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516)
515화 Erstellt ein Monster (4)
·전반 03분
올림피아코스 0 : 0 바이에른 뮌헨
펩의 축구는 절대 일반적으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항상 기존에 개념에다, 자신만의 철학을 끼얹으려 한다.
가장 큰 장점임과 동시에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한 이것은, 최소한 내겐 축구를 즐길 가장 큰 이유가 되어 주고 있다. 매번 다른 전술로 경기에 임한다는 건, 몇 안 되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사비! 너무 낮아! 더 위로 올라와.”
“…….”
손을 들어 올리며 포지셔닝 실수를 사과하는 사비.
그는 낯선 역할에 애를 먹고 있다.
‘라인 유지가 가장 중요해.’
오늘 우리가 사용한 플랫(Flat) 형태의 4-3-3은, 현대 축구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전술이다.
그리고 우습게도,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낸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펩이다.
라볼피아나(Lavolpiana)의 개념을 확대시킨 FC 바르셀로나 방식의 4-3-3이 보편화되고, 그것이 4-2-3-1과 4-1-4-1로 확대되면서 플랫 4-3-3의 단점이 더욱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장단점은 늘 함께 붙어 다니는 법이다.
“압박해-!”
“나도 가고 있어!”
왼쪽으로 공격 방향을 택하려던 에스테반 캄비아소(Esteban Cambiasso)가 강한 압박을 벗겨내지 못하고 패스를 도로 뒤로 돌렸다.
그러자 압박했던 우리는 재빨리 본래의 위치로 돌아갔고, 대신 전방에 있는 공격수와 측면 풀백들이 높은 강도의 전방 압박을 곧바로 실시했다.
플랫 4-3-3의 가장 큰 장점.
중앙에 대단히 활동적인 박스-투-박스 미드필드를 셋 놓아둠으로써, 하프라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곳에 숫자를 채워 넣어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리고 중앙의 플랫 3중 좌우의 선수가 언제든지 측면 수비로 백업을 갈 수 있어, 풀백을 공격적으로 활용해 높은 위치에 두는 것 역시 가능했다.
실제로 우린 4-3-3보단 2-5-3에 가까운 포지셔닝을 가져가는 중이었는데, 이는 플랫 4-3-3의 장점을 극대화하려는 펩의 아이디어가 첨가된 것이었다.
결국, 강한 압박을 가한 알라바가 코너킥을 얻어 낸다.
“후우- 재미있어.”
펩이 오늘 나를 측면이 아닌 중앙에다가 배치를 한 이유는, 아무래도 나의 활동량이 람보다는 많아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유가 있다면,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람은 훌륭한 리더이고 누구보다 강한 승부욕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 클럽하우스 안에서 발휘가 된다.
그래서 팀엔 제롬이나 바스티 같은 보컬(Vocal) 리더들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뮌헨이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제롬은 남은 반면 바스티는 맨유로 떠났고, 펩은 오늘 내게 그런 역할을 바라고 있다.
“하비! 볼을 돌리지 말고, 올라와 달라고!”
“하지만 그럼…….”
“내가 있잖아! 네가 올라와 주지 않으니까 자꾸 사비가 내려가는 거야. 풀백의 위치를 봐! 우리가 점유율을 높이게 되면, 네가 걱정하는 이유는 사라져! 알겠어?”
풀백이 항상 높은 위치에 서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면, 이따금 우리는 포백을 유지한 상태에서 빌드업을 시작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젝서(Sechser/DM)가 없는 플랫 4-3-3은 후방 빌드업이 대단히 취약하다. 그래서 펩은 이를 만회코자, 알라바를 왼쪽으로 보내며 하비를 센터백으로 세운 거다.
만약 평범한 4-3-3 혹은 4-1-4-1이나 4-2-3-1을 썼더라면, 알라바를 센터백에 두고 베르나트를 왼쪽 풀백으로 넣었을 거다.
그런데도 이런 라인업을 꺼내 들었다는 건, 하비가 가진 장점으로 후방 빌드업의 부족을 채우려고 했다는 뜻이 된다.
또 하비가 스스로 라볼피아나가 되어 주면, 사비 역시 조금 더 전방의 상황에 집중할 수 있다.
