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433
432 제물(2)
꽈아아아앙!
화르르르르!
무진은 지척에서 터지는 천뢰구의 방향을 조절한 상태였다. 보갑으로 막은 것도 있겠지만, 개량한 천뢰구는 돌기를 돌리는 방향으로 터지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지척에서 터지더라도 피해는 크지 않은 편이었다.
슈슈슈슉, 꽈아아앙!
철마장이 공수를 전환하여 흑철마벽을 방어로 돌리자, 무진은 기다렸다는 듯 이화폭우정까지 발출했었다. 연이은 폭발과 독침이 강기에 녹아내리며 코를 찌르는 독향이 번졌다. 한 호흡만 잘못 마셔도 몸이 골수까지 녹아내리는 지독한 독이었다.
“어떠냐, 이놈! 잘난 체하더니 꼴좋다!”
검은 독기는 흑마룡의 사체에서 추출하여 배합한 참룡독이었다. 위력은 보다시피 무형지독에 버금갔다. 독에 색깔이 있어 은밀하게 쓰기에는 무리나, 상대를 반드시 죽이고자 할 때는 적격이었다.
화르르르르!
일순 사방으로 검은 화기가 번져 오르며 용권풍이 되었다. 독향이 흑철화기(黑鐵火氣)에 휩쓸리며 터져 나갔다. 마치 쇳가루를 밀폐된 공간에 놓고 마찰을 일으킬 때처럼 엄청난 분진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사방의 독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쩝!
의기양양해서 소리쳤던 무진의 입이 닫혔다. 천뢰구 다섯 발, 이화폭우정 다섯 발, 참룡독 다섯 방울을 살포했다.
죽어도 골백번은 죽었어야 마땅하거늘, 쇠로 조각된 사람처럼 무심하다. 하나, 솟구쳐 오르는 열기처럼 가공할 살의가 발산되었다.
“너는 역시 죽어야 할 놈이다.”
“돌겠네.”
대치하던 무진은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나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도망치긴 누가 도망친다고 그래. 잠깐, 아궁이에 지핀 불을 껐나 안 껐나 되돌아봤거든.”
집을 나올 때는 항상 아궁이를 살펴야 했다. 불쏘시개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집이 불에 홀라당 탈 수도 있으니.
에잇!
무진은 가지고 있던 천뢰구를 재차 던졌다.
꽈아아앙!
당연하게도 통하지 않았다. 한 번 쓴 수법에 두 번 당하지 않는 철마장이었다. 흑철마벽과 흑철화기가 결합하여 천뢰구를 단숨에 집어삼켰었다.
오오오!
그 압도적인 광경에 상인들은 얼어붙었다.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 속에 천운권만이 한 줄기 희망이었다.
‘우리가 그간 잘못 알고 있었구나.’
허장관은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반성했다. 천운권은 불리한 여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상행을 하는 동안 벌였던 모든 만행이 상쇄되고도 남았다. 어쩌면 협행을 숨기려고 일부러 자신을 망가뜨렸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대협을 그동안 몰라봤었어!’
무인은 명성과 명예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었다. 스스로 악명을 뒤집어쓰고 아무도 모르게 선행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천운권이야말로 이 시대를 비추는 등불일 수도 있었다.
‘설령 오늘이 나의 마지막일지라도, 대협을 기억하겠습니다!’
총표두가 되었다고 해도, 임시에 불과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며 자신들을 구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신뢰를 위해 목숨을 거는 천운권은 대협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듣지 말아야 할 내용이 들렸다.
-후퇴!
-애들아, 물러서!
-작전상 후퇴다!
-따라오지 마!
천운권에게서 후광을 봤던 허장관의 동공이 흔들렸다. 진정한 대협으로 존경을 표하려고 했기에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뭔가 뒤로 빠지는 모양새가 비치자 천운권의 악명이 재차 상기되었다.
‘설마?’
진짜로 빠지려고?
사람이라면 그래선 안 되었다. 잠깐, 천운권이 사람인가? 허장관은 그동안 천운권이 행한 악행이 더욱 세세하게 떠올랐다. 어처구니없게도 천운권의 행적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불신을 키웠다.
‘아닐 거야?’
한 줌의 믿음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허장관은 수명이 이미 반으로 줄어들었다. 평생의 운을 오늘 다 써도 벗어날 수 있을지, 점점 가망이 없어지고 있었다.
‘제발, 천운권이시여!’
