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46
더 큰 꿈 (4)
“무슨 뜻이지?”
당황과 짜증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백정아의 질문에 도준은 흔들림 없이 답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저는 SG 미디어 백정아 본부장님과 일 얘기를 하러 온 거지, 놀러 나온 건 아니라서요.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도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멈칫하던 진성현 실장도 도준을 따라 일어섰다.
백정아가 도준에게 마수를 뻗치려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잘 둘러대고 이 자리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이었는데, 도준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택했다.
백정아 본부장이 분노하는 것 또한 느껴졌다.
SG 미디어 사람을 앞에 두고, 다른 배우들이라면 하지 않았을 강경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진성현 실장이 도준을 말리지 않고 따라나선 것은 진성현 실장도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부드러운 분위기로 자리를 넘겨 봐야 어차피 해야 할 답은 거절이었다.
차라리 이쪽이 도준의 의견을 확실히 전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이 무슨 무례야?! 강도준 씨, 장난쳐요?”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겉옷을 챙겨 드는 도준과 진성현 실장을 보며 백정아가 노기 어린 목소리를 냈다.
도준은 차갑게 백정아 본부장을 돌아보았다.
“무례는 본부장님이 먼저 저지르시지 않았습니까.”
“뭐?!”
“저는 일하는 배우지, 본부장님과 노는 상대가 아닙니다.”
일갈한 도준은 더는 백정아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백정아를 지나친 진성현 실장이 백정아의 비서에게 말했다.
“나중에 일 있으면, 그때나 연락 주십쇼.”
길길이 날뛸 것이 분명한 백정아 본부장을 뒷감당할 생각에 비서의 안색이 어두웠다.
물론 SG 미디어와 일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진성현 실장은 비서에게 ‘일 아니면 연락도 말라’는 의견을 다시금 피력한 것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자리를 깨뜨렸는데 백정아 자존심에 도준을 다시 찾을 리 없지.’
이대로라면, 사적인 만남이 문제가 아니라 SG 미디어 쪽의 일이 아예 안 들어올 수도 있을 만한 문제였다.
SG 미디어가 가진 영향력은 방송, 영화 산업에서 그 장악력이 어마어마했다.
그러니 다들 백정아 말이면 쩔쩔매고, 백정아도 모두를 제 아래둔 듯 안하무인처럼 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싼 취급을 해도 정도가 있어······.’
진성현 실장은 작게 이를 갈았다.
도준과 진 실장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벤을 세워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실장님. 죄송해요.”
“뭐? 무슨······. 네가 죄송할 게 뭐 있냐.”
“제 맘대로 나와버려서······..”
“아냐. 내가 먼저 백 본부장이 헛소리하는 자리를 피했어야 하는데. 잘했어. 저기 더 있어 봐야 뭐 좋을 거 있었겠냐.”
SG 미디어 백정아와 척을 지는 일.
도준 개인적으로나 도의적으로는 옳은 일이었지만, 진성현 실장이나 ‘소나무 엑터스’에 비즈니스적으로 옳은 일은 아닐 수 있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니라니까. 오히려 내가 고맙다.”
벤 문을 열며 진성현 실장이 말했다. 도준이 조수석에 올라타며 의아하다는 듯 진성현 실장을 바라보았다.
“······그냥. 오히려 네가 괜찮다고 하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거였는데······.”
배우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SG 미디어 본부장과 어울리지 말라, 적극적으로 만류할 회사는 없을 것이다. 그게 설령 단순히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데 그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차라리 도준이 박차고 나와줘서 다행이었다.
진성현 실장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연예계의 화려함에 가려진 그 이면의 어두움을 진성현 실장은 잘 알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 화려한 만큼 유혹도 많은 곳이었다.
온갖 권력가들이 배우와 가수들에게 손을 뻗었다. 어떻게든 한 단계 위로, 더 밝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이들은 그 손길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 손길의 도움 없이는 TV 앞에 서는 것조차 힘든 이들도 있으니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기도 힘들었다.
이름 있는 배우라고 해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더 많은 인기,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그러니 백정아 같은 이가 접근해오면, 쉽사리 뿌리치지 못하고 그 무리에 포함돼 버리는 것이다.
