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20)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20화 >
교칙위반―!
기숙사 건물이 떠나갈 정도로 쩌렁쩌렁한 발성. 토미의 얼굴이 삽시간 만에 시퍼렇게 질려 들어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발성의 근원지가 분명 기숙사 사감 더글라스 선생이었기 때문이었으니.
“현!”
토미는 황급히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강현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강현의 가슴팍에서 곤히 잠자고 있는 여자애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물어볼 겨를조차 없었다.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흔들리는 어깨에 강현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순간이었다.
“토미……?”
강현은 흐릿한 시야 너머로 보이는 토미의 주근깨를 의아하게 바라보다 문득 가슴팍이 따뜻한 것을 느꼈다.
강현의 고개가 천천히 내려가는 순간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난 손유하와 시선이 마주쳤다.
헉.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숨을 집어삼켰다.
강현은 손유하가 머물 곳이 없다는 말에 결국 함께 밤을 지새우고 아침 비행기로 유하를 다시 미국에 보낼 생각이었다. 헌데 이렇게 될 줄이야.
그때였다.
“현, 큰일이라고!”
“큰일이라니?”
“지금 사감 선생님이 불시검사를 하고 있다고!”
불시검사는 또 무슨 말인가. 강현이 되묻기도 전에 토미가 쏜살같이 두 사람을 재촉했다.
강현이 자초지종을 묻자 토미가 다급한 얼굴로 한 달에 한 번 있는 기숙사 불시검사라고 부연했다.
그제야 강현은 방 안을 황급히 정리하고 나섰으니.
교칙위반―!
사감 더글라스 선생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다시 기숙사 건물 안에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다른 기숙사 방에서 숨겨 놓았던 보드카라도 걸린 모양. 토미는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들어간 채로 강현에게 말했다.
“현, 나는 먼저 나가 있을게! 빨리 저 친구를 어떻게 해봐!”
토미가 떠나간 방 안에는 강현과 손유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손유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양새. 강현은 결국 그녀에게 신발을 신기고 외투를 챙겨준 채 옷장의 문을 열어주었다.
“유하야, 여기 잠시만 숨어 있어.”
“응!”
어째 손유하의 얼굴이 흥미진진해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마음 같아서는 창문을 열어주고는 도망치라고 하고 싶지만 고층이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둔탁한 발걸음과 함께 강현의 방으로 사감이 도착했다.
“불시검사를 하겠다.”
왕년에 음악이 아니라 럭비부 주장을 했다고 생각이 들 만큼 풍채가 대단한 사감 선생이었다. 사감은 안광을 번들거리며 방 안을 검사했는데 그 모습이 흡사 FBI 같지 않은가.
“이건 뭐지?”
사감이 침대에서 기다란 머리카락 하나를 뭉툭한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강현의 목울대가 절로 출렁였다. 지난 삶 서부지검에 있을 적 감찰조사를 받았을 때에도 이토록 긴장되지는 않았으리라.
“크흠. 여학생이 잠시 머문 것까지는 뭐라 하지 않겠네.”
생각보다 융통성이 있는 인물인 듯했다. 아무래도 혈기왕성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보니 남자기숙사라 할지라도 여학생들의 출입이 종종 있었던 모양. 그때 사감이 옷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이건 또 뭐야?”
아뿔싸, 옷장 문틈 사이로 손유하의 붉은 머플러가 삐져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현, 생각보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스타일은 아닌가 보군.”
안 돼!
지금 당장에라도 사감을 막아서고 싶었지만 이미 사감의 뭉툭한 손이 옷장 문을 활짝 열어젖힌 뒤였다.
우당탕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넘어진 손유하와 사감의 시선이 마주쳤다. 사감의 눈이 일순 당황을 머금었다가 이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교칙위반―!!”
* * *
“한국 속담 중에 그런 말이 있다지요? 얌전한 고양이가 생선을 먼저 먹는다고 말이에요. 하하하.”
