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the Mu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52)
> 음악천재를 위하여 – 252화 >
“샤펠의 바람은 언제나 산뜻하군요.”
브뤼셀의 외곽에 위치한 샤펠이었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엄선된 열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장장 8일 동안 합숙을 하는 장소.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는 성역이라고 까지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에 백발의 바이올리니스트, 히로세가 있었다.
“현을 추천한 것 때문에 지금 말이 많습니다.”
중국의 거장 등륜이 조심스럽게 히로세에게 다가왔다. 지금 퀸엘리자베스 주최 측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의 거장 히로세가 마지막 심사위원으로 강현을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예상했던 결과입니다. 현은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요. 그들의 반발이 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을 만나보게 된다면 결과는 다르겠지요.”
히로세의 말에 등륜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강현의 커리어는 훌륭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비해 훌륭할 뿐이지 다른 거장들과 비교했을 때 동등하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등륜은 ‘현을 만나보게 된다면 결과는 다르다’는 말에 동의를 표했다.
“맞습니다. 히로세. 그 아이는 정말 신비하니까요. 칠 년 전 그 아이를 처음 브뤼셀에서 마주했을 때 저는 브뤼셀에 존재한다는 음악의 신이 사람으로 화신한 게 아닌가 착각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늙은이의 주책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당시 그 아이가 보여주었던 재능이 정말 믿기지 않았으니까요. 오죽하면 고집이 세기로 유명한 알렉세이마저 한 수 꺾었겠습니까?”
“빅토르 또한 알렉세이와 같을 겁니다.”
심사위원으로 강현을 앉히는 것을 극구 반대하는 빅토르였다. 하지만 그 또한 강현을 만나보게 된다면 달라지리라.
“히로세, 왜 그 아이를 심사위원석에 앉히려는지 이유를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현은 우리의 잣대로는 평가하기 힘든 존재입니다. 마냥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이토록 좋은 경험을 미뤄두게 할 수 없지요. 저는 어떻게 보면 이번 퀸엘리자베스 콩쿠르가 현에게 큰 경험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아이를 부른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처음에는 현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샤펠에서 지내는 동안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장차 클래식 역사를 빛낼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만나는 일에는 꼭 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현을 부른 것은 제가 아닙니다.”
그 순간 히로세의 백발이 바람에 출렁였다.
“샤펠에 존재하는 음악의 신이 부른 것이지요.”
* * *
지글지글―!
이촌동 저택에 고소한 냄새가 가득하다. 어머니의 손맛이 가득한 잡채는 물론이거니와 갈비찜, 아들이 좋아하는 연근 조림과 멸치볶음까지. 누가 보면 잔칫상이라고 오해할 만큼 식탁 위로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바이올리니스트 강현 씨가 2001년 대중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강현 씨는 만 13살의 나이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며 음악계에서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아시아 음악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영국 왕실공연에서 지휘를 맡았으며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에서 수차례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더불어 난공불락이라 불렸던 빌보드 차트에서 순위권을 기록하는 등 클래식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뉴스에서는 연일 강현에 대한 이야기로 한창이었다. 뉴욕 공연이 끝난 직후부터 매스컴에서는 강현을 흡사 ‘모차르트’에 비유하며 아시아의 음악천재라고 치켜세웠다.
국위선양을 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공로를 군대 면제를 비롯한 각종 혜택을 수여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실상은 이미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으로 얻은 군대 면제 혜택을 제외한 각종 표창장들이 빗발치듯 쏟아졌다.
“아버지, 저 왔어요.”
때마침 강현의 이모 내외가 이촌동으로 들어섰다. 아직까지도 좌천당해 용서받지 못한 삼촌들과는 다르게 그나마 할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혈육이었다.
할아버지는 이모 내외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탁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자야, 현이는 언제 온다더냐?”
“이제 막 올 거예요. 오늘도 기자들이 워낙 연락을 해오는 통에 인터뷰를 끝내고 바로 이촌동으로 온다고 했거든요. 언니랑 형부도 얼른 와서 앉아요. 진석이 너도 손 씻고 와서 앉아.”
“강 서방도 빨리 오면 좋을 텐데 말이다. 회사 업무가 밀려서 이거야 원.”
동주는 이미 중국으로의 진출을 확보한 상태였다.
금왕그룹과 등정의 도움이 컸다고 말할 수 있었다. 캐시카우가 되는 기존의 화학소재뿐만 아니라 그라이핀으로 인해 날개를 달지 않았던가.
하물며 중국으로의 진출이라니. 덕분에 화학업계에서는 동주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때였다.
“다녀왔습니다.”
강현의 목소리가 들리자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피어올랐다. 영국에서의 생활을 잠시 미뤄두고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현이었다.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낼 생각이었건만 어찌 된 것이 해외에 있을 때만큼이나 얼굴을 보기 힘든 아들이었다.
“이모랑 이모부도 오셨네요. 진석이 형도 있고 오늘 무슨 잔칫날이에요?”
“욘석아, 전부 네가 표창장 수여받은 걸 축하해 주려고 모이지 않았더냐.”
할아버지는 강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함께 식탁 앞에 앉았다. 식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물론 이모 내외는 이전과 다르게 쥐죽은 듯 밥을 먹고 있었다.
예전처럼 자신들이 나서서 한마디를 덧붙이기에는 이미 저지른 과오가 많았기에. 그때였다.
“진석이 형, 이제 군대 가야 하지 않아?”
“어?”
강현의 말에 유진석이 급체라도 한 것처럼 굳었다.
해외로 대학을 진학했던 유진석이었다. 말이 좋아 유학이지 실상은 도피였다. 결국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휴학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현아, 우리 진석이는 해외에서 의사 시험 치고 나서 한국에서 의사면허 따고 군의관으로 갈 생각이야.”