우릴 버리지 말라고, 씨발 놈아!
차라리 위선자라면 욕이라도 하지, 언행일치라서 허장관의 속을 시커멓게 태웠다.
꽈아아앙!
경천동지할 파괴력이 천지를 울렸다. 땅거죽이 뒤집히며 하늘을 뒤덮었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흙더미 속에서 그림자가 떨어져 나가며 바닥을 구른다.
쿠다다당!
보신을 제대로 펼치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삶의 구질구질한 의지가 압권이었다. 바닥을 연거푸 구르며 멀찍이 벗어난 무진이 철마장과 허장관을 돌아보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내 맘 알지?’라고 말하는 것 같아 허장관의 속을 답답하게 했다. 저 인간이 어떤 짓을 할지 이제는 뻔히 예상되어서 억장이 무너졌다.
“우리 친구 하는 게…….”
채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이 일대로 접근하는 무리가 느껴졌다. 이를 먼저 눈치를 챘기에 철마장도 천운권을 노리기보다는 배후를 신경 써야 했다.
‘뭐지?’
긴장을 늦추지 않은 그때, 적지 않은 무리가 일대를 포위하며 접근했다.
두둥!
철마장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이만한 존재감을 지닌 자는 흔치 않았다. 어느새 공간을 장악하며 등장한 거구의 사내였다.
“본 왕은 형제의 빚을 잊지 않는다.”
“녹림왕!”
철마장은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자 무심이 깨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예기치 않은 존재의 등장이었다. 하나, 그가 등장한 연유를 모르지 않기에 천운권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천운권이 녹수연맹에 한 짓이 있었다.
다만, 녹수연맹의 체제 구축에 한창이던 녹림왕이 직접 찾아올 줄은 미처 몰랐다.
“천운권, 네놈을 녹수연맹의 탄생을 알리는 제물로 쓰겠다.”
“하하, 미안하지만 내 친구가 그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무진은 한창 대치했던 철마장과 흑철병단을 가리키며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지만, 오늘 녹림왕은 눈치가 없기로 했다.
“본 왕의 행사를 방해하겠다면 살려 둘 수 없지.”
“……잠깐!”
그걸 믿는다고!
왜?
철마장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어떻게 저런 가당치도 않은 소리에 속는단 말인가. 그것도 녹수연맹의 맹주라는 작자가! 앞뒤를 가리지 않고 돌진해 왔기에 치를 떨어야 했다.
크크크!
뒤로 물러서며 웃는 천운권의 목소리에 철마장은 머리 뚜껑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사태가 불리해지자 도망치려고 했기에 더더욱 살려 두고 싶지 않았다.
하나, 철마장도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천운권과의 싸움은 녹록지 않았다. 상당한 전력을 쏟아 내야 했다. 흑철마벽과 흑철화기를 동시에 다루었기에 내력의 소모가 컸다.
“그건 천운권의 궤변…… 이런!”
“문답무용!”
광룡공을 극한으로 끄집어낸 장필도의 신형이 어느새 철마장의 눈앞까지 당도했다. 천운권과는 감히 비교도 안 되는 속도였다. 녹림왕이 어째서 신주이십일강의 일인이며, 녹수연맹의 맹주가 되었는지를 보여 주었다.
꽈아아아앙!
쩌저적!
하늘이 울리고, 대지가 찢어진다. 사람이 내지른 주먹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천하무쌍의 파괴력이었다.
주르르르!
속절없이 밀려 버린 철마장의 철면이 무참하게 박살 나며 일그러졌다. 흑철마벽이 버티지 못하고 붕괴한다. 내력 역류를 방지하기 위해서 풀어야 했다. 반진력을 고스란히 받아 내야 했기에 냉철함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녹림은 우리의 다정한 동료에게 맡기고 상인들을 보호해.”
“예, 사부!”
철호와 서문호도 기회를 엿보다 강력한 한 방을 내질러 간격을 벌려 놓았었다. 녹림구걸과 녹림왕 직속의 무력단인 광룡단이 흑철병단을 노리자 신속하게 뒤로 빠지며 상단에 합류했다.
빠직!
흑철병단주 진고월의 안면도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녹수연맹이 전후를 파악하지도 않고 자신들을 노렸기 때문이다.
“우린 놈과 한패가 아니다!”
“구질구질하게 변명할 필요 없다.”
녹림구걸과 광룡단은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마치 너희들이 뭔 말을 해도 우린 상관하지 않겠다는 마이동풍이었다.