실제 속담은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이지만 뭐가 중요하랴, 새뮤얼 총장의 얼굴에는 보기 드문 미소가 가득 피어 있었다.
“설마하니 현이 기숙사에 여학생과 함께 있었을 줄이야. 듣기로는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라고 하던데요?”
“예, 뉴욕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라고 합니다.”
“워, 뉴욕이라고요?”
비앙카 교수의 말에 새뮤얼 총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같은 왕립음악학교 학부생일 줄 알았건만 것도 아니라니!
“세기의 커플이군요. 설마 현을 만나기 위해 미국에서까지 건너왔을 줄이야.”
“총장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기는요. 혈기왕성한 나이이니 당연히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사실 현이 여성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오히려 걱정했었단 말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왕립음악학교 재학 시절에 기숙사에 여학우를 초대했던 일이 있었으니 그리 큰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교칙은 교칙이니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의 징계를 내리세요.”
비앙카 교수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새뮤얼 총장이 왕립음악학교 재학 시절 사고뭉치였다는 사실은 이미 교수들 사이에서는 파다하게 퍼진 소문이었기 때문.
“참, 그리고 한국에서 TV 프로그램 때문에 연락이 왔었다고요?”
“예, 현의 일상을 촬영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미 현의 소속사에서는 허락을 했고 저희 측에서 마지막 결정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현은 이미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음악가이니 그의 캠퍼스 라이프가 궁금하겠지요. 좋습니다. 이거 이럴 게 아니라 머리 손질을 다시 봐야겠는데요? 한국에서 TV 프로그램으로 방영된다고 하니 말입니다. 하하하.”
새뮤얼 총장이 거울을 바라보자 비앙카 교수 또한 저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 * *
두근 두근 두근.
K 방송국의 피디 김다현은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여태껏 그토록 촬영하고 싶었던 인물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기 때문.
강현의 소속사와 미팅을 하고 영국 왕립음악학교에서 결국 촬영허가가 떨어지자 국장과 얼싸안고 행복한 비명을 내지르지 않았던가.
“선배 그렇게 좋으십니까?”
“인마, 내가 현 님 왕팬이잖아!”
“어떻게 결혼하실 때보다 더 입가에 미소가 만개하신 것 같습니다?”
조연출의 물음에도 김다현 피디의 입가에서 미소를 떠나보낼 수가 없었다. 그만큼 김다현은 강현의 열렬한 팬이었으니.
그가 퀸엘리자베스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 결성된 팬클럽에서 수년째 간부직을 맡고 있을 만큼.
“시청률은 대박이겠죠?”
“지금 시청률이 문제냐, 우리 현 님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조연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이제 막 신혼생활을 즐겨야 할 김다현 피디가 장장 한 달간의 해외출장을 결정한 까닭이 설마하니 강현 때문이었을 줄이야.
“형님께서는 질투 안 하세요?”
“야, 송 피디도 현 님 왕팬이야. 나한테 싸인 시디 받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라!”
어째 서로가 전혀 상극 같았던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한 이유가 있었다. 확실한 공감대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런던의 전경이 펼쳐지자 김다현 피디의 입가에 미소가 다시 한번 만개했다.
“이번 촬영은 정말 대단할 거야.”
그간 강현을 촬영하고 싶어 수없이도 소속사였던 제일 갤러리와 접촉하지 않았던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결국 수년째 매달린 끝에 촬영이 성사되었다.
퀸엘리자베스에서의 촬영 이후 강현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던 적은 가물에 콩 나듯 적었다. 하지만 등장 하나하나가 특종을 몰고 올 만큼 대단하지 않았던가.
특히 열일곱의 나이로 영국 왕실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영상은 아직도 전 세계 클래식 팬들의 입에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을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 * *
“낙엽 치우기라니…….”
