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0
진짜 라이벌 (1)
“박정환 감독님하고는 안 하고 싶습니다.”
도준의 조건은 간단했다.
간단하면서도 강렬했다. 진성현 실장은 방금 불을 붙였던 담배에서 입을 떼고,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어?”
이유를 모르는 진성현 실장으로선 조금 황당한 요구이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미쳤냐고 물을 뻔했다. 아마 다른 신인 배우였다면, 곧장 입 밖으로 내뱉었을 것이다.
잠시 멍하니 도준을 보던 진성현 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너 지금······ 감독을 까겠다는 거야?”
진성현 실장은 반년도 더 넘는 시간 동안 도준과 함께 일하며 단 한 순간도 도준의 됨됨이를 의심해본 적 없었다.
사무실에 찾아와 오디션을 보는 도준을 마주한 순간부터 진성현 실장은 도준을 믿고 있었다.
처음에는 도준의 연기 실력을 믿었고, 그다음은 도준의 노력을, 도준의 생각을 모두 믿었다. 신뢰를 쌓는 데 오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도준은 그러한 믿음에 그대로 보답하는, 매니저로서는 꿈만 같은 배우였다.
그런데 이제 막 드라마 첫 남자주인공 역할을 앞에 두고, 도준의 요구가 ‘감독과는 안 하겠다’는 것이니 진성현 실장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기가 많아지자 돌변하는 숱한 배우들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몸으로 겪어 온 진성현 실장이었다.
그렇지만 변하려고 했다면, ‘뉴 베이커리’ 광고를 찍고, 지영훈의 견제가 들어올 만큼 드라마 반응이 좋았을 때 변했어야 했다.
도준이었기 때문에 진성현 실장은 침착하게 이유를 듣고자 했다.
“따로 이유가 있어?”
이전 생에서 보조출연자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었다. 도준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금세 고민을 접었다.
예대 출신인 도준이 아는 배우 한둘 있는 것 정도는 이상할 것도 없었고, 어차피 진성현 실장도 조금만 알아보면 박정환 감독과 관련한 소문 정도는 금세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촬영장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
도준은 자신이 현장에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을 진성현 실장에게 아는 선배의 얘기로 돌려 말했다.
도준의 얘기에 진성현 실장은 ‘그러면 그렇지.’ 하고 안도했다. 역시 도준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특정 감독과 안 한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네. 드라마라면, 더 무리일 것 같아서요. 믿고 그 감독님이 하는 작품에 들어가기는······.”
“무리겠지. 안 그래도 현장 빡센데 방송 펑크라도 내는 날엔······.”
생각만 해도 끔찍한 듯 진성현 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뭐,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전적이 그렇다면, 그 감독 믿기 힘들긴 하네.”
진성현 실장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렇다고 해도 배우 쪽에서 감독에 대해 의견을 내놓은 일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배우는 배우의 영역이 있었다. 상대 배우를 지정하거나, 조연 배우를 추천하는 일은 종종 있어도 제작진 쪽에 손을 대는 일은 드물었다.
물론 종종 감독이나 작가 교체를 요구하며, 실제로 그 일을 해내고 마는 배우들이 있긴 했지만, 그럴 땐 어느 쪽의 잘못이든 목소리를 높인 배우도 욕을 먹게 돼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재 흘러가는 사정상, 어쨌든 도준 쪽에서도 감독에 대해 의견을 보탤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도준도 진성현 실장에게 그러한 사정을 들었었기 때문에 감독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출한 것이기도 했다.
“일단 상황은 한번 봐 볼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만약 박정환 감독으로 계속 간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글쎄요.”
도준도 일에 있어서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박정환 감독 때문에 작품을 거절하기엔 아까운 작품이었다. 대본과 시놉시스, 캐릭터 소개까지 모두 본 뒤라 더욱 그랬다.
‘작품이 너무 좋아.’
처음에는 사극이라 걱정도 됐지만, 도준도 꼭 도전해 보고 싶고, 연기해 보고 싶은 역할이었다.
