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15
515화 대가(3)
신족을 상대로 병영을 늘리고 보병을 뽑은 이상, 중요한 건 스피드였다.
앞마당 확장도 하지 않은 이상, 더더욱 일찍 끝내야 하는 쪽은 이신이었다.
그렇기에 이신은 계속 보병을 생산해 전장에 투입하며 공세를 펼쳤다.
박이현의 거신병기 컨트롤이 펼쳐졌지만, 보병들이 각성제를 흡입하자 더는 무빙을 당기면서 싸울 수가 없어졌다.
‘버티면 내가 이긴다!’
박이현은 이신이 먼저 승부수를 띄워주니 오히려 안도했다.
무난하게 갔으면 이신이 계속 리드를 했을 것이다. 최근 신들린 전략성과 판단을 보여주는 이신의 운영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신이 알아서 리스크를 떠안은 채 공격적으로 나와 준 것이다.
‘앞마당도 없이 보병? 이러면 버티기만 하면 내가 자연스럽게 이기는 거지!’
박이현은 빠르게 판단했다.
일단 모든 병력을 남기지 않고 밖으로 돌렸다.
앞마당에 캐논포를 건설하여서 방어를 해두었다.
‘캐논포랑 새로 생산되는 병력으로 시간을 번다.’
밖으로 내보낸 병력은 시간만 벌 뿐 정면충돌은 하지 않고 아껴둘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철갑충차를 생산하기 위한 테크 트리도 진행했다.
그것은 박이현의 승부수였다.
철갑충차가 완성되었을 때, 밖으로 돌려놓은 병력과 함께 양방향에서 적을 덮치겠다는 것.
그렇게 한차례 막아내기만 하면 승리는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박이현이 아직 잘 모르는 게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수도 없이 경험했던 이신의 관록을 말이다.
* * *
보병 뽑으랴, 보병 컨트롤하랴, 이신의 손은 바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건설로봇 하나를 우회시켜서 박이현의 앞마당을 정찰했다.
앞마당에 캐논포를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철갑충차겠지.’
이신은 박이현의 머릿속이 다 들여다보였다.
캐논포로 디펜스를 보강한 건 시간을 벌겠다는 뜻.
병력을 외부로 돌린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
그렇게 번 시간 동안 준비하고 있는 건 단연 철갑충차다. 충격탄 1발에 보병 여럿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갑충차로 방어하면서 동시에 바깥의 병력으로 양방향 협공을 할 생각이겠지.’
탄탄한 시나리오였다.
캐논포의 숫자도 시간을 벌기에 충분한 숫자로 보였다.
신인답지 않은 침착한 대처는 박수 쳐 줄 만하지만, 결국엔 이신이 처음부터 예상한 범위 내였다.
이신은 병영을 늘려 지을 때 이미 박이현이 이렇게 움직일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부터가 이신의 노림수였다.
이신은 보병 부대와 기동포탑, 고속전차가 조합된 병력으로 박이현의 진영을 향해 똑바로 진격하고 있었다.
박이현은 외부로 돌린 거신병기 부대로 측면과 후방을 치고 빠지는 등 시간을 벌고 있는 현황.
앞마당에도 캐논포와 추가 생산 병력으로 방어가 되어 있어서 박이현도 싸우기에 따라 충분히 해볼 만한 상황이었다.
그때, 이신은 고속전차를 한두 기씩 반대 방향으로 우회시키기 시작했다.
이신의 본진은 5시.
박이현의 본진은 1시.
이신의 병력은 5시에서 1시로 북상하는 중.
그런데 우회시킨 고속전차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9시와 11시 방면에 지뢰를 매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이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고속전차 일부가 반대 방면에 지뢰를 야금야금 매설하고 있어요.
-차라리 지뢰를 수비나 공격에 쓰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카이저이니 무언가 다른 계략이 있는 거겠죠?
-그렇겠죠! 과연 무엇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중국 프로리그의 중계진도 이신의 의도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일이라는 건 아는 눈치였다.
