편 끝에 앉은 젊은 여자도 힐끔거리며 도준을 보고 있었다.
다음 역에서 내린 도준은 다시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되돌아갔다. 가는 길 내내 도준은 얼굴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잘생겼어.”
전면이 유리로 된 SG 그룹 본사 건물 앞에 서서 도준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잘생겼다. 정말이지 신이 ‘잘’ 빚어 놓은 형상이었다.
새삼 이전 자신의 얼굴은 신이 만들다가 말았구나 싶어졌다. 아니, 만들다가 화가 나서 뭉개버린 수준이었다.
도준은 손을 들어 제 볼을 쓰다듬어 보았다. 여드름 흉터로 우둘투둘하던 피부는 닦아 놓은 대리석처럼 매끈했다. 주먹만 하던 코는 날렵하고 오뚝해져 있었다. 화룡점정은 역시 눈이었다.
이러다가 유리문에 얼굴을 박겠구나 싶을 만큼, 보고 있으면 빠져드는 커다랗고 깊은 눈.
“와······.”
그 눈을 바라보다가 도준은 다시 한번 낯선 얼굴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회귀한 것만 해도 놀랄 일인데 얼굴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대로 서 있다가는 넋을 놓아버릴 듯했다. 역을 지나치는 바람에 시간이 지난번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도준은 정신을 차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정말로 과거로 돌아온 것이 맞는지. 자신 외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인지.
일단 로비의 안내원은 그대로였다. 방긋방긋 웃으며 출입하는 직원을 향해 인사하고 있었다.
도준은 안내원에게로 다가갔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도준과 시선이 마주친 안내원은 그때와 같이 흠칫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이번에 안내원은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도준이 못생겨서가 아니라, 너무 잘생긴 얼굴에 놀라서였다.
그때였다. 백정아 실장을 필두로 한 무리가 도준의 옆을 지났다. 안내원을 비롯한 주변의 직원들이 일제히 백정아 실장을 향해 인사했다.
도준은 그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백정아 실장, 그 뒤를 따르는 무리, 로비를 지키는 가드들까지. 그날 보았던 얼굴들, 그대로였다. 백정아 실장의 눈이 도준을 스쳤다. 도준은 무표정한 채 담담히 백정아 실장을 바라보았다.
백정아 실장은 약간 멈칫하는 듯하다가 이내 도도한 자태를 고수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도준은 그대로 백정아 실장을 보냈다. 지난번과 같이 행동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저, 어디 안내해드리면 될까요?”
로비가 한산해지자 안내원이 먼저 도준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비호감 인생으로 살아온 도준은 겪어본 적 없는 과도한 친절이었다.
“아. 그게······.”
“혹시 SGN 드라마 오디션 보러오신 배우분이시면······.”
SG 그룹 내에 SGN 방송국의 드라마 제작사 사무실이 있었다. 도준이 무언가 둘러댈 말을 찾기도 전에 안내원이 지레짐작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일반 학생이나 회사원, 관계자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배우가 되고자 그렇게 노력할 때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었는데, 잘생겨지고 나니 너도나도 배우가 아니냐고 물어오는 상황이었다.
쓴웃음이 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도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건물을 잘못 찾아온 것 같네요. 그럼.”
무언가 더 말을 해 보고 싶다는 듯 아쉬워하는 안내원을 두고 도준은 돌아섰다.
백정한 회장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것 없었다.
단 한 번, 제게 경멸의 시선만을 던졌던 게 아버지라는 사람과의 마주침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도준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도준의 꿈을 짓밟았다.
도준의 시간으로는 바로 어제였다. 백정한 회장에 대한 증오와 절망을 이기지 못해 언젠가 가장 참석하고 싶었던 시상식이 펼쳐지는 바로 그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이 말이다.
그 얼굴을 다시 봐야 분노만 더욱 차오를 것이다. 도준은 뒤를 돌아 하늘 위로 높게 솟은 SG 그룹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곧 이곳에 올 일이 있겠지. 백정한 회장을 만날 일도······.’
자신에게 벌어진 일련의 모든 일이 믿기 힘들었다.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존재와 실체. 엄청난 행운과 함께 다시 찾은 인생까지.
회귀하며 얼굴은 변했어도 도준의 꿈은 여전히 배우였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진 만큼 목표는 예전처럼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한 계단, 한 계단, 톱의 자리까지 빠르게 올라가 돈과 명예, 권력을 취할 것이고, 대한민국을 주무른다는 백정한 회장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때에는 로비 바닥을 구르던 강도준은 아닐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일 있을, 배우로서의 첫걸음이 중요했다.
***
‘근데 얼굴이 변한 건 어떡하지?’
도준은 영화 제작사 실장에게 지난번과 같이 내일 계약서를 작성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제야 회귀는 회귀고, 얼굴이 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워졌다.
‘잘생겨진 건 좋은데, 다들 원래 내 얼굴을 알고 있으니 문제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은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강물 위로 붉은 노을이 지며 해가 가라앉았다.
‘성형이라도 했다고 해야 하나. 이게 성형 수준의 일이면, 그 의사는 의사가 아니라 신인데······. 그럼 일단······.’
도준은 제작사를 만나기 전 일단 친구들을 만나 보기로 했다.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연락처 목록에서 도준은 호철의 이름을 찾았다.
호철은 선뜻 퇴근길 만남을 수락했다. 역시 장지까지 함께 가 준 고마운 친구였다. 이후에 도준이 말 못 할 이유로 힘들어할 때마다 끝까지 위로해주기도 했다.
