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07
106화 개막(2)
개인리그의 본선은 지난 회의 16강 진출자 16인과 예선 통과자 16인, 총 32명이 모여서 치른다.
이들 32명의 선수는 4명씩 총 8개 조를 이루어, 경기를 치러 조별로 2명씩 16강 진출자를 뽑는다.
그리고는 일반적인 토너먼트 방식으로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금은 2억.
지난번보다 훨씬 더 높아진 액수였다. 이신의 복귀와 함께 다시 한국 e스포츠는 크게 활성화되었고, 이에 따라 협회도 고무되어서 더 크게 판을 키우기로 한 것이다.
본선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꼭 필요한 행사가 있었다.
바로 조 지명식.
16강 진출을 놓고 겨룰 조를 뽑는 행사였다.
이러한 조 구성은 선수들이 서로를 지명함으로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조 지명식’이었다.
가장 우선 지명권을 갖는 선수는 지난 대회에서 8강에 진출한 선수들.
그들은 각자 8개 조의 시드권자가 되어서 자기 조에 속할 선수를 한 명 지명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지명되어 조에 속해진 선수 역시 1명을 지명하여 조에 데려온다. 그 선수 또한 다른 선수를 지명하여, 총 4인의 조 구성이 완성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약한 선수를 자기 조로 데려오려고 하며, 이신 같은 강자는 안 데려오려고 한다.
종족 간의 상성, 그리고 플레이 스타일 간의 상성 역시 고려되어서 지명을 하는데, 모두가 딱 한 명씩밖에 지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의도대로 조가 구성되는 일은 많지 않다.
도리어 쟁쟁한 선수들이 몰려 버린 죽음의 조가 탄생되기도 한다.
한 조에 속한 4인이 모두 서로와 한 번씩 겨뤄야 하는데, 조원이 하나같이 강자라면 16강에 진출할 확률이 낮아지는 것이다.
물론 지켜보는 팬들로서는 남의 집 불구경처럼 신이 날 따름이었다.
그래서 팬들에게 이 조 지명식은 아주 흥미진진한 이벤트였다.
누가 누구와 붙게 될 것인가?
때로는 조별 32강전부터 우승후보들이 격돌하는 빅 매치가 성사될 수도 있다.
게다가 지명식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선수들 간의 도발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그러한 스토리와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지면 지켜보는 팬들은 더 즐거워진다.
그러니 e스포츠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이처럼 기대되는 이벤트가 어디 있겠는가?
우승자, 박영호.
준우승자, 최영준.
그밖에도 8강에 진출했던 황병철, 신지호, 신태호, 이철한, 진철환, 오광태.
이 8인의 시드권자들은 과연 어떤 선수를 지명할 것인지 못내 궁금했다.
특히 예선을 가뿐하게 통과하고 개인리그 본선에 다시 나타난 이신!
모두가 기피할 것이 분명한 이신은 과연 어느 조에 속할 것인가?
월드 SC 그랑프리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쌍영, 혹은 원한이 있는 황병철과 신지호가 혹시라도 이신을 지명하지 않을까?
그렇게 수많은 궁금증 속에서, 마침내 조 지명식이 시작되었다.
***
“꺄아아악!”
“우와아아아아!”
강남 e스포츠 경기장에 쩌렁쩌렁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관객석을 채운 경기장의 관중들은 오늘 경기를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단 한 명의 우승자가 탄생하는 그날까지 쭉 이어질 장대한 드라마의 서막을 보기 위해서였다.
-강남 e스포츠 경기장에 오신 모든 관객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캐스터 이병철의 힘찬 인사에 함성이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이윽고 해설위원 정승태도 등장해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2020년!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승태 해설위원님?
-예, 그렇습니다. 2020년 전반기는 오랫동안 군림해 왔던 이신이라는 절대자가 사라지고서 갑자기 혼란이 찾아온 혼란기였습니다.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처럼 수많은 선수들이 비어버린 왕좌를 놓고 각축전을 벌였고, 그 치열한 다툼 속에서 바로 쌍영이 탄생했죠!
