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Dark Master become a Trash RAW novel - Chapter 109
제109화
맞는 말이었다.
원혼을 위로해, 그 대가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면 ‘제령술’이 필요했다.
연합인들 중에서도 특별한 이들만 가능한 비술이지만.
‘난 가능해.’
활을 움직이는 크리스의 손이 바빠졌다.
마치, 원혼을 위로하듯 더욱더 짙어지는 음색.
‘제령이라면 어린 시절 숱하게 봤으니,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어.’
과거.
가문에서 그를 유일하게 감싸주었던 ‘동생’이 제령술사였다.
그것도 당대 최고의.
‘제령의 핵심은 위로.’
장내에 퍼지는 연주에 원혼들이 눈물을 흘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여기에 제령 술식을 펼쳐야 했다.
빛의 마나로만 펼칠 수 있는 술식.
문제는 이거였다.
제령술을 사용하려면 자신의 비밀을 밝혀야 했다.
‘그럴 수는 없어.’
아무리 카자르 백작과 테른이어도 이 비밀은 밝힐 수 없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면, 고민했겠지만.’
카자르 백작과 테른은 자신을 대신해 죽으려고까지 했다.
그러니 최악의 상황이었다면, 크리스도 어쩌면 비밀을 밝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 크리스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테른, 내가 말한 것을 어서!!”
“알겠습니다!”
테른이 저주를 펼쳤다.
이해할 수 없게 크리스티앙을 향해서.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저주의 종류였다.
애통의 저주.
자기 망각의 저주.
하나는 상대를 극심한 슬픔에 빠지게 하는 종류.
다른 하나는 상대의 감정을 무디게 하는 거였다.
크리스가 자신에게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효과의 저주를 걸게 하도록 한 건 이유가 있었다.
‘이 저주들을 제령 술식으로 전환시켜야 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둘은 완전히 다른 건데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술식의 종류를 떠나 저주는 어둠의 힘이고, 제령은 빛의 힘이다.
크리스도 어둠을 빛으로 바꾸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대신.
‘어둠을 빛처럼 작용하게 만들면 돼.’
미쳤냐고 할 발상.
하지만 가능했다.
크리스니까.
크리스는 현을 쥔 손에 의식을 집중했다.
테른이 펼친 저주의 기운이 손끝에 실렸다.
적성자(適性者)가 펼친 저주답게 깊고 정순하기 그지없는 기운.
크리스는 그 저주의 기운을 그대로 악기에 담아 연주했다.
연주를 통해 마법을 발현하는 ‘음악 마법’의 방식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면 그것과도 미세하게 달랐다.
단순히 소리를 매개로 마법을 발현하는 게 아니라, 크리스의 연주에 담긴 의미가 저주와 하나처럼 합쳐졌다.
그러니까.
음악으로 신비로운 기적을 구현하는 ‘바드’처럼.
저주에 실린 ‘애통’이 망자를 위로하는 레퀴엠에 섞여 원혼들을 적셨다.
원혼들의 슬픔이 하늘을 찌르며 저택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이런?!”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리베리 백작이 얼굴을 굳혔지만, 그는 이미 7성 저주를 펼치고 있어서 여력이 없었다.
“죽어!! 당장!!!”
카자르 백작에게 저주를 더욱 강하게 집중했지만, 카자르 백작은 초인적인 인내로 저주를 버텨냈다.
7성 죽음 저주의 위력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분투.
카자르 백작은 아들을 지키려는 부정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거다.
그사이 크리스는 다음 단계를 밟았다.
바이올린에 깃든 저주의 종류가 달라졌다.
자기 망각의 저주.
슬픔을 잊게 하는 저주가 연주에 섞여 원혼들에게 깃들었다.
하지만 이건 올바른 방법은 아니었다.
원혼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주어야 하니까.
기존 제령 술식에도 망각의 과정은 없었다.
그런데 크리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령 과정을 비틀었다.
‘결국, 핵심은 위로이니까.’
크리스의 연주 분위기가 변하였다.
