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73
573화 결말(8)
‘이 인간이 약 빨았나?’
박영호는 리플레이를 확인하고서야 자신이 왜 졌는지 깨달았다.
이신의 대대적인 역습이 시작되었을 때, 박영호도 그걸 막아낼 시나리오가 있었다.
12시를 내주고, 혹은 11시까지 파괴당하는 것도 각오했었다.
그 2곳을 희생하더라도, 이신의 주력 병력을 끌어들인 후에 몰살시키고 역공을 가해 승부를 낼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신은 예상을 넘어서서 1시까지도 드롭으로 습격했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이신의 주력 병력을 몰살시키기 위해 배후로 우회하던 괴물 군단을 포격하는 기동포탑 3기!
그 3기의 위치가 또 절묘했다.
어쩐지 이신의 주력과 맞붙어서 패한 게 이상했는데, 그 기동포탑 3기가 포격하여서 숫자를 줄였던 것이다.
‘괜찮아. 그래도 2-1이야.’
다음 맵이야말로 박영호가 이긴다고 자신했다.
오염된 성좌.
맵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최근에는 승률이 많이 비등해졌으나, 그래도 여전히 괴물 맵이었다.
‘여기서는 내가 눈 감고 해도 안 져.’
박영호는 자신감을 회복했다.
금메달을 목전에 두자 몸이 떨리고 초조했다.
하지만 그러다 진 경험이 2번이나 있으므로 박영호는 흥분하지 않으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괜히 오버하지 말자. 평범한 정석 빌드로, 하던 대로만 하면 돼.’
흥분한 나머지 대뜸 올인을 하다가 지는 허망한 경우도 있었다.
1, 2, 3세트에서 내리 과감한 빌드 오더를 선택한 박영호였지만, 이번 4세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박영호가 승률 1위를 달리는 오염된 성좌인 것이다.
‘하던 대로. 하던 대로.’
연습실의 실력을 그대로 펼치기만 해도 우승을 할 수 있다는 격언이 있다.
공식 무대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제 실력을 펼칠 수 있는 멘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격언이다.
박영호는 멘탈이 강했고, 그래도 평소에 이 맵에서 가장 많이 쓰던 보편적인 빌드 오더를 택했다.
그리고 이내,
-아아아!!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러너가 뒷목을 부여잡을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박영호는 멘탈이 나가고 말았다.
경기 시작 5분도 안 되고서 벌어진 사태였다.
경기 내용은 간단했다.
이신이 센터 2병영 전략을 써버린 것이다.
실패하면 뒤가 없는 올인!
박영호는 평범한 12앞마당 빌드를 썼다.
그리고 센터 2병영은 12앞마당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전략이었다.
‘이런 씨발…….’
망연자실한 박영호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사실 냉정히 생각해보면, 불리한 괴물 맵이니만큼 이신이 운영 싸움보다는 초반의 기습 전략을 시도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2, 3세트처럼 공격적으로 나가기 위해 바퀴를 일찍 생산하는 빌드 오더를 택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영호는 금메달에 눈앞에 두고서 흔들리지 않기 위하여 ‘평소대로’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만약에’라는 것에 흔들리지 않고 평소대로 하려 했다.
의도는 그것이 역으로 패배가 된 것이었다.
‘신이 형도 무서웠겠지. 내가 2, 3세트 연속으로 바퀴를 일찍 생산했으니까.’
이번 4세트에서도 박영호가 바퀴를 일찍 생산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센터 2병영 전략을 막혀버리고, 바로 금메달이 날아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신은 센터 2병영을 택했다.
두려움을 이기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게 승자와 패자의 차이인 건가.’
박영호는 허망함을 느꼈다.
2세트가 끝났을 때만 해도 2-0.
맵이 좋은 3, 4세트를 앞두고 있어서 더없이 유리했던 상황.
그런데 그 3, 4세트를 이렇게 다 날려버리고, 승부는 2-2 원점이 되었다.
5세트에서 최후의 결전을 치러야 했다.
‘신이 형은 배짱 좋게 칼을 뽑았고, 난 금메달을 앞에 두고 겁먹었다.’
타고난 성품의 차이였다.
금메달을 수없이 가진 이신은 위닝 멘탈리티(Winning Mentality)로 무장하여서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이길 방법을 찾아냈다.
