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83
182화 발견(1)
4세트에서 한태화는 4일벌레 러시에 실패해 2-2의 동점 스코어가 되어 한때 양 팀 벤치에 긴장감이 돌았다.
“김영표한테 질 정도로 제 인류전이 망가지진 않았어요.”
유진영은 그 말로 모두를 안심시키고 부스로 들어가 5세트 결정전을 치렀다.
그리고 그는 예견대로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다.
팀 제미니의 에이스급 괴물 플레이어였던 유진영의 역량이 상성 상 천적인 인류를 만났다고 어딜 가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올도어는 간신히 1라운드 무패행진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양 팀 감독이 나와 악수했는데, 방진호 감독은 매우 속이 쓰리다는 표정이었다.
“준비 잘 했더군요.”
이신이 말을 건넸다.
“그래도 졌으면 할 말 없는 거야.”
“그야 그렇죠.”
“죽을래?”
사납게 눈을 부라리는 방진호 감독을 보며 이신은 히죽 웃었다.
선수 영입은 특별히 하지 못했지만, MBS의 1군 선수들이 확실히 몰라보게 좋아진 것을 알 수 있는 경기였다.
방진호 감독이 가만히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
“정다울 아까웠습니다.”
“쯧, 다 이긴 거였는데. 어디서 그런 특출한 놈을 외국에서 주워오는 거야?”
3세트.
그것은 전략의 실패를 존이 신들린 컨트롤과 감각적인 순간 판단으로 극복해낸 명경기였다.
실제로 오늘 경기의 명경기상을 존이 또 수상하여서, 존은 첫 데뷔전에 이어 두 번이나 명경기상을 받은 인상적인 선수가 되었다.
“그런 애들이 저를 찾아왔을 뿐이죠.”
“쟤는 또 누구야?”
방진호 감독은 벤치에서 이신을 애타게 쳐다보는 장양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냥 손님입니다.”
“또 제자냐?”
“아직.”
“아직?”
“그럼 이만.”
이신은 말을 아꼈다. 다만 나직이 웃어보이고는 등을 돌렸다.
그러는 동안 무대 위에서는 승리를 거둔 선수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문득 MBS의 벤치에서 침울한 기색을 띠고 있는 정다울이 보였다.
정다울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이신을 바라보았다.
정다울은 살짝 고개 숙여 인사했고, 이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위로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이신이 경기력을 인상적으로 보았다는 뜻이었고, 정다울은 한때 자신의 스승이었던 그에게 인정받자 표정이 풀렸다.
그렇게 경기가 끝났다.
스토어는 3-2.
2021년 프로리그 1라운드에서 5승째를 기록한 올도어SCC였다.
***
장양은 이신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아, 한국에 머무는 동안 제자들과 더불어 한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리쟈와 수행원들은 호텔에서 지내기로 했다.
‘아무래도 딴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모르겠군.’
지금껏 자폐증을 심하게 앓으며 산 장양이 이신을 만나고서 확연히 변했다.
어쩌면 장첸 측은 며칠 더 지켜보고, 장양을 아예 이신에게 맡길 생각을 할지도 몰랐다.
그런 의심이 점점 확신으로 바뀐 것은 다음날 오후였다.
약 50억 원.
장첸 측으로부터 입금 받은 금액이었다.
약속했던 금액의 2배를 뛰어넘는 엄청난 거금이라 이신은 어안이 벙벙했다.
“약속보다 더 많은 금액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장양을 돌보러 집을 방문한 리쟈가 답했다.
“장양이 눈에 띠게 건강해진 것을 보고 노사님께서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부담스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별로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한때 중국 정계의 실력자였다면 50억 원 정도는 그다지 큰돈도 아닐 터였다.
다만,
“그럼 순수한 호의로 생각해도 되는군요?”
“물론입니다.”
“그분의 체면상, 이를 빌미로 다른 부탁을 하지는 않겠군요?”
“…….”
장첸을 걸고넘어지자 예상대로 리쟈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순수한 호의에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죠.”
“싫습니다.”
“……?!”
말을 꺼내보기도 전에 칼 거절!
당황한 리쟈를 남겨놓고 이신은 등을 돌렸다.
