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50)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50화 >
“쯧.”
스펜서가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찼다. 하필이면 강현의 뉴욕 공연과 런던 심포니의 공연 일정이 겹칠 게 뭐란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뉴욕으로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강현의 뉴욕 공연이 얼마나 인기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영국의 신문사인 데일리텔레그래프와 인디펜던트, 가디언을 비롯해 다수의 언론에서 그의 뉴욕 공연을 기대한다는 칼럼이 기고되었을 정도였기에.
“마에스트로, 많이 아쉬우신가 봅니다.”
그때 악장 드미트리가 드문 미소를 지으며 지휘실로 들어섰다.
“고얀 놈이 티켓 한 장을 보내주지 않는군.”
“현이라면 아마 런던 심포니의 공연 일정 또한 꿰고 있을 겁니다. 괜스레 두 분의 마에스트로께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기 위함일 겁니다.”
“티켓값이 너무 비싼 거일 수도 있잖은가?”
스펜서가 우스갯소리를 해보이며 신문을 펼쳤다. 칼럼의 한편에는 강현의 뉴욕 공연이 암표상에서 슈퍼볼에 버금가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는 글귀까지 실려 있었다.
21세기에 과연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과거처럼 클래식이 대중음악의 중심을 자리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줄 알았기에.
“마에스트로 카라스께서는 언제 오신다고 했지?”
“일주일 후라고 하셨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의 일정이 끝나는 대로 단원들과 합류해서 리허설을 진행하실 겁니다. 지금도 하루에도 몇 번씩 제게 전화를 하셔서 단원들의 연습 상태를 파악하고 있으십니다.”
“마에스트로의 연세를 생각해서 넉넉히 시간을 드렸는데 내 잘못이었군.”
스펜서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제 카라스의 영입 이후로 런던 심포니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카라스는 나이와 체력 문제로 인해 무대 위에 자주 오르지는 못했지만 마치 무대 밖의 지휘자처럼 스펜서를 도와주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실력과 경험을 지닌 지휘자 두 명이 동시에 단원들을 코칭해 주고 있는 것이다. 런던 심포니의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에스트로께서도 현의 공연에 관심이 많은 모습이셨습니다.”
“고얀 놈, 그러니까 뉴욕 필하모닉 대신 런던으로 와서 공연을 하면 얼마나 좋겠나. 이렇게 가다가는 여제와 내가 계속해서 지휘봉을 잡게 생겼으니 말이야. 어깨가 빠지고 나서야 올는지.”
“마에스트로, 농담하지 마십시오. 제가 보기엔 두 분 다 정정하십니다.”
드미트리는 차가운 눈빛과 상반되는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카라스와 스펜서의 호흡은 그야말로 천상의 호흡이 따로 없었다. 하물며 런던 심포니를 사랑하는 마음 또한 대단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또한 여제에게 연락을 취했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여제는 결국 런던 심포니를 선택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강현이 지대한 역할을 했으리라.
“항간에는 현이 다시 클래식의 영광을 되찾을 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미 미국 십 대들 사이에서는 클래식 붐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클래식 붐은 상류층에서 때때로 일어나지 않나.”
“사교 열풍과는 다릅니다. 미국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 중인 친구들에게 전해 들으니 실제로도 사회적 계층을 따지지 않고 요즘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면에는 현의 빌보드 진입이라는 성공적인 신화가 있겠지만요.”
암, 항상 상업성에서 마이너를 차지하고 있던 클래식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노리게 될 줄이야.
벌써 7위를 돌파하고 3위권에 안착했다는 소식이 영국에도 들려올 정도였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역주행이었다.
“이미 그라모폰과 도이치같은 음반지에서는 현의 빌보드 진입을 두고 클래식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역사에 한 획이라…….”
틀린 말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다들 신동이 나타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시아의 소년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최연소로 우승한 것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치 신화를 써 내려가듯 계속해서 믿기지 않는 기적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하물며 전설의 마에스트로 여제 카라스를 다시 무대 위로 부른 것 또한 강현의 덕분이었다.
단언컨대 강현은 이미 이름만으로도 클래식 업계를 뒤흔들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 * *
사아아아.
무대 위로 드라이아이스가 내리깔렸다. 뜻밖의 무대 장치였다.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세르게이는 숨을 가다듬었다. 본래는 예정에 없던 공연이 아니었던가. 짐 필머 감독의 야심작 ‘호러’의 전체를 관통하는 OST였다.
-현, 자네의 뉴욕 공연에서 호러의 OST를 연주해 준다면 정말 큰 영광이겠네.
짐 필머 감독이 직접 뉴욕 필하모닉을 찾아와 단원들 앞에서 했던 말이었다.
할리우드의 명장으로 알려진 짐 필머 감독은 강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 방증이 바로 오늘 공연이었다. 아직 영화가 개봉하지도 않았건만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OST를 무대에 올렸으니.
강현이 무대 위로 올라서자 웅성거리던 청중들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단정한 머리카락, 쌍꺼풀은 없지만 큰 눈동자는 마치 태양의 흑점을 빼다 넣은 것처럼 깊게 빛났다.
지휘자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세르게이는 왜 미국의 십대들이 강현에게 열광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음악적인 실력은 당연한 것이었고 외모에서 주는 신비감이 이루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
특히 무대 위에서의 강현은 그 어떤 남배우보다도 카리스마가 넘쳤고 여배우보다도 아름답고 고귀했다. 마치, 이 무대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것처럼.