가을의 끝을 알리듯 왕립음악학교 정원에 널브러진 낙엽들을 송풍기로 밀어냈다.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화장실 청소는 아니지 않은가.
강현은 낙엽들을 치우며 어이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살다 살다 기숙사에 여자를 들여서 징계를 받게 될 줄이야.
“낙엽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사감 선생이 눈을 번뜩이며 강현을 지켜보고 있었다. 혹여나 농땡이라도 피울까 감시하는 것이었다.
왕립음악학교의 널찍한 정원에는 강현 말고도 다른 학부생들이 함께 정원을 정리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교칙을 위반한 학부생들이었으니.
개중에는 강현처럼 여자 친구와 함께 밤을 지새운 이도 있다고 들었다.
“하루 온종일 학교를 정비해야 한다니 이럴 수가.”
떠오르는 악상을 악보 위에 옮겨 적기에도 바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몇 시간에 걸쳐 정원에 떨어진 낙엽들을 전부 치우고 나서야 짧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현!”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토미와 사브리나가 함께 다가왔다.
두 사람은 어느 순간부턴가 한 쌍의 원앙마냥 함께 다녔는데 남들 앞에서 손깍지를 잡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브리나가 토미를 이끄는 모양새가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바뀐 것 같았지만.
“오늘 아침에 봤던 분은 누구야?”
“토미 말로는 현 네 여자 친구라는데 진짜야?”
“왜 우리한테 소개 안 해줬어!”
따발총이 쏟아지듯 사브리나와 토미의 질문이 이어졌다.
“지금 현 네 여자 친구는 어딨어?”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건너갔어.”
“오마이갓, 미국에서 현을 보기 위해 영국까지 건너온 거라니! 너무 로맨틱적이잖아!”
사브리나가 은빛 머리카락을 출렁이며 호들갑을 떨었다. 덕분에 주변에 있던 학부생들 또한 귀를 쫑긋 세운 채 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 같았다.
아무렴, 강현은 교환학생으로 입학을 하자마자 무수한 여학우들의 관심을 받지 않았던가.
모르긴 몰라도 강현에게 여자 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많은 여학우들이 실망과 좌절을 느꼈을 것이다.
“현, 한국에서 널 촬영하기 위해 방송팀이 온다는데 사실이야?”
“나도 소속사에서 며칠 전에 연락을 받았어.”
“이야, 역시 현이 알아주는 스타는 맞구나. 촬영은 언제부터 시작이야?”
“오늘부터 촬영을 한다고 연락을 받았기는 했는데…….”
그때 정원 너머에서 촬영 카메라를 짊어진 한 무리가 강현을 향해 다가왔다. 아무래도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다.
“강현 씨, 안녕하세요!”
김다현 피디가 강현을 향해 활기차게 인사를 해 보였다.
사브리나와 토미는 물론이고 다른 학부생들과 사감 선생마저도 신기한 듯 촬영팀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다현 피디는 강현과 인사를 끝낸 후 사감 선생과도 능숙하게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지금부터 촬영을 하고 싶다고요?”
“예, 강현 씨의 나날을 과장 없이 내보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니까요. 이미 학교 측에는 허가를 받아놨습니다.”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강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많고 많은 날 중에 하필이면 징계를 받는 날에 올 게 뭐란 말인가.
때마침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정원을 청소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더글라스 선생의 얼굴에도 심히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촬영 중인데 강현에게 청소를 시켜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었으니.
그때 강현이 망설임 없이 청소를 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강현 씨, 지금은 무얼 하시는 거죠?”
김다현 피디가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강현뿐만 아니라 다른 학부생들도 함께 정원 청소를 하는 것을 보고는 의아하게 생각했기 때문.
그때 옆에 있던 사브리나가 대신 대답을 하려 했다.
“현이 기숙사에서 여……!”
그 순간 토미가 황급히 사브리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모습에 강현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봉사활동입니다.”
아무래도 남은 촬영 나날이 순탄할 것 같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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