금메달을 눈앞에서 여러 번 놓쳐본 자신은 패배자의 근성에 의해 유리한 상황이었음에도 승리를 망쳐버렸다.
4세트 종료 후 휴식시간 내내 박영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분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신이 있다면 묻고 싶다.
저도 꽤 열심히 하지 않았나요?
근데 왜 저런 인간을 만드셨나요?
‘저 인간은 궁지에 몰려도 나처럼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겠지.’
멘탈이 산산조각 난 스스로가 미웠다.
이신과 달리 이렇게 나약하게 태어난 자신이!
“러너 선수, 5세트 시작합니다!”
스태프가 선수대기실에 들어와 알렸다.
박영호는 화들짝 놀랐다.
‘안 되는데!’
아직 멘탈을 다 수습하지 못했다.
5세트에 대해서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시간을……!’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박영호는 또 부스에 앉아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차음 헤드셋을 끼자, 자신의 맥박 소리가 시끄러웠다.
대마초라도 한 대 핀 것처럼 멍해져 있을 때였다.
-Kaiser: 박영호.
‘응?’
경기 시작 전, 이신의 채팅에 박영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Kaiser: 내기할까?
‘뭔 개소리야?’
박영호는 황당함을 느꼈다.
-Kaiser: 이거 지면 합동 방송 해준다.
“푸하하!”
그만 폭소를 터뜨렸다.
이 인간아…….
이 와중에 그딴 농담을 할 정신이 있냐?
-Runner: ㅇㅋ염. 같이 신나게 별사탕 파티 해여
-Runner: (-ㅂ-)//
박영호는 지지 않고 맞장구쳐주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순간 모든 긴장이 다 풀려버렸다.
쿵쾅거리던 맥박이 원상대로 돌아오고, 멘탈도 씻은 듯이 편안해졌다.
이제야 제 실력으로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마워, 형.’
그날 5세트에서 박영호는 꽁꽁 숨겨두었던 진짜 무기를 선보였다.
한 번이라도 보여주면 다음 세트에서 이신이 바로 대처법을 들고 나올 것 같아서 마지막까지 보이지 않았던 전략!
이신은 박영호가 아낀 비장의 카드가 1, 3세트에서 선보였던 빠른 확장 전략인 줄 알았다.
그것은 오산이었다.
5세트 경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박영호는 평범한 12앞마당.
이신은 오랜만에 1-1-1 빌드를 선보였다.
병영, 기갑정거장, 항공정거장을 1채씩 짓는 빌드 오더였다.
고속전차가 먼저 나와 지뢰를 깔고, 호시탐탐 박영호의 진영에 침투할 기회를 엿봤다.
박영호는 이에 대한 대처를 확실히 하며, 독침충을 모았다.
1-1-1 빌드의 약점인 초반 병력 부족을 노려서 지상군 물량 공세로 끝내버릴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신의 스텔스 전투기가 춤을 추었다.
하늘군주를 사냥하고 일벌레를 사냥하며, 박영호에게 병력 물량이 모이지 않도록 끈질기게 피해를 입혔다.
-카이저의 스텔스 전투기는 GPS라도 달렸나요? 곳곳에 숨어 있는 하늘군주를 잘도 찾아냅니다!
-전투기의 견제가 너무 매섭습니다. 러너는 공격을 하고 싶어도 병력이 떠나면 하늘군주들이 다 사냥 당할까봐 떠나지를 못합니다.
백미는 폭탄충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터닝 샷으로 하나하나 격추시키는 스텔스 전투기 쇼.
거기다가 최후의 대결인 만큼 풀가동된 멀티태스킹!
고속전차들까지 날렵하게 움직이며 맵 곳곳에 시야를 밝힐 용도로 뿌려둔 바퀴들을 잘도 잡아냈다.
스텔스 전투기와 고속전차가 어찌나 부지런히 다니는지, 한 번도 멈춰 있는 것을 볼 수 없을 정도.
맵에서 박영호의 시야가 사라지고, 사소한 피해가 야금야금 누적되었다.
하지만 박영호는 한 방에 그 상황을 만회했다.