그게 아니면 더 바쁜 와중에 저런 플레이까지 힘들게 병행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화면 상단에 기록되고 있는 카이저의 APM이 심상치 않습니다.
-하하, 예. 저도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전기리그 때보다 더 높아졌죠?
-인터페이스가 간편해진 영향도 있겠지만, 기분 탓인지 전체적인 플레이 속도가 더 기민해진 느낌이 드는데요.
-이제 성장을 할 나이가 아닐 텐데, 참 경이롭습니다. 이 정도면 예전 전성기 수준인 것 같은데요.
그 말 그대로였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도 느끼고 있었다.
오늘의 이신은 지난 시즌보다도 더 빠릿빠릿한 속도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이 되는 날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인공지능과의 대결이 무언가 영감을 주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저 나이에 구사할 수 있는 피지컬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그냥 종족이 달라.”
SC스타즈의 벤치.
선수들이 이신의 경기를 지켜보며 대화를 나눴다.
“인간이 아닌 거지.”
“사이어인일 거야.”
“난 뱀파이어 설이 그럴 듯한데.”
“얼굴도 그대로잖아. 정말로 나이를 안 먹고 있어.”
쑥덕거리는 선수들의 잡담을 들으며 코칭스태프도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경기가 절정으로 치달았다.
설계를 마친 이신이 마침내 결정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박이현의 진영이 있는 1시로 진격하는 이신의 군대.
거신병기들은 그런 이신의 진격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다.
측면에서 치고 빠지며 진격을 지연시키려 들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신의 군대가 진격을 중단.
방향을 휙 돌려서 측면에서 치고 빠지기를 하고 있는 거신병기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신이 쫓아오니 거신병기들은 계속 후퇴했다.
‘그래, 계속 쫓아와 봐!’
박이현은 희열을 느꼈다.
거신병기들을 먼저 잡겠다고 쫓아오는 이신의 판단은 잘못됐다.
거신병기들은 오히려 미끼가 되어서 이신의 병력을 유인했다.
제한된 타이밍에 전과를 거둬야 하는 이신이 거신병기들을 쫓느라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이다.
‘내 거신병기 컨트롤에 부담을 느낀 거야.’
활발하게 치고 빠지며 괴롭힌 거신병기 컨트롤 때문에 정신이 사나워지자 실수를 했다고 박이현은 지레짐작을 했다.
물론 큰 착각이었다.
이신은 옆에서 치고 빠지는 거신병기들 때문에 열 받아서 달려든 게 아니었다.
-크아악!
-크악!
각성제를 흡입한 보병들이 계속 위협하며 거신병기들을 지옥으로 몰이를 하고 있었다.
연신 물러나던 거신병기들은, 11시 방면에 매설되어 있던 지뢰군에 걸려버렸다.
-삐리릭!
-삐릭!
땅속에서 튀어나온 지뢰들!
-퍼어어어어엉!
거신병기들이 지뢰에 휘말려버렸다.
3기가 격파되고, 나머지도 체력이 깎였다.
‘여기에 지뢰가?!’
지금까지의 국면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매설된 지뢰 때문에 박이현은 혼란에 빠졌다.
예상 못한 상황에 처하자 우왕좌왕했다.
멘탈이 나가버린 것이다.
-퍼어어엉!
-끼리릭! 끼릭!
-퍼엉!
거신병기들은 계속 이신에게 몰이를 당하며, 11시와 9시 부근에서 지뢰를 계속 밟았다.
-삽시간에 신족 병력이 몰살당했습니다! 카이저의 대승!
-바로 이거였습니다! 이걸 노리고 아까부터 계속 한두 기씩 고속전차를 보내서 여기에 지뢰를 심었던 거예요!
-카이저의 무서운 심계! 이게 즉흥적으로 구사한 계략이었다면, 정말 대단한 선수죠!
-이게 카이저입니다.
이제 이신은 거침이 없었다.
그의 군세가 쏜살같이 박이현의 진영을 향해 달려갔다.
