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
슈퍼 루키 (1)
“어때. 많이 긴장돼?”
주차장에 차를 세운 전성현 실장이 조수석에 앉은 도준에게 물었다.
전성현 실장은 도준이 ‘소나무 엔터’에 오디션을 보러 찾아갔던 날 연정아 팀장과 함께 있던 매니지먼트부서 총괄 실장이었다.
‘소나무 엔터’의 굵직굵직한 배우들이 신인 시절 모두 그를 거쳤을 만큼 신인개발팀 연정아 팀장과 함께 배우 판에서 미다스의 손이라 불렸다.
현재는 일 년에 한 작품 정도 참여하는 대배우들을 관리하며 현장 일보다는 후배 매니저 양성에 더 힘쓰고 있었다. 그런 그가 현장에 뛰어든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의 일이었다.
어차피 한동안 다른 일이 없으니 직접 도준의 로드 매니저 일까지 하겠다고 나섰을 때 ‘소나무 엔터’ 매니지먼트 부서가 발칵 뒤집힐 정도였다.
“긴장 안 하려고 하는데······ 안 할 수가 없는데요.”
도준이 거울을 내려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답했다.
진성현 실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긴장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엔 긴장을 안 하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최민철과 송정호라는 내로라하는 배우와 한 작품에서, 그것도 데뷔작에서 만나게 된 신인 배우라니.
“하긴. 첫 촬영이 이런 대작······ 괜히 나까지 긴장되네. 난 오랜만에 현장 와서 그런가.”
진성현 실장이 괜히 너스레를 떨며 차 열쇠를 뽑았다.
“일단 내리자. 내려서 인사 돌아야지.”
도준은 끄덕이며 차 문을 열었다.
바깥으로 나서자 현기증이 일 정도의 열기가 두 사람을 덮쳤다. 당장 에어컨을 틀어놓은 차 안으로 도망가고 싶어질 만큼 뜨거운 열기였다.
“이야······ 사람 익겠다, 익겠어.”
진성현 실장은 숨이 막히는 더위에 한숨을 쉬었다. 괜히 로드까지 한다고 했나, 잠시 후회가 될 정도였다.
도준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날 것 같았다. 손부채질하며 도준은 촬영장을 살폈다.
촬영장은 서울 인근의 대학 캠퍼스였다. 잔디가 깔린 운동장이 드넓었고, 가운데 우뚝 선 조형물이 인상적이었다.
아직 방학이라 학생들이 없이 한산했으나 카메라 등을 설치하는 모습을 보며 몇몇 학생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모여 들어 있었다.
도준은 이 평화로운 캠퍼스 한복판에서 정육점 주인인 송정호에게 칼을 맞아 죽을 예정이었다.
첫 촬영이 바로 오프닝 씬 촬영이었다.
박찬종 감독은 시간의 순서가 아닌 각본의 순서대로 촬영하겠다고 했다. 어차피 촬영지가 대부분 세트장이었고, 몇 개 있는 야외 촬영지는 대학 캠퍼스 정도가 전부였다.
장소에 스케줄을 맞출 필요가 없어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날씨도 이 모양이고. 오늘 촬영 만만치 않겠는걸.”
전성현 실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그렇겠어요. 다들 벌써 고생이네요.”
도준은 무거운 촬영 장비들을 나르는 스태프들을 보며 끄덕였다.
“실수라도 한 번 하면 송 선배 같은 사람은 엄청 짜증낼 거다. 그 선배가 또 더위에 엄청 약해.”
진성현 실장이 말하는 ‘송 선배’는 송정호였다.
“······최대한 NG가 없어야 할 텐데.”
“첫 촬영인데 가능하겠어? 연극 말고는 실전 경험 없다며.”
걱정하는 게 아니라 마치 약이라도 올리는 듯한 투였다. 다른 신인이었다면, 부담을 덜어주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전성현 실장이었다. 그러나 도준은 달랐다.
“노력해야죠.”
역시나 도준은 진성현 실장의 예상대로 담담하게 답할 뿐이었다.
