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03
403화 돌발 사태(2)
“와, 아까 봤어? 싸울 때 폭탄충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서 전술위성 격추시킨 거!”
“봤어.”
호들갑을 떠는 리우.
지우펑은 과묵한 어투로 답했다.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힘들다는 카이저의 전술위성 격추를 저렇게 잘 하는 괴물 플레이어는 처음 봤어. 저렇게 잘했는데도 지다니, 대체 카이저는 사람이 맞나?”
같은 괴물 플레이어로서 리우는 러너의 플레이가 존경스러웠고, 그럼에도 끝내 심리전에서 승리한 카이저가 두려웠다.
“진법(陣法).”
지우펑이 나직이 말했다.
“진법이라고?”
“언제나 완벽하게 진을 펼친다.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병력을 완벽하게 포진(布陣)시켜.”
“하지만 전투를 잘 살펴보면 러너도 잘 싸웠어. 한 번도 잘못 싸워서 낭패를 당하지 않았다고.”
리우의 말이 옳았다.
이 세상에 카이저를 상대로 저렇게까지 대등하게 전투를 벌여 치열하게 치고받을 수 있는 괴물 플레이어는 없었다.
러너는 도리어 난전 능력에서는 카이저보다 우위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저럴 수 있는 건 오직 러너뿐이었다.
“똑같이 진형이 완벽하면 인류가 우세하지.”
“아, 그건 그렇지.”
리우는 지우펑의 말을 인정했다.
인류는 강력한 한 방.
괴물은 대량 생산한 병력을 끊임없이 투입하는 소모전이다.
즉, 둘이 똑같이 잘 싸우면 첫 전투의 손익이야 비슷해도 결국 인류의 승리.
계속 괴물의 추가 병력이 올 테지만, 그전에 보다 유리한 위치로 이동해서 완벽하게 포진을 할 여유가 생긴다.
그럼 두 번째 전투부터는 괴물이 인류보다 지형이나 진형에서 조금씩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전투를 치를 때마다 병력 교환을 잘해내지 못하면, 어느새 인류의 병력이 지척까지 당도하여서 기동포탑이 포격모드로 자리 잡아 버린다.
괴물은 그런 중압감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카이저는 지우펑의 말마따나 진법의 마스터였다.
몇 초의 짧은 순간에도 빠르게 컨트롤해 완벽한 포진을 만들고 전투에 임한다.
그러니 러너가 받았을 압박감이 오죽했겠는가?
상대는 매 전투마다 한 번도 실수로 싸운 적이 없는데.
“1세트의 여왕괴물, 2세트의 쐐기충. 공통점이 뭔지 알아?”
“음, 비행 유닛?”
“그래.”
“아…….”
그제야 리우는 카이저가 거둔 2승의 비결을 깨달았다.
완벽한 포진을 이루는 카이저의 병력을 상대하자면 당연히 버거워진다.
자연스럽게도 지상전이 아닌, 비행유닛으로 타개책을 찾고 싶어지게 마련이었다.
특히나 러너는 폭탄충, 쐐기충, 여왕괴물 등 비행유닛을 잘 다루니 말이다.
“그래서 스텔스 전투기와 로켓 프리깃으로 계속 카운터를 칠 수 있었구나.”
리우는 더더욱 오싹해졌다.
굉장히 똑똑하지 않은가!
그렇게 상대의 심리를 읽고 움직였다는 게.
“차라리 계속 지상전으로 힘 싸움을 해야 했다. 힘들어도 러너는 그걸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없지 않았어.”
지극히 공격적인 카이저를 상대로, 난전으로 맞불 놓겠다는 발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정면으로 들이받을 파워가 있는 러너였다면, 지상전 난전도 가능했다.
성공하면 효율이 높으나 그만큼 리스크도 큰 비행유닛에서 해답을 찾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2세트에서 스코어는 2대 0. 끝났군. 금메달은 카이저 거야.”
지우펑은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이 결론 내려버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애증을 담아 대형화면에 비치는 카이저의 플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2세트 종료 후 15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진 상황.
