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51
451화 이변(1)
SC스타즈에 실전 연습실이라 불리는 곳이 따로 존재한다.
경기장처럼 꾸며놓은 곳인데, 부스 2개가 있고 두 선수의 게임을 보여주는 빔 프로젝터와 대형 스크린도 있다.
스크린을 볼 수 있는 위치에는 좌석이 많이 있어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관객처럼 앉아서 지켜본다.
경기장처럼 긴장감을 줄 수 있도록 꾸며진 이 실전 연습실은 선수들에게 현장감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되었다.
소위 ‘연습실의 카이저’라 불리는 선수들이 있었다.
연습할 때는 날아다니는데, 경기에 출전만 했다 하면 긴장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 말이다.
사실 그런 프로게이머는 수없이 많았다.
연습 때 실력만 발휘해도 우승컵 하나 들 수 있는 선수가 수두룩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실력을 수많은 관객이 지켜보는 경기장에서 상대 선수와 생사의 결투를 치르는 중압감을 견디며 펼칠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심지어 왕춘 감독은 이 실전 연습실에 더 긴장감을 갖고 임하도록 했다.
바로 팀 내전.
팀 내에서 실력으로 서열을 갈라 주전을 가르는 장소로 이곳을 택한 것이다.
선수들이 갖는 중압감은 경기장과 비슷했다.
왕춘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전략팀의 연구원들까지 착석해서 평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날카로운 시선을 받으며 내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첫 번째 대결은 이신과 박영호였다.
순서도 왕춘 감독이 정했는데, 초일류의 플레이를 먼저 보여줘서 그 뒤에 순서를 기다리는 선수들에게 부담감을 가중시키는 의도였다.
앞에 두 사람이 저런 플레이를 보여줬는데 그 뒤에 너희가 개판으로 플레이하면 어떨까?
그런 긴장감을 이겨내는 것까지도 선수의 덕목임을 계속 강조하는 자리라는 뜻이었다.
요즘 들어 최고조인 이신.
박영호도 그런 이신을 이기겠다고 이날을 위해 잔뜩 벼르고 갈고 닦았다.
그것을 이번 게임에서 톡톡히 보여주었다.
-쐐애액!
-퍼엉!
-쐐애애액!
-퍼엉!
쐐기충 편대가 휘젓고 다니며 이신의 앞마당을 공략했다.
충분한 디펜스가 되어 있음에도 외곽부터 차근차근 깨부수는 박영호의 쐐기충 컨트롤.
마치 이신의 스텔스 전투기 컨트롤이 괴물에게 고통을 주었던 것과 같았다.
최근 이신에게 연습에서 지는 일이 더 많아진 후로 박영호는 깊이 고민했다.
무엇이 부족한가?
그저 태생적인 종족의 상성이라는 한계 때문인가?
하지만 박영호는 이신을 꺾고 싶었다.
기필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1인자가 되고 싶었다.
터무니없는 목표였지만 이미 목전까지 도달하여 한 사람만 앞에 둔 박영호에게는 그리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다가 박영호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괴물은 결국 쐐기충이야.’
인류를 상대하는 괴물은 괴물을 상대해야 하는 신족만큼 절망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인류 플레이어를 상대로 만났어도, 기본적으로 한 가지 희망은 품는다.
쐐기충 컨트롤이 기막히게 잘돼서 큰 피해를 입혀놓으면 된다. 그러면 이길 수 있다.
다른 특별한 전략을 쓰기도 하지만, 괴물 대 인류전의 근간은 바로 쐐기충.
박영호는 쐐기충 컨트롤 실력을 더 갈고닦았다.
팀 내에서는 물론이고 온라인에서도 인류 플레이어만 찾아다니며 그것만 연습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쐐애액!
-퍼어엉!
대공포를 부순 쐐기충 편대가 그 자리에서 계속 쐐기를 쏴서 건설로봇을 하나둘 박살 냈다.
보병들이 각성제를 흡입하고 달려들자 재빨리 후퇴시켰다.
