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34)
〈 34화 〉 34 가세요
* * *
1.
해응응이 골목에 들어가고
바로 뒤를 쫓으려 했던 우지우였지만
하필이면 신호가 바뀌며
도로 위로 차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긴급상황에 신호나 지킬 때가 아니다 싶어
신호등을 향해 거미줄을 사출해
도로를 뛰어넘은 우지우.
“와! 수컷 인면지주!”
“으엑, 진짜다. 좀 못생겼네.”
평소라면 이 악물고 얼굴스캔을 뜰 그도
이번만큼은 못 들은 척 눈감아줄 정도로
마음은 벌써 골목길 너머로 향하고 있다.
헤이, 쁘리띠 걸~
오우예스
야동으로 단련된 싸구려 상상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불길한 미래만이 그려졌다.
‘아니야. 해응응씨는 말을 할 줄 몰라!’
애써 상상도를 부정해보는 우지우.
헤이, 쁘리띠 걸~
[음란한 저를 괴롭혀주세요..]야동으로 단련된 싸구려 상상도는
말이 아닌 필담이라고
그 전개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안 돼! 그런 꼴은 절대로 두고 못 봐!’
자신 같은 못생긴 녀석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주던 해응응씨가
우람한 백인의 그것 앞에
홍조를 띄우며 굴복하는 모습 따위,
인정할 수 없었다.
각성자 이전에
한 사람의 남자로서도 말이다.
대로를 건너고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20초 남짓.
야동에서의 20초는
지퍼를 내리고 흉물을 드러내거나
남자와 여자가 음란한 입맞춤을 나누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길 제발 아무 일도 없길 제발 아무 일도 없…!’
현실에서의 20초 또한
일이 벌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게 대체….”
피떡이 되어 2층 계단에 날아가 있거나
실외기에 축 늘어지거나
허리가 접힌 채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거나
벌어진 복부를 붙잡고 꿈틀거리고
땅을 기며 신음하는 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
그중 가장 커다란 덩치의
우지우가 쫓던 금발벽안의 남자는
벽에 금이 갈 정도로 거세게 내몰린 채로
검 끝에 목덜미가 겨눠지고 있었다.
그 검의 주인은
죽립을 깊이 눌러쓴
조금 당황한 기색을 띄고 있는
못생긴 그에게도 친절한 여자, 해응응이었다.
2.
“저, 해응응씨.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해응응이 검을 거두자
금발벽안의 사내, 스티븐이 컥컥 거리며
무릎을 꿇고 목을 잡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혹시 범죄자들을 소탕하신 겁니까?”
[맞아요.]“아아, 전 또 뭐라고. 수상한 남자를 따라가시기에 걱정 되어서 따라왔지 뭡니까. 하하.”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전 괜찮아요.]다행히도 야동으로 단련된 그의 상상도가
적중하는 일은 없었다.
해응응은 생김새부터 대놓고 각성자이고
느껴지는 분위기도 강자가 아니던가.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지만.
‘에잇 진짜 답답하네, 점수 딸 처지에 지금 그런 거나 따지고 있을 땐가.’
우지우는 냅다 스캐너를 꺼내들었다.
“뒤처리는 제가 돕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해응응이 다급히 붓펜을 끼적였지만
문장을 다 적기도 전에 스캔결과가 떠올랐다.
“요셉, 협회기록 언노운? 이야, 이거 빌런인가보네요. 어떻게 재수없게 패거리에 끼여서 딱 잡힐 수가 있담. 하하.”
“…….”
“어디보자, 다른 놈은 피터, 언노운. 제이크, 언노운. 마이클, 언노운. 데이비드, 호크, 에릭, 전부 언노운.”
우지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해응응씨? 대체 뭘 잡고 계셨던 겁니까?”
[모르는 사람들이에요.]“스티븐. 명호2동 각성자학원 정규강사 겸 C급 각성자. 전과 3범. 위험인물. 이 사람도 모르는 분이십니까?”
