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73
272화 책사(2)
이신과 모의전을 하면서 조아생 뮈라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대체 뭘 하는 거야? 생각 안 하고 싸우니까 머리는 편하지?”
“생각이 없으면 할 일이 없어서 여유 넘치는 그 작은 두뇌로 카운트라도 세.”
“기본적인 테크 트리는 좀 잡고 시작을 하란 말이야.”
“너 지금 전장 지형도 모르지? 머저리인 게 자랑스러워?”
생전과 사후를 통틀어 여태껏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모욕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신이 정말 언행일치가 뚜렷한 스승이라는 것이다.
말만 앞세우는 게 아니라, 정말로 조아생 뮈라로 하여금 자신이 멍청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했다.
“끄응, 조금 쉬었다 하지!”
모의전을 또 패배로 장식한 조아생 뮈라는 부아가 치미는 걸 참으며 말했다.
이신은 그럼 그러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날 열 받게 한 놈은 네가 처음이다!”
“그 서열에 너처럼 생각 없이 싸우는 계약자도 없겠지.”
“난 원래 생각을 하면서 싸우면 더 안 되는 타입이야!”
자랑스럽게 말하는 조아생 뮈라.
이신은 혀를 찼다.
“그러니까 더 높이 못 올라가고 하위 서열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
“뭐야!”
“상위로 가면 너처럼 잘 싸우면서 생각도 있는 계약자가 널리고 널렸을 거라고 보는데.”
“에이, 그건 좀 아니지. 역사를 통틀어서 나처럼 잘 싸운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조아생 뮈라는 자기 가슴을 탕탕 치며 거만하게 말했다.
“난 주먹 하나로 나폴리의 왕이 된 남자야!”
“그게 똑똑한 나폴레옹 밑에서 싸운 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뭐, 그런 면이 없지는 않지.”
그 점은 순순히 인정하는 조아생 뮈라였다.
실제로 나폴레옹을 배신하고 등지고서 그는 얼마 안 있어 몰락하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는 너야말로 참모가 필요해 보이는군.”
이신이 말을 이었다.
“계약자로서 네가 서열전을 얼마나 잘 치르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모의전 상대로서 좀 더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이신이 보기에 조아생 뮈라는 제대로 된 빌드 오더도 모른 채 즉흥적인 전략만 주구장창 시도하며 의외성만 노리는 것으로 보였다.
승리를 만들어낼 줄을 모르고 반쯤은 행운에 기대는 그런 방식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흐음, 참모라. 그것 참 애매하단 말이야.”
“뭐가?”
“내가 오랫동안 마계에서 지내면서 내로라하는 전략가들이 계약자로 나타났다가 몰락해서 사라지는 경우를 한두 번 보는 줄 알아? 이게 또 전쟁이랑은 달라서 참 머리 좋은 양반이었다고 서열전을 잘하는 건 아니란 말이지. 이해 돼?”
이해되다마다.
‘그야 뛰어난 군인이라고 게임을 잘하는 건 아니니까.’
이신이 말했다.
“참모라고 하면 전쟁에서 실적이 있었던 전략가를 생각하기가 쉬운데, 나라면 행정가 쪽을 살피겠어.”
“행정? 아, 듣고 보니 그럴 듯한데? 돈과 시간이 중요하니까 그쪽에 밝은 사람이 좋겠어.”
조아생 뮈라의 얼굴에 비로소 구미가 당긴다는 표정이 나타났다.
“그럼 참모로 삼을 만한 사람이 있나 살펴봐야겠군.”
그 뒤로 조아생 뮈라는 몇 판을 더 모의전 상대로 해주다가 돌아가 버렸다.
연습을 마치고 돌아온 이신은 조아생 뮈라와 했던 모의전 기록을 전부 노트에 옮겨 적으며 분석을 시작했다.
‘역시 초반부터 압박을 가하는 것이 오크로서는 가장 효과적이군.’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힘을 받는 휴먼.
초중반에 강력한 오크.
오크로서는 초반부터 강하게 휴먼을 압박하는 전략 형태가 가장 합리적이었다.
