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09
108화 선인(1)
한 남자가 있었다.
위정자가 국정을 농단하며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어지러운 시대에, 남자는 약초를 캐어 먹고 살았다.
때로는 약초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며 도가(道家)의 가르침을 설파하기도 했는데, 때문에 남자는 현인(賢人)이라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
그러자 그런 남자에게 관심을 보인 인물, 아니 존재가 있었다.
바로 악마군주 단탈리안이었다.
모든 학문과 예술에 달통했으며 환영을 만들어 터뜨리기도 하는 악마군주 단탈리안.
그는 한눈에 남자의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어두운 재능을 알아보았다.
재능이 많은 인간을 찾아 나서고 있었던 단탈리안은 이 남자를 보자 장난기가 동하였다.
단탈리안은 도를 깨우치고자 산속에서 약초를 캐며 수행을 하던 남자의 마음속에 간교한 목소리를 불어넣었다.
-지고하게 높은 길을 가고자 하는 이여.
“누, 누구십니까?”
-진정 네가 지고하게 높은 길을 걷고자 한다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어디의 선인(仙人)이십니까?”
-그것이 무에 중요할까? 넌 내가 누군지 알면 귀를 기울일 것이고, 모르면 기울이지 않을 것이냐?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너의 잣대는 그것이냐?
단탈리안은 교묘한 언변으로 남자의 심리를 파고들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제게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순응하는 남자.
악마군주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은 무엇이냐? 그 목적은 무엇이냐?
“노자(老子)께서 말씀하셨던, 세상 만물을 관통하는 도를 깨우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고통을 낫게 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선한 마음.
하지만 단탈리안은 그것이 삽시간에 먹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검게 될 수 있는 자질임을 귀신 같이 알아보았다.
그는 좋은 꾀를 내었다.
-좋다. 일단은 눈에 보이는 고통부터 덜어주어야지. 지고한 길을 걷고자 한다면, 일단은 네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시작해라. 내가 너에게 지식을 주겠다.
단탈리안은 남자에게 사람의 병을 낫게 해주는 수많은 주술을 알려주었다.
더불어 마음의 짐을 덜게 해줄 수 있는 지혜 또한 가르쳐 주었다.
가르침을 받은 남자는 찾아오는 사람마다 주술로 병을 고쳐주고, 또한 그간 살면서 지은 모든 잘못을 참회하게 했다.
그럴 때마다 병이 나은 환자는 자기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며 남자에게 절을 했다.
남자는 점점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인근 지역에서 병자들이 찾아오더니, 나중에는 심지어 천 리 길을 멀다 하고 먼 곳에서도 남자의 명성을 찾아왔다.
수많은 부호가 남자에게 감화되어 자기 재산을 바치고 따랐다.
남자를 추앙하고 신처럼 따르는 인파가 족히 수십만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단탈리안은 남자의 안에 내제되어 있는 검은 자질의 씨앗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하얀 순백의 선량함.
너무나도 하얘서 한 방울의 먹물만 떨어뜨려도 삽시간에 번질 것 같은 티 없는 선량함이었다.
“선인이시여.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인께서 주신 힘으로 힘써 노력하였지만 고통을 덜은 자보다 고통받는 자가 아직 더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병만 고치려 했으니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지사지. 그렇다면 내가 묻겠는데, 보다 더 많은 사람의 고통을 덜려면 어찌해야겠느냐?
“눈에 보이지 않는 병을 고쳐야 합니다.”
-그거야 당연한 이야기다. 내가 다시 묻겠는데, 너는 사람들의 병을 고칠 때에 무엇을 먼저 하였느냐?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하였다.
“병의 원인을 먼저 알아냈습니다.”
-잘 아는구나.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남자는 엎드려 절하였다.
“감사합니다. 당장 그리하겠습니다.”
남자는 그날 후로 사람들에게 그 가르침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몸이 병드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이 병드는 것이며, 병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고통을 받는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자 하였는데, 그 원인은 한 가지로 귀결되었다.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이었다. 그들이 나라를 어지럽게 하기에 고통이 만연한 것이었다.
세상의 병을 고치려면 바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한 목소리가 남자를 따르는 추종자들 사이에서 오갔다.
그리고 그 역할을 남자가 앞장서 주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당황하여 다시 단탈리안을 찾았다.
“선인이시여. 이제 저는 어찌 해야 좋습니까?”
-어떠한 병인지 알고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았느냐?
“그렇습니다, 선인이시여.”
-그렇다는 너는 무엇을 망설이고 있느냐?
“그것은 제가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난 네 그 말이 진실로 들리지 않는다. 정말 고칠 수 없는 병일까?
단탈리안은 모습을 감춘 채 한 번도 남자 앞에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빙글거리는 간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단탈리안의 표정을 남자는 볼 길이 없었다.
“그것이……!”
남자는 대답을 망설였다.
-지금 너의 마음은 고통받고 있구나. 그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
-두려움이 아니냐.
“맞습니다, 선인이시여. 저는 너무도 두렵습니다. 제가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하고, 그로 인하여 도리어 더 많은 사람이 고통받을까 두렵습니다.”
-잘 말했다. 이제 너도 고통의 원인을 알았구나. 고통의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겠구나.
단탈리안은 또다시 교묘하게 남자를 간교한 논리로 빠뜨렸다.
-대저 지고한 길을 걷고자 하는 자는 무릇 두려움을 이기고 죽을 각오로 용맹 정진해야 하는 법.
“하지만 선인이시여! 저는 정말로 그것을 제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는 영원히 나를 따르겠느냐?
“…예?”
