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14
414화 투혼(4)
“작년 그랑프리 개인전 결승전을 기억하나?”
왕춘 감독이 물었다.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러너와 엔조의 대결이었잖습니까.”
“그날은 러너에게 큰 치욕이었을 거다.”
“그랬겠죠.”
그때의 스코어 결과는 3-1.
내용적 측면에서 더 처참했다.
운영 싸움에서 3패.
4일벌레 초반 러시로 간신히 1승.
운영 능력을 겨뤄 모두 지고, 치즈 러시로 간신히 한 번 이겼다는 것은 확연한 실력 차이를 뜻했다.
실제 러너의 역량을 생각하면, 그런 결과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치욕이었으리라.
치즈 러시나 올인은 프로게이머 사이에서 그런 인식이 있었다.
실력이 모자란 쪽이 강한 상대에게 시도하는 것.
그런 아픔을 맛봤던 러너는 전보다 더한 괴물이 되어 나타났다.
엔조 주앙을 3-1 스코어로 똑같이 되돌려주었다.
아마드 부티아를 동족전에서 짓밟아버렸다.
그런 러너가 결승 무대에서 넘고 싶은 상대인 카이저를 상대로 연속 올인 플레이를 한 것이다.
운영 대결에서 2연패를 하더니, 쓰러졌다가 깨어나는 등 컨디션이 안 좋은 카이저를 상대로 2연속 올인.
정말 체면이고 뭐고 전부 집어치워버리고 지저분하게 덤벼든 것.
그리고…….
“강하다.”
“예, 강하죠. 카이저도 러너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어요.”
네가 뭘 하든 소용없다는 메시지를 던져준 1, 2세트의 우위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5세트 역시 올인일 수 있다는 경계심이 카이저의 머릿속에 심어졌다.
상대의 올인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면, 카이저도 평소처럼 특유의 과감한 플레이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단자가 떠오르는군.”
“이단자?”
“프레데터(predator).”
“아!”
프레데터는 황병철의 닉네임.
프로리그에서 이신을 상대로 2연승을 거둬 강렬한 인상으로 떠올랐다.
비록 신 대 이단자라는 라이벌 구도는 한국에서만 통하지만, 해외에서도 몇몇 팬은 황병철을 기억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왕춘 감독도 그 중 하나였다.
“확실히 극단적인 올인성으로 카이저를 몇 번 꺾었죠.”
“결국 극단적인 올인이 카이저를 이길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한 모양인데, 러너는.”
러너는 전략연구팀과 함께 준비한 전략을 쓰지 않았다. 즉흥적인 올인으로 4세트를 승리했다.
그것이 카이저에 대항하는 러너의 판단이라는 뜻.
“하지만 프레데터도 결국은 카이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초기에 잠시 카이저와의 대결에서 3승 2패로 전적에서 우세를 띠어 유명했던 프레데터.
하지만 결국 그것은 초기에 반짝했던 백중세였다.
결국 카이저는 프레데터의 모든 것을 파악했고, 프레데터가 무엇을 하든지 전부 꿰뚫어보았다.
그래서 프레데터와 카이저의 라이벌 구도는 한국에서나 밀어주었지, 세계무대에서는 어림없는 프로모션이었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 카이저에게 예상 밖의 일격을 선사했던 프레데터의 역량은 폄하할 수 없었다.
왕춘 감독도 개인적으로 프레데터를 높이 평가했다.
은퇴하면 코치로 데려와서 선수들에게 컨트롤과 공격 전술을 전수하게 하고 싶었다.
‘이제 공군 프로팀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지?’
제대하면 한 번 잡아봐야겠다고 왕춘 감독은 생각했다.
친정팀인 화성전자에서도 프레데터를 차기 지도자로 내정하고 있을 테지만, 훨씬 더 좋은 대우 조건을 제시하면 그만이었다.
* * *
5세트 맵은 1세트와 동일한 유혈의 기억.
2연속 올인에 크게 데인 이신이나, 1세트에서 여왕괴물을 준비했다가 호되게 카운터 맞고 진 박영호나 머릿속이 복잡한 건 마찬가지였다.
박영호가 깊이 고민하는 것은 이신이 과연 1세트와 같은 1-1-1 빌드를 쓸 수 있느냐였다.