펩이 의외의 전술을 택한다는 건 결코 그 스스로 돋보이고 싶어서가 아닌 우리가 그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제대로 플레이하면 승리에 하염없이 가까워져서다.
그러니 다들 그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봐아-!!”
짧게 이어간 코너킥을 곧바로 크로스로 연결하지 못하고, 알라바가 애매하게 보내 버린 패스가 곧장 에스테반 캄비아소에게로 향했다.
호펜하임 경기 때의 실점 상황도 그렇고, 알라바는 올 시즌 생각 없는 패스로 팀에 위기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에게 소리를 내지르는 건, 일단 지금의 이 위험 상황을 극복한 뒤의 이야기다.
패스가 엉뚱한 곳으로 흐른다 싶었던 순간, 나는 즉시 스프린트를 시작하여 캄비아소의 근처로 향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가 굴러온 축구공을 받으며 몸을 돌렸을 때, 정면에서 가로막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캄비아소는 다소 당황한 듯했고, 어깨를 먼저 밀어 넣으면서 그를 등지게 되자 볼 소유권은 너무나도 쉽게 내게로 넘어왔다.
오늘 나의 임무는 플랫 4-3-3 중앙 미드필드 본연의 임무에 더해, 아우쿠스부르크 경기와 마찬가지로 올림피아코스에서 가장 핵심적인 선수를 밀착 마크하는 일이었다.
캄비아소로부터 시작되는 빌드업이 저지되면, 파흐팀 카사미(Pajtim Kasami)와 레안드루 살리누(Leandro Salino)가 아래로 내려설 수밖에 없다.
공격의 시작 지점이 낮아진다는 뜻이고, 공격수들만으로 뭔가를 하기엔 개개인의 역량이 다소 뒤처진다.
결국 그렇게 되면, 조금씩 볼의 점유율을 높여 가며 우리의 축구를 할 수 있게 된다.
조금 전 패스 미스를 만회하려는 듯, 의욕적인 압박을 시도한 알라바가 오마르 엘랍델라우이(Omar Elabdellaoui)로부터 볼을 강탈해 냈다.
페널티 박스 주변에서 볼을 넘겨주자 올림피아코스의 수비는 크게 동요했고, 박스 바깥 왼쪽 코너 모서리 지점으로 이동한 알라바가 나를 보며 왼발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실수할 수 없다는 듯,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한 모습으로 발 안쪽을 가져다 댄 것이다.
볼을 강탈당해 거의 모두가 페널티 박스 안쪽에 들어간 올림피아코스 선수들의 시선에 내게로 향한다.
그들은 멍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았고, 달려들지 않는 상대를 비웃은 나는 다이렉트로 축구공을 걷어찼다.
발등에 제대로 걸린 축구공은 처음엔 회전 없이 날아가다, 갑자기 시계 방향으로 회전이 걸리면서 오른쪽으로 궤적을 꺾어 골대를 향해 움직였다.
나를 제외한 피치 위의 모두가 두 발을 피치에 붙인 채 그것을 지켜봤고, 이는 올림피아코스의 골키퍼 로베르토(Roberto) 역시 마찬가지다.
골포스트의 안쪽을 강타한 축구공이 그대로 그물에 틀어박히고, 양손을 쭉 뻗으며 돌아선 나는 가까이에서 달려온 비달을 안아 올렸다.
“으아아아아아아-!!!”
“…….”
“봤어?! 봤냐고오-!!”
만약 누가 이 장면부터 보았다면, 지금 골을 넣은 사람이 비달이라고 생각을 할 거다.
그런데 좀 내려와 주지 않겠어?
약간 무겁거든.
“다 덤벼 봐!! 우리가 박살 내 줄 테니까!!”
하지만 한껏 흥분한 비달은 계속해서 내게 안긴 채,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
삑-! 삐?익!!
“…….”
“…….”
여유 있게 코너플랫으로 달려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셀레브레이션을 펼치고, 두 번째 실점을 허용한 올림피아코스의 선수들이 허탈함에 탈력(脫力)을 느꼈다.
오늘의 경기는 무척 일방적이다.
.
.