슬픔에서 치유로.
상처를 회복하는 따뜻한 선율이 망각의 저주와 함께 깃들었고.
원혼들의 한과 상처가 망각과 함께 치유받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원혼들이 비명을 질렀다.
한이 풀린 걸까?
아니, 그럴 리는 없었다.
약간의 위로 정도일 뿐이리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의미였다.
그 어떤 이도 그들을 위로하지 않았으니까.
원혼들이 주륵 눈물 흘리며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감사하다는 듯.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겠다는 듯한 눈빛.
제령에 성공한 거다!
이제 크리스는 저들 원혼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제령의 원칙이니까.
크리스가 바라는 일은 뻔했다.
하얗게 질린 리베리 백작 쪽을 가리키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복수해. 너희를 이 꼴로 만든 저놈에게.”
“!!”
원혼들의 발악과 함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저택 곳곳에 새겨진 마법진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거다.
인신 공양에 문제가 생긴 거다!
그 결과.
끼긱, 끽.
탐식의 오르골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 안 돼. 커억!!!”
리베리 백작이 왈칵 피를 토했다.
오르골의 도움으로 펼치던 7성 흑마법이 깨지며 반작용에 타격을 입은 거다.
그리고.
저벅.
무릎 꿇은 리베리 백작의 위로 그림자가 깃들었다.
소름 끼치게 차가운 눈동자.
크리스티앙이었다.
“이…!”
리베리 백작은 힘을 끌어 올리려고 했으나, 코어가 진탕하며 피만 왈칵 토하였다.
“자, 잠깐. 할 말이…!”
다급히 입을 열었지만.
푸욱.
크리스티앙의 검이 리베리 백작의 심장을 꿰뚫었다.
리베리 백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뜬 채 파르르 몸을 한차례 떨더니 추욱 늘어졌다.
암흑 마가의 제일 봉신으로 명성을 떨치던 것과 다르게 허망한 죽음이었다.
크리스는 낮게 한숨을 내쉬고는 카자르 백작에게 향했다.
“괜찮으십니까, 아버지?”
“그래, 난 괜찮다. 그런데 너 방금….”
카자르 백작은 아까 크리스티앙이 보여준 모습을 떠올렸다.
음악에 저주를 실어 제령을 해내다니.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누가 믿을까?
하지만 크리스티앙이니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크리스티앙은 이것보다 더한 기적도 숱하게 일으켰으니까.
‘내 아들이다.’
카자르 백작은 다시금 속으로 팔불출다운 생각을 하고는 헛기침을 하였다.
다행히 몸에 특별한 후유증은 남지 않은 듯했다.
“수고했다. 네 덕분에 이번 일을 해결했어. 리베리 백작 놈을 처단했으니 에쉬드 놈도 큰 타격을 입게 됐을 거다.”
그런데 크리스가 뜻밖의 답을 하였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뭐?”
“에쉬드 놈을 향한 응징. 멀었다고요.”
“!!”
크리스티앙의 눈빛이 섬뜩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고작 이렇게 끝낼 수 없지.’
그래.
에쉬드의 가장 큰 배경인 리베리 백작가를 몰락시켰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에쉬드의 고난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밑바닥에 처넣어 주겠어.’
카자르 백작은 그런 크리스티앙의 반응에 침을 꿀꺽 삼켰다.
아들이 또 무언가 소름 끼치는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거다.
“어떻게 하려는 거냐? 리베리 백작의 성을 조사해도 에쉬드가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을 거다.”
“그렇겠지요. 상관없습니다. 제 목적은 에쉬드가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게 아니니까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말.
“아버지, 이번 일로 에쉬드 놈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죄가 인정되는 것 아니냐?”
“아닙니다. 인신 공양을 했다는 판결이 나와봤자, 처벌에 한계가 있습니다. 직계 핏줄이 가지는 사면권 때문이지요.”
일반 마인이 인신 공양을 했다는 게 밝혀지면 당연히 극형이다.
하지만 마도 12 명문가의 직계들은 큰 죄를 저질러도 사면권 때문에 처벌이 경감된다.
