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52
452화 이변(2)
“내 눈이 의심스럽군.”
왕춘 감독이 중얼거렸다.
“징조는 최근 리플레이를 통해 느끼긴 했습니다만…….”
“실전에서는 연습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잘 파악하기 힘든 유형이긴 했지만요.”
“설마 리우가 저렇게…….”
왕춘 감독이 신음처럼 내뱉었다.
“저렇게 범용한 선수였던가.”
그랬다.
리우는 인류를 상대로 무난하게 지는 중이었다.
불리한 상황이라 견제를 해보지만, 맥락이 없는 단순한 기습이었던 터라 금방 진압 당했다.
몇 수 앞을 보지 않고 그냥 두는 바둑의 한 수, 혹은 눈속임 없는 마술과 같았다.
상대의 허를 찔러 절묘한 플레이를 해내던 평소의 모습은 없었다.
아니, 평소가 아니라 예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최근의 리우는 예전 같은 재기발랄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실전에서는 잘해주겠지 싶었지만, 이미 리우는 프로리그에서도 최근에 2연패를 했다.
그쯤 되면 운이 나빴다 해도 이제 슬슬 정신 차렸겠지 싶었지만, 오산이었다.
지금, 팀 내전에서도 리우는 형편없었다.
아니, 객관적으로 아직 SC스타즈의 1군으로 붙어 있을 실력이니 형편없다는 표현은 너무 가혹하리라.
하지만 결론적으로 리우의 최종 순위는 7위였다.
당연히 5인의 주전 엔트리에는 들지 못하는 실력이었다.
자신의 결과를 보며 리우도 얼굴을 붉혔다. 스스로도 굉장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대체 문제가 뭐지?”
“피지컬인가?”
“공격에서도 날카로움이 사라졌습니다.”
“판단 자체는 정확한 편이었는데…….”
왕춘 감독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전략팀 연구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잠겼다.
왕춘 감독은 같이 지켜보았던 이신에게 물었다.
“리우의 문제가 뭐 같습니까?”
이신도 이번 팀 내전에서 리우와 싸웠고 꺾어보았기에 묻는 것이었다.
“일단 패턴이 정형화됐습니다. 늘 했던 플레이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뭘 할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디테일이 무너졌습니다.”
“예?”
추상적인 말이라 왕춘 감독이 얼른 이해를 못하고 다시 물었다.
이신은 더 쉽고 직관적으로 답했다.
“게을러서 대충 했습니다.”
“게을러서……?”
“손이 많이 가는 까다로운 플레이를 피하고, 다소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난도 높은 플레이도 꺼리고, 어렵게 2중 3중으로 생각하기도 귀찮아했습니다. 그럼 저렇게 됩니다.”
“그건 다시 마음먹고 제대로 하면…….”
“그게 계속되면 그대로 실력으로 굳어집니다.”
왕춘 감독과 코칭스태프에게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들로서는 충격이었다.
리우의 게으른 천성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재능으로 재기발랄한 플레이를 곧잘 펼쳐 팀과 팬들에게 사랑 받았다. 유쾌한 성격과 어우러져 인기로 따지면 명성 높은 지우펑과 비슷할 정도.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분명 SC스타즈의 새로운 신성으로 추앙 받은 인기 스타였다.
“옛날에 몸담았던 팀에서 많이 봤습니다. 저런 유형. 감독님 입장에서는 많이 낯설 수 있겠군요.”
그 말을 남기고 이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영호와 함께 실전 연습실을 떠나면서 ‘이제 내가 1인자다’ ‘다음번엔 확실히 로켓 프리깃으로 쐐기충을 잡아서 그런 오해를 하지 않게 해주지’ 등의 잡담을 나눴다.
왕춘 감독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카이저의 옛날 팀이라면…….’
연봉도 제대로 주지 않아 법정까지 갔던 그 막장 팀이었다.
막장 팀에는 막장 팀에 어울리는 막장 선수들이 필히 있다.