“….”
“뭐라고 말씀을 하셔야 저도 도와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지우는 그저 순수하게 돕고 싶었다.
마음씨 곱고 예쁜 각성자 해응응에게
점수나 얻을 겸
귀찮은 뒤처리를 대신 봐주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각성자 등록을 하지 않은
협회기록이 없는 언노운Unknown 다수와
행실에 문제가 많은 C급 각성자가
한 날 한 시에 모여서
초죽음이 되도록 제압당한 광경은
아무리 봐도 사소한 소동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사건사고의 범주를 넘어섰다.
이건 명백한 강력범죄현장이다.
“제가 진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혹시라도 과잉진압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게…”
[깊게 묻지 말아주세요.]“자꾸 그러시면 안 됩니다. 괜히 불길한 생각이 들잖아요. 네?”
우지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범죄현장에서 범죄자들을 제압한 각성자가
이렇게까지 뒤로 뺄 이유가 없다.
각성자협회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규범마저 존재하지 않던가.
다수의 범죄자를 제압하고도 이 사실을 협회에 신고하지 않고, 자신의 신원을 밝히려 들지도 않는 각성자는 둘 중 하나다.
익명성이 필수인 정부 소속 비밀요원.
혹은 각성자 등록을 하지 않은 잠재적 빌런, 통칭 언노운Unknwon.
우지우가 재차 물었다.
“정부에서 내려온 비밀임무입니까? 정부 소속 비밀요원이라서 신분을 밝히기 꺼려지는 거죠?”
[미안해요.]“왜 미안하다는 거예요. 네? 정확하게 말씀을 해주시라고요!”
정말로 비밀요원이라서
자세한 말을 할 수 없어서 그런 건지.
각성자 등록이 되지 않은
언노운이라서 그런 건지.
어느 쪽으로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애매모호한 대답이 아닌가.
우지우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스캐너를 내밀었다.
“해응응님. 실례되는 말인 건 알지만 각성자 라이센스를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비밀요원이라도 신분증 정도는 있다.
그게 위조된 각성자 라이센스라고 해도
일단 협회의 불심검문을 모면할 수 있는
만약의 수단 정도는
지니고 있는 편이 정상이다.
[미안해요.]곤란한 듯 마주치지도 못하는 시선.
우물쭈물하는 표정.
괜히 쥐었다 펴며 어디에 둘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는 손까지.
그토록 불안해하는 주제에
끝내 각성자 등록증도 제출하지 않았다.
‘미치겠네.’
그 사과만으로 몰아치는 상념.
미등록각성자의 90%는 범죄자이며
각성자 십여 명을 홀로 압도하는 위험인물이
빌런이 아닐 가능성은
계산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낮다.
굳게 감았는데도
요동치는 것이 느껴지는 두 눈.
답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두뇌.
이론과 실전의 차이 속에서
우지우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사람처럼
고민하고 또 괴로워했다.
“가세요.”
짧지만 격한 고뇌.
그 끝에 우지우가 결심을 내렸다.
“오늘 여기서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시면 안 됩니다. 동생분도 포함해서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해응응.
이제야 마주친 그 눈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자색을 띄고 있었다.
“아무 것도 묻지 말고 그냥 가세요.”
[고마워요.]우지우는 결심했다.
좋아하는 여자의 허물도 덮어주지 못해서야
어찌 미녀를 차지할 수 있겠는가.
‘꼴값 떨고 있네.’
스티븐은 속으로 다짐했다.
쥐새끼처럼 소리 죽이고 눈치나 보고 있지만
이 자리만 모면하면
바로 폭로부터 할 작정이었다.
해응응이 각성자 등록증도 없는 언노운이며
C급 각성자 거미인간이
이 사실을 덮고 무마하려 시도했다고.
“미안하게 됐어, 형씨들. 내 눈에 들키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진 않았을 텐데.”