계약 이후 오늘 촬영 때까지 전성현 실장은 최대한 많이 도준과 만나 도준과 손발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전담 스타일리스트와 연기 선생을 붙여 촬영 준비를 도우면서 전성현 실장은 도준이 진짜 준비된 인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도준은 단 한 순간도, 어떠한 작은 준비 과정에도 열과 성을 다하지 않는 법이 없었다. 선택할 땐 늘 진중했고, 도전에 있어선 과감했다.
그리고 도준이 진짜 준비된 인재라는 것을 진 실장이 깨달을 때는 이럴 때였다. 완벽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신감, 그 자신감이 확연하게 느껴질 때.
“야, 강도준. 너 긴장 안 했지. 긴장이고 뭐고, 빨리 연기하고 싶지. 솔직히 말해 봐.”
도준을 전부 파악한 진성현 실장이 눈을 치켜떴다. 도준은 졌다는 듯 어깨에 힘을 풀었다.
도준이 가장 떨리고 긴장됐던 순간이 있다면, 옥상에서 떨어지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이제 도준은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위로 올라서고 싶었다. 백정한 회장이 있는 그 꼭대기 층까지.
그간 고군분투하며 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이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서 연기하고 싶었다. 세상 밖으로 나서고 싶었다.
“네.”
도준의 분명한 대답에 전성현 실장은 기분 좋게 웃었다. 과연 인물이었다.
“빨리 송정호 선배님과 직접 연기해 보고 싶어요.”
그때 주차장에 벤이 한 대 더 도착했다. 송정호를 태운 벤이었다.
“양반은 못 되네. 송 선배!”
진성현 실장이 얼른 송정호를 불렀다.
송정호는 빛을 다 흡수할 것 같은 검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얼굴도 일부러 더 태웠는지 본래 피부색보다 어두웠다.
“이게 누구야? 진 실장 아냐.”
“인사가 그게 뭡니까. 엊그제도 봐놓고.”
“촬영장에서 보니까 새로워서 그렇지. 이제 후배들한테 자리를 넘겨줄 때가 된 것 같다느니 하면서 나 넘긴 것도 엊그제 아냐?”
“하여튼······. 여기가 내가 새로 맡은 배우. 인사해, 도준아. 속좁은 선배님이시다.”
두 사람의 옆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도준이 눈을 빛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이번에 ‘교수 아들’ 역 맡게 된 강도준입니다.”
도준이 고개 숙여 인사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진성현 실장의 옆에 선 도준에게는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한 눈빛을 하던 송정호의 눈이 잠시 날카로워졌다.
박찬종 감독이나 진성현 실장에게도 이미 잘생겼다는 얘길 들었던 터였다. 확실히 얼굴은 마주친 순간부터 ‘요즘 애들이 참 좋아하게 생겼네’ 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목소리를 듣자 ‘어?’ 싶었다. 일상적인 말을 했을 뿐인데도 발음이 정확했고, 발성에서 기본기가 느껴졌다.
“이 친구군. 반갑네요. 송정호입니다.”
송정호의 두텁고 투박한 손이 내밀어졌다.
‘확실히 위압감이 남달라.’
도준의 키도 작은 편이 아니었는데, 송정호는 185cm의 거구였다. 몸집뿐 아니라 풍기는 카리스마도 장난 아니었다. ‘송정호입니다’ 할 때의 낮은 목소리는 그것조차 연기로 느껴질 정도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오늘 보면 내가 왜 다시 현장 나오고 싶다고 했는지 선배도 알 겁니다.”
진성현 실장이 덧붙였다. 송정호가 위아래로 도준을 훑고는 끄덕였다.
“그래, 어디 한번 보자고.”
***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박찬종 감독이 마지막으로 도준과 송정호를 불러 촬영 과정을 설명했다.
“동선은 이렇게 되는 거고······ 따로 연기 리허설은 안 할 거예요.”
도준은 박찬종 감독의 설명을 경청했다. 박찬종 감독에게 무언가 디렉션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낯선 이가 다가오는 거.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일. 그 느낌을 살리고 싶으니까요.”
이미 일대일 리딩 연습을 통해 연기에 관해서는 많은 조언을 들었다. 연기 지도자에게 수업 받은 내용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도움이 됐다.
