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67)
> 음악천재를 위하여 – 167화 >
“아들, 조심해서 운전해야 해.”
어머니의 얼굴에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것도 그럴 것이 이제 막 성인이 된 아들이 운전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었으니.
마음 같아서는 어머니에게 걱정은 접어두시라 말하고 싶었다. 아무렴, 지난 삶을 포함하면 운전 경력이 30년이 넘은 베테랑이지 않은가.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김 기사 아저씨한테 연수 잘 받았어요. 조심해서 운전할게요.”
“그래, 여보. 현이 너무 걱정하지 마. 저번에 내가 운전하는 거 옆에서 보니까 웬만한 택시 기사님 저리 가라야, 김 기사님도 현이 보고 꼭 운전 수십 년 한 사람 같이 점잖게 잘한다고 했잖아. 아무리 봐도 우리 아들은 카레이서의 자질도 있는 것 같다니까.”
아버지의 우스갯소리 덕분에 수월하게 집을 나설 수가 있었다.
아침부터 운전면허증과 자동차 키를 챙긴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대학교 첫 OT 날이 아닌가.
얼굴이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대중교통은 이용할 수도 없었거니와 그렇다고 첫날부터 요란하게 김 기사 아저씨의 에스코트를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강현이다!”
한국대학교를 찾자마자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작년 연말에 있었던 독주회로 인해서 한 차례 신문 일 면을 장식하지 않았던가.
수년 전 영국 왕실 공연에서 지휘를 했던 모습과 달리 부쩍이나 커진 내 모습에 사람들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니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학우들 입장에서는 오죽할까. 그나저나 이거 원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이네.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는 소강당에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학생회 선배들 또한 눈을 크게 뜬 상태로 ‘진짜 강현이야, 강현!’이라고 자기들끼리 말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그때였다.
“현아―!”
누군가 내 이름을 정겹게 부르는 것이었으니.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꽤 낯익은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큰 키에 어깨가 쩍 벌어진 것이 덩치가 숫제 곰처럼 보일 정도였으니.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풍채는 서부지검에 있을 적 만났던 강력범들밖에 없는데.
그 순간 가슴팍에 달린 파란 명패의 이름 석 자가 눈에 들어왔다.
“김대우?”
“그래, 인마! 대성중학교 김대우! 나 기억하냐? 진짜 반갑다, 반가워!”
그제야 과거 볼살이 통통했던 김대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 삶 중학교 시절 유일하게 친구로 지냈던 아이가 아닌가.
설마하니 나와 같은 대학교와 학과에 입학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신문하고 TV에서 현이 네 이야기 하는 거 자주 봤다. 우리 부모님도 네가 그렇게 성공한 모습 보고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는지 몰라. 나도 자극받아서 공부 엄청 했잖냐. 결국 이번 대입시험에서 대박 터져서 운 좋게 한국대학교에 들어왔어. 흐흐 아마 내가 문 닫고 들어왔을 거다. 우리 아버지가 널 아주 좋아하셔. 네 덕분에 아들이 정신 차렸다고 말이야. 그건 그렇고 대성중학교 교무실에 네 사진 걸려 있는 거 아냐?”
“내 사진이?”
“그래. 몇 년 전 스승의 날 때 강봉두 선생님하고 강혜정 선생님 뵈러 갔다가 봤어. 배불뚝이 교장 선생님이 매번 신입생들 입학할 때마다 네 이야기 한다더라. 대성의 자랑이라면서 말이야. 웃기지도 않아. 예전에 네가 전교 일등 했을 때 수상하다며 몰아붙일 땐 언제고.”
김대우는 예전과 변함이 없었다. 처음에는 달라진 모습에 어색하던 놈이 몇 번 대화를 나누자 볼살을 출렁이며 수다쟁이처럼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었으니. 마치 인심 좋은 곰 같지 않은가.
그때 김대우가 나를 바라보며 슬며시 물었다.
“현아, 이번에 MT 갈 거야?”
“엠티?”
당연히 엠티를 갔던 적은 없었다. 오롯이 사법고시에만 매달리느라 엠티 같은 건 아무래도 귀찮은 존재였었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는데 김대우가 흡사 어미 새를 바라보는 새끼 새처럼 눈을 빛내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걸 어쩐다.
* * *
“나이스 샷―!”
골프공이 유려한 포물선을 그리며 매끄럽게 날아간다. 몸과 클럽의 일체감은 물론이거니와 퍼팅을 끝마치는 자세까지 훌륭하지 않은가.
