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p to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낙양의 소소한 일상(3)
붉은 노을이 지면서 예소향의 얼굴은 더욱 능소화를 닮아갔다.
그러면서 그녀와 함께 했던 과거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렇게 추억에 잠기다 보니 오랜만의 재회에 묘한 감정이 끓어오른다.
그런데 그때 감지되는 묘한 기운들.
‘뭐지? 문봉탑 주변으로 이상한 기운들이 감지되는데.’
거리가 멀어서 명확하게 어떤 기운인지 알 수 없지만 탑 주변으로 뭔가 움직이는 느낌이 난다.
창 바깥으로 고개를 빼들고 밑을 내려다본다.
그러자 몇 명이 나무 뒤로 은신하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그 동작이 참으로 빠르다.
저 밑에서 내가 내려다보는 것을 알고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아마 내가 보통사람이었다면 저들의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놈들의 움직임은 빨랐다.
‘좋은 놈들은 아닌 것 같은데. 이 탑을 둘러싸고 있어. 나를 노린 건가? 아니면 예소향을?’
일단 우호적인 놈들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나나 예소향 중 한 명을 노린 것이 분명했다.
‘예소향을 노리는 놈들인가?’
오늘 내가 이곳 문봉탑에 올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예상에 없이 즉흥적으로 왔으니까.
그리고 내가 문봉탑까지 오는 동안에 내 뒤를 밟은 사람은 없다.
이건 확실하다. 내 뒤를 밟은 놈들이 있다면 내가 모를 수 없다.
지금 내 기감은 무림 최고 수준에 도달했으니까.
그러니 나를 추적한 놈들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소향을 따라온 무리라고 봐야 한다.
“혹시 이화검 도장을 추격하는 적이 있었나요?”
“적이요?”
턱을 괸 채 노을을 감상하던 예소향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기분 좋게 노을을 감상하는데 갑자기 적 이야기를 꺼내니 놀라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무인들이 탑을 둘러싸고 있어요.”
“이런, 놈들이 여기까지 추적했을 줄이야.”
예소향의 표정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는다.
그들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놈들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거죠?”
“개천혈교요. 아미산에서부터 나를 추격했어요. 하지만 백정맹이 있는 낙양에 도착했기 때문에 추격을 중단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낙양까지 따라올 줄이야.”
아까 놈들의 움직임으로 볼 때 일반적인 개천혈교 무인은 아니다.
‘어느 조직이지? 밀살대는 지난번에 거의 다 죽어서 몇 명 안 남았을 텐데.’
움직임으로 볼 때 일반 무인이 아니라 개천혈교 3대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
암혼대는 저렇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면서 활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세작 업무가 주임무인 암혼대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면서 움직이는 것이 임무라서, 대부분의 경우 개별적으로 움직인다. 단체로 움직이는 일은 없다.
그러니 암혼대는 아니다.
‘밀살대 아니면 혈왕대라는 이야기인데. 밀살대는 지난번에 30명이나 죽었단 말이야. 남은 밀살대 인원은 몇 명 정도에 불과한 건데. 남은 밀살대를 동원한 것 아니면 혈왕대를 동원했을 가능성도 있네.’
일단 아까의 움직임으로 봤을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진 놈들인 것은 분명하니 만만히 보면 안 된다.
그런데 밀살대건 혈왕대건 개천혈교의 3대가 동원되어 예소향을 노릴 정도면 지금 예소향이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인데.
예소향이 저들에게 추격당하는 이유가 뭐지?
예소향 말대로 개천혈교가 백정맹이 있는 낙양까지 추격했을 때는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비밀이라고 하니 더 이상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아, 그건 물어볼 수 있지.
“혹시 백정맹에 전달해야 할 것이 있나요?”
“네, 있어요.”
“그 정보는 전달을 했고요?”
“아, 아직 전달 안 했어요. 백정맹에 들렀는데, 마침 맹주께서 외출 중이라 저녁 때 찾아가기로 하고, 그 틈을 이용해 진매를 만나러 간 거였거든요.”