출근 준비를 하는 이신에게 리쟈가 쫓아와서 따졌다.
“무슨 말인지 들어보지도 않고……!”
“난 환자를 돌봐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애를 봐주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요.”
“그런 번거로운 일들은 제가 맡으면 돼요. 그리고 저도 이신 씨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아요. 당신은 하기 싫은 일이면 천금을 줘도 안 하시죠!”
“그래서 싫다는 겁니다.”
“정말 싫었으면 베이징에 오지도 않으셨겠지요.”
“…….”
“나름대로 장양에게 관심이 있으셨던 게 아닌가요?”
이번에는 이신이 대답을 못했다. 그녀의 지적이 옳았다.
장양의 플레이 영상을 보고 관심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천금을 줘도 거절했을 것이다.
“노사님도 저도 아주 간곡하게 청할게요.”
그러더니 갑자기 리쟈는 이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
이신은 깜짝 놀랐다.
리쟈는 성격상 누군가에게 쉽게 굽히는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놀란 이신에게 그녀가 말했다.
“장양에게 프로게이머로서의 자질이 있다면, 부디 그 길을 열어주십시오. 그 아이가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제몫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왜 당신이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는 겁니까?”
“전 노사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분을 위해서라면 제 무릎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리쟈도 삶에 어떤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구미가 당기긴 한데.’
이신은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다.
확실히 장양은 자질이 있다.
전략과 심리전에 있어 부족함이 많지만, 장양의 괴물은 이를 능가하는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장양이 함께 한국에 올 때부터 이신은 리쟈의 제안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
제자들이야 이신이 집에 데리고 살아도 각자 알아서 자기 삶을 챙길 줄을 안다.
오히려 집안 살림 같은 잘잘한 부분은 이신이 제자들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장양은 그야말로 한없이 어린애인 것이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큰 진전이 있었으니, 내 능력으로 치유할 수 있을 지도 몰라.’
이신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일상생활은 어떻게 할 겁니까?”
“이신 씨의 댁과 같은 건물이나 단지의 집을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럼 일상생활은 리쟈가 돌본다는 뜻이었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승낙해 주시는 겁니까?”
“예. 대신 프로 생활에 적응을 못하거나 내 말에 거역할 시는 언제든 내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적어도 그 아이가 이신 씨의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진 않습니다. 다른 부분은 차차 노력해나가야 하는데, 부디 적응할 때까지는 이해하고 도와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그제야 리쟈는 밝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장첸 노사가 용케도 삶의 낙이었던 손자를 한국으로 떠나보낼 결심을 했군.’
손자를 끔찍이 아끼던 장첸 노사를 생각하면 의외다 싶었다.
그날, 이신은 제자들은 물론 장양도 연습실에 데려갔다.
그리고 장양을 모두에게 소개했다.
“새로운 연습생이다. 자폐증이라 내가 데리고 다닌다. 저 여자는 얘 보호자다. 이상.”
이신다운 짧은 소개. 리쟈는 그 성의 없는 소개에 울컥했는지 눈매가 서늘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양을 내려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인사해.”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고 있자 무서웠는지 이신의 소매를 꽈악 붙잡고 있던 장양.
하지만 이신이 명령하자 조심스럽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짝짝짝!
선수들과 연습생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그렇게 올도어SCC의 최연소 연습생이 탄생했다.
다들 장양을 귀여워하는 눈치였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극히 꺼려하는 것 같아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음료나 간식거리를 사면 꼭 챙겨주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양에게 특혜를 줘서는 안 되는 법.
이신은 다른 1군 선수들과 연습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장양의 연습상대는 바로 수석코치 최환열이 맡았다.
한국 e스포츠의 레전드였던 최환열.
이미 은퇴를 했고 나이가 들어 피지컬이 떨어졌지만,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련함과 아직 녹슬지 않은 컨트롤 솜씨가 있었다.
지금도 웬만한 프로팀의 1.5군쯤은 되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최환열이 첫 판에서 장양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맵 센터 지역을 놓고 벌어진 난투.
장양은 쐐기충, 바퀴, 독침충, 촉수충 등 4종류의 병력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며 최환열의 진출 병력과 싸웠다.
처음에는 최환열의 예술적인 컨트롤 스킬에 밀렸다.
