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10)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10화 >
세계의 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과연 있을까.
독일의 유리, 미국의 빌스타인, 러시아의 막심 이바노프, 벨기에의 에덴시므온, 일본의 아카자와 히카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장들이 하나같이 런던 심포니 콘서트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별들의 향연이군.”
그라모폰의 수석 편집장 애덤은 콘서트홀의 광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계적으로도 마주하기 힘든 거장이 하나도 아니고 대거 나타나지 않았던가.
하물며 영국의 왕세자는 물론이고 인근 국가의 귀빈들까지 로열석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런던 심포니 콘서트홀의 경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삼엄했다.
“애덤, 이렇게 많은 거장들을 실제로 본 적이 있어?”
샤론의 물음에 애덤은 단호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토록 많은 거장들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명 마에스트로들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취를 감췄던 거장들까지 나타났다.
여제 카라스의 복귀 무대가 아니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이야기였다.
“현이라는 존재는 정말 신비해. 어떻게 보면 수많은 거장들을 불러 모은 마에스트로 카라스에게 다시 지휘봉을 건넨 게 현이었으니 말이야. 흡사 폭풍의 눈처럼 느껴질 정도야.”
애덤은 로열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강현을 바라봤다.
깔끔하게 빗은 머리와 정장이 자못 잘 어울린다. 이제는 앳된 소년의 모습이 아니라 장성한 청년의 모습이었으니. 외모는 물이 올라 웬만한 배우와도 비견될 정도이지 않은가.
하물며 음악적 재능은 말로 표현 못 할 정도였으니. 콘서트홀을 찾은 수많은 거장들이 카라스의 무대를 기다리는 가운데 힐끔힐끔 강현을 훔쳐볼 정도였다.
그때였다.
웅성거리던 콘서트홀이 삽시간에 고요해지고 스포트라이트가 무대 위를 쫓았다.
청중들의 눈가에는 흥분과 설렘이 가득했다.
십 수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마에스트로 카라스가 무대 위로 올라서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니.
퍼러러럭.
순백의 드레스가 그녀의 진한 갈색 머리카락과 조화롭게 어울렸다. 지휘봉은 손때가 묻어 있는 물푸레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카라스는 주름진 손으로 앞섬을 모은 채 청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먼 길을 찾아와주신 청중 여러분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오늘 공연의 지휘를 맡은 카라스라고 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객석을 매운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거장들의 눈에는 말로 표현 못 할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남은 세월 동안 다시는 카라스의 지휘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처음으로 들려드릴 곡은 말러 교향곡 1번 D장조 거인입니다.”
마에스트로는 미소를 지은 채 등을 돌려 단원들을 바라봤다.
여제의 복귀 무대를 위해 지난날 동안 숱한 연습을 거듭했던 런던 심포니의 단원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무렴, 객석을 매운 청중들은 하나같이 음악에 조예가 깊은 자들이 아닌가. 하물며 여제의 복귀 무대였으니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지 않았다.
긴장으로 손에 진땀이 맺힐 무렵이었다. 카라스는 단원들 한 명 한 명과 시선을 마주쳤다.
물결이 흐르듯 차분하게.
그 순간 단원들은 긴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휘봉의 끝이 천장을 향했고 현악의 선율이 귓가를 어루만졌다. D장조의 4분의 4박자 형식으로 느린 선율의 1악장이었다.
거장들은 자세를 앞당긴 채 카라스의 지휘를 탐닉했다.
그녀의 손이 허공을 가로지를 때 단원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마치 자그마한 세계를 조율하는 것처럼.
지휘봉의 끝이 다시 한번 천장을 두드리자. 살얼음이 꼈던 겨우내의 저수지에서 물고기들이 기나긴 잠을 깨우고 얼음을 깨듯 트럼펫 소리가 여명을 드러낸다.
와일드한 스케르쵸와 트리오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청중들에게 눈앞에 생생한 선율의 울림을 주었다.
어둠에서 빛으로.
