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backs are too good at football RAW novel - Chapter (695)
694화 Spater reden (5)
80805 뮌헨, 독일. 베를라이너 슈트라세 85. 슈타이겐베르거 호텔 뮌헨(Steigenberger Hotel Munchen. Berliner Straße 85. 80805 Munchen, Germany).
하루의 일정을 모두 끝마치고 난 뒤, 나는 호텔의 객실 테라스에 기대어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 뮌헨 올림픽 경기장에서 만난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는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운명인지도 모르겠군.”]운명(運命)이란, 대단히 포괄적인 단어다.
인과관계(因果關係)로 말미암은 특정한 결과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힘에 의한 숙명(宿命)을 뜻하기도 한다.
“… Schicksal.”
특별한 초점을 두지 않은 시선을 잠깐 아래로 내려, 호텔의 입구 앞을 분주히 오가는 차량을 바라봤다.
[“자네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한 번쯤 파멸로 치달았을지도 몰라. 어차피 영원한 영광이란 없으니까 말일세.”]칼레는 ‘das Schicksal’이라고 말한 바로 다음, ‘das Verhangnis’로 단어 선택을 바꿨다.
이는 운명 중에서도 숙명에 좀 더 가까운 의미이며, 부정적인 결과에 사용된다.
한국어로는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비극적인 결말?
혹은 파멸?
뭐, 대강 그러할 것이다.
[“난 어쩌면 자네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몰라.”]‘어째서?’
[“덕분에 뮌헨에 덧입혀져 있던 환상을 벗겨 냈으니 말일세. 이 세계에서 반복된 성공보다 더 심한 독약은 없어. 요즘은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난 기분일세.”]프란츠 베켄바워의 사진을 올려다보는 칼레와 그를 바라보던 나. 마침내 뮌헨의 회장이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매우 커다란 죄책감을 떠안아야 했다.
왜냐하면, 내가 칼레를.
또 뮌헨을.
[“알고 있네.”]‘… 알고 있었다니.’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네.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잘 짜 맞춰진 것처럼 돌아간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건 말일세. 그러다 문득, 안첼로티를 추천한 남자가 펩 과르디올라였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더군.”]그는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시즌 중반에. 그것도 바로 2년 전 트레블을 달성하고 직전 해에도 빅이어를 제외한 모든 트로피를 들어 올린 감독의 대체자를 구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바이에른 뮌헨 정도 되는 클럽이라면, 그 수준에 걸맞은 명상과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선수단을 충분히 장악할 수 있고, 쏟아지는 중압감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기사가 나오기 무섭게, 내 휴대전화가 정신없이 울려대기 시작했네. 필리프, 프랑크, 제롬 등이 전화를 걸어와 그게 진실인지를 묻더군. 그리고 내 번호를 아는 기자들도 계속해서 연락을 취해 왔네. 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었지.”]바로 그게, 펩이 원했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트레블을 향해 순항 중이던 뮌헨이었기에, 갑작스러운 펩의 퇴임 뉴스는 잘 조직되어 있던 클럽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유일한 해결책은 선수단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독을 데려옴으로써, 선수단에 클럽의 지속가능한 성공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시점을 기준으로, 뮌헨의 기준에 부합하는 감독은 단 두 명뿐이었다.
카를로 안첼로티.
위르겐 클롭.
하지만 위르겐 클롭은 어떤 상황에서도 뮌헨으론 오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남는 건 안첼로티 한 명뿐이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한 후,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 칼레는 날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자네는 아마 알고 있었을 거야.”]“…”
[“분명 펩으로부터 먼저 그가 클럽을 떠날 거란 이야기를 들었겠지. 그리고 그 후임이 카를로가 될 거라는 점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을 거야. 자네는 똑똑한 남자니까. 아닌가?”]“…”
나의 침묵을 칼레는 긍정으로 받아들였었다.
실제로도 그런 의미였고 말이다.
난 차마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자네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뮌헨을 떠날 결심을 했을 수도 있겠더군. 그래서 그것 하나는 묻고 싶었네. 대체 언제인가?”]어떠한 마법을 부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내가 더 거짓을 말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시종일관 온화한 목소리였던 게 그랬을까?
아니면 그 오묘한 미소?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처음으로 이적을 결심한 솔직한 이유를 칼레에게 말했다는 점이다.
“난 정체되고 싶지 않았어.”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아니, 아마 그럴 거다.
하지만 최소한 내게 있어 분데스리가는 시작(始作)점도 그렇다고 잠시 머무는 기착(寄着)점도 아닌, 마지막에서야 머무는 종착(終着)점이란 느낌이었다.