이는 녹림왕과 합의가 끝난 사안이다.
채채채챙!
천운권과 한패로 오해를 받은 철마장과 흑철병단은 치가 떨렸다. 차라리 그냥 싸웠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천운권의 어쭙잖은 개수작에 이토록 간단히 넘어가다니, 녹수연맹의 앞날이 어두웠다.
“오오, 잘한다. 너희들도 어서 응원해!”
“잘한다. 우리 편!”
무진과 제자들이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자, 청수검과 표사들도 어이가 없는지 말문이 막혀 왔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무진은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거봐, 날 믿으라고 했잖아.”
“……감읍합니다.”
허장관은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수긍했다. 여기서 도망치려고 했던 정황을 밝힌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입을 닫아야 했다.
‘이독제독이라니!’
사람을 속이기가 쉬울 수도 있으나, 때론 굉장히 어렵기도 했다. 어설픈 농간에 넘어가는 녹수연맹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미 불이 붙은 지 오래였다.
스륵!
그때 누군가 또 나타났다. 누더기를 걸친 꾀죄죄한 노인과 탄탄한 육체를 자랑하는 사내였다.
개방의 취선과 하북팽가의 팽위천이었다. 한창 바쁘다고 했던 두 사람이 이 자리에 나타난 건 의외였다.
무진은 그들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챈 후 철마장을 가리키며 강하게 소리쳤다.
“마신교입니다!”
“소 뒷걸음질에 쥐가 또 잡혔구나.”
취선은 번번이 운이 좋다고 돌려 깠다. 사전에 주고받은 대로, 대화는 빈틈없이 완벽했다.
“거참, 말을 해도. 이 모든 게 다 저의 탁월한 계책입니다.”
“석가장주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어림도 없었어.”
“석가장주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두고 본다고 저의 혁혁한 공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취선과 팽위천은 홀몸으로 오지 않았다. 배후로 혼천단과 섬영대가 뒤를 따랐다.
빠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철마장은 이 사태가 정상이 아님을 깨달았지만,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단 말인가? 새로이 등장한 자들이 배후를 노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어렵다는 걸 느꼈다. 어디를 가도 빠져나가기가 힘들었다.
‘빌어먹을!’
철마장의 철면이 완전히 부서졌다. 냉정을 유지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크크크크!
그 와중에 천운권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리자, 자칫 녹림왕의 일수에 치명타를 입을 뻔했다.
꽈아앙, 쩌저저적!
흑철마벽이 유리잔처럼 부서지며 녹림왕의 권경이 파고들었다. 철마장이 급히 팔을 교차하여 막았지만,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가고 말았다.
‘녹림왕이 이렇게나 강했었나?’
천군이 당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녹림왕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흑철마벽은 종잇장처럼 찢어졌고, 흑철화기는 투기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잔머리를 굴리는군.”
녹림왕의 공세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변했다. 광폭한 살의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격을 한 단계 뛰어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찌릿찌릿!
중천비공을 개방하여 내력을 재차 증폭했음에도 피부를 투영하여 뼈를 울렸다.
철마장은 승산이 없음을 깨달았다.
전력을 개방한들, 녹림왕을 쓰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흑철병단과 진을 구축해도 버티는 것에 불과했다. 하물며 배후에는 무림맹이 자리를 틀고 있었다. 대결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든 결코 살아남기 힘들었다.
‘완벽하게 당했다!’
천운권의 노림수라고 보긴 힘들다. 검제와 취선은 일전의 사건을 의심하여 천운권을 석가장에 보낸 것이 분명했다.
석가장의 반응을 살피며, 배후에 자신들이 있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실로 치졸하고 더러운 수작이나, 이보다 확실한 계책도 없었다.
‘천려일실을 범하고 말았구나!’
굳이 천운권을 죽이기 위해 전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몇 차례 엮이기는 했으나, 모두 검제와 취선의 계략이었다.
천운권은 그저 검제와 취선이 앞에 내놓은 장난감에 불과했다. 어쩌면 천운권의 무력이 갑자기 강해진 것도, 자신들을 꾀어내기 위한 술책일 수도 있었다.
‘괘씸하구나.’
석가장주가 저울질을 했을 수도 있었다. 확실하지 않으나, 이처럼 계책이 맞물리려면 석가장주의 도움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검제와 취선의 이간질이라면, 그런 의심이 들어 판단이 흐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