“그럼 저놈들이 이화검이 아직 정보를 전달 안 한 걸 알고 무리를 해서 추격한 것일 수 있겠네요. 백정맹에도 세작들이 있거든요. 이화검 도장이 맹주를 아직 안 만난 걸 알고 있을 수 있어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저들이 무력이 높다면 큰일이네요. 중요한 정보라 맹주에게 꼭 전달해야 하는데.”
예소향의 표정에 불안감이 드리운다.
전해야 할 정보를 전달하지 못 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아미산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까 봐서 안절부절못한다.
“나랑 같이 놈들의 공격을 피해 백정맹까지 도주해야죠.”
“둘이서 저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물론 현 대협의 명성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저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들이라서요. 저도 맞상대는 못 하고 항상 피해 다녔어요.”
“해봐야죠. 일단 탑 아래로 내려갑시다.”
예소향과 탑을 내려와 1층에 도착한 순간 탑을 둘러싼 적들의 기운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인지 놈들은 구태여 자신들의 인기척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도망칠 곳은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탑에서 내려와 1층 문을 나와야만 도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놈들은 1층 입구만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준비됐어요? 바깥에 적들이 있어요.”
예소향은 고개를 끄덕인다.
“준비됐어요.”
– 솨라랑─
그녀가 그녀의 몸매처럼 날씬한 검을 뽑아 든다.
나 역시 검을 빼 들고 놈들과 일전을 치를 준비를 한다.
“나갑시다.”
검을 들고 탑 입구를 나가는 순간 바로 쇄도하는 날카로운 예기들.
몇 개의 검이 우리 둘을 향해 밀려든다.
– 쉬익─ 챙챙챙─
적들의 검을 쳐내면서 좀 더 바깥으로 밀고 나간다.
“우웃, 젊은 놈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포위해서 공격해라.”
– 차자작─
놈들이 포위를 하는데, 대충 봐도 열 명은 되어 보이는 인원.
놈들의 숫자보다 놈들의 무력이 관건이다.
역시 일반적인 개천혈교 무인의 실력은 아니다.
한 명, 한 명이 일류 이상이 놈들이다.
‘빌어먹을, 예소향이 문제로군.’
나는 적들을 사방으로 상대하는 일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예소향이 문제다. 사방을 공경당하는 예소향은 적들의 공격에 바로 수세에 몰리며 위태로워진다.
예소향이 죽으면 안 되니 예소향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 휘릭─ 휙─ 쉬익─ 챙챙─
놈들의 공격을 뿌리치면서 예소향의 옆으로 이동한다.
등을 맞대면서 적들의 공격을 반씩 부담한다.
[잘 들어요. 내가 내 앞을 가로막는 적을 어떻게 해서든 죽일 겁니다. 그럼 도장께서는 그 틈을 이용해 도주하세요.] [도주요? 저 혼자서요?] [도장을 보호하느라고 나도 싸우기 힘들어요. 차라리 혼자면 놈들을 상대하기가 더 편해요. 정 힘들면 나 혼자 도주할 수도 있고요. 내 신법은 무림 최고 수준이거든요. 도장이 안전해야 저도 편합니다. 그러니 제 말대로 제가 튼 활로를 통해 백정맹으로 바로 달려가도록 하세요.] [정말 혼자서 이들을 상대하겠다는 건가요?] [내 실력은 꽤 괜찮아요. 내 걱정 말고 도장이나 제대로 도주하세요. 기회를 놓치면 안 돼요.] [알겠어요.]전음을 통해 예소향에게 도주 준비를 지시한 다음에 내 앞의 적을 향해 전력을 다해 일검을 휘두른다.
전력을 다한 내 검을 막을 수는 없으니 정면의 적이 비틀거리면서 밀리다가 그대로 내 검에 목이 베이고 만다.
“끄윽!”
– 휘릭─ 휙─
등을 맞대고 있던 예소향이 즉시 몸을 돌리면서 내 앞으로 튀어나간다.
“여자가 도주한다. 막아라.”
“어딜!”
예소향을 공격하려던 좌우의 적은 내가 막는다.
왼쪽의 적에게는 지옥신환으로 탄강기를 발사하면서 오른쪽 적은 묵룡신검으로 막아선다.
– 퍽─ 챙─
“크흑!”
지옥신환에 당한 적은 어깨를 감싸면서 비틀거린다.