출연 제의를 받을 수 있는 SG 미디어 관련 방송과 영화만 해도 어마어마했고, SG 그룹 계열사 광고 모델 자리도 보통 자리는 아니었다. 백정아가 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것을 받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당장 백정아가 도준에게 스폰 제의까지 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한번 놀아보자는 식의 뭉뚱그린 유혹을 한 것이었지만, 눈 한번 깜짝하면, 어떤 곳에 발 디디고 있을지 몰랐다.
“아무튼 잘했어. 잘한 거야.”
“네······.”
도준은 진성현 실장이 당장의 이익이 아닌 먼 미래를 보고, 진심으로 배우를 위하는 사람인 것에 크게 감사했다.
그래서 진성현 실장이 이 일로 회사 내에서 곤란하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진성현 실장은 ‘소나무 엑터스’에서 이사진급의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키운 배우들이 많았고, 당장에라도 그가 나가 자신만의 기획사를 설립한다고 하면, ‘소나무 엑터스’ 자체가 크게 흔들릴 것이다.
“그러니까 걱정 마.”
진성현 실장이 도준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백정아 본부장······ 많이 화난 것 같긴 하던데요.”
“그렇겠지. 뭐 어떻게 나올진 몰라도, 것도 걱정 마라. SG 미디어 아니어도 너 찾는 곳은 많으니까.”
도준이 걱정할까 염려한 진성현 실장이 덧붙였다.
도준은 고개를 저었다. 진성현 실장만 자신과 의견이 같다면, 다른 큰 걱정은 없었다.
‘걱정은 없어. 예전처럼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배우지망생이 아니니까. 확실히 기회는 많이 줄겠지만······ 어차피 SG 미디어 아래에서 일하며 백씨 일가의 배를 불려주고 싶지도 않았고······. 아쉬울 것은 없다.’
다만, 언젠가는 SG 쪽에서 도준을 아쉬워할 날이 올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도준의 굳은 눈빛을 확인한 진성현 실장은 안심했다는 듯 끄덕였다.
진성현 실장은 차에 시동을 걸며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무음으로 해둔 휴대폰에는 메시지가 잔뜩 와 있었다.
진성현 실장은 그중 ‘소나무 엑터스’ 홍보팀 팀장이 보낸 메시지를 열었다.
“어?······ 제우기획에서···?”
제우기획은 도준도 이름을 알 만큼 이름난, 우리나라 최고의 광고대행사였다.
“왜 그러세요?”
“이야, 너······”
진성현 실장이 뜸을 들일수록 좋은 일이라는 것을 도준도 파악한 지 오래였다. 도준이 궁금함에 눈을 빛내자 진성현 실장이 입꼬리를 올렸다.
“제우기획에서 연락 왔대. 너 아우디 광고 모델로 쓰고 싶다고.”
“아우디요?”
“어, 아우디에서 이번에 나오는 신차, H5 모델을 너로 하겠다네. 조건은······ 우리가 금액 선제시하고, 일단 협찬으로 신차 준대고······.”
마침 차가 필요하던 도준은 ‘오’ 하는 소리를 냈다.
‘이렇게 좋은 차가 필요한 건 아니었는데······.’
***
쨍그랑―
접시 깨지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했다. 깨진 접시 조각이 바닥을 굴렀다. 백정아 본부장의 비서실장인 남원훈은 곤란함에 미간을 모았다.
백정아는 나이가 어리지만, 보고자란 게 있어서인지, 워낙 이쪽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나름대로 SG 미디어를 잘 파악하고 이끌어가고 있는 능력 있는 상사였다.
그러나 그 능력에 비해 너무 커다란 흠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눈이 뒤집히는 이 성격이었다.
“이런 미친!”
백씨 일가의 불같은 성격은 재벌가 중에서도 유별나기로 유명했다.
십여 년 전 SG 그룹 비서실에 입사한 남원훈은 백 회장부터 백 회장의 아들과 현재 백정아에 이르기까지 일가의 유별난 성격을 몸소 겪어 온 인물이었다.