·전반 40분
올림피아코스 0 : 2바이에른 뮌헨
(마리노스 마브레아스) – Cosmote TV 해설위원
“결과론이지만, 마르쿠스 시우바의 전술은 오늘 실패입니다. 그들은 굳이 변화를 택할 필요가 없었어요. 캄비아소는 뛰어난 미드필드였지만, 그것도 이젠 옛말입니다. 올림피아코스는 좋은 리듬을 바꾸지 말았어야 합니다.”
(세르기오스 가로울리스) – Cosmote TV 코멘테이터
“2:0, 이제 바이에른 뮌헨이 더욱 앞서 나갑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정말 훌륭한 플레이였군요. 올림피아코스의 페널티박스 앞을 마치 자신의 앞마당처럼 이용했습니다.”
(마리노스 마브레아스)
“두 개의 플랫과 그 사이에 한 명의 미드필드를 두는 건, 이제 더는 특별할 것도 없는 전술입니다. 그게 문제죠.”
(세르기오스 가로울리스)
“경기 내내, 바이에른 뮌헨이 중요한 지역에 더 많은 선수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중원의 활약이 눈부시군요. 알론소, 비달, 다온. 이 세 명은 거대한 성벽처럼 느껴집니다.”
.
허리를 굽혀 양손을 무릎 위에 놓아두었던 에스테반 캄비아소가 힘겹게 몸을 편다.
이제 고작 전반 40분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의 몸은 마치 후반전 막바지를 향해 달리는 것처럼 무겁기만 했다.
35살이라는 나이도 나이지만, 뮌헨의 도전적이고 강한 압박에 능한 두 명의 미드필드로부터 경기 내내 시달려 온 것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
‘후우- 빌어먹을. 이젠 예전 같지 않아.’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란 시절, 에스테반 캄비아소는 중원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런 선수였다.
2000년대 후반 유럽의 모든 축구 감독과 선수들이 꼽는 최고의 중앙 미드필드 중에 하나였고, 아리고 사키는 캄비아소의 플레이가 미드필드의 정석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이런 에스테반 캄비아소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은, 2009/10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에서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펼친 플레이였다.
당시 캄비아소는 인테르의 감독이던 주제 무리뉴에게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경기 사흘 전 무리뉴로부터 팀의 모든 전술적인 움직임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 대신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리오넬 메시를 꽁꽁 묶는 것이었다.
같은 해 2월, 알렉스 퍼거슨이 박지성을 활용해 안드레아 피를로를 묵었던 것과 같은 방법이다.
메시를 봉쇄한다는 어려운 부탁이었지만, 캄비아소는 이런 무리뉴의 주문을 100% 이행해 냈다. 그리고 인테르는 그해, 빅이어를 밀란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5년 전의 이야기다.
이제 캄비아소는 전처럼 뛸 수 없다.
‘저 녀석이 이렇게 뛴다는 말은 없었잖아. 안 그래?’
삐?익!
다시 경기가 시작되고, 패스를 넘겨받은 캄비아소가 오른쪽 측면으로 패스를 보내며 김다온과 필리프 람이 있는 지역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알레한드로 도밍게스(Alejandro Dominguez)와 아르투르 마수아쿠(Arthur Masuaku)로는 바이에른 뮌헨의 오른쪽 수비를 뚫어 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오른쪽이 편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험을 지닌 노련한 미드필드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역습이 아닌 지공 상황에서는, 오른쪽이건 왼쪽이건 뮌헨의 수비를 공략해 낼 수 없었다.
다시 볼의 소유권은 상대에게 넘어갔고 후방으로 한 차례 볼이 돌고 난 다음, 에스테반 캄비아소는 분명 시선이 닿는 곳에 있어야 했던 사내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뒤통수 부근이 서늘해졌다.
몸과 함께 고개를 뒤로 돌리는 캄비아소.
‘뭐?’
오른쪽 윙어로 출전한 토마스 뮐러가 박스 안으로 침투해 레반도프스키와 투톱을 형성한 사이, 김다온은 어느새 오른쪽 측면으로 넓게 벌려 사이드라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비가 없어.’
왼쪽 진영을 지켜야 할 마수아쿠는 이미, 토마스 뮐러를 쫓아 안쪽으로 움직였다.