이신이 병력을 이끌고 치고 나왔을 때, 지지 않고 독침충 부대를 끌고 요격해버린 것.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졌지만, 독침충이 계속 꾸역꾸역 생산되어서 합류하면서 힘 싸움은 박영호 쪽으로 기울어졌다.
-러너의 독침충 무빙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뢰가 곳곳에 깔려 있는데 한 발도 맞지 않고 제거했어요.
지뢰가 나타나면 그 즉시 일점사로 제거해버리는 박영호의 무서운 반응속도.
거기다가 일부 독침충이 따로 움직여서 잠복했다가, 그곳을 지나가는 스텔스 전투기들을 덮쳐 4기나 격추시켰다.
-아아아!! 이러면 상황이 달라지죠!
-전투기들의 이동 동선을 정확히 예측하고 잠복해 있었습니다, 러너!
이신의 페이스에서 상황이 서서히 바뀌었다.
이신은 기갑 체제로 급히 체제 전환.
그리고 박영호는 마침내 진짜 무기를 꺼냈다.
그것은 이신의 기갑 체제를 잡기에 최적화된 전략이었다.
그것은 방어력 3 하늘군주.
방어력을 업그레이드해서 잘 죽지 않는 튼튼한 하늘군주에 괴물주술사 및 병력을 태우고 다니는 플레이였다.
특이한 전략은 아니지만, 그걸 박영호가 준비했다는 게 중요했다.
이는 특히나 고속전차 지뢰를 잘 쓰는 이신에게 카운터가 되는 플레이였다.
하늘군주를 타고 다니니 지뢰를 밟을 일이 없었다.
하늘군주가 숨어 있는 지뢰를 볼 수 있으니, 오히려 그 지뢰를 역이용할 수 있었다.
박영호의 무차별적인 견제가 펼쳐졌다.
하늘군주가 괴물주술사와 촉수충을 드롭했다.
괴물주술사를 드롭하자마자 흑안개를 펼치는 컨트롤!
그 속에 숨어든 촉수충 1마리는 계속 인류에게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 괴롭히면서 박영호는 이신을 몰아붙였다.
-러너의 계속되는 맹공! 손이 정말 많이 가는 플레이일 텐데 정말 쉬지 않고 해줍니다!
-정말 피지컬 하나는 전성기 카이저를 보는 듯합니다!
이신은 수세에 몰렸다.
병력이 출격했다 하면, 하늘군주가 드롭하는 괴물 병력에 둘러싸여 흑안개 속에서 전멸당하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병력이 나가질 못하니, 괴물의 확장을 저지하지 못했다.
괴물은 꾸역꾸역 자원을 파먹으며 지상 유닛 끝판왕인 공성벌레를 생산할 준비에 들어갔다.
‘이대로는 공성벌레를 못 막는다!’
이신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본진과 앞마당, 그리고 간신히 확보한 2번째 확장 기지를 대공포로 싹 둘러버렸다.
하늘군주로 드롭을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거기에 병력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수비에만 전념했다.
버티고 버티다가 풀 병력에 업그레이드까지 끝까지 완료되면 비로소 치고 나올 생각이었다.
마침내 박영호가 공성벌레를 비롯한 어마어마한 괴물 군단을 이끌고 치고 나오자,
-아아!! 카이저도 농성을 준비합니다!
-어디 한 번 와봐라 이겁니다!
이신은 인류의 온갖 건물들을 전부 띄워다가 성벽처럼 진영 앞에 줄줄이 세워놓았다.
만리장성을 연상케 하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심시티!
그 뒤에 배치된 기동포탑들과 기계보병들이 끝내 버티겠다는 각오로 서 있었다.
달려들려다가 박영호는 그 위용에 어이가 없어서 주춤거렸다.
건물들을 앞에 줄줄이 쌓아 둘러버린 심시티라니.
거기에 대공포까지 도배되어 있어서 하늘군주도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렇게 유리한데도 결정타를 못 먹인다니.
괴물 플레이어들로서는 환장할 풍경이었다.
‘씨발, 그래 간다.’
박영호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곧 두 사람의 최후의 대전투가 있을 것을 예감했는지, 대형화면이 두 사람을 한 번씩 비추었다.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러너! 러너!”
관중들이 소리쳤다.
싸우라고.
보여달라고!
이윽고,
그랑프리 최고의 명장면으로 남을 전투가 펼쳐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