거인을 초연했던 말러가 말하지 않았던가. 폭풍과도 같은 4악장에서는 청중들이 모두 숨을 집어삼키고 눈을 부릅떴다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마에스트로의 어깨와 손끝이 하나가 된 것처럼 들썩이자 거인의 발걸음처럼 웅장하고 활화산처럼 차오르는 음색이 청중들의 귓가를 쉼없이 파고들었다.
퍼러러럭!
순백의 드레스가 바람결에 흩날리듯 펄럭이고 하늘을 향해 치솟는 매처럼 마에스트로의 손끝이 천장을 향했다.
청중들은 선율의 그림을 그리듯 눈앞에서 생생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었다.
동면에서 깨어난 동물들이 봄기운의 활기를 찾듯 빛으로 향하는 여정을.
강현은 그 순간 마에스트로의 지휘를 보며 직감했다. 전설이 돌아왔노라고―!
* * *
“기숙사 말입니까?”
드미트리는 뜻밖의 말을 전해 들었다. 바로 강현이 왕립음악학교에 교환학생으로 들어간 것도 모자라 기숙사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었으니.
스펜서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총장이 직접 입학을 허가했고, 교수들도 두 팔 벌려 현을 환영하는 상태이지. 재력 또한 뒤따라주니 마음만 먹는다면 기숙사가 아니라 런던 시내의 펜트하우스를 매입해도 이상할 게 없지만 교환학생으로 머무는 동안 기숙사에서 생활을 해보고 싶다더군.”
“의외군요. 무어보다 프라이버시에 있어서 아주 까다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자기 또래의 천재들과 가까이 만나본 적이 없으니 어느 정도 궁금한 점도 있을 게야. 그러고 보니 드미트리, 자네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있을 적에 기숙사 생활을 했다지?”
드미트리는 부정하지 않았다.
“예, 마에스트로.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학부생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했어야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군대나 다름없죠. 아시다시피 모스크바 쪽은 기수문화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요. 당시에 제가 일 년 선배였던 바이올리니스트 빈 폴러의 베갯잇을 매주 빨래해 줬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빈 폴러는 클래식계에서 걸어 다니는 해골이라고 불릴 정도로 빈약한 체구의 사내다.
그에 반해 악장 드미트리는 전형적인 러시아인의 체격에 눈빛부터가 곰을 잡아먹을 만큼 날카롭게 벼려져 있지 않은가.
그런 그가 걸어 다니는 해골의 베갯잇을 손수 빨래해 줬다니 상상이 가지 않아 헛웃음이 나왔다.
“단원들이 현을 만나고 싶어 하는데 기숙사에서 생활을 한다고 하니 만날 수 있는 날이 적겠군요.”
“아무래도 그렇지. 더군다나 왕립음악학교의 과제는 토가 나올 정도로 혹독하니 말이야. 아마 개인적으로 여가를 보낼 시간이 부족할 게야.”
“그 정도입니까?”
“과거에는 대다수가 졸업을 하지 못했다네. 엄격한 기준을 넘어서야 겨우 유급을 면하니 말이야. 지금 총장을 맡고 있는 새뮤얼 왕세자 또한 왕립음악학교를 다녔지만 매번 나랑 도망칠 궁리만 했다네.”
런던 심포니의 심장이라 불리는 마에스트로 스펜서가 도망칠 궁리를 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하기 그지없었으니.
“왕립음악학교라, 내가 졸업한 지도 이미 수십 년이 흘렀군. 당시에는 교환학생이라는 제도가 없었다네. 지금도 명목상으로 있을 뿐이지 여태껏 단 한 번도 교환학생을 받은 적은 없었지. 아주 재밌겠어. 마음 같아서는 나도 왕립음악학교로 다시 가 보고 싶군. 교수들과 학생들의 지대한 관심이 현으로 향할 테지.”
스펜서는 과거를 회상하듯 마른 입술을 쓸었다.
“역사상 첫 교환학생이니 말이야.”
* * *
왠지 모르게 신림동 고시생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지난 삶 한국대학교 법학과에 입학을 하고 난 후 곧장 신림동에서 자취를 하지 않았던가.