장양 역시 기계처럼 정교한 컨트롤 능력을 가졌지만, 최환열은 인류의 장점을 100% 이상 살릴 줄을 알았다.
그러자 장양은 바로 패턴을 바꿨다.
병력을 네 갈래로 나눠버리고는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난전을 펼친 것이다.
네 개로 분산되어 각기 따로 전투를 수행하는 장양의 병력들.
그것들이 마치 하나의 정신으로 연결되어 수족처럼 움직이는 듯했다.
짐승의 본능과 같은 판단이었다.
장양은 많은 게임 경험으로 자신보다 멀티태스킹이 좋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싸우면 자신이 대체로 이긴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알고 있었다.
피지컬과 멀티태스킹이 부족한 최환열이 진땀을 흘렸다.
‘곤란한데.’
이신은 여기서 최환열이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구겨지는 최환열의 자존심이야 별 일 ㄴ아니다.
현역도 아닌데 지는 게 대수겠는가?
하지만 장양은 더 강한 상대와 싸우고 싶어서 이신에게 떼를 쓸지도 몰랐다.
‘당분간은 환열이 형이 장양을 맡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러다가 문득 이신은 자신의 능력이 떠올랐다.
‘어디 한 번?’
이신은 아무도 몰래 최환열에게 치유의 힘을 보냈다.
몸속에서 꿈틀거리며 나온 마력이 최환열에게 스며들었다.
그러자,
타타타타타탁!
기계식 키보드를 두들기는 최환열의 손가락이 아까보다 확연히 빨라졌다.
몸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았던 고령의 최환열.
어떻게 해야 막아낼 수 있고 이길 수 있는지 머리는 아는데 몸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고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일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이신의 치유를 받자, 별안간 최환열은 그야말로 보병이 각성제 흡입한 것처럼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진에 들어온 하늘군주의 촉수충 드롭을 불과 보병 3명으로 막아냈다.
촉수가 뻗어올 때마다 옆으로 움직여 피하는 특유의 컨트롤이었다.
동시에 맵 센터에서 장양이 덮치자, 여기에도 반응했다.
세 방향에서 덮쳐오는 괴물들.
최환열은 그 순간, 포격모드가 되어 있는 기동포탑을 내팽개치고 보병과 의무병만 달렸다.
그대로 병영 병력이 두 갈래로 나뉘어서 확장 기지와 본진 앞마당을 일시에 습격했다.
장양의 얼굴에 당혹의 기색이 어렸다.
결국 최환열의 병력은 전멸했지만, 장양에게 큰 피해를 주는 데 성공.
7대 3으로 불리했던 상황을 6대 4 정도로 끌어올렸다고 봐야 했다.
최환열은 마치 현역 시절처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게임에 몰두했다.
장양에게 받은 피해 상황을 복구하고 디펜스를 갖췄다.
다시 마련한 병력을 진출.
동시에 9시 지역에 몰래 확장을 시도.
진출 병력이 항공수송선까지 동원해 최환열 특유의 흔들기를 펼쳤다.
그렇게 현혹시켜놓고는, 그 틈에 9시 몰래 확장 기지를 돌려 자원 확보!
이제 상황은 5대 5였다.
잠시 휴식을 하던 선수들이 최환열과 장양의 대결을 구경했다.
잠깐 보려다가 시선이 붙잡혀 계속 보게 되었다.
어느새 관객이 점점 많아졌다.
최환열은 자신의 현역 시절 장기인 후반 병영 체제를 구사했다.
너무 손이 많이 가는 전략 형태. 나이 들고서는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바로 그 운영이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클래식한 명경기!
선수들은 두 사람의 대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끝내,
-Yang: GG.
“으와! 봤어? 다들 봤냐?”
최환열이 이어폰을 뽑고 신이 나서 소리쳤다.
“와아아!”
“진짜 쩐다!”
“약 빠셨나? 은퇴한 분 실력이 왜 저래?”
“후반 병영 체제 나도 손 안 따라서 못하는 건데…….”
“아니, 왜 코치가 연습하다가 인생 경기를 하고 그러세요!”
선수들이 감탄하다 못해 경악했다.
이신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효과가 너무 좋잖아?’
왜 진즉에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