만약 내가 어딘가에서 커리어를 보낸 후 느지막이 뮌헨으로 향했다면, 난 틀림없이 분데스리가에서의 경쟁 같은 것들을 즐겼을 것이다.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기로 했다고 해서, 그 클럽이 나쁘다거나 좋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말이다.
뮌헨이라는 도시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여기엔 매우 중요한 부분이 있다.
나는 이미 돌아갈 곳이 있다.
리스본.
SL 벤피카.
언젠가 난 반드시 리스본으로 돌아가, 세이샬에 있는 클럽하우스에서 커리어의 마지막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소속된 어린 이들에게, 전부 말해 주고 싶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겪어 갈 일들을.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같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들과 그 외 나와 함께한 수없이 많을 좋은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할 날이 되었을 때, 나는 나의 커리어가 투쟁(鬪爭)으로 가득 차 있기를 원한다.
[“그거였군. 바로 그게, 결정적인 차이였어.”]긴 이야기 이후 침묵하는 나의 앞에서, 칼레는 바이에른 뮌헨을 평생 열망해 온 이들과의 차이점을 말해 줬었다.
[“자네에겐, 뮌헨이 끝이 될 수 없었어.”]바이에른 뮌헨을 떠나기로 하고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가장 큰 실망감을 표현해 온 사람은 다름 아닌 레비와 노이어였다.
그들에게서 있어 뮌헨은 종착점이었고, 그런 만큼 내가 존경을 표현해 주길 원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때로는 그들이 생각하는 뮌헨과 내가 생각하는 뮌헨이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내게 있어 뮌헨은 이력서를 위한 클럽이었다.
리그와 컵 우승 경력을 채울 수 있는 곳.
때때로 도르트문트가 경쟁자가 되고 과거의 레버쿠젠과 올 시즌의 RB 라이프치히처럼 느닷없는 클럽이 우승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끝은 같은 결말로 맺어진다.
한데 그것들을 한두 해 경험하면서, 커리어에 우승 경력을 채우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물론 이것은 분명, 내가 뮌헨에서 축구선수가 클럽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트레블)을 얻어 봤기 때문일 거다.
그에 대해, 나는 뮌헨에 고마워하고 있었다.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군.”]‘미안해요, 정말. 진심으로 미안해요.’
[“괜찮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렇지만, 훨씬 더 잘 받아들일 수는 있게 됐어.”]인생을 살아온 이후 처음으로, 나는 나를 진정으로 아꼈고 또 내게 최선을 다해 준 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실망을 준 적이야 또 있지만, 의도적으로 준 적은 없다.
내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듣고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을 했음에도, 헤어지는 순간까지 칼레를 똑바로 볼 수 없었던 이유다.
오히려 지금까지도, 난 몹시 부끄럽다.
마치, 발가벗겨진 것 같다.
“…”
날 프란츠 베켄바워의 사진 앞에 남겨둔 채로 사라졌던 칼레. 몇 분 뒤 뮌헨의 부탁을 받았을 가이드가 나를 찾으러 올 때까지, 나는 계속 그곳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 뮌헨이라는 도시와 바이에른의 역사가 나를 괴롭혀 왔기 때문이다.
“무겁네.”
그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채로, 나는 뮌헨과의 작별을 머릿속에 그려 보이고 있었다.
그것도, 제법 늦은 시간까지.
***
2016년 12월 6일. 80939 뮌헨, 독일. 베르너-하이젠베르크-알리 25. 알리안츠 아레나.
.전반 25분
바이에른 뮌헨 0 : 0 아틀레티코
&Match-Up`s Best Eleven(AT/상대팀)
&Tactics(AT/상대팀) : 4-4-2/4-3-3
GK ? 얀 오블락 / GK ? 마누엘 노이어
RB ? 시메 브르살코 / RB – 하피냐
CB ? 스테판 사비치 / CB ? 마츠 훔멜스
CB ? 디에고 고딘 / CB ? 데이비드 알라바
LB ? 뤼카 에르난데스 / LB ? 후안 베르나트
RAM ? 니콜라스 가이탄 / DM ? 아르투로 비달
CM ? 코케 / CM ? 헤나투 산시스
CM ? 사울 니게스 / CM – 티아고
LAM ? 김다온 / RW ? 아르연 로번
ST ? 앙투안 그리즈만 / LW ? 더글라스 코스타
ST ? 야닉 카라스코 / ST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
.
의심할 여지 없이, 바이에른 뮌헨은 수많은 월드클래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오늘 안첼로티는 라인업의 절반가량을 로테이션 멤버로 채웠고, 반대로 우린 양쪽 풀백을 뺀 남은 9개의 자리를 주전급으로 기용했다.
본래는 대거 로테이션을 돌릴 시메오네였지만, 내가 출전을 결정하면서 마음을 바꿨다.
