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08
107화 개막(3)
-게임이 아닌 다른 의미로 저 사람과 한 판 붙고 싶습니다.
박영호가 발끈해서 말했고, 캐스터 이병철은 웃으며 두 사람은 중재했다.
웃겨서 미치겠다는 분위기 속에서, 이신은 농담을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
-저를 지명한다면 저로서도 환영입니다.
-이야, 자신만만하시네요.
-제가 박영호 선수의 지명을 받는 상황도 사전에 고려를 해봤고, 준비한 전략도 몇 가지 있습니다. 제 지명권까지 잘 활용한다면, 박영호선수를 일찌감치 탈락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이신의 대답은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자신감보다는 특유의 객관적인 말투라 더욱 설득력 있게 들렸다.
-자, 박영호 선수. 이신 선수도 기꺼이 지명을 환영한다는 입장인데, 이제 슬슬 지명권을 선택하실 때가 됐네요.
캐스터 이병철은 무대 중앙에 있는 게시판과 32개의 명찰들을 가리켰다.
-자, 지명하고자 하는 선수의 명찰을 떼서 1조에 붙이시면 됩니다.
-예.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난 박영호.
한 번 스윽 이신의 눈치를 보더니, 이신의 명찰을 집어 들었다.
“오오오오!”
“진짜로?!”
관객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눈치를 보던 박영호는 이신의 명찰을 내려놓고, 대신 오창수 선수의 명찰을 집어 1조에 넣었다.
오창수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는 박영호와 같은 괴물 플레이어였다.
“에이!”
“우우우!”
쏟아지는 야유.
박영호는 우스꽝스럽게 자기 얼굴을 감싼 채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아니, 박영호 선수! 박영호 선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렇게 패기만만하게 이신 선수를 지목할 땐 언제고요?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까 다전제에서 제대로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편이 더 남자답고…….
-혹시 쫄았습니까?
-에이, 쫄다니요? 설마요…….
박영호는 계속 관객들의 야유를 받았다. 어쨌든 가지가지로 개그 캐릭터로서 분위기를 한껏 띄워놓는 박영호였다.
지명 당한 오창수도 열심히 해보겠다고 인터뷰를 한 뒤에 2조로 넘어갔다.
2조의 시드권자는 신태호였다.
얼마 전에 이신의 지뢰 비비기에 패했던 신태호는 같은 팀의 황병철과 함께 철지부심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신태호는 벌떡 일어나 주디의 명찰을 떼어내 2조에 붙였다.
-오, 주디 선수를 지명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일단 MBS에 갚아 줘야 할 빚이 있는데, 최종 목표는 이신 선수이지만 일단은 그 제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아, 4라운드 3차전의 복수를 하겠다는 각오이시군요. 그렇다면, 주디 선수? 주디 선수의 소감을 듣고 싶군요.
주디는 이신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해요.
주디는 순진한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대답했다.
오오오, 관객들의 함성.
-이야,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
주디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힐끔힐끔 옆에 있는 이신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캐스터 이병철은 금세 상황을 알아차렸다.
-혹시 옆에서 코치님이 그러셨습니까?
-네…….
“와하하하!”
선수들까지도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달리 신의 아바타라는 별명으로도 통하는 주디는 조 지명식에서도 일관된 이신 바라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자, 그럼 이신 선수. 어째서 할 만한 상대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결국 주디를 대신해 마이크를 잡은 이신이 발언했다.
-인류 대 인류 전은 기본기와 인내가 핵심이 되는 장기전이 될 겁니다. 거기서 주디가 밀릴 이유가 없습니다.
신태호는 표정 관리에 최선을 다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자신을 저 여자보다도 못하다고 평하는 이신의 태도에 분기가 치밀었다.
그렇게 조 지명식은 계속 진행되었다.
옛날과 달리 선수들은 자신감이 넘쳤고 상대 선수를 도발하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원채 연령대도 어리고 게임에 모든 것을 건 탓에 인간관계도 넓지 않은 프로게이머들.
그래서 예전에는 인터뷰를 시켜도 목소리도 어눌하고 제대로 말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프로게이머도 연예인이며 팬들의 사랑으로 먹고 산다는 인식이 생겨서 자신감 넘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개인 방송을 하면서 프로게이머들의 화술이 향상된 면도 있었고, 아무 거리낌 없이 할 말을 다 해버리는 이신의 영향도 컸다.
조 지명식은 많은 호응을 받으며 흥행을 이루었는데, 이신이 속한 조는 다음과 같았다.
8조: 이철한, 임성균, 왕찬수, 이신.
이철한은 이신이 프로리그에 복귀하자마자 붙었던 상대로, CT의 에이스 괴물 플레이어였다. 2항공 빌드를 택한 이신의 스텔스 전투기 컨트롤에 무참히 패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는 무난한 신족 플레이어인 임성균을 지명했는데, 괴물로서는 종족 상성상 신족이 상대하기 편했기 때문이었다.
임성균 또한 종족 상성을 따져서 인류 플레이어인 왕찬수를 지명했다.
문제는 아무도 이신을 지명하지 않았다는 것.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이신은 순서상 8조의 빈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8조에 속한 세 선수가 울상이 된 것은 물론이었다.
한편, 신태호에게 지명되어 2조가 된 주디는 자신의 지명권을 박진수에게 사용했다.
도박성 전략에 능한 노련한 승부사 박진수.
이번에 첫 데뷔를 한 주디가 신인 킬러라고 불리는 노장 박진수를 지명한 것이었다.
이는 순전히 이신의 머리에서 나온 지명이었다.
주디는 꼼꼼한데다가 정석적인 운영에 능했다.
때문에 박진수에게 파고들 빈틈만 주지 않으면 무난하게 운영으로 이길 수 있었다.