계속 쐐기충의 체력을 아끼면서 야금야금 이신에게 대미지를 중첩시켰다.
물론 그 정도로 이신이 허둥지둥하지는 않았다.
이미 입은 피해는 피해고, 어쨌거나 병력이 충분히 구성되자 밖으로 진출했다.
쐐기충 편대는 계속 쫓아와서 보병을 하나씩 커트시켰다.
‘컨트롤이 더 날카로워졌군.’
플레이하면서 이신은 생각했다.
공격력 1 업그레이드도 된 마당이라 이 타이밍의 쐐기충은 더 위험해진다.
보병들의 총탄 세례에 제대로 긁히기만 해도 삽시간에 망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려들어서 보병 숫자를 줄여야 한다.
그 아슬아슬한 선을 전보다 더 잘 지키고 있었다.
쐐기충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선을 교묘하게 넘지 않으면서 계속 쐐기를 쏜다.
그렇게 느끼는 건 상대하는 이신뿐만이 아니었다.
“컨트롤 좋은데?”
“계속 저것만 연습하더니…….”
“정말 탁월하군.”
부스 바깥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도 칭찬을 했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은 건지, 평소 연습의 성과가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두 가지가 모두 합쳐진 것인지도 몰랐다.
박영호는 진출한 이신의 병력에 맞서 촉수충과 바퀴 떼를 이끌고 요격에 나섰다.
일벌레를 더 생산할 자원으로 뽑은 병력.
박영호는 이신에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주도권이란 상대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의도대로 따르게 만드는 힘이었다.
난 이쪽을 공격하겠다.
그러니 넌 여길 막으러 와라.
그런 주도권을 이신에게 내주면 박영호는 계속 그의 의도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이신은 분명 그 주도권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이 우세한 국면을 만들 것이 틀림없었다.
최근 들어 막강해진 이신을 접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카이저가 무언가를 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연구원의 말에 왕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주도권을 주기 싫은 거야. 주도권을 내주면 카이저가 또 어떻게 상황을 만들어놓을지 알 수 없어 불안한 거야.”
“예, 요즘 들어 카이저는 그런 운영의 묘를 살리는 쪽으로 콘셉트를 잡은 것 같죠.”
“운영의 묘라……. 그래, 그 표현이 정확하군.”
왕춘 감독이 계속 말했다.
“상대를 확실히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능해졌지. 카이저가 움직일 때 거기에 잘 대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면 이미 그 큰 그림 안에 빠져 있지. 결국 장단 맞춰서 같이 그림을 그려주었다는 걸 상대는 눈치 못 챈 거지.”
“바둑 기사 같군요. 보통은 그렇게 큰 시야로 게임을 보지 못하죠. 다들 어리기도 하고요.”
“컨트롤에, 생산에, 전투에, 눈앞에 주어진 과제도 급급하니까. 보다 연륜이 쌓이면 그보다 더 큰 테두리가 보이지만, 그땐 이미 전성기가 한참 지난 나이가 되어 있지.”
그렇게 말하면서 왕춘 감독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런 점이 가장 안타까웠다.
늦은 나이에 자신을 빠져들게 만들었던 이 e스포츠에,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이 아이들에게 보다 긴 선수 생명이 주어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자신만의 철학도 생기고 플레이에 깊이가 더해질 터이다.
그래서 인터페이스가 전보다 간편해진 SC의 업데이트 방향에 대해 왕춘 감독은 찬성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 수혜를 입은 사람이 눈앞에 있다.
‘정말 훌륭한 선수다.’
피지컬과 연륜의 균형점에 서 있는 지금의 카이저는 왕춘 감독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고의 경지였다.
어린 선수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큰 그림을 그려서 승리하는 방법을 터득해냈다.
그러니 다른 팀에서는 왜 졌는지 그 원인도 모르는 수밖에.
‘러너의 대응도 훌륭하군. 거칠지만 확실한 대책을 가져왔어.’
