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21)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21화 >
“어디를 보면 될까요?”
비앙카 교수의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게 떨리고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카메라를 응시해 주시면 됩니다. 저와 편하게 평소처럼 대화를 하는 것처럼 촬영을 할 겁니다. 미리 준비해 드렸던 질문지에 있는 질문들을 무작위로 할 테니 생각해 두셨던 답변을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너무 긴장하시면 아름다우신 얼굴이 잘 안 나오실 수도 있어요. 절 그냥 하이스쿨에서 견학 온 방송반 학생이라고 생각하세요.”
김다현 피디가 능숙하게 비앙카 교수의 긴장을 풀게 도와주었다.
일반인이 방송국용 촬영 카메라를 마주하게 된다면 열이면 아홉은 얼어붙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렴, 자신의 모습을 수많은 사람이 보게 된다는 것인데 안 떨 수가 있겠는가. 허나.
“무대 위에서 공연 촬영을 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군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점점 적응이 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점등된 카메라가 마치 메두사의 머리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비앙카 교수는 그 연륜과 경험을 살려 그대로 얼굴에 긴장을 녹여내고 있었다. 어느새 평소 학생들을 대하던 것처럼 비앙카 교수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첫 질문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바이올린 파트의 학과장을 맡고 계시는데 처음 현을 마주하셨던 소감이 어떠셨습니까? 아무래도 이미 매스컴에서 이름이 꽤나 알려진 인물이라 기대를 하셨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기대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죠. 런던의 심장이라 불리는 지휘자의 사랑은 물론이고 전설의 마에스트로 카라스의 사랑까지 듬뿍 받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요. 항간에는 모차르트가 환생했다는 말도 있었잖아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 아닌가.
하지만.
“현은 그런 저희들의 과한 기대를 넘어설 정도였습니다. 특히 음악회에서 그의 기량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천재가 있습니다. 그중의 대부분은 독단적이고 이기적이죠. 적어도 음악에 한해서 제가 본 이들은 그랬습니다. 하지만 현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첼로 전공의 토미를 단 시간 내에 향상시킨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였죠. 그건 독단적인 어린 천재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굳이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비앙카 교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했다.
“거장.”
비앙카 교수의 뇌리에는 아직도 트리오의 모습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물론 강현과 사브리나의 연주는 두말할 것 없이 뛰어났다.
하지만 개중 비앙카 교수의 눈을 가장 이끈 것은 분명 첼로를 맡았던 토미이리라.
단시간 내에 그토록 음악적 색깔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비앙카 교수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었다.
단언컨대 왕립음악학교의 어떤 교수도 그런 마법 같은 가르침을 베풀 수는 없을 것이다.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지금 피디님의 얼굴을 보니 너무 현을 띄워주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하는 것 같으니까요.”
“조금 티가 났나요? 사실 제가 강현 씨의 팬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교수님의 입에서 극찬을 들으니 얼떨떨해서요. 사전에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던 교수님의 성격은 엄청 엄하시다고 들었거든요.”
“학생들을 냉정하게 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음악에 있어서는 말이에요. 또한 제 말이 과장인지 아닌지는 오늘 피디님의 두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김다현 피디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리는 가운데 비앙카 교수가 말했다.
“오늘 현에게 아주 재미있는 과제가 주어진답니다.”
* * *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강현의 물음에 토미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원래는 선배들 중에서도 유독 특출 난 선배들만 해왔던 건데 이번에는 교수님들이 현 너와 나를 지목했다고 하더라고. 왕립음악학교로 진로를 희망하는 열다섯 살 이하의 학생들에게 각자의 전공을 지도해 주는 건데 나도 지금 너무 얼떨떨해.”
토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주근깨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반면 강현은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상대적으로 토미에 비해 타인에게 음악을 지도했던 경험이 풍부했으니.
“학생이 원하는 곡을 개인지도를 해주면 된다. 특히 현 측의 학생들은 오늘 촬영하는 것을 알고 허락을 받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알버트 교수는 더 이상의 설명을 부연해 주지 않은 채 뒤돌아섰다.