설령 초반에 끝장을 보려는 게 아니더라도, 휴먼으로 하여금 방어에 마력을 쓰게 만들어서 성장을 억제시키는 압박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상대는 항우니까.’
사도에게 빙의해서 자신의 엄청난 무력을 펼칠 수 있다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피차 병력이 얼마 없는 초반일수록 개인의 용맹이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 점을 노리고, 조아생 뮈라의 경우는 가끔씩 오크 노예에 빙의해 극 초반에 맨주먹으로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기습 전법을 쓰기도 했다.
조아생 뮈라가 떠올린 발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효과가 좋은 전략이었다.
‘방어를 탄탄히 다지면서 시작을 해야겠군.’
항우가 자신의 용맹을 앞세운다면, 이신으로서는 대항할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았다.
‘이존효나 질 드 레, 서영을 소환한다면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그 세 사도를 소환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신의 사도 중 가장 강한 이존효는 아쉽게도 창병이었다.
말을 타지 않아서 불리한 면이 있었다.
그 불리함이 상쇄되려면 그리핀을 소환해서 태워야 한다.
하지만 그리핀을 소환하려면 테크 트리를 충분히 거쳐야 한다.
오크가 오크창기병을 소환하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걸린다.
이는 질 드 레나 서영 같은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초반의 압박은 용맹스러운 사도가 아니라, 심시티와 전술로서 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궁병 중에서 새로운 사도를 구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이신이 안고 있는 고민에 대해 질 드 레가 건넨 조언이었다.
“지금 있는 사도들 중에 한 사람을 포기하라는 건가?”
이신은 의외의 조언에 놀라 그렇게 물었다.
질 드 레는 고개를 저었다.
“권속이자 하급 악마가 된 사도라면, 사도의 자리에서 물러나고도 여전히 주군의 곁에 있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신은 항우의 참모도 그런 형태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어차피 서열전에서 전장에 소환할 수 없다면 사도로 계속 둘 필요도 없는 게 아닌가?
어차피 자기 권속의 악마라면 서열전에서 소환해 써먹지 못하더라도 평소에 함께 전략을 짜고 모의전 상대가 되어주는 역할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중 서열전에서의 활약 빈도가 낮은 사도를 그런 식으로 돌리고 초반에 빨리 소환할 수 있는 궁병 중에서 활을 잘 쏘는 인물을 사도로 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괜찮은 방법이긴 한데 아직은 현장에서 쓸모가 없는 사도가 없군.”
콜럼버스는 정찰에 필수적.
이존효의 용맹은 당연히 서열전에서 소환해 써먹어야 가치가 있다.
서영 또한 마찬가지.
포격에 능한 마르몽의 감각도 현장에서 빛을 발하는 타입.
그렇다면 남은 건 질 드 레였다.
질 드 레는 이신의 참모 역할도 하고 모의전 상대로 많이 활약하므로, 사도에서 제외해도 여전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역시 아깝지.’
현장지휘관으로서의 질 드 레의 가치 또한 무시할 수가 없었다.
병력을 20명까지 휘하에 넣어 자유자재로 통솔하는 질 드 레의 능력 ‘지휘’는 게임으로 치자면 이신의 마이크로 컨트롤이나 다음 없었다.
똑같이 병력이 20명씩 있으면 질 드 레가 있는 이신이 무조건 이긴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질 드 레는 용맹과 지략을 겸비한 타입으로, 검술 실력 또한 무시하지 못했다.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은 이대로 한다.”
“예.”
이신은 질 드 레와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수립해 나갔다.
‘초반은 콜럼버스의 역할이 크다.’
정찰에 특화되어 있고, 여차 하면 이신이 빙의해서 치유 능력을 펼쳐야 했다.
게다가 콜럼버스가 가진 무기 마비침은 항우의 무력에 대해 좋은 카운터가 될 수 있었다.
격렬히 싸우는 순간에 1초간 마비시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니 말이다.
즉, 콜럼버스는 서열전 내내 아껴두어서 항우에 대한 스나이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큰 틀의 전략은 운영 대결.