‘올인이 두렵다면 선뜻 쓸 수 없겠지?’
병영, 기갑정거장, 항공정거장을 1채씩 짓고 나서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가는 빌드 오더.
항공정거장까지 빠르게 테크 트리를 올린다는 장점이 있어, 상대 괴물의 체제에 따라 주력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닛이 다양했다.
하지만 테크 트리가 무섭게 빠른 만큼 초반에 허약하다.
박영호가 또 바퀴나 독침충, 촉수충 등으로 초반에 올인 러시를 해온다면 불안하다.
본래는 그런 상대의 의도에 맞춰서 고속전차의 비중을 높여 지뢰로 디펜스하는 유연함을 보여야 하는 고난이도의 빌드 오더인 것.
이신이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였다.
박영호의 매서운 올인이 그런 유연한 대응으로 막을 수 있을까?
그렇게 판단한다면 역시나 1-1-1 빌드 오더에 이은 토털 어택이라는 무결점 전략을 꺼내들 터였다.
하지만 그럴 자신이 없다면 역시 정석이 답이다.
비록 3, 4세트 모두 정석을 썼다가 올인에 당했지만, 그게 빌드 오더 탓은 아니었으니까.
이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박영호의 대응도 달라진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이신은 그 난이도 높고 위험천만한 전략을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카이저 본인은 지금 이 순간의 스스로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박영호는 문득 피식 웃었다.
‘이 양반이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판단하냐고?’
너무 쉬운 질문이었다.
박영호는 5세트의 전략을 확정했다.
* * *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승부는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와버렸습니다.
-다사다난했습니다. 2세트에서는 러너 선수가 흐르는 땀을 닦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싸워서 잠시 정지(Pause)를 요청했죠.
-그리고 3세트 시작되었을 때 카이저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아 경기를 속행했습니다만, 여전히 걱정되긴 합니다.
-경기가 끝나면 즉시 병원 가서 진단을 받아야죠. 카이저가 결승전 준비 때문에 너무 무리한 게 아닐까 싶어요.
-적당히 할 줄을 모르는 선수니까요. 그래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겠죠.
-그런 집념을 가진 건 카이저뿐만이 아닙니다. 5세트까지 승부를 끌고 온 러너! 그 역시 금메달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예, 러너도 패패승승승의 역전승이라는 드라마를 쓸 준비가 끝났습니다.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큰 감동과 여운을 남길 것은 확실합니다. 자, 5세트 시작합니다!
[Kaiser: 인류] [Runner: 괴물] [맵: 유혈의 기억.]최후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카이저의 스타팅 포인트는 5시, 이에 맞서는 러너는 11시에서 시작합니다.
-서로 대각선 거리에서 시작하네요. 치즈 러시나 올인에 대해 가로세로 위치보다 안전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의 허를 찌르는 경기도 많았죠. 둘 다 방심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은 양측 모두 생산유닛을 더 뽑으면서 열심히 자원 채집을 한다.
하지만 인구수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자, 양측의 빌드 오더가 결정되기 시작했다.
박영호는 평범하게 앞마당에 확장 기지를 지었다.
그리고 이신은 병영과 함께 광산에 제철소를 동시에 건설했다.
-어, 카이저가 제철소를 일찍 짓습니다. 기갑정거장을 바로 짓겠다는 뜻이죠?
-예, 역시나 기갑정거장에 이어 항공정거장까지 다이렉트로 짓겠다는 뜻입니다. 안드레이 이바노프를 잡아내고, 오늘 1세트에서 러너를 꺾었던 그 전략을 또 쓰겠다는 뜻이죠.
그리고 박영호의 빌드 오더도 눈에 띄었다.
박영호는 대각선 방향으로 정찰을 먼저 보냈다.
그리고 5시에 이신의 진영이 위치한 것을 확인.
서로 위치가 대각선 방면인 걸 확인한 순간, 박영호는 과감하게 3번째 부화실을 본진 구석에 지었다.
수정관도 광산도 없이 부화실만 3채!
이보다 더 부유할 수 없는 빌드 오더였다.
-러너가 정말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일단 정찰을 통해 서로의 위치가 대각선 방향이라는 걸 알았죠. 그걸 보자마자 가차 없이 3부화실을 가져갑니다.