그 순간,
두두두둥―!
지휘자의 손이 재빠르게 허공을 가로 질렀다. 흡사 천둥이 내려치는 것처럼 큰북의 울림이 콘서트홀의 천장에 닿았다.
지휘봉을 쥔 지휘자의 손이 마치 아기를 감싸 안는 것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천둥처럼 내리쳤던 북소리가 메아리쳐 옅어지려고 할 즈음.
지휘자의 시선과 악장의 호흡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바이올린 파트를 시작으로 현악기군의 선율이 잔잔하게 차오르고 있었다.
세르게이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차오르던 선율이 해일처럼 콘서트홀을 뒤덮었을 때 건반 위의 기다란 손가락이 춤추기 시작했다.
세르게이의 어깨가 마치 출렁이는 바닷물처럼 거칠게 위아래로 요동쳤다. 건반 위를 춤추는 손가락 또한 그에 뒤지지 않게 흐느끼고 있었다.
세르게이는 뉴욕에 온 것을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라고 여기고 있었다. 정확히는 뉴욕 필하모닉에서 강현이라는 신세계의 지휘자를 만난 것에 대한 찬사였다.
두두두둥―!
그때 또 한 번 지휘자의 손짓과 함께 큰북의 울림이 울려 퍼졌다.
콘서트의 백미는 지금부터였다. 단원들이 긴장한 기색으로 악기를 잡음과 동시에 지휘봉이 크게 내려쳐졌다. 완벽한 메트로놈이었다.
세르게이의 피아노와 단원들의 수많은 선율이 서로를 경쟁하듯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를 종횡무진 지휘하는 것이 바로 강현의 몫이었다.
세르게이는 낭만시대의 정점이라 불리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할 때나 느껴보았던 황홀감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의 경쟁과 애절함을 악보는 조화롭게 표현해 내고 있었다. 연주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다시 한번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로 완벽한 악보였다.
만약 라흐마니노프가 살아 있었다면 강현의 악보를 보고 제법이라고 박수를 쳤을 것이 분명했다.
* * *
짐 필머 감독은 ‘호러’의 OST를 들으며 영화의 모든 줄거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감독으로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삽입곡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강현은 또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 분명했다.
‘대단해.’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뉴욕 공연의 서두를 설마하니 호러의 OST를 시작할 줄이야.
이미 강현이 음악감독을 맡았을 때부터 소문이 무성했던 교향곡이었던지라 청중들의 관심도 지대했다.
도대체 얼마나 명곡을 만들었기에 할리우드가 그렇게 들끓었던 것일까. 청중들의 생각에 못 미칠 수도 있을 만큼 과한 기대가 집대성되었다.
하지만 강현은 보기 좋게 청중들에게 전율을 일으켰다.
첫 무대가 끝났지만 청중들의 여운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하물며 예정된 레퍼토리라면 다음 곡은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있는 ‘Gang hyun symphoy no.1’였다.
상업 음악에 비하면 대서사시라고 봐도 될 정도로 장시간의 곡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당당히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암표를 사고서라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게 정말 행운 같군.”
“나도 동감이야, 만약 오늘 현의 공연에 참석하지 못했다면 기자로서 평생을 두고두고 후회했을 거야.”
기자들 또한 쉽사리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대중음악 비평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따금 강현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던 비평가들 또한 첫 무대부터 압도된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아무렴, 기라성 같은 클래식의 거장들조차도 강현의 악보에는 극찬을 보냈으니.
“그런데 정말 사실일까?”
“Gang hyun symphoy no.3가 레퍼토리에 포함된 거 말하는 거지?”
“그래, 2번째 교향곡이 아니라 3번째 교향곡이 편성되었다니.”
레퍼토리 중에는 의외인 부분도 분명 있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하이든, 라흐마니노프과와 같은 걸출한 고전시대와 낭만시대의 작곡가들의 리사이클이 아닌 오로지 강현이 작곡한 교향곡만 편성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Gang hyun symphoy no.3’였다.
-2번째 교향곡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3개의 교향곡 중, 미완성인 no.2를 제외하고 no.1과 no.3를 선보인다는데 전문가들은 강현이 새롭게 발표하는 교향곡 또한 빌보드 차트에 오를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들 점쳤다.
그때 첫 번째 무대를 끝낸 강현이 무대에서 짤막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뉴욕 필하모닉의 공연에 참석해 주신 청중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다음 무대를 시작하지 않고 지휘자인 제가 잠시 인사를 드리는 이유는 레퍼토리가 변경되었기 때문입니다.”
레퍼토리의 변경이라니, 하지만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단원들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본래 미완성이었던 Gang hyun symphoy no.2를 레퍼토리에 추가하겠습니다. 물론 기존에 예정되었던 레퍼토리들은 변경 없이 소화할 예정입니다. 본의 아니게 공연 시간이 길어진 점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뉴욕 필하모닉의 장대한 선율의 즐겨주시면 되겠습니다.”
그제야 짐 필머 감독은 깨달았다. 강현은 무뚝뚝해 보이고 시니컬해 보이지만 실상은 머리가 비상한 지휘자였다.
분명 갑작스러운 레퍼토리의 추가 또한 예정된 수순이었다. 악장의 엷은 미소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공연 시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불평을 토로하는 청중은 없었다. 오히려 진한 흥분과 설렘이 콘서트홀을 넘실거리듯 차올랐다.
그 순간 마에스트로 현이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청중들의 흥분에 찬 숨소리와 함께 현의 시간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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