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Artist's Random Studio RAW novel - Chapter (44)
다음 날, 템페스트 엔터테인먼트.
나는 정문을 지나쳐 작업실로 향했다.
“쫄린다.”
디지니 플레이 아시아지부장과의 미팅.
그런 높은 사람이랑 만나는 게 얼마 만인지.
“아, 얼마 전에 대표님도 뵈었구나.”
드르륵─
템페스트 사옥 506호, 내 작업실 문을 열었다.
곧, 언제나처럼 먼저 도착한 효주가 나를 반겨주었다.
“오빠, 오셨어요?”
“응.”
“이제 차기작 대본리딩까지 얼마 안 남은 거 아시죠?”
“당연히 알지.”
그것 때문에 주연배우들에게 메시지도 보내줬는데.
내가 본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연기를 보여줬는지 떠올리면서.
“순정마초 마지막회 시청률 17퍼까지 찍었고….”
“예아.”
“아! 근데 오빠 그거 아세요?”
효주는 아침부터 할 말이 많은 듯 싶었다.
회사 안에서 직원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서 정보에 빠삭하다
“우리 회사…. 조만간 로템이랑 합병할지도 모른대요!”
“…. 아니야.”
이건 또 뭔 참신한 헛소리야.
“지, 진짜예요! 그냥 요즘 들리는 소문은 그래요!”
“…. 아니라니까.”
그냥 대표끼리 식사 약속 한 번 잡은 것뿐인데 누가 그런 소문을.
“그 소문 낸 거 너 아니지?”
“제, 제가요? 설마요!”
“…. 효주야.”
“네?”
“요즘 일이 너무 없지?”
“….”
평소 보조 작가의 주 업무는 자료조사.
시스템이 있는 이상, 내게는 큰 의미는 없는 서포트였다.
“편할 때 즐겨라. 나중에 내가 소말리아 가자고 해도 넌 따라와야 해.”
“엥? 무슨 그런 농담을….”
얼핏 보니까 효주의 옷차림이 꽤나 샤방샤방했다.
대표님이 남의 회사 사장님이랑 밥 먹었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나 했는데.
“변 팀장님이 말해 주셨구나?”
“넵.”
“요즘 잘 돼가?”
“세 번째 차였어요.”
“….”
일하러 온 게 아니라 연애하러 왔냐.
‘좋을 때다.’
이렇게 연애 세포를 키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민주 밑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한 호사가 아닐까.
* * *
모던한 분위기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룸 식당.
각종 LP판이 전시되어 있고 구매할 수도 있는 장소였다.
드르륵─
정기태 대표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물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로템 엔터테인먼트의 수장, 이지욱 대표였다.
“형님이 먼저 연락할 줄은 몰랐는데.”
“나도 많이 늙었잖아. 옛날이 그리울 때도 됐지.”
“흠, 이 식당….”
“어. 옛날에 너랑 나랑 자주 왔지.”
곧이어, 직원이 차 두 잔을 내어주었는데.
로템 엔터의 이지욱은 정기태 대표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니까…. 용건이 있어서 부른 거네?”
“겸사겸사 얼굴도 보는 거지. 김진우 작가, 요즘 핫하잖아.”
“뭐, 그렇긴 하지만…. 일단 설아 의견도 들어봐야 해서.”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부담은 무슨.”
물론, 이 자리에서 거절할 수는 없겠지만 당연히 무산될 제안이었다.
솔직히 아무리 핫한 작가라고 해도 유설아와는 체급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 봐야 한 작품 끝낸 신인작가가 아닌가.
시청률 17%가 아니라, 37%였어도 마찬가지다.
“아! 맞다.”
그 순간, 이지욱 대표는 자신이 해야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미리 말한다는 것을 까먹었네.”
“응? 무슨….?”
원래 바로 말하려고 했으나,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고 잊어버렸다.
오늘 예상치 못한 손님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해야 했으니.
“저기, 스케줄이 맞을지 몰라서 형님한테 미리 말을 못 한 게 있는데….”
“응?”
그때였다.
“꺄아아아악!!”
“유설아!!!”
“언니─!”
조용한 분위기의 룸 식당에 소란이 발생했다.
바로 옆 방에서 몇몇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대었으니.
“…. 내가 한발 늦었구만.”
똑, 똑─
이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누군가 입장했다.
드르륵─
그녀의 등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구경했다.
그들 대부분은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눈을 떼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정기태 대표님.”
“허허. 오늘 귀한 분을 여럿 만나 뵙네요.”
오랜 지기에 이어, 유설아를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오히려 잘 된 건가.’
그때, 로템의 이지욱 대표는 그녀에게 슬쩍 질문을 던졌다.
“설아야, 왜 옆방에서 그런 소리가….?”
“잘못 들어갔어요.”
“…. 매니저는.”
“밖에서 기다리겠다네요. 저도 오래는 못 있어요.”
“오늘 JTBS에서 스케줄이 있던가?”