물론 그 친구에는 강산도 있었지만, 남들보다 배로 놀라며 호들갑을 떨어댈 강산보단 무던한 편인 호철을 먼저 만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신도림역의 한 호프집. 도준은 호철이 추천한 역 근처의 호프집에 들어가 떨리는 마음으로 호철을 기다렸다.
“저기.”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종업원이 도준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저 주문은 일행 오면 한다고······.”
“들었어요! 그냥 이거 기다리시는 동안 먼저 드시라구.”
“네?”
“사장님이 가져다드리래서요. 서비스예요.”
여종업원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건 어묵탕이었다. 주문 전에 주는 서비스 음식으로는 과한 면이 있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다른 테이블도 보니 보통의 호프집처럼 싸구려 뻥튀기 과자가 전부였다.
종업원이 말한 사장님은 부엌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준은 일단 끄덕였다.
“아.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도준의 인사에 여종업원이 수줍은 얼굴을 하고는 돌아섰다. 도준은 얼떨떨한 채 숟가락을 들어 뜨끈한 어묵탕 국물을 떴다.
짭짤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국물을 한 모금 먹고 나니 뒤늦게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아. 내 얼굴. 잘생겼지.’
얼굴의 힘이 대단하긴 했다. 하긴, 그냥 잘생긴 것도 아니고 대단히 잘생긴 얼굴이긴 했다.
“먼저 시켜 놓고 있었어? 잘했네.”
등 뒤에서 다가온 호철이 말하며 도준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니. 서비스로 주셨어.”
퇴근 후라 배가 고픈지 메뉴판부터 집던 호철이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역시 강도준이구나. 하여튼 너랑 같이 다니면 서비스는 기본이지.”
“······어?”
“탕은 있고, 치킨 한 마리 시킬까. 맥주 오백이면 되지?”
“어, 어. 그래.”
도준은 호철의 물음에 대충 대답했다. 도준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호철은 너무 태연했다. 도준의 얼굴이 달라진 걸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보자마자 놀라 말을 잇지 못하거나, 아니 아예 알아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완전히 평소처럼 대하고 있는 데다가 ‘역시 강도준’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까지 했다. 호철이 주문을 하고는 멍해 있는 도준에게 말했다.
“혼자 있기 힘들어서 나온 거냐. 어제도 말했지만, 어머님······ 좋은 데 가셨을 거다. 술은 오늘까지만 마셔라, 인마.”
어머니의 화장터에 다녀온 일이 도준에게는 반년 전의 일이었지만, 호철에게는 어제의 일이라는 걸 도준은 상기했다.
“고맙다. 산 사람은 살아야겠지.”
정말로 아무 이상함도 못 느끼는 건가. 인사를 하며 도준은 호준의 눈치를 봤다.
“그래. 박찬종 감독 영화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네 어머니가 아셨어야 하는데······. 아무튼 계약은 언제 하기로 했어? 어머니 일 때문에 못 했잖냐.”
확실히 다른 일들은 모두 그대로였다.
‘막걸리 집에서 오디션 합격 얘기를 했었으니까······ 어?’
그날의 술자리를 떠올리던 도준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들에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아무튼, 박찬종 감독이니까 드디어 도준이 이 자식 알아본 모양이다. 그치?
―그러니까. 도준이 이놈이 얼굴을 여태 썩혔다니까. 이번엔 열심히 좀 해봐라. 얼굴만 믿지 말고.
―얼굴만 믿는 게 아니라 열의가 없어서야, 열의가.
대화 내용이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연달아 과거의 일들이 빠르게 떠올랐다.
‘잘생긴’ 도준의 삶은 ‘못생긴’ 도준의 삶과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본래 도준이 배우가 되기 위해, 더 나은 연기를 위해 악착같이 노력한 데에는 가진 게 없으니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잘생긴, 얼굴만큼은 금수저를 쥐고 태어난 강도준은 그다지 연기에 목매며 노력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오디션을 봐 보라는 제안에도 별로 의욕적이지 않았다. 아직 부족한 것 같기도 했고, 언제든 데뷔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을 흘려 보냈다.
어머니의 사고 이후로 택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수입이 안정되고, 시간이 없어지자 연기와는 점차 멀어졌다. 그러한 와중에도 짬을 내서 기를 쓰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못생긴’ 도준은 없었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온 도준은 ‘잘생긴’ 자신의 과거가 어이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상황은 똑같았다. 박찬종 감독 영화의 오디션은 참여해서 다행이었다.
도준은 잔이 넘칠 정도로 가득 따라진 맥줏잔을 입에 대며 호철에게 대답했다.
“내일. 내일 계약하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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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의 아들이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재벌이 될 수 없었듯, 잘생겼다고 해서 바로 데뷔를 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열의가 부족했다라······. 이제는 절대 아니지.’
배우가 되는 데에 있어선 얼굴도 능력이었다. 도준은 이 얼굴을 그렇게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낭비해서도 안 됐다.
집에 돌아온 도준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내일 계약할 박 감독의 시나리오를 찾았다.
오디션에 이미 합격한 상태이지만, 자신이 맡은 배역을 다시 확인하고 숙지하기 위해서였다.
“어?”
분명 도준은 자신이 맡은 ‘조직원’ 배역에 형광펜을 칠해 놨었다. 그런데 그 역할에 아무 표시도 없었다. 대신 그 밑 역할에 형광펜이 칠해져 있었다.
“뭐야. 내가 이 역할에 합격한 거라고?”
그것은 도준이 감히 상상해 본 적 없는 배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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