흉기가 될 만큼 거대한 법전들을 품에 껴안듯이 들고는 두 발 뻗으면 닿는 작은 고시원으로 향했더랬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네.”
왕립음악학교의 기숙사는 지난 삶 고시원 쪽방에 비하면 대궐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널찍했다. 일인실에다가 책상과 개인 침대까지 구비되어 있었으니.
하물며 책상 바로 앞에는 왕립음악학교의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문까지. 그야말로 스위트룸이 따로 없잖아.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음대이다 보니 학생들의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선율은 척 들어봐도 꽤나 오랫동안 현을 켠 첼리스트의 실력이었다.
시디플레이어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사방에서 고전 서양음악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동물원 원숭이처럼 쳐다보려나.’
지난번 왕세자 총장과 면담을 나눌 때도 그러했지만 기숙사에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올 때는 강렬한 시선들이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동물원의 신비한 동물을 쳐다보듯 신기함을 머금고 있는 반면 때때로는 시기와 질투를 넘어서는 눈빛도 보였다.
아무렴, 런던에 소재한 음악학교다 보니 런던 심포니를 꿈꾸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평소에는 말수가 적은 마에스트로 스펜서가 나에 대한 인터뷰를 할 때면 팔불출마냥 미래를 이끌 동냥이라고 소개했으니 그들의 반응도 이해가 갔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주근깨가 가득한 소년이 얼굴을 샐쭉 내밀었다.
“안녕, 난 토미야. 네가 이번에 교환학생으로 온 현이지? 난 첼로 전공인데 부득이하게 네 학교 안내를 맡았어!”
“부득이하게?”
“아, 바이올린 전공 선배들은 지금 콩쿠르 때문에 바쁘거든. 알잖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시즌인 거.”
아아, 돌이켜보니 벌써 퀸엘리자베스 해가 돌아왔나 보다.
올해는 바이올린에 대한 콩쿠르가 진행되고 있다 보니 토미의 말처럼 바이올린을 전공으로 하는 학생들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지원했을 터였다.
“현, 저녁은 먹었어?”
“아직 먹지는 않았는데.”
“잘됐다. 그럼 일단 식당부터 가자! 다들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토미는 마치 나를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대했다.
주근깨 소년의 손에 이끌려 기숙사 복도를 지나가니 수많은 인종의 학생들이 나를 또다시 구경했다.
어째 폭풍의 전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라니까.
“현, 친구들의 시선은 이해해. 네가 엄청 유명인이라서 입학하기 전부터 이미 학교에 소문이 파다했으니까 말이야. 교수님들도 요즘 레슨을 할 때면 네 이야기를 많이 해. 런던 심포니의 수석 지휘자와 전설의 마에스트로 카라스의 공동 제자라니. 영화에 나올 법한 설정이잖아.”
“영화라고?”
“그래, 지금 학교의 여학생들이 널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 몰라. 이미 네 팬들도 상당히 많을걸? 현, 너는 뭐랄까, 엄청 매력적이게 생겼거든.”
호그와트에 처음 입학한 해리포터가 이러한 기분이었을까.
하물며 토미의 수상한 눈빛을 보니 어째 이 녀석과는 거리를 둬야만 할 것 같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듯 애정이 가득 찬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자, 도착했어. 어때?”
“엄청 넓구나?”
“전 학부생이 동시에 식사를 하는 곳이니까 엄청 넓을 수밖에. 하지만 매월 첫날 저녁에 열리는 총장님과의 저녁 식사가 아니면 이렇게 전 학부생이 모이는 날도 없어. 전부 악기 연습하느라고 끼니를 거를 때가 많거든.”
“잠깐, 오늘이 첫날 저녁이잖아?”
때마침 학생들이 속속 식당으로 도착하고 있었다.
토미는 내 손을 잡아끌며 지정된 좌석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오늘이 총장과의 저녁 식사가 있는 날인 듯했다.
점점 식당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토미가 부연했다.
“참, 오늘 자기소개를 어떻게 할지는 생각해 봤어?”
뭐?
“오늘 총장님이 현 널 학생들한테 소개해 줄 거야.”
아무래도 신고식이 꽤나 요란 법석할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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