그래도 백정아가 사무실도 아닌 곳에서 이렇게 발작적으로 난동을 피울 때면,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본부장님······. 진정하시고······.”
“지깟 게 뭐라고 나를 무시해?! 봤지? 남 실장도 봤잖아?! 눈이랑 귀 있으니까 보고 들었을 거 아냐?!”
포크를 쥐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는 통에 남원훈은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하필 안쪽의 소란이 바깥까지 들렸는지 중식당 매니저와 종업원이 노크를 하며 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안에 무슨 일 있으신······.”
“나가! 나가라고! 꺼져! 꺼지란 말야!”
백정아의 고함이 룸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러다가 바깥의 손님들까지 백정아를 알아볼까 걱정이 됐다. 운 나쁘게 기사라도 나가면,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되레 자신이 문책을 당할 게 뻔했다.
“······별일 아닙니다. 좀만 이따가, 제가 부르면 와 주세요. 음식은 됐고요.”
남원훈의 말에 매니저와 종업원이 뒷걸음질 쳐 룸을 나갔다. 남원훈은 침착하게 백정아 본부장을 달랬다.
“본부장님. 말씀대로 아무것도 아닌 연예인입니다. 이렇게 화내실 필요도 없이······.”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게 나를 어떻게 무시하냐고! 하아.”
성질을 부릴 대로 부린 백정아 본부장은 조금 지친 듯 깊은숨을 몰아쉬며 이를 갈았다.
“인기 좀 있다고 무서운 게 없나 보지? 밟아줘야겠어.”
남원훈은 이번에는 백정아가 고른 상대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백정아는 늘 한창 인기 있는 신인 배우나, 그럭저럭 잘나가는 배우들을 골라 인형 놀이를 하며 유희를 즐겨왔다.
도준은 이제 신인 딱지를 뗀 배우이긴 했지만, 그 인기의 기세가 매서웠다. 백정아 본부장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자신만 이리저리 피곤하게 됐다고 생각하며 남원훈은 표정을 굳혔다.
***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강도준 모델님.”
제우기획 대회의실.
그곳에는 아우디 한국지부 본부장과 홍보팀장, 이번 아우디의 홍보 대행을 맡은 제우기획 홍보 1팀의 팀장이 왼편에, 도준과 소나무 엑터스 직원들이 그 맞은편에 짝을 맞춰 앉아 있었다.
도준의 아우디 신차 모델 광고 건은 수월하게 성사되었다. 서면으로 계약서가 오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번 건은 아우디 한국지부 본부장이 도준을 직접 만나 보고 싶다고 해서 대면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차는 아마 다음 주쯤 도착할 거예요. 집 앞에 가져다 놓기 전에 저희 직원이 연락 한번 드릴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아우디 홍보팀장의 말에 도준은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그린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인상이 아주 좋네요. 왜 인기 많은지 알겠어요.”
아우디 한국지부 본부장도 도준이 아주 맘에 든 듯했다.
계약을 무사히 마친 후, 아우디에서 나온 이들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제우기획 홍보1팀이 도준과 소나무엑터스 직원들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홍보1팀 사람들이 회의실 안팎을 오가며 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도준과 소나무 엑터스 직원들은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며 정리가 끝나길 기다렸다.
진성현 실장이 우스갯소리를 하며 분위기를 풀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을 확인하던 소나무 엑터스 홍보팀장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무슨 일이야?”
“뉴 베이커리에서 연락 왔는데요······ 뭐야, 계약을 파기하자고?”
메시지를 읽던 소나무 홍보팀장이 너무 놀란 탓에 큰소리를 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뉴 베이커리’와의 계약은 아직 1년이나 더 남아 있었다.
예상대로 저열하게 나오는 백정아 본부장에 도준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진성현 실장도 예상한 일인 만큼 놀라는 대신 눈가를 찌푸렸다. 그때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는지 제우기획 홍보 1팀 팀장이 입을 열었다.
“뉴 베이커리랑 무슨······ 문제 있으세요?”
이렇게 묻는 제우기획 홍보 1팀 팀장의 눈빛에는 뜻밖에도 반가움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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