해당 가문의 가주가 직접 중벌을 내리기로 결정하면 그 사면권도 소용이 없지만, 노르디언이 그렇게까지 나설 가능성은 없었다.
아마 적당한 선에서 처벌이 결정될 거다.
“물론, 죄가 인정되면 아무리 에쉬드라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되겠지만, 제가 바라는 건 그 이상입니다.”
“도대체 네가 바라는 건?”
“에쉬드의 몰락입니다.”
“!!”
몰락.
카자르 백작이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리베리 백작가를 무너뜨렸지만, 에쉬드의 나머지 세력도 만만하지 않아.”
“압니다.”
크리스티앙이 씨익 웃었다.
“방법이 있으니, 지켜봐 주십시오.”
악당처럼.
“놈은 모든 영광을 잃고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게 될 겁니다.”
* * *
한편, 그때.
“…….”
“…….”
노르디언과 메리안은 침묵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본 건지.’
메리안은 크리스의 제령 장면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천재인 건 알고 있었지만, 저런 일이 가능한 건가?
저주로 제령을 하다니.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역으로 이용할 줄 아는 마기 응용력.
또한, 흑마법을 연주에 싣는 ‘바드’로서의 능력.
거기에 원혼의 마음조차 치유하는 연주 등등.
이 모든 걸로 제령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낸 거다.
…말이 쉽지, 파괴 마법을 응용해 치료술을 펼친 것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가주님의 반응은?’
메리안이 슬쩍 노르디언의 눈치를 살폈다.
노르디언은 소년의 얼굴로 우뚝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딘지 못마땅하다는 얼굴.
하지만 메리안은 오랜 기간 노르디언을 옆에서 모셔와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꿰뚫어볼 수 있었다.
저건 마뜩잖아 하는 게 아니다.
도리어.
“제령이라니. 암흑 마가의 핏줄을 이어서 연합 놈들의 수법이나 따라 하고.”
이렇게 툴툴대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훌륭한 대처였다.”
본심이 나왔다.
노르디언도 크리스가 해낸 일에 감탄하고 있는 거다.
당연했다.
오늘 크리스가 해낸 일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도미넌트 클래스의 힘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다니, 무모했다. 아비를 희생시켜서라도 후일을 도모했어야지.”
노르디언이 애써 박하게 평하려고 했다.
마인으로서의 비정함을 바라는 건지, 아니면 크리스티앙이 자칫하면 죽을 뻔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러는 건지는 모를 일.
왠지 후자인 것 같아, 메리안은 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며 한마디 하였다.
“자신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것 아닐까요?”
“…….”
노르디언은 우뚝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크리스티앙, 그놈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하여튼, 누구 손주인지 저리 천둥벌거숭이일꼬. 저러다가 큰코다치지.”
메리안은 눈을 크게 떴다.
처음이었다.
노르디언이 직접 크리스티앙을 ‘손주’라고 표현한 건.
노르디언은 가주가 된 이후 혈육 누구에게도 저런 사적인 표현을 쓴 적이 없는데?
의도한 것인지, 무심코 나온 말인지야 알 수 없지만, 대단한 의미의 일이었다.
크리스티앙을 자신이 인정하는 손주로 표현한 것이니까.
“오랜만에 나오니 삭신이 쑤시는구나. 이만 가자.”
“저는 리베리 백작의 성에 잠시 들렀다가 가겠습니다.”
“흐음?”
“흑영 기사단장으로서 리베리 백작이 추가로 무슨 잘못을 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사실, 크리스티앙을 도와주겠다는 목적이었다.
추후 있을 ‘재판’ 때 감찰대장인 그녀가 크리스티앙의 손을 거들면 큰 힘이 될 테니까.
그런데.
“내버려둬라.”
“가주님?”
“어차피 놔둬도 알아서 잘할 것 같으니. 봐라.”
저택 안의 싸움을 비추던 마법이 이번엔 크리스티앙을 따라갔다.
‘쟨 또 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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