현대물의 남자주인공이 갖지 못하는 매력이 로맨스 사극 속 남자주인공에게는 분명하게 있었다.
‘거기에 왕이 아닌 왕세자라는 점도 맘에 들어······. 조금 더 나이가 들면, 힘드니까. 더 지금 해 보고 싶은데······.’
다음 작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더 좋은 역이 있을까도 의문이었다.
‘촬영 시간 제한이라도 계약 조항에 걸어두기엔······ 이제 1년 차도 안된 신인 주제에 까다롭다고 난리가 나겠지.”
당장 어떠한 선택이 나은지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급하게 혼자 결정 내릴 필요도 없었다.
이러한 결정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배우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회사였고, 진성현 실장과 같은 사람이었다.
도준은 물끄러미 신뢰가 가득한 눈으로 진성현 실장을 바라보았다.
“그때는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도 될까요? 실장님도 같이 생각해 봐 주세요.”
도준은 우직하면서도 미련하지 않았다.
과연 사람을 쓸 줄도 알았다. 진성현 실장은 피식 웃으며 끄덕였다.
***
“형님, 얼굴 좋네.”
“이야, 진 실장. 바쁘다고 코빼기도 안 비치더니, 이렇게 해야 보네. 이렇게 해야 봐.”
얼마 후, 진성현 실장은 곧바로 RBC 드라마국을 찾았다.
진성현 실장은 RBC CP인 한철구가 현장에서 감독 일을 하던 시절부터 알던 사이였다.
에 관련한 이야기는 유선상으로만 한 터라 얼굴을 보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어때. 출연하기로 결정한 거야?”
“와, 이 형님. 성격 급한 것 봐. 앉아서 차라도 주고 그런 말 하지.”
“무슨 차를 찾고 그래.”
구시렁대면서도 한철구는 직원을 불러 커피를 부탁했다.
두 사람은 접객용 소파에 마주 앉은 채 커피를 마시며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래서. 출연은 어떡할 건데.”
“왜 이렇게 급해? 누가 쫓아와?”
“쫓아오지. 방영이 당장 가을인데. 그러는 넌 또 왜 이렇게 뜸을 들여. 뭐, 문제 있어?”
업계에서 알아주는 두 능구렁이가 모였으니 눈치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때 말한 문제 말이야. 감독. 아직도 정리 안 됐어?”
진성현 실장이 툭 감독의 이야기를 꺼냈다.
은 방송국인 RBC가 드라마 제작사인 ‘W 미디어’에 편성, 투자를 조건으로 MOU를 체결해 제작하게 된 드라마였다.
‘W 미디어’가 인기 소설인 의 원작 판권을 사놓았기 때문에 체결된 계약이기도 했다.
최근 드라마 시청률 부진으로 RBC 쪽에서 자체 프로그램 제작이 아닌 외주 제작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외주 제작이니 ‘W 미디어’ 쪽에서는 작가부터 감독, 배우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작품을 이끌어 가고자 했다.
‘W 미디어’의 작품이었지만, 드라마의 흥망에 따라 투자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더 많이 안게 되는 것은 RBC 쪽이었다. 그러니 RBC는 RBC대로 제작에 관여를 안 할 수 없었다.
잡음은 감독 문제에서 발생했다.
‘W 미디어’에서 감독으로 데리고 온 박정환 감독이 RBC의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경험이 전무한 영화감독이었고,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영화도 없었다. RBC에서는 자사 출신의 감독을 추천했다.
좁혀지지 않는 문제였다. 그러는 사이 방영일이 다가왔고, 주연 캐스팅이 급해졌다. 시기를 놓치면 좋은 배우들을 다 놓칠 수도 있었다.
다행히 주연 캐스팅을 위해 어떠한 배우들에게 오퍼를 넣을지 정하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왕세자와 그 여인의 역할을 할 만한 주연급 2, 30대 젊은 배우가 한정적이었고, 연기력이나 인기 면에서 순위도 명확한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부른 남자주인공 1순위가 도준이었다.