그런 스티븐과 떡대들을 향해
우지우가 입을 열었다.
청춘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열혈 후배 같은
순해빠진 인상이었던
조금 전까지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놀라울 정도로 삭막한 분위기.
‘이 자식, 설마!’
놀란 스티븐이 벌떡 일어나려 시도했지만
어느 틈에 그의 몸과 입을 휘어감은 거미줄이
도주시도와 구조요청을 원천봉쇄했다.
“해응응씨의 신원이 협회에 파악되지 않으려면 확실하게 뒤처리를 해야 하잖아.”
“읍! 읍! 읍읍!”
“그래서 목격자는 살려줄 수가 없어. 후환을 없애려면 전부 죽여야 되거든.”
우지우는 사랑에 눈이 멀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바보인 건 아니었다.
손을 더럽히는 일을
두려워하거나 주저할 이유도 없었다.
협회에 등록된 각성자에게는
살인면허도 지급되니까.
3.
해응응이 손을 본 각성자들을
손수 확인사살하고
현장의 교전흔적을 조작하며
근처 CCTV에서
문제가 될 만한 기록을 모두 제거한 뒤.
더는 문제가 없겠다 싶은 뒤에야
우지우는 뒤늦게 협회에 보고를 올렸다.
“D급 언노운 11명에 공모자로 추정되는 C급 위험인물 스티븐을 혼자 다 죽였다고?”
“하하, 아무리 저라도 열두 명은 좀 위험했지 뭡니까. 도저히 여유가 없어서 한 명도 살리지를 못했습니다.”
“그으래애?”
미심쩍은 눈으로 우지우를 째려보는
대머리남자.
머리만 벗겨진 평범한 대머리라면
우지우가 이렇게 눈치를 볼 일도 없겠지만
이 남자는 각성자협회의 간부.
그것도 각성자들의 활동보고서를 검토하는
감찰부 부장 곽훈.
콧대 높은 각성자라도
감히 심기를 거스를 수도 없고
거슬러서도 안 될 인물이다.
“가봐.”
“예?”
“왜, 구박이라도 해줄까?”
“아, 아닙니다.”
“알아서 기특한 일을 한 녀석을 괴롭힐 정도로 못돼 먹은 몸은 아니야. 이놈들도 어차피 다 뒤가 구린 놈들이었잖아. 안 그래?”
“그렇고말고요.”
천만 다행히도 의심을 사지 않고 넘어갔다고
내심 안도하며 돌아가는 우지우.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곽훈이
스크린폰을 펼쳐
누군가에게 연락을 넣었다.
“우지우 주변에 같이 다니는 각성자 있지? 제일 빚 많고 형편 어려운 놈으로 하나 골라.”
잠시 후.
곽훈의 앞에 우지우와 종종 같이 다니던
동료 각성자의 신상정보가 떠올랐다.
“그놈 앞으로 특별의뢰 하나 넣어. 감시임무로. 우지우가 협회 몰래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알아봐야겠어.”
우지우의 현장조작 덕분에
해응응이 협회의 수사망에 오르는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뒤처리로도 다 해명할 수 없는
능력 이상으로 거둔 뛰어난 실적이
간부의 의심을 사고 말았다.
“분명 뭔가 있어. 금지된 약물에 손을 댔거나, 범죄조직과 손을 잡았다가 갈라졌거나.”
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물었다.
밝혀내지 못한다면 그땐 어떡합니까?
“그걸 밝혀낼 때까지 우지우는 앞으로 2급감시대상이다. 예외는 없어.”
같은 협회 소속 식구들도 피해갈 수 없는
특별임무와 감시대상 지정.
이는 협회 소속 각성자들이
길드 소속 각성자들 못지않게
세간에서 꺼림칙하게 여겨지는 이유이자
저들끼리 일시적인 동료는 되더라도
길드에 맞설 강력한 권력집단이 되도록
진심으로 서로 믿고 뭉치지는 못하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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