실제로 주디의 첫 데뷔전에서 승리를 거둔 상대가 바로 박진수였고 말이다.
반면에 신태호는 머신이라 불릴 정도로 장기전에 능하지만, 초반에는 철두철미한 측면이 다소 부족했다.
더욱이 신태호는 고교 1학년생밖에 안 된 신예.
‘도박사’ 박진수가 좋아하는 먹잇감이었다.
주디에 이어 박진수도 신태호를 꺾으면, 잘 하면 골치 아픈 신태호를 32강에서 일찌감치 떨어뜨려버릴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군.’
이신은 신태호가 꺼림칙했다.
이길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인류 대 인류 전은 특성상 필히 장기전이 될 공산이 컸다.
특히나 신태호는 머신이라 불릴 정도로 장기전을 좋아했다. 자칫 지루한 체력전이 될 수도 있었는데, 이신은 그런 재미없는 경기가 딱 질색이었다.
인터넷 언론들은 조 지명식의 결과를 즉각 뉴스에 실었다.
그들이 애용하는 단골 소재는 아니나 다를까, 이신이었다.
[이신 “박영호 못생겼어” 직격탄에 박영호 격분] [이신 지명을 피한 박영호 “복수보다는 실리 추구”] [(칼럼)2020년 후반기 개인리그의 우승 후보는?] [이신의 우승 가능성은?] [별들이 모두 모인 성대한 축제 개막, 한국 e스포츠의 르네상스 돌아올까] [한국 e스포츠 협회 “개인리그 흥행 자신” 이신 효과?]이신이 또다시 우승할 수 있을지가 모두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사실 모두가 이신이 다시 신으로서 군림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신이라는 스타에게 어울리는 시나리오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예전의 기량을 되찾은 모습을 보여준 이신.
하지만 예전과 달리 이번 개인리그는 강적이 워낙 많았다. 누구에게 발목을 붙잡혀 떨어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
이신의 연습 상대를 해주던 차이는 초반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다.
인류 대 인류 전에서 설마하니 보병과 기동포탑, 건설로봇을 대거 이끌고 치즈러시를 감행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인류 대 인류의 싸움은 대부분이 장기전이었기에 약한 병영의 유닛을 뽑는 일이 없었다.
차이는 고속전차를 계속 생산해서 열심히 방어했지만, 이신은 의무병까지 추가해 보병과 조합된 병력으로 완벽하게 차이를 박살했다. 고속전차를 순식간에 에워싸 빠른 이동속도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건설로봇의 블로킹도 예술의 경지였다.
차이는 한숨을 푹 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Chai: GG
-Kaiser: GG
두 사람은 이어폰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건 반칙이에요.”
“뭐가?”
“컨트롤이요. 다른 인류 플레이어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수학 공식처럼 정형화된 판단을 내린다면 방금처럼 되는 거지.”
“…….”
“그런 상식에 의존할 바에는 정찰을 강화해. 경기의 대부분은 초반 5분 안에 이미 승패가 갈리게 되어 있어.”
“네.”
“다시 한 판.”
“네!”
이신은 다시금 매섭게 차이를 몰아세웠다.
그렇게 연습을 빙자한 가르침을 받으면서, 차이는 의문을 느꼈다.
‘선생님의 목적은 뭘까?’
자신을 집에서 데리고 있으면서 게임까지 가르쳐주는 이신.
그런 그의 저의를 의심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불순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때때로 다른 의문이 들었다.
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 자신을 가르치려는 것인가.
게다가 이신의 가르침은 마치…….
‘선생님 자신을 이기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 같아.’
더 빨리 성장해라. 어서 날 이겨봐라. 마치 그렇게 부채질하고 있는 듯했다.
궁금해진 차이는 이신에게 물었다.
“선생님.”
“말해.”
“혹시 제가 선생님을 능가하기를 바라시는 거예요?”
“어.”
이신은 가볍게 대답했다.
“제가 자라서 선생님을 꺾기를 원하세요?”
“어.”
“왜요?”
차이가 본 이신은 딱히 정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하물며 스승으로서의 애정 따위는 더더욱.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야망이 훨씬 중요한 사람이었다. 승리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는 승부사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신에게 청출어람을 바란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이신이 생면부지의 자신에게 그럴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이신은 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시 도전해서 꺾어버리게.”
차이는 멍하니 이신을 쳐다보았다.
자기보다 더 강하게 만든 다음에, 도전해서 꺾겠다니.
차이는 이신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선생님은 지는 걸 싫어하시잖아요. 그런데 왜요?”
“내가 은퇴를 결심했던 적이 딱 한 번 있었어.”
“다치셨을 때요?”
“아니.”
“그럼요?”
이신이 말했다.
“처음 금메달을 땄을 때.”
“…….”
데뷔 첫 해, 이신은 개인리그에 이어 월드 SC 그랑프리 개인전마저 파죽지세로 금메달을 따버렸다.
설마 세계 강자들을 상대로도 무패우승을 기록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그 득시글거리는 세계 굴지의 프로게이머들이 이신에게 단 1세트도 따내지 못했다.
분명히 스페이스 크래프트는 실시간 전략 게임이었다.
전략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가위바위보 같은 심리전. 당연히 이길 때도 질 때도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 이신은 조그마한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상대의 심리를 마음대로 가지고 놀며 학살했다.
외로움.
그저 맹목적인 칭송 속에서 이신은 고독을 느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이 게임의 한계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평생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면 그 여행자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내 모든 걸 보고 배워.”
“네.”
“그리고 날 꺾어.”
“……네.”
이신은 차이가 보여주길 바랐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고 높은 경지가 이 스페이스 크래프트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