당연히 왕춘 감독으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팀이나 선수들을 그렇게 막장으로 만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 * *
결국 다음 경기에서 리우는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4인 에이스 체제에서 1인이 빠져버린 SC스타즈는 2-3으로 프로리그 첫 패배를 기록했다.
주요 원인은 지우펑이 독감에 걸려 앓아누운 것이었다.
‘손쓸 겨를도 없군.’
박영호라면 늘 같이 다니므로 이신의 능력으로 회복시켜줄 수 있는데, 숙소에서 지내는 지우펑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병원에서 진단까지 받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이신이 회복을 걸어서 갑자기 완쾌시켜줄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이신의 능력이 밝혀지니 말이다.
이신과 박영호는 이번에도 제몫을 다해서 2승을 챙겨줬지만, 나머지 세 선수가 모두 패배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운도 없었고 리우의 추락과 지우펑의 건강 문제 등으로 팀의 사기가 저하된 게 컸다.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SC스타즈의 무패행진에 갑자기 찬물이 끼얹어진 셈이었다.
그 탓에 출전하지 않은 리우의 부진설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고, 왕춘 감독은 그런 리우의 케어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리우의 경기력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멘탈의 문제였기 때문에 억지로 훈련을 강요한다고 나아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나아지려고 노력한다면 모를까.’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진심은 스스로도 컨트롤을 못할 때가 많다.
부진이 가시화되자 리우도 마음잡고 노력하는 시늉을 했지만, 자기 진심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거였다.
리우는 지쳐 있었다.
늘 뺀질거리며 딴짓을 할 궁리만 하지만, 결국 게임에 임했을 때의 집중력과 감각은 남보다 뛰어났기에 잘할 수 있었으리라.
이제 지쳐서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지우펑의 복귀는 꽤 시간이 걸렸고, 복귀한 뒤에도 한동안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승리와 패배를 왔다 갔다 하자 굳건히 지키고 있던 1위 자리가 서서히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독주한다고 비판까지 받던 SC스타즈가 갑자기 흔들리는 모습에 업계에서는 다들 어안이 벙벙해진 눈치였다.
팀의 불화설이 돌았고, 심지어 이신과 박영호가 팀 내의 중국 선수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헛소문까지 생겼다.
“이렇게 불운이 겹치는군. 살다보면 이런 때도 있지.”
왕춘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리우는 정말로 할 말이 없는 표정이었고, 리우와 지우펑 대신 주전으로 출전했던 선수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지만, 하필이면 자신들이 팀의 두 에이스 대신 출전하자마자 ‘패배할 때’가 먼저 찾아왔으니 말이다.
왕춘 감독은 뜻밖에도 질책 대신 웃으며 말했다.
“뭐, 별수 있나. 그냥 좀 투덜거리다가 다시 일어서는 수밖에. 리우!”
“예!”
리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게임이 재미없니?”
“프로게이머 중에 게임에 안 질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게 리우다웠다.
“프로게이머가 된 걸 후회하니?”
“아뇨.”
“만약 이것 말고 네가 성공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글쎄요, 아마 없겠죠.”
“이 길을 그만 걷고 다른 진로를 알아본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비전을 따로 가지고 있니?”
“…아뇨.”
“그럼 됐다. 난 네가 금방 다시 네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리라 믿는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리우에 대한 일은 일단락 지었다.
왕춘 감독은 계속 말했다.
“다음 상대는 알다시피 상하이 게이밍이다.”
중국 리그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라이벌이었다.
“그들은 최근 들어 다시 우리의 라이벌 행세를 하고 싶은 모양인지 잔뜩 벼르고 있다.”
상하이 게이밍은 개막 첫날 대패를 당했지만 시즌 내내 열심히 승점을 챙기며 2위로 달리고 있었다.
승점 차이도 SC스타즈와 그리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SC스타즈가 워낙 3-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허다하게 이겼을 뿐, 상하이 게이밍도 3-1이든 3-2든 이겨가며 승점을 챙긴 건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우리는 부진을 털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나게 된 셈이다.”
왕춘 감독은 대형 스크린을 가리켰다.
거기에 상하이 게이밍 선수들의 플레이가 나오고 있었다.