강현과 토미는 각자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을 연습실의 문을 열었다. 평소보다 훨씬 널찍한 연습실에는 척 봐도 사브리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현과 촬영감독이 함께 들어서자 어린아이들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오늘 하루 동안 여러분을 지도해 줄 현이라고 합니다. 모두들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긴장할수록 손가락의 이완이 느려지니까 말이에요.”
강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여학생들이 볼을 발그랗게 물들이고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남자 학생들이라고 다르지 않았지. 강현은 다섯 명의 어린 학생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지도를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한 명씩 본인이 원하는 곡을 연주해 볼까요?”
강현의 부드러운 지시에 앞서 있던 여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4번 1악장이라, 아주 좋아요.”
여학생에게서 악보를 건네받은 강현이 흡족한 듯 미소 지었다.
이윽고 여학생이 긴장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바이올린을 어깨에 걸치고는 자세를 취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할지라도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것일까. 활을 들어 올리자 금세 눈빛이 변하지 않는가.
지잉.
클래식에 문외한인 촬영감독이 듣기에는 꽤나 경쾌하고 활기찬 선율이었다.
하물며 화려하게 움직이는 활의 움직임과 현란하게 현과 현 사이를 넘나드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저 어린 여학생이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확연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강현이 갑작스레 손을 들어 올렸다.
“좋아요, 거기까지.”
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학생에게로 다가갔다. 여학생의 손가락과 바이올린 활을 유심히 살펴보던 강현이 다시 도로 자리에 앉고는 말했다.
“안 좋은 버릇이 있어요.”
무슨 버릇을 말하는 것일까.
“악보를 너무 정직하게 믿고 있습니다.”
* * *
김다현 피디는 촬영 영상을 확인하면 할수록 비앙카 교수의 말이 머릿속에 절로 떠올랐다.
강현은 자신보다 어린 학생들을 분명 편하게 대해주며 긴장을 풀어주었지만 음악을 할 때만큼은 아니었다.
꿀꺽.
영상을 확인하고 있는 김다현 피디의 손에 진땀이 맺힐 정도로 강현의 눈매가 날카롭지 않은가.
첼로를 맡았던 토미라는 학생의 지도법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강현은 마치 이러한 레슨을 수없이 했던 사람처럼 학생들의 문제를 곧바로 지적해 나갔다.
-다시.
여학생의 얼굴이 순식간에 울상이 되었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연주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강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수차례나 거듭되는 지적 속에서 여학생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어떠한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설명조차 해주지 않고 가타부타 연주를 다시 시키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묵묵히 설움을 참아낸 채 다시 바이올린을 켰다.
-잠시 내게 바이올린을 줘보겠어요?
결국 강현이 바이올린을 건네받았다. 여학생의 얼굴에는 설움과 흥분이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이런 생각이리라.
강현은 종전 여학생이 연주했던 모차르트 4번을 그대로 똑같이 따라 연주했다.
활의 보잉과 현을 누르는 손가락의 세밀한 이완까지도 마치 여학생을 본뜬 것처럼 똑같이.
-이게 방금 전 네 연주.
그리고,
-이게 지금 내 연주.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현과 활이 전혀 다른 선율을 내었다. 흡사 전혀 다른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선율의 색깔이 달라졌다.
손가락의 이완은 물론이고 마치 현과 현사이에 공간이 없는 것처럼 자유로이 춤추고 있지 않은가.
-아직 활의 보잉이 익숙지 않고 손가락의 길이가 짧은 게 흠이야. 덕분에 현을 짚는 것은 물론이고 정밀한 화음까지도 부족하니까. 하지만 가장 원초적인 문제는 네가 곡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거야. 곡의 지시 부분을 맹목적으로 따라 연주하다 보면 너는 열심히 연주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청중들은 지겹다고 생각할걸? 가장 중요한 건 곡의 표현력이야.
곡의 분위기가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었다. 방금 전 여학생이 연주했던 모차르트의 곡과 동일한 곡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만큼.
그 뒤로도 강현은 계속해서 여학생을 세밀하게 지도해 주었다.
본래 세 시간으로 예정된 간략한 지도 시간이었지만 강현은 하루 온종일을 투자하며 어린 학생 다섯 명을 한 명도 빠짐없이 지도해 주었다.
