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96
295화 수학(1)
기내.
주디는 자러 침실로 들어갔고, 나머지 세 제자들은 게임 룸에서 놀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신은 가만히 책을 읽고 있었는데, 문득 바로 맞은편 자리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이신 씨.”
“……?”
그제야 이신은 맞은편에 리쟈가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집중력이 좋으시군요.”
“습관입니다.”
정확히는 유전.
아버지도 책을 읽고 있으면 누가 서재에 들어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진지하게 상의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안 됩니다.”
말도 안 들어보고 거절하는 이신의 태도에 리쟈는 당황해 버렸다.
“얘기하기 싫다는 말씀이십니까?”
“장양은 올도어SCC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리쟈.
말을 들어보기도 전에 용건을 알고 즉답해 버리는 이신의 화법에, 그녀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어째서죠?”
“일단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에 이신 씨가 중국으로 진출을 하신다면 당연히 우리 양이도…….”
“장양은 올도어SCC에게 꼭 필요한 선수입니다.”
“만약에 이신 씨가 양이와 함께 SC스타즈로 이적하신다면, SC스타즈는 올도어SCC에 많은 이적료를 안겨줄 수 있을 거예요. 그 돈이면 다른 선수를 영입할 수 있겠죠.”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신이 말했다.
“사실 장양이 중국까지 날 쫓아온 데도 전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요?”
“올도어SCC에 남겨놓는 것은 제 나름대로 장양의 장래를 배려한 것입니다.”
리쟈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이신이 설명했다.
“이제야 차이나 존 같은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팀 연습실에 출근을 하고, 훈련을 하고, 경기에 출전합니다. 말은 여전히 없지만 제스처로 나름대로 의사소통도 하지요.”
“알아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색내려고 한 말이 아닙니다. 내가 없으면 불안해하던 애가 이제야 간신히 프로로서 생활할 수 있게 된 겁니다.”
“…….”
“그런데 나와 함께 중국에? 낯선 환경에서 낯선 팀 동료들과 부대끼며 다시 적응을 하라고요?”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장담컨대 다시 제자리걸음이 될 겁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게 의존하게 될 겁니다.”
“…그런 점은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다. 이제는 내게서 독립해야 할 때입니다. 제가 없어도 프로게이머로서 생활해야 합니다.”
리쟈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늘 장양을 사회적 약자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시기에 있다는 것을 자꾸만 까먹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 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심한 자폐증을 앓았던 장양이기에, 그녀나 장양의 부모나 장첸 노사나 과보호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 양이의 미래를 위해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지금처럼 장양이 좋아진 것 또한 이신 덕분이었다.
리쟈는 이 대화를 통해 더욱 이신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귀찮긴 합니다.”
“…….”
높아졌던 신뢰도가 다시 원상복구 되었다.
***
“일어나세요.”
“…벌써 다 왔나?”
이신은 부스스 눈을 떴다.
그런데 깨어난 장소는 공항이 아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화려한 침실이었다.
“슬슬 식사하셔야죠.”
이신을 흔들어 깨운 그레모리가 싱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랬다.
이신은 캐나다로 향하는 도중에 그레모리의 부름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자기 침실로 소환한 짓궂은 그레모리였다.
한숨을 쉰 이신은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늘 그렇듯이 화려하게 차려진 거대한 식탁이 보였다.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식사를 했는데, 원채 입이 짧은 이신임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이상하게도 마계의 음식은 하나같이 맛이 좋아서 자꾸만 먹게 되는 것이었다.
입에 안 대던 술까지 마시며 식사를 마무리.
이신은 슬슬 질문을 던졌다.
“다음 상대는 누구입니까?”
개인리그 결승전도 끝났겠다, 이제는 다소 여유가 있는 이신이었다.
돌아가도 어차피 휴가라 서둘러 적응을 할 필요가 없어 이제는 여유 있게 서열전을 준비할 수 있었다.
“다음 상대는 악마군주 푸르카스에요.”
“우리가 도전하는 겁니까?”
“후훗, 물론이죠.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간 큰 악마군주는 없으니까요.”
연승행진을 거듭한 이신.
그 덕에 악마군주 그레모리는 예전에 추락하기 전보다 더 높은 성세를 자랑하게 되었다.
당연히 상승세에 있는 그레모리와 이신에게 도전해 오는 악마군주는 없었다.
한창 기세가 좋은 적과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푸르카스는 철학을 비롯해 수사학·논리학·천문학·화점술에 조예가 깊은 악마이지요. 그는 자기 성향에 맞는 사람을 계약자로 맞이했다고 들었어요.”
“그게 누구입니까?”
“니콜라 폰타나라는 사람인데 들어보셨나요?”
이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니콜라 폰타나?
어디서 언뜻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통 알 수가 없었다.
“근래에 들어 가장 상승세를 떨친 계약자를 3명 꼽으라면 카이저, 항우와 더불어서 그자가 손꼽히곤 해요.”
항우도 이전까지는 비상식적인 용맹을 바탕으로 서열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떨쳤었다.
최하위에서 지금까지 이례적인 연승행진을 하고 있는 이신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두 사람과 함께 손꼽힌다면 필시 대단한 인물일 터였다.
하지만 이신은 도무지 니콜라 폰타나라는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서열전에서 활약을 떨쳤으면 살아생전에도 대단한 위인이었을 텐데 말이다.