수비적인 형태로 안정적으로 성장해서 규모가 큰 싸움을 하겠다는 의지였다.
“오크창기병과 오크궁기병의 조합은 무섭지만, 그게 큰 위력을 발휘하는 건 중반까지입니다.”
역사가 말해준다.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맹위를 떨치던 북방 유목민족들은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점 쇠락했다.
서열전 양상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휴먼이 점점 디펜스 라인을 구축하면서 영역을 늘려나가면 결국 밀어낼 수가 있다.
석궁병, 기사, 그리핀, 마법사, 투석기 등 보다 다채롭게 병과를 구성하면 결국 오크에게 밀릴 이유가 없게 되는 것.
“투석기와 마법사 위주가 괜찮아 보입니다.”
질 드 레가 의견을 냈다.
“지상전에서 강력한 기동성과 공격력을 가진 오크를 당해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다 뛰어난 기동력을 무기로 삼자고 그리핀으로 공중전 전력을 키워도 손해는 마찬가집니다.”
“그렇겠지.”
이신도 오크의 특성을 잘 연구했기 때문에 이에 동의했다.
그리핀 같은 비행 유닛은 오크궁기병의 밥이 될 소지가 높았다.
하늘을 날지는 못하지만 말을 타고 빠르게 다닐 수 있으며, 그리핀을 발견한 즉시 활로 집중 사격을 해서 격추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기사단 위주로 우리도 맞대응하자니…….”
“상대가 원하는 싸움을 해주면 안 됩니다. 주군께서 하신 말씀이시지요.”
이신은 잘 배운 제자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기사단과 그리핀에 태운 석궁병이라는 조합으로 오크의 기마군단에 맞상대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싸움에 자신이 있는 항우에게 말 타고 싸우자고 한 번 붙어보자고 소리치는 꼴이다.
승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항우라면 호승심이 생겨 좋다고 덤벼들 게 뻔하지 않은가.
게다가 항우는 야전사령관으로서의 전술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한 번 해보지.”
다음 날.
이신은 또다시 조아생 뮈라를 불러서 모의전을 치렀다.
조아생 뮈라는 역시나 대단히 싸움을 잘했지만, 콜럼버스의 마비침 때문에 활약의 순간마다 번번이 주춤거려야 했다.
콜럼버스를 스나이퍼로 활용하는 방침도 큰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었다.
조아생 뮈라의 공격을 계속 격퇴해 나가며 투석기와 마법사 위주로 병력을 편성.
충분한 병력이 모일 때마다 진출해서 방어선을 올리고 마력석 채집장을 새로 가져갔다.
큰 규모의 싸움이 되자 조아생 뮈라는 맥을 못 추고 갈팡질팡했다.
“제기랄! 졌다!”
조아생 뮈라는 짜증이 치밀어 더 싸워보지도 않고 곧장 패배를 선언했다.
“포기가 빠르군.”
“더 싸워봐야 질 게 뻔하잖아?”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궁리해 봤어야지.”
“아, 됐어! 내 머리로는 그런 방법 안 떠올라.”
“그리고 끝까지 싸워서 처참하게 져 봐야 자기가 왜 졌는지 몸으로 알 게 아니냐.”
“됐고 일단 좀 쉬자고.”
조아생 뮈라는 잔뜩 챙겨온 술을 한 병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술을 워낙 좋아해서 모의전이 끝날 때마다 마시곤 하는 조아생 뮈라였다.
‘싸움 잘하고 참을성 약한 인간들의 공통점인가?’
조아생 뮈라는 훌륭한 모의전 상대였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 전세가 이신에게로 서서히 기울면 그때부터 쉽게 무너져 버렸다.
실제 서열전이었다면 저렇게 포기가 빠르지 않을 텐데, 모의전이다 보니 성질에 못 이겨서 금방 싫증나 버린 것이었다.
“주군, 그래도 성과는 충분합니다. 공격을 모두 막아내며 싸움을 중반 이후로 끌어가는 데는 성공했으니까요.”
질 드 레가 나직이 말했다.
이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하면 이신이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끝났다.
남은 변수는 악마로서의 항우의 능력, 그리고 항우의 참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