확실히 연기자가 생각하는 역할과 감독이 생각하는 역할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리딩을 통해 도준은 박찬종 감독이 원하는 ‘교수 아들’이 누구인지, 어떠한 연기를 펼쳐야 하는지 더 확실하게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도준이 끄덕이자 박찬종 감독이 송정호를 보았다.
“준비 다 되신 거죠?”
따로 답할 필요도 없이 얼굴만 보아도 송정호는 준비가 끝나 있었다. 송정호는 도준이 바로 몇십 분 전에 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건드리기 힘들 만큼 어두운 분위기에, 역할에 몰입한 눈은 이글거리며 타 들어갈 듯했다. 당장에라도 실제로 누군가를 죽일 것만 같았다.
“도준 씨는 지난번 말한 시선처리 부분만 신경 써서 해주세요.”
“네, 감독님.”
박찬종 감독은 자리에 앉으며 전 스태프들에게 스탠 바이를 시켰다. 순한 인상이었던 박찬종 감독의 눈에도 어느덧 광기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이전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학교 선배들의 촬영지를 따라다니며 현장을 익혔었지만, 이 현장은 프로 중의 프로들만 모인 곳이었다.
촬영감독, 조명감독, 어느 스태프도 빠짐없이 모두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었다. 박찬종 감독, 송정호 배우, 스태프들까지, 배울 게 너무나 많았다. 도준은 각자의 자리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배우러 온 게 아니야.’
도준도 도준의 위치에 가 제 역할을 할 때였다.
“자, 갑시다!”
곧바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도준은 지정된 위치로 향했다.
인적 드문 캠퍼스 한편.
질 좋은 브랜드의 긴팔 셔츠와 슬랙스 바지를 입은 도준은 대대로 교수 집안 출신의 외동아들이다.
학생들 사이를 벗어나 보통의 보폭으로 걸어가던 도준의 걸음이 점차 느려진다. 생기 어려 있던 표정도 희미해진다.
건물 뒤편에서 검은 옷의 사나이가 등장한다. 정육점 주인, 송정호다. 모자를 눌러 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도준은 쉽게 움츠러든다.
“누구······ 세요.”
아무렇지 않게, 그러나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도준이 묻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
송정호가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품안에 숨겨 왔던 칼을 순식간에 빼내어 들었다. 물론 실제로는 날카롭지 않은 소품이었다.
송정호는 정확히 도준이 피 주머니를 차고 있는 부분에 칼을 찔러 넣었다. 그와 함께 윽, 고통에 찬 신음이 도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황망한 도준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서 있는 송정호. 두 사람의 시선이 순식간에 얽혀들었다.
“······.”
“······.”
도준의 눈에 고통과 원망, 분노가 섞여든 순간, 얼굴이 희게 질린 채 도준은 그 자리에서 배를 잡고 쓰러졌다.
도준이 쓰러짐과 동시에 아스팔트 위로 검붉은 피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도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NG!”
카메라를 뚫어져라 보던 박찬종 감독이 ‘NG’를 외쳤다.
그와 함께 도준이 눈을 떴다. 눈을 감고 있었던 터라 왜 NG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눈 감을 때 시선 처리를 잘하라고 했었는데, 이게 아니었나······. 카메라로 확인해 보면 더 잘 알 수 있지.’
도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엿과 섞어 만든 끈적한 가짜 피가 이미 손에 다 묻어 있었다. 피를 이미 흘린 후에 NG가 나 버렸으니 손도 다시 씻고, 옷도 갈아 입어야 했다.
‘두 번은 NG를 내지 말아야 할 텐데. 송정호 선배님 연기는 정말로 대단하구나. 순간 정말로 아픈 기분이 들 정도로······ 섬뜩했다.’
도준은 생각하며 카메라 앞으로 향했다.
“정호 씨, 무슨 문제가 있나요?”
당연히 자신의 시선 처리 때문에 NG가 났다고 생각했던 도준은 박찬종 감독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물음에 도준은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송정호는 멍하니 그 자리에 박힌 듯 서 있었다. 송정호의 날카로운 시선이 도준에게로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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