그는 내가 뛰는 경기는 반드시 그만한 자격을 갖춘 이들이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네는 곧 최고가 될 사람이야.”]나는 그 배려가 무척 고마웠다.
날 인정한다는 뜻이었으니까.
파앙-!
{“우오오오-!!”}
{“워어…”}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감아 찬 슈팅이 노이어의 선방에 가로막히고, 난 저쪽에서 밀려오는 아쉬움을 억누르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그러곤 괜히 간지러운 코끝을 손으로 만진 뒤에, 다시 머리를 들어 위치를 찾아 움직였다.
“사울!”
“?”
“저기에 서 있어!”
“…”
카를로 안첼로티의 부임 이후, 바이에른 뮌헨이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전부 밸런스에 있었다.
좋게 표현하자면, 다양함을 취득한 셈이다.
패스의 종류와 공격의 속도가 상대의 사정에 맞춰 바뀌었고, 때로는 점유율을 포기하는 경기가 나오기도 했다.
펩과 함께했던 3년 동안에 가진 분데스리가 경기에서는 단 한 차례도 57% 밑으로 점유율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안첼로티 체재 아래에서는 50% 이하의 경기도 나오기도 했다.
리그 2라운드 샬케 04와의 경기가 그랬고(48%),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리그 7라운드 경기(46%)와 며칠 전에 끝난 데어 클라시커(49%)에서도 50% 이하였다.
그리고 이 세 경기에서, 바이에른 뮌헨은 1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성적마저도,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
탁-
코케가 띄워 올린 코너킥을 높이 팔을 뻗은 노이어가 잡아내고, 축구공을 품에 안정적으로 가져간 그가 민첩하게 발을 움직여 스로우를 가져가려고 한다.
하지만 노이어가 볼을 보내려고 한 곳엔, 조금 전 내가 위치를 조정한 사울이 서 있었다.
그러자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빠르게 공격을 전개하려던 것을 멈추고 속도를 조절했다.
이후 나를 보는 노이어.
녀석은 알고 있었다.
사울을 저곳으로 보내, 뮌헨의 빠른 반격을 막아 낸 것이 나라는 걸 말이다.
“…”
“…”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이어의 시선을 난 외면하지 않았고, 잠시 후 그가 훔멜스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가져간 후에야 비로소 고개를 움직여 하피냐와 로번을 찾았다.
오늘 피치는 조금 복잡하다.
.
(노르베르트 카이텔) – Sky Sports German 코멘테이터
“다온이 볼을 잡을 때마다, 야유와 함성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뮌헨 팬들의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군요. 최근 FOCUS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뮌헨 팬의 약 57%가 그가 계속 클럽에 남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셀레브레이션 사건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꽤 놀라운 숫자죠.”
(야니크 코른베르크) – Sky Sports German 해설위원
“뮌헨과 함께한 3년 동안의 환상적인 활약과 현재 그의 위상을 생각하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마드리드 더비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노르베르트 카이텔)
“카를로 안첼로티의 모습이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FOCUS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뮌헨 팬의 약 63%가 안첼로티의 퇴임을 바라고 있습니다.”
.
“호르헤! 여기!!”
“…”
팡-
뮌헨의 공격 시도를 좋은 함정 수비로 막아 낸 뒤, 코케로부터 패스를 연결받자마자 다시 관중석 한쪽에서 야유가 울려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전반 시작 직후가 가장 컸고 지금이 가장 작다는 점이다.
축구공을 발아래에 놓아둠과 동시에, 나는 몸의 정면을 뮌헨의 골대 쪽으로 놓아두었다.
그러자 현재 이 위치에서 날 압박할 수 있는 선수가 전부 눈에 들어왔다.
‘… 빌어먹을.’
지금은 앙투안 그리즈만과 야낙 카라스코 모두 서 있는 위치가 좋지 못했다. 패스를 받아 든 이후의 상황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정작 기본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결국 난 패스를 접을 수밖에 없었고, 역습은 그렇게 간단히 무산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삐?익!!
{“이봐아-!!”}
다소 부정확했던 앙투안 그리즈만의 리턴패스가 뮌헨에게 전달됐고, 그것은 전방으로 이어져 위험지역에서의 프리킥으로 완성됐다.
알라바의 왼발과 레비의 오른발 모두를 경계해야 하는 위치라, 상황이 썩 좋지 않다.
“시메!! 시메!!!! 더 움직여!!! 더!!!”
목청을 크게 높인 오블락이 벽의 위치를 조절하고, 페널티박스 반대편으로 움직여 있던 나는 세컨볼을 향해 달려들 준비 중인 티아고의 곁에 섰다.