“종족이 무엇입니까?”
“마물이라고 하더군요.”
다행히 가장 보편적인 종족인 마물이었다.
질 드 레 같은 훌륭한 연습 상대도 있는 이신으로서는 가장 맞서기 익숙한 종족이었다.
“한 번 알아보고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식사를 마치고서 자신의 영지로 배정된 궁전 뒤뜰로 향했다.
그런데 자신의 영지에 도착한 이신은 깜짝 놀랐다.
원래 그의 영지였던 오두막 한 채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대신 귀족의 별장쯤 되어 보이는 화려한 저택이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때였다.
저택 안에서 질 드 레가 걸어 나왔다.
“주군, 오셨습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 주군께서 중급 악마로 격상되신 기념으로 악마군주 그레모리 님께서 선물을 해주셨습니다.”
저택은 무려 5층 높이라 사도 5인을 모두 데리고 살아도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규모도 더 넓어진 것이, 확실히 그레모리가 제대로 선물을 해준 셈이었다.
“주군을 뵙습니다!”
“오셨습니까, 주군!”
사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인사했다.
이신은 그들 다섯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놓고 물었다.
“이중에 니콜라 폰타나라는 자를 아는 사람이 있나?”
“니콜라 폰타나? 그게 누구지?”
“서양인이니 우리는 알 리가 없군.”
중국 출신인 이존효나 서영은 당연히 알지 못했다.
“그런 이름의 계약자가 있다는 것은 들어봤지만 자세한 건 모릅니다. 다만 이름으로 보아 이탈리아 출신이겠군요.”
비교적 박식한 편인 질 드 레도 고개를 젓기는 마찬가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콜럼버스도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르몽이 손을 들었다.
“주군, 제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예, 그는 16세기 이탈리아 사람으로, 탄도학의 시초 격이 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포병장교였던 오귀스트 마르몽은 니콜라 폰타나에 대해 아는 모양이었다.
“탄도학?”
“예, 그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베네치아가 오스만 튀르크의 위협을 받자 포병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탄도학을 개척했습니다.”
“학자로군.”
“예, 수학자입니다.”
이어지는 마르몽의 설명은 이러했다.
이전까지는 포탄이 완벽한 직선으로 움직이다가 수직으로 떨어진다고 믿었다.
그런데 니콜라 폰타나에 의해 포물선 궤도를 따른다는 것이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지금에서야 너무나 당연한 소리로 들리지만, 당시에는 편견을 깨고 새로운 증명을 하는 일이었으니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보통 본명보다는 타르탈리아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타르탈리아?”
이신의 눈이 번쩍 떠졌다. 니콜라 폰타나보다 더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신은 기억의 바다에서 타르탈리아에 대한 사항을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3차 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한 수학자?”
“예.”
‘어쩐지 들어본 이름이다 싶었다.’
이신은 그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수학자에 대해 조사하라는 과제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조사한 수학자들 가운데 타르탈리아가 있었다.
타르탈리아(Tartaglia: 말더듬이라는 뜻).
그는 3차 방정식의 해법(解法)을 밝혀낸 수학자였다.
이 3차 방정식에 대해서 또 다른 수학자인 지롤라모 카르다노와 얽힌 일화가 유명했다.
카르다노는 감언이설로 타르탈리아를 꾀어서 3차 방정식의 해법을 배운다.
남에게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지만, 카르다노는 멋대로 자기 이름으로 3차 방정식의 해법을 발표해 버렸다.
이 탓에 타르탈리아는 카르다노를 평생 저주하게 되었고, 카르다노는 수학계 최대의 사기꾼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카르다노는 그냥 사기꾼이 아니었다.
오히려 의학, 수학, 천문학 등 다방면에 업적을 남긴 천재였다.
타르탈리아의 3차 방정식 해법은 완전한 형태가 아니었고, 이를 바탕으로 카르다노가 완성한 것이었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카르다노의 정리’라 불린다.
‘옛날 생각나는군.’
악마군주 푸르카스의 계약자는 바로 타르탈리아, 즉 니콜라 폰타나였다.
‘수학자라…….’
이신의 표정이 다소 심각해졌다.
타르탈리아의 명성 때문에 두려워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서열전을 수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신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에 대한 수학적 접근!
다름 아닌 선진국 프로 팀의 전략연구팀에서 일하는 연구원 중 상당수가 수학 전공자인 것이다.
최대한 많은 자원을 채집하는 것.
최단시간에 전략에 걸맞은 병력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는 것.
거기에 상대 유닛의 공격력을 계산하여서 크고 작은 국지전의 승패를 견적 내는 것까지.
온통 수학이다.
서열전 또한 온통 계산 싸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난에 찌들고 말더듬 장애까지 안고 있었음에도 독학으로 당대 최고 수준의 수학을 깨친 타르탈리아였다.
그 정도로 학구열이 있는 자가 계약자가 되어 서열전에 뛰어들었다면,
‘서열전의 수학적인 접근을 안 했을 리가 없지.’
즉, 1초라도 더 시간을 단축시키려 하는 프로게이머의 마인드가 타르탈리아에게도 있을 게 분명했다.
어찌 보면 악마군주 푸르카스는 서열전의 본질을 일찍 알아채고 최적의 계약자를 얻었다고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