-영원히 나를 따른다면, 나는 너에게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만들어줄 힘을 주겠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면, 바로 선인님과 같은 선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쯧쯧, 도덕경의 첫 구절에도 나오거늘. 너는 도를 도라 이름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 그렇지 않습니다. 도를 도라 부르면 이미 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 선인이라 이름을 붙이는 것이냐? 너는 정녕 나를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냐?
교묘하게 남자를 속여 계약을 제시하는 단탈리안.
남자는 속절없이 속아 넘어갔다.
“따르겠습니다. 저를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게 해주십시오.”
-좋다.
흐흐, 소리 없이 웃으며 단탈리안은 마침내 준비한 저주를 남자에게 걸었다.
세상 모든 학문을 아는 똑똑한 단탈리안은 저주술에도 능하여 이러한 상황에서 남자에게 걸기 적합한 저주를 알고 있었다.
작은 한 방울의 마력이 맺혔다. 그것이 남자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단탈리안이 희열을 느끼며 고대해 온 순간이었다.
바로 새하얀 순백에 한 방울의 먹물을 떨어뜨리는 그 순간 말이다!
-너에게 씨앗을 심었다. 그 씨앗은 네 업(業)이 깊어질수록 커져갈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너를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로 만들어줄 것이다.
“얼마나 커져야 비로소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까?”
-일백만인.
“일백만의 사람이요? 그것이 무슨 뜻인지요?”
-때가 되거든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계약을 하였으니, 계약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단탈리안은 웃음을 감춘 채 뒷말을 이었다.
-나의 계약자여.
힘을 얻은 남자는 마침내 떨쳐 일어났다.
어지러운 세상을 바꾸기 위하여, 각지에서 그의 추종자와 함께 들고일어나 거병했다.
단탈리안에게서 얻은 수많은 주술과 지식으로 얻은 추종자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많았기에, 순식간에 남자의 세력은 온 나라에 미칠 정도였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울분에 차 있던 백성들이 호응하여서 세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남자는 그해에 곧 병들어 몸져눕고 말았다.
“선인이시여…….”
-불렀느냐, 나의 계약자여.
“제 몸이 병들어 뜻을 이룰 힘이 없습니다. 선인께서는 제게 힘을 주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 나는 너에게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될 수 있는 힘을 주었지.
“하지만 저는 초월하기는커녕 인간답게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선인께서 가르쳐 주신 지식과 힘으로도 제 자신의 병은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무슨 까닭입니까?”
-육신에 집착하지 마라. 너는 분명히 인간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너도 이미 느끼고 있지 않으냐? 내가 심어준 씨앗이 네 몸 안에서 점점 커지고 있음을.
“씨앗……?”
남자는 눈을 감고 자신의 몸을 관조했다.
과연, 그 말대로 무언가가 구슬처럼 둥그런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본래는 한 방울이었던 그것이었다.
-나는 분명히 약조하였다. 기억하느냐?
남자가 답했다.
“일백만인…….”
-그렇다. 일백만인이다.
“그것이 대체 무슨 뜻입니까?”
-흐흐흐.
단탈리안이 웃었다.
“어째서 웃으십니까?”
-크흐흐흐흐.
“선인이시여?”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선인의 웃음소리에 남자는 당황했다.
그것은 그간 그가 섬겼던 선인의 것이라고는 상상도 되지 않는 간사한 웃음이었다.
“어째서 그리 웃으시는 것입니까?”
-일백만인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까? 그것은 말이지.
단탈리안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를 신앙으로서 섬기며, 너를 위해 죽는 사람의 숫자다.
“……?!”
기절할 것처럼 놀란 남자에게 단탈리안이 소리쳤다.
-축하한다! 나의 계약자여! 이미 백만이 훌쩍 넘어 너는 오래전에 그 조건을 만족하였다.
“서, 선인……!”
-인간으로서의 너는 자질이 내 기대에 한참 못 미치지만, 악마로서의 네 자질은 얘기가 다르지.
“악마……?”
-이런, 내가 얘기 안 해줬던가?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더냐? 난 분명히 약속을 지켰는데.
“그, 그, 그 무슨…….”
남자의 병들고 야윈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급 악마가 된 것을 축하한다. 이제 그만 그 하잘것없는 몸뚱이는 버리고 나에게 오려무나. 내가 어서 너를 맞이하기 위해 씨앗이 자랄수록 몸이 병들게 했거든.
“나는 선인이…….”
-악마인들 어떻고 천사인들 어떻고 신선인들 어떠냐. 네가 원하는 도라는 것은 어디에나 있으니 나와 함께 갈 곳에도 있겠지. 암, 그렇고말고.
“또 그런… 교묘한… 궤변…….”
그것을 끝으로 남자는 숨을 거두었다.
남자가 죽은 뒤에도 추종자들은 계속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웠다.
그러나 싸울수록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이미 저주술의 조건인 일백만인을 채웠건만, 남자에게 심겨진 씨앗은 그 후에도 계속 커져 갔다.
그의 죽음 후에도, 그리고 시대가 한참 흐른 뒤에도 그 남자를 섬기고 후계자를 자처하며 들고일어나는 자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까마득히 긴 세월이 지난 후에야 남자는 더 이상 신앙의 대상이 되지 않게 되었고, 씨앗은 성장을 멈추었다.
하지만 단탈리안의 계약자가 된 남자는 그 씨앗의 성장으로 인하여 하급을 넘어 중급 악마로 화하였다.
그리고 중급 악마이자 계약자로서 활약하여 단탈리안의 서열을 71위에서 65위로 끌어올렸다.
단탈리안이 꿰뚫어본 대로, 악마로서의 그의 자질은 인간이었을 때의 자질을 한참 능가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