“저놈들을 잡고 우리가 최고라는 걸 다시 입증한다.”
“옛!”
* * *
경기장에 관객들이 금세 가득 차버렸다.
SC스타즈 대 상하이 게이밍.
최근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SC스타즈지만 여전히 이신이라는 강력한 흥행 카드가 있어서 팬들을 경기장에 불러 모았다.
게다가 상하이 게이밍이 1위 자리를 되찾을 수 있는 중요한 경기였기에 상하이 게이밍을 응원하는 팬들 역시 모여들었다.
티켓이 삽시간에 다 팔려 버렸다.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경기를 중계하는 온라인 경기장도 접속자 숫자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어마어마한 흥행이었다.
“숫자 봐라.”
박영호가 혀를 내두르며 관객들을 둘러보았다.
“이 동네는 정말 장사가 호황임. 후덜덜하네여.”
“이상한 말투 관두지.”
“어허, 팀 서열 1위인 이 몸께서 무슨 말투를 쓰든 무슨 상관임?”
“역시 로켓 프리깃을 썼어야 했군.”
이신은 이를 갈았다.
로켓 프리깃으로 대공방어를 했으면 박영호와 쐐기충이 그렇게 활약하지 못했을 터였다.
평소답지 않게 안정적인 스타일을 구사하려다가 된통 당한 셈이었다.
“그럼 또 내가 폭탄충으로 기막히게 격추시켰겠죠.”
심히 잘난 체를 하며 그동안의 한풀이를 하는 박영호.
결국 이신은 최후의 수단을 썼다.
“금메달도 없는 놈이.”
“헐?!”
“내가 없을 때도 못 따, 내가 아팠을 때도 못 따…… 그냥 내가 하나 주랴?”
“방금 내 역린을 건드린 거임?!”
그랑프리 결승전 당시 이신이 실신했던 사건은 아직도 회자된다.
그런 최악의 컨디션임에도 불구하고 박영호를 이겼다며, 정상 컨디션이었다면 3-0 셧아웃이었을 거라고 일부 팬들이 말했다.
그 떡밥은 아직도 키보드 워리어들의 주요 쟁점으로 박영호를 열 받게 하는 요소였다.
“두고 보자, 한 번 붙게 되면 떡실신을 시켜줄 테니까.”
그렇게 둘이서 열심히 입씨름을 하다가 경기 시작 때가 되었다.
1세트, 박영호가 첫 타자로 출격하게 되었다.
마침 상대는 인류였다.
박영호는 이신에게 큰소리쳤다.
“잘 봐! 내가 어떤 놈인지 보여줄 테니까.”
그리고 약 10분 뒤에 박영호는 돌아왔다.
“아, 저 치사한 것들이…….”
몹시 시무룩한 모습으로.
상대는 센터 2병영 치즈 러시를 택했다.
아예 뒤가 없는 배수진 같은 치즈 러시로, 괴물 입장에서는 눈치 못 채면 당할 수밖에 없는 필살의 수단이었다.
먹혀들면 이렇게 박영호라는 강자에게도 1패를 안겨줄 수 있는 것이었다.
“센터 2병영은 아니잖아…….”
“잘 봤다. 네가 어떤 놈인지.”
이신의 짧은 위로가 더 박영호를 괴롭게 만들었다.
다행히 2세트는 SC스타즈가 승리했다.
다음 차례로 지우펑, 이신이 있었기 때문에 다소 안심이 드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우펑 선수가 바퀴 난입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이러면 굉장히 귀찮아지겠는데요, 지우펑 선수!
본진에 난입한 바퀴 4마리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지우펑을 괴롭히고 있었다.
쏜살같이 도망 다니며 신도들이 자원 캐는 걸 방해하니, 신족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정신 사나워지고 자원 피해도 누적된다.
물론 지우펑이 그 정도로 흔들릴 리 없었지만, 문제는 그의 컨디션이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지우펑의 플레이가 서서히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지우펑은 3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필승카드 중 2명이 내리 패한 이변.
상하이 게이밍 측은 뜨겁게 환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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