-대각선 방향부터 정찰한 뒤에 3부화실, 빌드 오더가 아주 좋습니다. 즉흥적인 판단이라고 하기에는 정찰 타이밍이 정확했는데, 이건 카이저가 테크 트리에 집중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한 듯합니다.
그랬다.
이신은 병력이라고는 보병 1기밖에 없었다.
박영호의 2연속 올인에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자원을 아껴가며 테크 트리를 최대한 빠르게 올리는 데 주력한 것이다.
그리고 박영호는 이신이 그런 결정을 내릴 줄 알았다.
2연속 올인에 쓴 맛 좀 본 정도로 위축되어서 자기 플레이를 못한다?
그건 게임의 신답지 않았다.
박영호는 이신을 믿었다.
이신은 박영호가 본 사람 중 가장 자기 잘난 줄을 아는 작자였으니까.
-카이저의 정찰이 들어왔습니다만, 러너는 그야말로 배 째라는 식입니다.
이신의 건설로봇이 본진까지 들어와 정찰했지만, 박영호는 개의치 않았다.
3부화실 이후로 수정관과 광산을 동시에 올렸고, 일벌레를 팍팍 생산해 본진과 앞마당의 자원에 투입했다.
듬뿍듬뿍 자원을 파먹고 있었다.
앞마당을 늦게 가져간 대신 테크 트리를 빨리 올린 이신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렇게 뻔뻔할 정도로 부유하게 출발하는 괴물을 보면, 카이저가 앞마당에 참호 러시를 하는 식으로 응징을 가할 수 있을 텐데요?
참호 러시는 상대의 진영에 참호를 지어서 공격하는 전술을 뜻했다. 종족 별로 캐논포 러시, 촉수탑 러시 등도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전술은 역시 괴물을 상대하는 인류의 참호 러시였다.
하지만 이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박영호.
결국 이신도 참호 러시를 시전하지 못했다. 서로 너무 거리가 멀어 보병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대신 이신은 건설로봇으로 꼼꼼히 박영호가 어떤 체제를 갖출지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4마리 정도 생산된 바퀴에 의해 차단되었다.
-퍼엉!
건설로봇을 구석으로 몰아서 사냥해버리는 바퀴들!
-오, 러너의 컨디션이 아주 좋습니다.
-정말 괴물 중에서 가장 컨트롤이 좋은 선수를 꼽자면 역시 올해는 러너입니다. 바퀴로 요리조리 도망치는 건설로봇을 쫓아가 잡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알 만한 팬 분들은 다 알 겁니다.
체제를 보여주지 않고 이신의 정찰을 차단한 박영호.
그의 앞마당에 건설된 독침충 둥지를 이신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신도 개의치 않았다.
곧바로 막 생산된 첫 스텔스 전투기가 정찰을 하러 출발한 것이다.
더구나 2기까지 생산된 고속전차 역시 지뢰를 매설하며 지상 방어를 하고 있었다.
-카이저도 러너가 독침충 둥지를 지었을 거란 사실을 예상한 눈치입니다.
-하지만 4세트처럼 깜짝 올인을 해올 수도 있습니다. 그걸 파악하려면 지금 출발한 스텔스 전투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계속 돌아다니면서 주시해야 해요!
스텔스 전투기는 박영호의 본진에 도착하자마자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히이익……!
-히이이익……!
괴이한 울음을 내며, 독침충들이 생산 완료되었다.
놀랍게도 독침충들은 생산되자마자 각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물망처럼 본진에 들어온 스텔스 전투기를 둘러싼 형국!
순간적으로 번개 같이 펼쳐진 박영호의 엄청난 컨트롤이었다.
-칙칙칙칙!
독침충들이 일제히 독침을 발사했다.
스텔스 전투기는 좌우로 곡예를 펼치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탈출로에도 독침충 1마리가 열심히 달려온 상태였다.
-칙! 칙!
-퍼어엉!
“아!!”
“오오!”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었습니다.
-러너의 주특기죠. 1세트에서도 러너는 찔러볼 만한 틈이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5세트.
출발은 어느 면을 봐도 박영호가 웃는 그림이었다.
박영호의 집중력은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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