“군의관이요?”
강현은 쓴웃음을 속으로 삼켜냈다. 것도 그럴 것이 지난 삶 유진석은 기부금으로 입학한 이름 없는 해외의 의대에서 중퇴를 했더랬다. 군의관은커녕 군대 또한 브로커를 통해 공익으로 갔던 것으로 기억났다.
그 이후에는 사기 혐의로 피소되어 서부지검에서 검사와 피의자 신분으로 만났더랬다. 그때였다.
“그러지 말고 어차피 학교를 쉬고 있으면 이참에 군대를 다녀오거라.”
“아버지?”
“진석이 너도 더 이상 도피하지 말고 남자답게 다녀오거라.”
유진석이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켰다. 설마하니 오늘 이 자리에서 군대 이야기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강현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유진석을 군대라도 보내야 훗날 정신을 차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늘어나지 않겠는가. 이 집안의 골칫거리로는 삼촌들과 이모로 족했다.
“아버지, 우리 진석이 군의관으로 갈 거라니까요? 어떻게 다른 사람들처럼 군인 신분으로 가겠어요. 우리 애 그렇게 험한 데서 못 지내요.”
“복자야, 언제까지 그렇게 애를 치마폭에 감싸고 돌 게냐?”
할아버지의 진중한 목소리에 이모가 말문을 닫았다.
유진석은 이러한 상황을 만든 강현에게 욕지거리라도 내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강현의 눈빛만 마주하고 있으면 유진석은 육식동물 앞에 선 초식동물처럼 한없이 기가 죽었기에.
그때였다.
“진석이 형, 해병대는 관심 없어?”
유진석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들어갔다.
* * *
‘과연 사람이 되려나…….’
강현이 유진석에게 ‘해병대’라고 운을 띄운 지 일주일이 흐른 뒤였다. 할아버지가 어찌나 강경하게 유진석의 군대를 추진했던지 벌써 해병대에 지원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유진석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 보면 지난 삶과 마찬가지로 사기 혐의로 피소되는 유진석을 볼 것 같았기에.
‘해병대에서 구르다 보면 사람이 되겠지 뭐.’
일단 샛노란 머리카락부터 안 본다는 것이 좋았다. 어찌 된 게 뉴욕에서 봤던 금발보다 샛노랗게 탈색하지 않았던가. 명품까지 걸치면 딱 오렌지족의 표본이었다.
“현아.”
“대표님?”
그때 작업실로 임혜라 대표가 강현을 찾아왔다. 얼굴은 뜻밖에도 상기된 모습이었다. 설마 또 어디서 표창장이라도 하나 준다는 것일까. 아니면 해외 유수의 대기업에서 CF 제의가 들어온 것일까.
“놀라지 말고 들어.”
“무슨 일인데 그렇게 뜸을 들이세요?”
평소 임혜라 대표의 성격을 알고 있는 강현이었다. 웬만한 일이라면 그녀가 이토록 뜸을 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연했다. 제일그룹의 마나님이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었으니.
“현이 네가 심사위원으로 초청을 받았어.”
“심사위원이요?”
뜻밖의 말이었다. 심사위원이라고 한다면 여태껏 뉴욕 필하모닉의 바이올린 파트 오디션밖에 없었다. 그것 또한 악장 안토니오가 워낙 부탁을 하는지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렴, 강현이 심사위원이라는 명함을 달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퀸엘리자베스 주최 측에서 연락이 왔어. 현이 너를 심사위원석에 초청하고 싶다고 말이야.”
“네?”
“퀸엘리자베스, 현이 네가 칠 년 전에 우승했던 콩쿠르 말이야.”
“잠시만요. 대표님 제가 들은 게 퀸엘리자베스 맞죠? 어디 지방에서 여는 대회가 아니라 브뤼셀에서 여는 콩쿠르 말이에요.”
강현은 믿기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퀸엘리자베스 콩쿠르가 무엇인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음악 신동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대회였다.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는 꿈의 무대라고까지 불리는 곳이다. 자신 또한 칠 년 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나가지 않았던가. 당시에는 다른 참가자들과는 다르게 ‘군대 면제’라는 혜택 때문에 나간 것이지만.
“대표님 잘못 들으신 게 아니실까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연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심사위원이라니요. 거기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으신 분들은 하나같이 이름만 대도 알 법한 거장들이에요.”
과거를 떠올려보자. 러시아의 거장 알렉세이, 중국의 거장 등륜, 프랑스의 거장 피에르 가넬에 이르기까지 바이올리니스트들 중에서도 이름난 거장들만이 심사위원으로 앉아 있던 콩쿠르였다.
하물며 심사위원 후보 명단에 올랐던 이들 또한 이름만 대도 알 법한 거장들이 즐비하지 않았던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강현이 심사위원으로 초청을 받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아줌마도 이해가 안 돼서 몇 번이나 되물어봤다니까?”
“아마 잘못 들으신 걸 거예요. 만약 제가 심사위원 후보 명단에 올랐다고 해도 반발이 심했을 텐데요. 일단 경력은 둘째치고 나이가 너무 어리잖아요. 칠 년 전 심사위원으로 앉아계셨던 알렉세이 선생님은 지금 모스크바 음악원장님이라고요.”
“현이 너를 강력 추천하신 분이 있어. 그분이 다른 심사위원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고 하던데?”
도대체 누구기에 콧대가 높은 거장들의 마음을 움직였단 말인가.
심사위원석에 앉게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거장들과 동격의 지위를 같게 되는 것과 같았다.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케스트라에서 최연소로 지휘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그때 임혜라 대표가 거장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를 소개했다.
“히로세 선생님이 현이 너를 강력 추천했어.”
현의 여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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