촬영감독은 쉬는 시간도 없이 이어진 기나긴 지도가 끝난 뒤 강현을 향해 나직이 물었다.
어째서 어린 학생들에게 이토록 열심히 지도를 해줬던 것이죠? 아무렴, 옆 연습실에서 지도학습을 했던 첼로 파트는 이미 몇 시간 전에 끝났으니.
그 물음에 강현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가능성.
강현은 촬영 카메라를 바라보며 부연했다.
-저들 중 몇 명이나 앞으로 음악을 계속할지는 모릅니다. 분명 중도에 포기를 하는 이가 생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오늘 저로 인해서 단 한 명이라도 그 가능성에 불을 지필 수 있다면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오히려 영광이었습니다. 미래의 거장이 될지도 모르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만나게 되어서.
* * *
“토미, 머리에 뭐 바른 거야?”
토미의 머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정갈하게 빗어져있었다. 아마 포마드라도 바른 모양.
토미는 사브리나의 물음에 쑥스러운 듯 콧잔등을 매만지며 ‘방송 촬영 중이잖아’라고 대답했다.
이윽고 양반은 못되는지 촬영팀이 토미와 사브리나에게 다가왔다.
“토미, 혹시 현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요?”
“기숙사에 없던가요?”
“예, 오늘 아침 일찍 찾아갔는데 기숙사에 없더라고요.”
그때 사브리나가 토미의 옆구리를 찔렀다.
“토미, 아마 현이라면 거기에 있겠지.”
“아, 맞아! 어제도 바이올린 연습을 한창 했었으니 말이야. 저희를 따라오세요. 현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토미와 사브리나를 앞장세운 채 촬영팀이 뒤따랐다.
김다현 피디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왕립음악학교 내에서 강현과 가장 친한 토미와 사브리나에게 질문을 해왔다.
“토미, 사브리나. 두 사람이 보기에 현은 매사에 그렇게 진지한 편인가요?”
“진지하기보다는 그냥 생각의 깊이가 다른 것 같아요. 어떨 때는 할아버지랑 대화하는 느낌도 들어요. 그런데 매번 그렇게 진지한 것도 아니에요.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니까요.”
“다른 사람이라고요?”
사브리나의 은빛 머리카락이 출렁였다. 그녀는 청록색 눈동자로 김다현 피디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마치 바이올린과 사랑에 빠진 남자 같다 해야 할까. 특히 바이올린 연주를 끝마치고 악보를 써 내려갈 때면 옆에서 천둥이 내리쳐도 모를걸요? 아마 지금도 연습실에서 연주를 하고 있을 거예요.”
“밤새도록 말이에요?”
“종종 그랬어요. 뭔가 악상이 떠오르거나 연주를 하고 싶을 때면 연습실에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던걸요. 처음에는 토미와 저도 걱정했지만 그게 현의 습관인 걸 알고 나서부터는 이해했어요.”
이윽고 토미와 사브리나가 연습실이 위치한 건물에 다다랐다.
두 사람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강현이 연주하고 있을 연습실로 걸음을 옮겼다. 헌데 연습실의 문을 열어젖히자 강현이 보이지 않는다.
“저기서 연주하고 있네요.”
그때 사브리나의 목소리에 김다현 피디의 시선이 돌아갔다.
강현은 마치 바이올린을 인형처럼 껴안고 악보를 이불 삼아 연습실 한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새근새근 콧바람 소리까지 들리는 것이 아무래도 깊은 잠에 빠진 모양. 김다현 피디는 바닥에 널브러진 악보들의 숫자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악보들이 설마……?”
“아마 어제 밤새도록 악상을 떠올린 결과물일 거예요. 저희도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고요. 현이 하루아침 만에 이렇게 많은 악보를 그려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요. 아마 세상에 이렇게 악상이 많이 떠오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거예요.”
김다현 피디가 놀라움을 진정시키고는 곧장 촬영감독에게 눈짓했다. 촬영감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촬영카메라로 잠자고 있는 강현을 줌인 했다.
바이올린을 껴안은 채 악보를 이불 삼아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화보같이 신비롭게 아름답지 않은가.
김다현 피디는 분명 이 장면이 K 방송국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것이라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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