“아니요. 그건 내일로 미뤄졌어요.”
“아아, 그래?”
“네.”
사실, 유설아는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자 방문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스케줄 가는 중간에 아주 잠깐만 들를 생각이었지만.
“안 그래도 지금 설아 네 얘기를 하고 있었어.”
“네?”
“템페스트 김진우 작가님이 미팅을 하고 싶다고 하시네.”
“김진우 작가님이요!?”
“응. 어차피 스케줄 가득 찼으니까, 이번에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다음에….”
“저는 좋아요.”
“뭐?”
“김진우 작가님, 대본 재밌게 읽었어요.”
“….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저야, 대표님이 싫다고 하시면 안 하죠.”
“아…. 음.”
로템의 이지욱 대표는 슬쩍 정 대표의 눈치를 살폈다.
수차례 고민하고, 또 고민한 후에 결정해야 하는 게 드라마 출연인데.
‘그냥 한 번 보는 것 뿐이라면.’
괜한 말로 애써 이어붙인 정 대표와의 관계를 깨트릴 수는 없잖아.
“그럼 미팅 한번 잡으시죠. 형님.”
“잘됐네.”
정기태 대표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이 대표를 바라봤다.
* * *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향했다.
똑, 똑─
전략기획실에 들러, 실장실 문에 노크를 했는데.
안쪽에서 정새롬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디지니 플레이 아시아지부장.
꽤나 거물급 인사가 템페스트에 직접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김 작가님, 오셨어요?”
“아, 네.”
원래 외부에서 미팅을 잡으려 했지만, 상대측에서 장소는 상관이 없다고 했으니.
“지금 거의 도착하셨다네요.”
“아, 그래요?”
이내, 새롬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질문을 던졌다.
“대표님께 들었어요.”
“네?”
“유설아 배우님과 미팅을 잡아달라고 하셨다면서요?”
“네. 뭐, 이제 대본도 14부까지 썼는데 바로 준비해야죠.”
“…. 쉴 생각이 없으시군요.”
나도 쉬고 싶다고!
그런데 만약 시스템이 주는 숙제를 거절하면?
어떻게 될런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잖아.
“솔직히 유설아 배우님은 절대 장담 못 해요.”
“아마 그렇겠죠?”
“네. 미팅 한 번에 캐스팅 할 수 있는 신인배우랑은 차원이 다르니까요.”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때였다.
똑, 똑─
변 팀장이 노크를 하며 손님을 모셔왔다.
“실장님, 디지니 플레이 측에서 도착했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끼이익─
문이 열리고, 변 팀장의 등 뒤로 두 명의 외국인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에. 이렇게 젊은 나이에?’
외견상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성.
저 나이에 거대한 플랫폼의 아시아지부를 책임진다니.
“반갑습니다. 안젤라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정새롬 실장입니다. 이쪽은 김진우 작가님이요.”
“아, 네. 안녕하세요. 김진우입니다.”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하는 푸른 눈의 외국인 여성.
곧이어, 그녀의 말을 듣고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디지니 플레이 아시아지부를 총괄하고 있어요.”
“…. 저쪽 분이 아니라?”
“네. 제가 만나 뵙기를 청했어요. 김진우 작가님.”
“으음….”
선입견인 건 알고 있지만, 당연히 더 나이가 든 쪽이 상사라고 생각했지.
“그럼 바로 비즈니스를 해볼까요?”
“저희야 좋죠. 흥흥.”
방실방실 웃으면서 편하게 대답하는 그녀.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 이미지가 많이 달랐다.
정 실장은 안젤라에게 계약서를 건네받았다.
논점은 두 작품에 대한 판권을 구매하는 내용이었다.
“순정마초와 회귀자, 두 작품 모두요?”
“네.”
계약서를 읽는 내내, 정 실장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그녀는 조건에 대해 깊이 생각하더니 안젤라에게 말을 꺼냈는데.
“조건이 상당히 좋네요?”
“네. 최대한 성의를 보이고 싶었어요.”
“…. 사실 저희는 오늘 가볍게 미팅을 가지려고 생각했어요.”
“네. 이해합니다.”
역시, 정 실장은 오늘 계약을 성사시킬 마음이 없구나.
아마 더 좋은 조건으로 가지고 왔어도 변함이 없었겠지.
절반쯤은 넥플렉스 측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목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안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속내를 들추어내었다.
“대형 플랫폼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네?”
“한번 결정한 조건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
굳이 말하지는 않았지만, 넥플렉스를 겨냥한 말이었다.
심지어, 안젤라는 멈추지 않고 내게도 의중을 물어보았다.
“저기…. 김진우 작가님.”
“네?”
“저는 작가님 의견도 듣고 싶어요.”
“아, 저요?”
내 의견이 의미가 있을까?
이미 원고료를 받고 계약한 시점에서 제작사에 권한이 넘어갔을 텐데.
그런데, 안젤라는 예상치 못한 제안을 했다.