현재 벽이 세워진 곳 주변에서는 한창 신경전이 펼쳐지는 중이었는데, 주심이 달려가 선수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자, 뿌연 입김이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추위가 내려앉은 뮌헨은 오늘 3도까지 기온이 떨어졌다. 그리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피치 위는, 체감 온도와 실제 온도 모두 영하권이다.
이렇게 신경전이 펼쳐지는 동안에도 몸은 식어 버리기에, 제자리에서 계속 관절을 움직여 주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현재 이렇게 몸을 쓰고 있는 사람은 나와 뮌헨 선수들뿐이라는 점이다.
아틀레티코의 사람들은 이런 날씨에서 경기를 치르는 일에 익숙하지 않고, 그래서 프리킥이 준비되는 1분여의 시간 동안에도 평소처럼 행동했다.
‘얀에게 말해 줄걸.’
어차피 벽을 세우느라 몸을 움직일 시간도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오블락에게 말하는 게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삐?익!
프리킥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 소리가 울려 퍼졌고, 가볍게 다리를 움직이고 있던 레비가 우뚝 멈춰 선 뒤에 골대를 잠깐 바라보다 스텝을 밟아 나갔다.
파앙-!
레비의 오른발 인프런트에 맞은 축구공이 떠오르고, 추위에 몸이 굳었기 때문인지 벽을 세운 이들 중 점프를 한 사람은 뤼카 에르난데스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위치는 레비의 슈팅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곳이다.
결국 축구공은 가볍게 벽을 넘어섰고, 힘껏 몸을 날린 오블락의 손마저도 통과해 그대로 그물에 떨어져 내렸다.
“…”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들어 올리는 나.
실점 상황은 늘 마음이 아프다.
이런 내 귓가에 추위를 날려 버리는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졌고, 익숙한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면서 알리안츠 아레나는 한껏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후우-”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르는 새하얀 연기를 바라보며, 나는 한동안 멈췄던 생각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뭐가 더 싫지?’
패배하는 것과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골을 넣는 것 중, 과연 어떠한 것이 나를 더 괴롭게 할까?
경기 전까진 쉬이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달랐다.
너무나도 쉽게 나온 결론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기 시작한다.
“이런, 구제 불능새끼.”
나라는 놈은, 참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전반 37분
바이에른 뮌헨 1 : 0 아틀레티코
실점 이후, 경기의 균형 역시도 무너졌다.
파상공세의 뮌헨.
그 앞에서, 아틀레티코는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 망설임이 사라졌군.”
아틀레티코의 감독 디에고 시메오네는 오히려 실점을 허용한 다음부터, 김다온의 플레이가 훨씬 더 나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분명.
“큭. 쿡쿡쿡쿡.”
주머니에 손을 꽂은 상태 그대로,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린 시메오네가 특유의 웃음을 내뱉는다.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이 너무 즐거워 참을 수가 없었다.
현재도 그의 귀엔, 피치 반대편이라 희미해야 했을 김다온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호르헤!! 말해!! 입이 멈췄어!!”
현역 시절, 누구보다 투쟁심이 넘쳤던 시메오네는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성격이었다.
베테랑이 된 뒤에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패배를 경험한 뒤에는 어김없이 잔뜩 날이 선 상태가 되곤 했다. 그것 때문에 몇 번은 동료와 충돌하기도 했다.
축구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패배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이를 현명하다고 부르기도 하지만, 시메오네는 항상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패배란, 있는 힘껏 멀어져야 하는 존재다.
‘패배자들의 변명에 놀아날 이유는 없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린 디에고 시메오네가 테크니컬 에어리어 가장 앞쪽에 서서 팀 전체를 독려한다.
어느새 뮌헨의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촤?악!!
{“이봐아-!!!”}
{“파울!! 파울이잖아!!”}
완벽한 태클로 하피냐의 오버랩을 저지한 김다온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다시 한번 목청을 높여 김다온을 격려한 시메오네.
그는 얼른 상황을 수습하고 싶었다.
아틀레티코에 발을 걸치고 있는 패배라는 녀석에게서 벗어나, 승부의 추를 다시 맞춰 놓길 원했다.
패배가 싫은 감독과.
패배가 싫은 선수.
이 두 사람이 사이드라인 안팎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시너지는 조금씩,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전체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팅-!!
“!!”
“이런!!”
마누엘 노이어조차 얼어붙게 만든 사울 니게스의 감각적인 슈팅이 골대를 맞고 튀어 나온 이후에도, 둘은 잠깐 아쉬움을 표했을 뿐 다시 주변에 목소리를 높였다.
“잘했다, 사울!! 절했어!! 바로 그거다!!”
“우린 잘하고 있어!! 집중을 놓지 마!!”
추운 날씨 속, 온몸으로 에너지를 뿜어내는 두 사람의 어깨 위로 새하얀 김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