한창 도준의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터라, 첫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입소문을 낸다면, 홍보도 꽤 될 것 같았다.
사극이라 검증된 연기력도 중요했는데, 도준이라면 걱정도 덜했다.
‘W 미디어’가 더 강경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박정환 감독 이름으로 도준에게 캐스팅 제의부터 들어가게 됐다.
RBC에서 감독 문제로 ‘W 미디어’에 제지를 걸었다는 사실을 진성현 실장도 알고 있었다.
진성현 실장이 방영일이 가까운데 캐스팅이 너무 늦게 도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한철구가 이유를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RBC가 자사 감독을 넣고 싶어서 고집을 피우는 줄 알았는데, 도준의 얘기까지 듣고 나니 RBC가 아니라 오히려 W 미디어의 고집이었다.
“아, 그거······. ”
한철구가 뜸을 들이다가는 이내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그거 걱정하지 마. 금방 정리돼. 어차피 박정환 감독 스탠 바이 중이고.”
한철구는 속이 쓰렸다. 감독이 안 정해져 도준을 놓칠 수는 없으니, 어서 감독 문제를 정리해야 할 듯싶었다.
빠르게 정리하려면, 역시 ‘W 미디어’ 쪽에 손을 들어줘야 했다.
“아니, 아니. 굳이 빨리 정리 안 해도 돼.”
그러한 한철구의 생각을 읽은 듯 진성현 실장이 얼른 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굳이 도준 쪽에서 감독 문제로 입을 올렸다는 말이 나오는 건 좋지 않았다. 진성현 실장은 속내를 숨기며 말을 흘렸다.
“박정환 감독이 ‘W 미디어’ 전무 사위라며. 것참.”
어떻게 박정환 감독을 교체시킬까 고민하던 진성현 실장이 모든 인맥을 동원해 알아낸 사실이었다.
별 볼 일 없는 영화를 찍어놓고도 드라마 감독에까지 밀어 넣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한철구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났다. 인척 관계라니. 공사 구분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W 미디어’를 몰아세울 정보였다.
“아무튼 도준이는 대본 좋대. 제안해줘서 너무 고맙다던데.”
“오, 그래?”
“어. 대본 믿고 들어간다니까. 감독 문제는 상관 없고.”
“잘나가는 배우는 다르네. 보는 눈이 있어. 생각도 있고.”
한철구가 밝은 얼굴로 도준을 칭찬했다. 제 뜻대로 되니 입에 발린 칭찬을 하는 것뿐이었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급할 건 없어. 우리야 뭐······ 감독 누가 돼도 작품만 잘되면 좋지.”
“그래. 그래도 빨리 움직일게.”
“어, 여주는 정해졌어?”
“남주 확정나면 정하려고 했지. 그쪽도 간보고 들어올 테니.”
맞는 말이라 진성현 실장은 끄덕였다.
과연 여자주인공 역할에 어떤 배우들이 물망에 오를지 기대되는 바였다.
***
그 시각, 도준은 도산공원 근처의 한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인터뷰를 준비 중이었다.
도준의 스케줄은 가 한창 촬영 중일 때만큼 바빴다.
오늘도 화보 촬영 스케줄을 마치고, 인터뷰를 하러 바로 이곳 카페로 온 것이었다.
진성현 실장이 RBC에서 한철구 CP를 만나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같은 소속사의 막내 로드매니저가 도준과 동행했다.
인터뷰 시간보다 미리 카페에 도착한 도준이 미리 음료 주문을 하려 카운터로 향했을 때였다.
“뭐야. 엄청 잘생겼어.”
“와······.”
“연예인인가?”
도준도 이제 어디를 걸어가기만 해도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일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런가? 교복 입고 있잖아. 그냥 학생 아냐?”
그러나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목소리는 도준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교복?’
도준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교복을 입은 소년이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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