대형화면은 2세트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휴식 시간 동안 지루해할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해설진도 그 장면을 보며 계속 분석과 평가를 내리는 모습이었다.
“계속 저렇게 카운터를 당했으니 비행 유닛을 또 사용하기는 어렵겠어.”
리우가 중얼거렸다.
지우펑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스코어도 궁지로 몰렸으니까 더욱 선택의 폭에 제약이 걸렸다. 멘탈도 더욱 흔들리고 있겠지.”
카이저는 이미 거의 다 이겨 놓은 상태였다.
다전제의 마술사라 불리는 솜씨가 그대로 발휘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 * *
“난 선생님이 3세트에서 뭘 하실지 알 것 같은데.”
차이가 말했다.
“뭔데?”
존이 물었다.
차이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식견이 대단해서 올도어SCC의 전략팀을 상대로도 자신의 의견을 곧잘 어필하곤 했다.
때문에 이신의 다른 제자들도 차이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었다.
“2항공 스텔스 전투기.”
“2항공을?”
놀란 존에게 차이가 말했다.
“지금 상대는 멘탈이 크게 약해진 상태야.”
“그야 그렇지. 5판 3선에서 이제 2세트인데 2대 0이니까.”
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이가 계속 말했다.
“그보다 자신이 준비했던 전략이 전부 읽히고 카운터를 당했잖아. 자신의 생각을 전부 상대가 알고 있다는 기분은 정말 고통스럽지.”
“그래서 스텔스 전투기로 바스라지기 일보직전의 멘탈을 더 흔든다는 거구나?”
주디가 물었다.
차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선생님답지 않아?”
가만히 듣던 장양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괴물 플레이어인 장양은 요번에 이신의 연습을 수없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더욱 잘 알았다.
스텔스 전투기의 견제를 당하는 괴물의 심정은 정말 짜증난다.
종이비행기처럼 체력이 약한 주제에, 뿅뿅 빔을 쏴서 일벌레를 죽이고 잽싸게 달아난다.
심지어 스텔스 모드가 개발되면 모습을 감추기까지 하니 더욱 상대하기 번거로웠다.
지금 멘탈에 상처 입고 궁지에 몰린 박영호에게 그런 전략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박영호 선수도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아.”
존이 말했다.
차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지. 궁지에 몰렸다고 쉽게 무너졌으면 철벽괴물이라는 별명도 얻지 못했을 테니까.”
차이의 예견대로 된다면 3세트는 창과 방패의 대결이 될 게 분명했다.
계속 귀찮게 만들며 멘탈을 흔드는 이신의 견제를 박영호가 얼마나 침착하게 잘 대처하느냐의 문제였다.
이윽고 휴식 시간이 끝나고 대형화면에 선수가 비춰졌다.
박영호였다.
박영호가 선수 대기실을 나와 무대로 향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힌 것이다.
“오오오오오!”
“러너! 러너! 러너!”
한 번만 더 지면 패배하는 상황.
궁지에 몰린 박영호는 매우 비장한 표정이었다.
이글거리는 눈빛이 대형화면을 똑바로 응시하자 관중들은 잘 싸우라며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박영호가 좀 더 분투를 해서 멋진 승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무대에 등장한 박영호에게 관중의 환호가 쏟아졌다.
박영호는 부스 안에 들어가 이어폰과 차음 헤드셋을 착용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이신이 선수 대기실에 나오는 모습이 잡혔다.
아무런 감정의 기복도 보이지 않는 평온한 모습.
긴장도 비장한 각오도 없는 편안한 표정은 이런 자리를 수없이 경험했던 강자의 여유가 보였다.
“선생님…….”
대형화면에 한 가득 클로즈업된 이신을 바라보며, 주디는 두 손을 모았다.
역시나 그의 가장 멋진 모습은 바로 지금 이 순간, 화려한 무대로 오를 때였다.
* * *
‘뭘 해야 할지 고민되는데.’