하프 스페이스에서 볼을 잡은 아르투로 비달이 기다란 패스를 보내오고, 홀로 자유로웠던 김다온은 편안하게 축구공을 발 앞에 놓아두었다.
아차 싶었던 마수아쿠가 빠르게 본래의 위치로 복귀하지만, 이미 심리적 우위를 점한 김다온은 손쉽게 수비수를 제압하며 박스 안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황급히 뒤로 후퇴를 하면서도, 캄비아소는 김다온을 향한 감탄을 감추지 못한다.
‘네가 옳았어, 하비에르.’
캄비아소의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한 하비에르 사네티는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풀백 중에 하나이자, 최고의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스트라이커와 골키퍼를 제외한 축구의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는데, 단순히 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꾸준한 기량을 보여 줬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건 타고난 건강한 육체와 축구를 향한 끊임없는 애정과 프로 정신이었다.
‘네가 즐거워하던 이유를 알 것 같군.’
빠르게 위협적인 위치로 파고들어 간 김다온이 토마스 뮐러를 향해 컷백을 보내고, 전 세계 유일의 ‘공간연주자(Raumdeuter)’가 오른발을 가져다 댄다.
올림피아코스의 모두가 또 하나의 실점이라고 생각하던 순간, 축구공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오르며 그대로 골대를 벗어나 버렸다.
“아아악-!!”
[야이, 병신아!!]터무니없는 실수를 범한 뮐러가 얼굴을 감싸 쥐며 피치 위에 엎드리고, 어처구니가 없어 한국어가 튀어나온 김다온 역시 머리를 움켜쥔 채 괴로워한다.
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된 올림피아코스의 선수들은, 전반전이 얼른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광판의 시계를 쳐다보았다.
실점으론 이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의 플레이가 올림피아코스의 전의를 상당 부분 꺾어 버린 셈이다.
올림피아코스에게 있어 절제절명의 위기 상황.
하나 그럼에도, 캄비아소는 눈을 뗄 수 없다.
그저 계속해서 사네티와의 대화를 떠올릴 뿐이었다.
‘너와 똑같지만, 너보다 더 잘하는 선수를 드디어 찾아냈으니까 말이야.’
여전히 21살에 불과한 김다온에게 필요한 건, 오직 시간뿐이라고 생각하는 아르헨티나의 ‘엘 꾸추(El Cuchu/작자 주 : 추장)’였다.
.
.
·경기 결과(2015/16 Champions League G.St 1R)
올림피아코스 0 : 5 바이에른 뮌헨
[골] 김다온 : 전반 06분(데이비드 알라바)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 전반 40분(필리프 람)
토마스 뮐러 : 후반 06분(아르투로 비달), 후반 46분(P.K)
마리오 괴체 : 후반 43분(킹슬리 코망)
김다온 ? 95분 출전(1골/평점 1.5/MoM)
.
.
[Da-On : Werde Peps Universalschlussel(다온 : 펩의 만능열쇠가 되다)! – 빌트] [대승에도 불구 레반도프스키의 부상을 염려하는 펩 과르디올라.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지만, 독일로 돌아가 검사를 진행해 봐야 할 것 같다.” – ARD]***
2015년 9월 17일. 아테네 105 64, 그리스. 1 바실레오스 게오르기우 A, 신타그마 스퀘어 스트리트. 호텔 그란데 브르타뉴, 어 럭셔리 콜렉션 호텔(Hotel Grande Bretagne, a Luxury Collection Hotel. 1 Basileos Georgiou A, Syntagma Sqaure Str. Athene 105 64, Greece).
아내에게 약속한 밤을 선물한 후, 조심스레 객실을 나선 위르겐 클롭이 호텔에 있는 바(Bar)로 향한다.
새벽 3시까지 영업을 하는 곳엔, 한두 명의 사람들이 홀로 고독을 즐기고 있었다.
“글렌 엘스. 온 더 록으로.”
“…….”
지폐를 테이블에 올린 위르겐 클롭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입고 있던 옷의 후드를 뒤집어쓴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는 걸 원치 않았기에 한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탁-
“편안한 시간 되십시오.”
“네.”