유연하게 휘어지는 허리는 마치 젊은 장정의 것 같았으니. 표적을 겨냥한 독수리처럼 정확한 위치에 낙하하는 골프공을 보며 왕회장이 혀를 내둘렀다.
“영감탱이, 나 몰래 어디서 몸에 좋은 거라도 먹은 거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작년보다 더 스윙이 더 좋아진 거 같아. 농담이 아니라 삼백 야드도 충분할 것 같은데 말이야. 비결이 도대체 뭐야?”
유 회장이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드라이버를 캐디에게 건넸다.
가평 컨트리클럽의 공기가 맑아서일까 아니면 컨디션이 좋아서일까. 유 회장은 요즘 들어 부쩍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남들은 노안에다가 골다공증까지 심심찮게 오는 나이었지만 유 회장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과장을 살짝 더해 말하자면 40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다 현이 덕분 아니겠는가. 매번 내게 건강검진은 물론이고 몸에 좋다는 건 찾아서 먹으라고 잔소리를 옆에서 늘어놓는다네. 이번 새해에는 내 건강검진 결과를 보고는 눈을 글썽이더군. 할애비가 오래 살아서 그리 좋을까, 현이가 너무도 좋아하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
“아무리 봐도 자네는 말년에 손주 복 하나는 제대로 타고났구만. 이거 원 그런 떡두꺼비 같은 손주 없는 나는 부러워서 쓰겠나.”
“손가, 아쉬운 소리 말게. 자네에게는 유하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일선이도 자기 역할을 아주 잘해내고 있고. 요즘 제일그룹의 대외적인 활동은 전부 일선이가 대표로 나서는 것 같던데, 한 번씩 일선이를 보고 있으면 세월이 흘렀음을 격하게 느끼네. 과잣값을 쥐여줬던 코흘리개 꼬마 아이가 어느덧 대한민국 최고기업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말이야. 요즘 일선이 모습을 보면 자네 젊었을 적보다 더 카리스마가 있는 것 같아.”
왕회장과 유 회장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자식들에 대한 덕담을 나눴다. 어느새 골프는 뒷전이 된 지 오래다.
“여기가 일전에 유하가 홀인원을 했던 곳이지. 어린아이가 홀컵에 단번에 홀인원을 시키는 것을 보고는 얼마나 놀랬던지. 아무리 봐도 유하의 성정은 손가 자네와 빼다 박았네. 성인이 돼서 제일그룹의 일원이 된다면 웬만한 남자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똑 부러질 테지.”
“현이만 하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현이를 전략기획실에 앉혀놓고 싶을 정도야. 그 깐깐하던 김 실장이 어찌나 현이에게 매료됐는지 내가 직접 키운 장학생을 현이가 온전히 뺏어간 느낌이 들더군.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 현이를 보고 있자면 저 울창한 아름드리나무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말이야.”
가평 컨트리 클럽은 왕회장이 직접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골프장이다보니 웬만한 수목원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진귀한 고목들이 가득했다.
천혜의 절경 부럽지 않은 골프장의 전경을 바라보며 왕회장이 슬쩍 운을 띄웠다.
“그나저나 현이 욘석 올해 대학교에 입학을 했으니 말이야. 이제 슬슬 시기를 정해야 하지 않겠나, 자네는 언제쯤이면 좋겠는가?”
“뭐를 말하는 겐가?”
왕회장은 시치미를 뚝 떼고 부연했다.
“당연히 약혼식 아니겠나?”
* * *
“부어라, 마셔라, 술이 들어갈 때까지―!”
경춘선을 타고 가평의 MT촌으로 향했다. 단과대가 전부 움직이는 총MT가 아니었기에 인원수는 백 명 남짓이었지만 소주 궤짝은 몇 개나 실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처음에는 강현을 보고 연예인을 본것마냥 수군거렸던 학생들도 이제는 적응이 되었는지 겉으로는 티를 안낸다.
하물며 체내로 알코올이 들어서자 서먹서먹했던 신입생들의 분위기도 활기가 돌았다.
“신입생 중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는?”
누군가의 말과 함께 여학생들이 일제히 강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지목당한 사람은 영락없이 소주를 들이켜야 하는 게 룰이었다.
어째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독박을 쓰는 기분이다.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는 지난 삶에 느꼈던 달짝지근한 맛 그대로였다.