-예, 박영호와 최영준! 두 선수는 누구도 예상 못 했던 가공할 경기력을 보여주며 반년 전에 바로 이곳에서 대단한 명승부를 펼치지 않았습니까? 이신 선수의 부재로 상심했던 한국 e스포츠 팬 분들의 허전함을 확실하게 채워준 2개의 샛별이었습니다.
-그밖에도 신지호 선수나 이철한 선수 등도 활약을 펼치면서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고, 그야말로 기다렸다는 듯 강자들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드디어 이신 선수가 돌아왔지요?!
-네, 그렇습니다! 속속들이 출현한 신진 강자들과 돌아온 절대자 이신이 과연 어떤 드라마를 만들 것인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캐스터 이병철이 말했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선수들을 만나보시겠습니다. 한 선수씩 입장할 때마다 큰 박수로 맞이하여 주십시오! 먼저 첫 번째 선수, CT의 박진수 선수입니다!
팬들이 환호를 하며 입장하는 박진수를 환영해 주었다.
CT의 노장 박진수.
피지컬이 떨어져 장기전으로 갈수록 약해지는 면모를 보였으나, 도박성 전략을 다채롭게 펼쳐 여전히 팀에 기여하는 승부사였다.
-박진수 선수, 정말 대단하지요. 2년 만에 다시 이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한동안 부진도 있었고, 이제는 예전 같지가 않다는 평을 들었던 박진수 선수인데, 올해 들어서는 또 날카로운 전략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예, 지난번에 있었던 프로리그 3라운드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는 MBS를 상대로 3킬이나 올리지 않았습니까? 그중에는 아직 쌍성전자로 옮기기 전인 신지호 선수도 있었습니다!
이신이 깜짝 해설을 했던 바로 그 경기를 뜻했다.
-예, 정말 박진수 선수가 얼마나 날카로운 지략가인지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번 개인리그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펼치길 기대하겠습니다!
박진수를 필두로 선수들이 하나둘 등장했다.
각 조의 시드권을 가진 8인을 제외한 선수들이 입장했는데, 입장할 때마다 캐스터와 해설위원이 선수 소개를 해주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자, 이제 시드권을 가진 선수들 8명을 제외하면 2명밖에 안 남았죠?
-하하, 그렇습니다. 올해 후반기에 접어들어서 가장 화제가 된 두 선수입니다.
-먼저, MBS의 신예 주디스 레벨린 선수입니다!
“와아아아아!”
“주디! 주디! 주디!”
“주디야, 사랑해!!”
관객석에서 남성들의 환호가 유독 커졌다.
까만 흑발에 큼직한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귀여운 서양 소녀. 그러나 앳된 외모와 달리 만 19세인 여자가 MBS의 유니폼을 입고 입장했다.
이제는 한국 e스포츠의 여신이라 불리는 주디였다.
세계를 통틀어도 결코 흔치 않는 여성 프로게이머.
그나마도 프로리그에서 주전으로서 활약하는 여자 선수는 주디뿐이었다.
-신의 제자로 더 유명한 주디 선수!
-코치님이 시켰어요, 라는 명언을 네티즌들에게 선사한 아주 화제의 선수입니다!
-프로리그 4라운드에서 5승 2패의 좋은 성적을 기록해, 결코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그만한 인기를 얻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과연 개인리그 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주디는 환호를 받으며 수줍게 등장해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꺄아아아아아아악!”
“오빠아아아―!!”
아까와는 반대로 여성 관객들의 비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거의 절규에 가까운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이신이 등장했다.
-신이 돌아왔습니다! 이 말 외에 무슨 표현이 더 필요합니까?
-예, 돌아왔습니다! 쌍영에 신지호에 이철한 등 수많은 쟁쟁한 신진 강자가 나타났어도, 아직 그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는 못했습니다. 모든 프로게이머가 바라 마지않는 그 황금 옥좌의 주인이 이 자리에 나타났습니다! 이신 선수입니다!
이신은 그렇게 위풍당당하게 입장했다.
그냥 평범하게 걸어 나왔을 뿐이었지만, 모두들 그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후광처럼 보이는 착각을 느꼈다.
큰 키와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절대적인 강함을 겸비한 거인.
이름 그대로 신이라 불리는 신화의 주인공의 등장이었다.