앞마당 앞에 자리를 잡고 박이현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보병들이 잔뜩 밀집하고, 뒤에서 기동포탑이 포격모드로 자리 잡아 캐논포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박이현은 때마침 나온 철갑충차로 눈물겨운 농성을 펼쳤다.
철갑충차를 수송기에 태웠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며 충격탄을 쐈다.
필사의 컨트롤로 어떻게든 버텨내는 박이현의 분투가 눈부셨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기운 뒤였다.
박이현을 꽁꽁 봉쇄해 놓은 이신은 그사이에 앞마당과 6시 2곳에 확장 기지를 동시에 구축해 버린 것이다.
박이현은 계속 농성하느라 자원을 소비했다.
이신은 지속적으로 박이현을 괴롭혀주면서 자원 격차를 벌렸다.
-라이트닝, 최후의 항전을 펼치러 떠납니다!
철갑충차를 태운 수송기 1척이 이신의 진영으로 날아갔다. 견제 플레이로 피해를 입혀서 불리한 상황을 비슷하게 만들려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투타타타타타타!!!
부질없었다.
이미 수송기가 날아가는 경로에 보병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퍼엉!
수송기는 격추당해 버렸고, 박이현의 전의도 함께 소멸되었다.
-라이트닝, GG!
첫 승을 거두고 벤치로 돌아온 이신은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땠어?”
박영호가 물었다.
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인터뷰에서 말했던 그대로야.”
인터뷰에서 지적한 부분을 전부 입증해 버렸다.
인터뷰에서 거짓말을 안 하는 한결 같은 이신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던 경기였다.
그날 시합은 SC스타즈의 3-0 완승으로 끝났다.
2세트는 리우가, 3세트는 박영호가 가뿐하게 승전보를 올렸다.
그날 시합에서 주목받은 명경기의 주인공은 단연 이신.
하지만 이신은 3세트에서 보여준 박영호의 경기력에 놀랐다.
이신이 대중이 모두 보고 즐긴 플레이를 보여줬다면, 박영호는 같은 프로 선수들 중에서도 초일류만이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슈퍼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3세트의 경기 내용을 요약하자면, 초반에 바퀴를 잔뜩 뽑은 박영호가 상대 인류의 앞마당 방어를 뚫어버리고 손쉽게 게임을 끝내 버린 정도.
하지만 그 안에는 교묘한 틈을 만들어내서 날카롭게 파고든 박영호의 놀라운 승부 감각이 있었다.
‘다친 건설로봇이 의무병을 끌어당긴 틈을 노리다니.’
건설로봇 1기가 정찰에 나섰다가 바퀴들에게 얻어맞고 되돌아갔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게 패인이었다.
보병·화염방사병과 함께 앞마당을 지키고 있던 의무병들이 다친 건설로봇을 치료해주기 위해 쫓아 들어간 것.
그 짧은 틈에 박영호는 돌격했다.
의무병이 아주 잠깐 떨어진 그 틈에, 바퀴 떼가 삽시간에 보병·화염방사병을 에워싸 몰살시켰다.
그 뒤에는 계속 밀려들어온 바퀴 떼에 의해 인류의 진영이 초토화되고 게임 끝.
이신은 느낄 수 있었다.
박영호는 그 다친 건설로봇을 일부러 살려 보냈다.
그리고 의무병들이 다친 건설로봇을 쫓아간 약 1초의 틈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정말 벼르고 있구나.’
전에 없이 박영호의 감각이 섬뜩할 정도로 살벌했다.
올해 그랑프리에서 기필코 이신을 꺾겠다는 투철한 의지가 느껴졌다.
여전히 많은 도전자들이 있지만, 역시나 가장 이신의 권좌에 가까이 접근한 사람은 박영호였다.
‘내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박영호의 희생양이 되었던 인류에게 자신을 대입해 보았다.
자신이었어도 위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위기감은 사그라졌던 이신의 승부욕을 다시금 살살 자극하고 있었다.
같은 날, 상하이 텐화 게임단도 첫 경기를 치렀다. 쌍영의 또 다른 1인인 최영준도 특유의 물량을 폭발하며 광기 어린 공격력을 보여줬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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