“여기서 가장 곰같이 생긴 사람은?”
이번에는 김대우가 영락없이 지목 당했다.
아직 신입생들이라 그런지 술판을 벌인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다들 얼굴이 잘익은 홍시처럼 붉었다. 특히 취기가 올라 양볼이 상기된 김대우는 불곰과 퍽 닮은 모습이다.
여학생들은 물론이고 남학생들의 얼굴에도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렴, 이제 막 약관에 들어선 불타는 청춘이 아닌가. 하물며 인근여대에서도 MT촌을 찾은 것이었으니 오죽할까.
“현아, 아까 점심쯤에 온 여대생들 봤냐? 전부 너만 쳐다보더라. 막 어떤 여대생은 소리도 지르더라니까. 그래서 말인데 나중에 같이 안 가 볼래?”
“난 관심 없다.”
“인마, 이런 데서 사랑이 싹트는 거지. 우리 과 여자 동기들이 현이 널 엄청 좋아하지만 캠퍼스 커플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선배들이 그러더라. 정말 관심 없는 거지? 그럼 우리끼리 간다. 나중에 껴달라고 하면 그때는 국물도 없어.”
아서라, 여대생들에게 관심도 없거니와 지금 김대우가 여대생들을 찾아간다면 그곳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올 것이 자명했다. 곰 같은 사내가 홍익인간이 되어 나타난 것이었으니.
허나 김대우의 푸른 청사진은 이뤄질 가능성이 미미했다. 다들 인사불성이 되었거나 아직 곯아떨어지지 않은 이들도 제정신을 가누기 힘들어 보였기에.
그나저나 다들 이렇게 술이 약해서야 어디 쓰겠나.
“저기.”
바람이라도 쐴 겸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누군가 부르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꽤 큰 키에 짙은 쌍커풀 얇은 입술 그리고 눈 밑에 점까지.
함께 MT를 온 학과생은 분명 아닌데 어딘가 낯익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눈이 일순 크게 떠졌다.
* * *
‘역시 내 얼굴이 먹혔어!’
이유리는 가평의 MT촌에서 강현을 처음 봤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꿈에 그리던 왕자님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
매번 강현이 나오던 신문과 잡지를 스크랩했으니 그 심정이야 말로 표현해서 무엇하랴.
마음 같아서는 국회의원인 아버지를 통해서라도 강현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이유리?”
이유리가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강현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 어떻게 아는 것일까.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슴팍에 달린 명패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신입생 MT라 다들 가슴팍에 자신의 이름이 커다랗게 적힌 명패를 달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유리가 쑥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허어―!’
강현은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을 속으로 삼켜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가평 MT촌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분명 기억보다 앳된 외모와 전혀 다른 성격이었지만 이유리가 맞았다.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지난 삶 아내였던 여자였으니.
“저기 혹시 그쪽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번호 좀 알려줄 수 있을까?”
“내가 마음에 들어?”
“당연하지.”
실소가 터져 나오는 걸 참느라 힘들었다. 지난 삶 암에 걸린 나를 버린 장본인이 아닌가. 쓸모가 없어지니 버리는 것이 마치 분리수거를 하는 모양새나 다름 없었다.
아무렴, 애초에 사랑 없었던 결혼이었으니 어찌 보면 처음부터 그 끝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사실 예전부터 널 많이 좋아했었어. 바이올린 켜는 모습이 너무 멋지더라고.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여자들이 너한테 이렇게 대시했겠지만 난 정말 진심이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지고지순한 열녀라고 판단할 것이다.
허나 지난 삶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갈아치웠던가. 결혼 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외도를 끊임없이 저질렀던 여자다.
그때 당시는 나도 아내를 사랑하기보단 감투가 중요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참, 우리 아버지는 시의원이셔.”
어째 자기 부모의 직업을 명함처럼 능숙하게 사용한다. 마음 같아서는 네 아버지가 훗날 정경유착으로 구속된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싶었다.
난 고개를 가로 저어 보였다. 더 이상 불필요한 인연이었기에 단호하게 매듭을 지을 필요가 있었다.
“미안하지만 난 관심 없다.”
“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이유리였다. 암, 여태까지 자신이 다가가서 안 넘어간 남자가 없을 것이다.
허나 열 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도 있는 법이었으니. 더군다나 나에겐 든든한 골키퍼까지 있지 않은가.
“이번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진심으로.
이번에는? 알 수 없는 말에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이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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