커다란 얼음이 담긴 잔엔, 독일의 싱글몰트인 글렌 엘스가 담겨져 있다.
2014년 ‘Liquid Golden Award’를 수상할 정도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으며, 가장 인기 있는 릴리스인 ‘The Journey’는 병당 2천 유로를 호가한다.
지금 담긴 것은 그런 고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테네의 고급 호텔인 만큼 두 번째 브랜드인 ‘The Alrik’은 되는 것 같았다.
진한 훈제 향과 특유의 부드러운 목 넘김이, 위르겐 클롭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탁-
“…….”
술잔을 코스터 위에 놓아둔 클롭이 담배를 꺼내 들자, 조용히 곁으로 온 바텐더가 크리스털로 제작된 재떨이를 앞쪽에다 놓아두었다.
손을 슬쩍 들어 올린 클롭은 그것에 감사를 표현했고, 담뱃불을 붙이곤 한껏 숨을 빨아들였다.
“후우~”
두 번째 담배가 모두 타들어 가고 술잔이 한 번 더 채워지자, 클롭은 비로소 생각을 이어 가게 되었다.
‘녀석이 펩의 모든 것이었어.’
후반 13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펩 과르디올라는 킹슬레 코망을 투입하며 토마스 뮐러를 가운데로 이동시켰다.
동시에 김다온과 필리프 람의 위치를 스왑한 후, 사비 알론소를 아래로 내려 중원을 역삼각 형태로 바꿨다.
그리고 조슈아 키미히와 마리오 괴체가 하비 마르티네스와 아르투로 비달을 대신해 피치에 들어서자, 쓰리백의 오른쪽 센터백으로 다시 위치를 이동했다.
지난 아우크스부르크와의 분데스리가 경기까지 포함할 경우, 2경기에서 4개의 포지션을 소화한 셈이었다.
“한 잔 더.”
“…….”
똑-똑-똑-똑-똑.
비어 있던 잔에 세 번째 술이 채워지고, 다시 혼자가 된 클롭이 세 번째 담배를 입에다 문다.
그러곤 자신의 게겐프레싱에서 함께하는 김다온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는 내 축구에서 오른쪽 윙이야. 말할 것도 없지.’
김다온이 지닌 수비적인 역량과 독보적인 체력을 바탕으로 한 왕성한 활동량은, 오른쪽 윙 포지션에 놓아두었을 때 자신의 전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재능이었다.
또 플레이메이킹에 있어서도 어지간한 미드필드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추었기에, 볼을 탈취해 낸 이후 공격에 있어서도 믿고 맡길 수 있다.
그리고 선수의 구성에 따라서는, 그를 오른쪽 풀백에 놓아두고 전술을 짜는 것 역시 가능하다.
‘또 미드필드도.’
요약하자면 김다온은 상대의 특징에 맞춰 전술을 구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존재였다.
어떠한 포지션 어떠한 선수들과도 조합이 가능해서, 축구 감독이 해야 할 일을 몇 배나 더 쉽게 만들어 준다.
심지어 더 놀라운 건, 어떠한 위치에서건 최고 수준의 기량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하비에르 사네티와 필리프 람도 대부분의 역할을 소화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이 최고의 기량을 보여 주는 위치는 오른쪽 풀백과 중앙 미드필드다.
그러나 김다온은 양쪽 풀백과 중앙 미드필드뿐만이 아니라, 오른쪽 윙과 센터백으로 뛸 때에도 같은 레벨이었다.
“오, 이런 세상에나.”
밀려오는 전율에, 클롭이 머리를 감싸 쥔다.
과거에도 김다온의 플레이를 보며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기 드문 월드클래스 풀백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재능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에서 펩과 함께 2년 이상 축구를 함께한 지금, 어떤 의미에서는 메시나 호날두보다도 더 대체하기 힘든 선수가 되어 버렸다.
아마 현재의 김다온은, 모든 축구 감독들에게 있어 꿈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펩, 자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을 했어.’
머리에 대었던 손을 뗀 위르겐 클롭.
그는 멍한 표정으로 얼굴을 긁적이다,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Erstellt ein Monster(괴물을 만든 거야).”
괴물.
하지만 김다온은 분명, 그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별명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