“저는 김진우 작가님의 차기작을 디지니 독점으로 걸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네? 제 차기작은 KBC 방송국에서….”
“아니요, 그다음 차기작.”
뭐가 이렇게 급해.
나도 알고 싶다. 내 다음 작품이 뭔지.
“무슨 작품일 줄 아시고?”
“물론 작품을 보고서 협의가 필요한 내용이죠. 작가님도 천천히 고민해 주세요. 흥흥.”
웃음소리 뭔데.
“뭐, 아니면, 저희는 그 다음 차기작도 좋아요. 시간은 많으니까.”
“음…. 고민해 보겠습니다.”
“후회 없으실 거예요.”
결국, 안젤라와의 미팅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넥플렉스 측에서 어떤 조건을 들고나올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순정마초 계약은 빠른 시일 내에 연락 드리죠.”
“네. 정새롬 실장님.”
두 여인은 웃는 얼굴로 악수를 했다.
이내, 외국인 남녀가 사라지고 새롬이 나에게 물었다.
“디지니 플레이 독점, 생각 있으세요?”
“글쎄요.”
영상 플랫폼 독점이면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기회가 아닌가.
“원하시면 제작사로서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다만….”
“네?”
“별로 권하고 싶은 선택은 아니네요.”
“….”
“방송국과 달리, 망하면 끝도 없이 망할 겁니다.”
넥플렉스든, 디지니 플레이든 마찬가지다.
천장도 없지만 바닥도 없는 시장이 아닌가.
“천천히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 * *
얼마 후, 「기억을 지우는 회귀자」 대본리딩 당일.
지난 며칠간 거실을 굴러다니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오빠, 괜찮아?”
“왜, 내가 어떤데.”
“음, 술 안 먹고 술 먹은 느낌?”
“그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노래도 불러보고 소리도 질러봤지만.
그렇다고 누가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후우….”
차라리 다음 작품의 장르라도 알고 있으면 마음이 편할 텐데.
디지니 플레이와 어울리는 작품이 걸리면, 수월하게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은 대본리딩 현장에 가자.”
“돈 많이 벌어와!”
“오케이! 오늘 저녁은 소고기다!”
“헐!? 오빠 사랑해!”
어후, 이럴 때만. 징그러워.
‘일단 이번 작품부터 마무리를 해야겠어.’
그래야 다음 작품을 뭐 쓸지 알 수 있겠지.
시스템에 등록된 배우를 만나면, 시스템 발동 확률이 늘어날 테니.
나는 여동생의 리액션을 뒤로한 채 현관문을 나섰다.
잠시 후, KBC 방송국 대본리딩 현장.
원래 일정 시간보다 1시간쯤 일찍 도착했다.
“오, 강준. 너도 빨리 왔네?”
“네! 형님.”
흡사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의 풍모로다.
눈빛이 생생한 게, 준비를 열심히 한 티가 풀풀 났다.
“오늘 잘해라.”
“네. 형님!”
정장 입고서 형님 하니까 무슨 건달 같네.
얼굴이 조금만 험상궂었으면 신조훈 배우님 뺨따구 날릴 듯.
곧이어, 대본리딩 현장에 들어오며 내게 인사를 건네는 김현지.
“안녕하세요.”
“김현지 배우님, 얼마 전에 보낸 메시지는 기억하시죠?”
“네? 아, 네! 말씀하신 내용을 토대로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기대할게요.”
“네!”
사실, 그녀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별 게 아니었다.
내가 드라마에서 봤던 여주인공과 현실의 김현지 사이에 미묘한 차이점.
주로 보여주는 습관이나 말투를 적어서 그녀에게 전달한 내용이었으니.
‘이 정도면 밥상 다 차려줬으니까.’
제발 숟가락으로 떠먹기만 하자.
이후에도 속속 들어오는 주조연급 배우들.
절반 이상은 내가 직접 발탁해서 송 감독님께 추천한 이들.
그중,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원로 배우도 있었는데.
“김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호호, 반가워요. 작가님.”
김지선 배우님.
순정마초 때 최만호 선생님급은 아니지만, 드라마 판에서는 꽤나 명성이 높은 배우.
회귀자 주인공을 기억하지 못하는 가족 중에 엄마 역할로 캐스팅되었다.
곧이어, 이번 드라마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스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령 씨. 오셨어요?”
“작가님. 요즘 인사를 자주 못 드렸네요.”
“아뇨. 저도 마찬가진 걸요.”
그리고, KBC의 주태홍 드라마제작국장도 대본리딩 현장에 방문했다.
보통은 대본리딩에 참여하시는 분이 아닐 텐데.
이번 드라마에 크게 기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하.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생각해 주세요.”
“음….”
그 말부터 불편한데요.
한 명씩 들어오는 배우들은 국장님을 보고 깜짝 놀라서 90도로 인사했다.
덕분에, 몇몇 배우들의 눈빛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분위기 한번 살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