러너는 아예 큰 그림을 그릴 기회를 주지 않기로 작정한 듯했다.
요격하러 나온 괴물 병력이 이신으로 하여금 원하는 곳을 공격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이신은 그 적 병력도 감안한 새로운 그림을 그릴 테지만, 무엇보다 박영호는 바퀴 떼를 보여주지 않고 맵을 크게 우회시켜 이신의 배후로 향하게 하고 있었다.
그림에 포함되지 않은 변수.
저걸 모르면 지는 건 카이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
“저렇게 되네!”
모두들 감탄했다.
이신은 기동포탑을 건너뛰고 고속전차를 먼저 생산했다.
스피드 업그레이드가 된 고속전차는 맵을 우회하다가 바퀴 떼와 마주쳤다.
바퀴 떼로 퇴로를 차단해 놓고 포위 섬멸할 의도를 알아챈 이신은 바로 병력을 뺐다.
박영호가 계속 상대 병력을 싸먹기 위해 공격적으로 움직였으나, 이신은 계속 거리를 두며 빈틈을 주지 않았다.
“운이 좋은 게 아닙니다. 혹시나 하는 위험을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저렇게 우회해서 움직였습니다.”
연구원이 말했다.
왕춘 감독도 동의했다.
“큰 그림을 그리게 된 만큼 더 많은 부분을 살피게 되었어.”
“고속전차부터 간 것도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알고 더 빨리 기갑 체제로 전환하기 위함입니다.”
박영호의 쐐기충이 생각보다 더 시간을 잘 끌어줬다.
이신도 제때 병력을 내보내 압박에 나섰지만, 딱히 뚜렷한 피해를 주기는 힘들다고 판단이 선 상황.
때문에 기갑 체제로 전환한 뒤 좀 더 싸움을 길게 보기로 한 것이다.
지뢰 개발도 완료.
고속전차들이 곳곳에 매설하는 지뢰들이 이신이 그리는 큰 그림을 알려주었다.
타 스타팅 포인트까지 먹고서 맵을 반씩 양분하려는 물밑 작업이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여기서 박영호가 정신 차리지 못하면 삽시간에 이신이 맵의 절반을 차지하고 성세(成勢)를 이룬다.”
박영호는 이신이 큰 그림을 그리게 가만 놔두지 않았다.
독침충을 대량으로 뽑아서 당장 승부를 짓겠다고 나섰다.
이신이 체제 전환을 하느라 잠시 약해진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
이신도 지뢰를 계속 깔고 기동포탑도 모았지만, 박영호는 괴물주술사의 흑안개와 대량의 독침충으로 맹공에 나섰다.
거기다가…….
“오오!”
“폭격충이다!”
“저런 조합이라니!”
폭격충은 비행유닛인 쐐기충이 진화한 최종적인 형태였다.
쐐기충이 쏘던 쐐기가 더 크고 강력해지지만, 이동속도가 느려지고 공대지 공격만 가능해서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비행유닛이었다.
자원을 투자하여 생산한 보람을 느끼지 못해서 폭격충 뽑으면 필패라는 격언이 나돌 정도.
놀랍게도 박영호는 독침충과 폭격충이라는 조합으로 맹렬한 돌진을 개시했다.
폭격충이 앞장서서 기동포탑을 쏴 잡으며 길을 열어준다.
괴물주술사가 흑안개를 열어 길을 구축한다.
그리고 독침충들이 해일처럼 뒤따르며 인류의 진영을 파괴했다.
그 와중에 폭탄충들이 이리저리 선회 비행하며 전술위성을 격추시킬 기회만 노렸다.
그 결과…….
-Kaiser: GG.
“아자!”
박영호가 부스에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반대편 부스에서 이신이 나오자 엄지를 아래로 향하며 도발까지 한다.
이신은 쓴웃음을 짓더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카이저의 라이벌답군.”
왕춘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도 흐뭇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비싸게 데려온 두 사람이 보다 발전된 역량을 뽐내니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기쁨을 뭉개버리는 이변이 곧이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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