계속 따라 붙는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이신은 속으로 생각했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그냥 지난 2세트와 똑같이 정석적인 운영을 해도 된다.
2항공 스텔스 전투기 빌드도 구미가 당겼다.
박영호가 정신적으로 동요하고 있을 때 스텔스 전투기로 지속적인 게릴라를 펼쳐 괴롭혀주면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치즈 러시로 끝내버릴까?’
센터 2병영 같은 극단적인 올인성 치즈 러시라면 승산이 반반이었다.
박영호가 이걸 대비했다면 막히고, 대비 못했으면 무조건 이긴다.
하지만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코어 2-0.
이런 유리한 상황이라면, 초반에 끝내는 도박성 전략을 한 번쯤 시도해봄직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박영호도 이 점을 숙지하고 대비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난 아직 이번 그랑프리에서 한 번도 치즈 러시를 하지 않았다. 이걸 영호도 아마 염두에 두고 있을 거야.’
이신은 박영호를 알았다.
승부 근성이 대단하고 포기를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역전할 궁리를 하고 있을 터.
0승 2패의 상황에서 역전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유리하다고 3세트에서 치즈 러시를 시도한 상대의 수를 막아버리고 2-1로 흐름을 바꿔놓는 것이었다.
치즈 러시는 도박인 만큼 막히면 시도한 사람이 거의 맥없이 패배한다.
그럼 1패를 그냥 공짜로 상대에게 내준 셈이 된다.
2-0이면 막막하지만 손쉽게 2-1로 따라 붙은 상황이라면 충분히 역전을 노리기에 좋은 분위기인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로 박영호도 더 고민이 많을 터였다.
9일벌레 수정관 빌드를 쓰면, 바퀴가 빨리 생산되므로 상대의 치즈 러시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신이 치즈 러시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박영호는 그대로 가난한 채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가뜩이나 괴물은 인류를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자원 확보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가난하게 출발한다?
그건 일찍 뽑은 바퀴 6마리로 무언가 이득을 보지 않는 이상 불리한 출발일 수밖에 없었다.
2-0으로 지고 있는 입장에서 3세트마저 불리한 채로 출발하고 싶을까?
그런 비애가 있는 탓에 박영호의 고민은 이신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었다.
이것이 스코어를 리드하고 있는 입장의 강점이었다.
이신은 이 점을 이용한 심리전에 매우 능했다.
잠시 고민해 본 이신은 결정을 내렸다.
‘스텔스 전투기로 가야겠군.’
치즈 러시는 오히려 박영호의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한 번의 공격만 잘 막으면 되는 매우 심플한 상황이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 박영호의 멘탈을 흔드는 효과가 전혀 없었다.
차라리 스텔스 전투기로 끈질기게 괴롭히는 편이 좋았다.
‘오늘 비행 유닛을 써서 계속 지기만 했기 때문에 쐐기충을 사용 못할 거야.’
평소 같았으면 2항공 스텔스 전투기를 상대로 쐐기충을 뽑아서 공중전에 맞불을 놓기도 하는 패기만만한 박영호였다.
실제로 이번 그랑프리에서 주목받았던 인도의 천재 니노도 공중전을 벌였다가 박영호에게 탈탈 털리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1, 2세트 모두 비행 유닛을 뽑은 탓에 패배하고 2-0이 되어버렸다.
이런 심리적인 요인을 극복하고서 다시 쐐기충으로 스텔스 전투기에 대항한 공중전을 벌일 생각은 아마 못할 터.
‘영호가 수비적인 입장이 된다면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지.’
철통 수비를 하는 괴물.
그리고 스텔스 전투기로 계속 견제를 시도하는 이신.
이건 뻔한 공식이었다.
결국 이신의 끈질긴 괴롭힘에 못 이겨 무너지고 마는 괴물 말이다.
‘좀 더 분발해봐, 박영호. 이러면 내가 금메달 가져간다?’
이신은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파아앗!
돌연 눈앞에서 시공이 뒤틀리며 블랙홀 같은 검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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