이신이 입장하자 주디는 냉큼 옆으로 당겨 앉으며 그가 앉을 자리를 넓혀주었다. 그 모습이 화면에 잡히는 바람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스승과 제자가 나란히 앉았네요. 그림입니다, 그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별명이 신과 여신이죠.
사실 이신에게 사사받은 또 다른 선수로 정다울이 있었지만, 종족도 다르고 활약상도 애매해 신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얻지 못했다.
이신과 주디 사이에 정다울이 끼면 그림의 퀄리티가 몇 단계 떨어진다는 불행한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튼 이신이 시드권자가 아닌 채로 본선 조 지명식에 나타난 것은 신인 첫 데뷔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조 지명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건데요, 우선 제1조의 시드권자부터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제 1조의 시드권자, 지난 대회의 우승자! 바로 박영호 선수입니다!
역시나 만만치 않은 환호를 받으며 나타나는 박영호.
주디, 이신에 비해 작은 키에 못생긴 얼굴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박영호는 남성 못잖게 여성의 환호도 만만찮게 받았다.
원채 재치와 입담을 과시해서 e스포츠의 개그맨 같은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박영호라 여성 팬들에게 귀엽다는 평을 많이 듣는 것이었다.
게다가 철벽괴물이라 불리는 강력한 실력으로 반전적인 매력까지 있었다.
박영호는 한껏 거만을 떨며 걸어와 무대 중앙에 따로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캐스터 이병철이 박영호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물었다.
-이야, 박영호 선수! 못 본 사이에 신수가 많이 훤해지셨습니다. 그동안 좋은 일 있으셨습니까?
-팀의 스타일리스트 누나 솜씨가 나날이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박영호는 시작부터 웃음을 선사하였다.
-이야, 그렇군요. 하긴, 박영호 선수를 꾸며주려니 실력이 늘 수밖에 없겠어요.
-거 무슨 뜻이에요?
-칭찬이었습니다.
캐스터 이병철은 대충 얼버무렸고 관중들의 웃음이 점점 커져갔다.
해설위원 정승태가 끼어들었다.
-오늘 이 자리에 지난 회의 우승자이자 1조의 시드권자로서 당당히 등장하셨는데, 어떤 선수를 지명할지 생각은 해두셨습니까?
-이신이요.
박영호는 거침없이 말했다.
“오오오!”
관객들이 깜짝 놀랐다.
캐스터 이병철도 놀라 물었다.
-아, 정말 오늘 이신 선수를 지명하실 생각이십니까?
-예.
-아아, 그건 혹시 프로모션 영상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긴 원한에 대한 복수입니까?
-아 진짜! 그 얘기가 왜 나와요?
박영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항의하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제가 한국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이 한 몸 희생을 했으면, 고마워서라도 두 분이 절 좀 띄워줘야죠! 그런데 아까부터 절 까기만 하시고, 생긴 게 이렇다고 정말 제가 개그맨인 줄 아세요? 까면 웃긴다고 계속 까게? 아 진짜, 무슨 지난 회 우승자한테 대접이 이래!
속사포 같은 말발이 폭발한 박영호.
경기장이 웃음으로 가득 채워졌고, 내공이 대단한 캐스터 이병철조차도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박영호! 박영호!”
“잘생겼다, 박영호!”
“철벽미남 박영호!”
농담 섞인 박영호 골수팬들의 응원이 울려 퍼지자 박영호는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쇼맨십과 예능감이 투철한 박영호의 또 다른 별명은 ‘조 지명식의 본좌’였다.
-자자, 잘생겼다고 팬 분들이 칭찬하시니 이만 화를 푸세요. 잘생겼습니다, 박영호 선수.
박영호가 도로 자리에 앉자, 캐스터 이병철은 이번에는 이신 쪽을 바라보았다.
-자자. 이신 선수, 들으셨지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다른 마이크가 이신에게 넘어갔다.
이신이 입을 열었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
뜬금없는 말에 모두가 의아해졌다.
이신의 말이 이어졌다.
-박영호 선수는 잘생기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웃음이 폭발했다.
훗날 ‘역대급’이라 불리는 조 지명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