동시에 둘을 상대하다 보니 확실히 지옥신환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예소향을 공격하려던 놈을 저지했으니 성공이다.
우측의 적 또한 내 검에 막히면서 뒤로 튕겨나간다.
그 틈을 이용해 두 놈의 사이로 도주에 성공하는 예소향.
내가 바로 예소향의 뒤를 따라붙으면서 도주로를 확보한다.
“계속 가요. 뒤는 내가 막을 테니.”
“알았어요.”
– 휘릭─ 휙─
예소향은 계속 앞으로 달리고 나도 같이 달린다.
그러다가 뒤에서 추격하는 적이 가까워지자 몸을 돌려 적을 향해 공격한다.
– 캉─ 채챙─
– 쉭─ 퍽─
“크흑!”
지옥신환과 검을 이용해 적들을 막아서니 적들의 발길이 묶인다.
그 사이 예소향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안정권이다.
놈들은 예소향을 추격하려고 했지만, 예소향을 추격하려고 할 때마다 내가 탄강기를 쏘고 검을 휘두르며 막아서니 예소향을 추격하지 못한다.
놈들의 눈에 짜증이 가득 어린다.
“빌어먹을! 저놈 때문에 여자를 놓치다니. 이놈부터 죽인 후에 추격하도록 해라.”
결국 놈들은 나를 상대한 후에 예소향을 추격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꾼다.
그게 니들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
‘월야성─!’
– 쉬익─ 서걱─
“으악!”
묵룡신검이 빛을 발할 때마다 놈들이 한 명씩 쓰러진다.
단전을 꽉 채운 내공은 모든 초식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일류급 무인들이지만 내 검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한 명씩 쓰러진다.
물론 내가 한 놈을 공격할 때, 삼 면으로 나를 공격하는 놈들의 공격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지녔다.
그러나 그 공격을 피하면서도 한 명씩 쓰러트린다.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졌네. 예전에는 놈들의 협공에 신경 쓰느라 공격에 집중이 쉽지 않았는데.’
몸이 가볍다. 아니, 뜻이 가는대로 몸이 움직이는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사방에서 나를 향해 쇄도하는 검을 피하면서 공격이 가능하다.
그렇게 공격 한 번에 적 한 명씩을 처리해 나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적을 다 해치우고 나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후우, 내 무공이 많이 달라졌네. 최근에 두 개의 영단을 복용한 것이 벽 하나를 넘게 해주었어.”
어떤 무공이든 펼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 느낌은 사실이었다.
그 느낌대로 내가 원하는 무공을 펼치면서 결코 쉽지 않은 적들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예소향은 무사히 도주했겠지. 이렇게 해서 그녀를 또 한 번 구해준 건가?”
그녀와 함께 노을을 바라보았던 문봉탑을 바라본다.
그녀와 내가 나란히 앉아서 노을을 바라보던 문봉탑 꼭대기층에 노을이 물들면서 문봉탑도 능소화처럼 붉게 물들어간다.
“괜찮은 시간이었어. 여전히 예쁘고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아서 좋았고.”
문봉탑을 떠나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나와 인연이 있던 세 여자 중에서 이번 생에 만나지 못 했던 예소향까지 만났고, 그녀가 여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 * *
예소향을 만나서일까?
바로 현무전장으로 가지 않고 홍청루에 들러 작약만향을 찾는다.
“웬일로 이 시간에?”
“그냥 술이나 한잔하고 싶어서요.”
“술이요? 저랑요? 정보가 필요해서 온 것이 아니고요?”
“네, 오늘은 정보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그냥 작약만향하고 술이나 차라도 한잔하고 싶어서요.”
“호호, 오늘은 현 소협이 조금 이상하네요. 저랑 술을 하자는 날도 있고. 그렇게 해요. 안 그래도 인사차 한번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만나니 따로 찾아가지 않아도 되겠네요.”
“인사차 찾아올 생각이었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죠?”
“떠나려고요.”
“떠나요? 홍청루를요?”
“네, 이곳에 오래 있었잖아요. 그러니 떠날 때가 되었죠.”
나는 무표정한 듯 물었지만 속으로는 적지 않게 놀라는 중이다.
작약만향 그녀가 홍청루를 떠나다니.
정말 생각지도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