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1)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1화
연습생들이 피곤해 죽든 말든 비슷하게 피곤해 보이는 멘토와 함께하는 연습이 시작됐다.
“힘들죠? 이것만 하면 오늘 촬영은 끝이니까 조금만 더 힘내요.”
이렇게 다정다감하게 연습생들을 격려해 주는 멘토가 있는가 하면.
“아까 봤는데 조금만 어려워지면 금방 무너지더라. 그 정도로는 절대 A등급 못 가. 열심히 하자.”
찰싹찰싹 아낌없는 채찍질을 선사해 주는 멘토도 있었다.
우리 묵 선생님은 단연코 후자였다.
이 인간은 도로에서 허우적대는 검은색 비닐봉지만큼이나 보잘것없는 연습생들에게 사뭇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바로 그 고운 말씨로 뼈를 후려쳤다.
“여러분이 한 건 잘 봤어요. 내 점수를 말해주자면, 열정은 십 점 만점에 십 점, 실력은 반올림해서 영 점. 도합 십 점. 만족했어요?”
온화하기만 한 목소리에 한숨 놓았던 외국인 연습생들은 묵혜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짝 얼어붙는 한국인 연습생들을 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뒤에 있던 나가세 리츠가 나를 툭툭 치면서 무슨 뜻이냐고 눈짓했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약인 일도 있는 법이지. 나는 새하얀 미소를 돌려줬다.
그런데 나와 눈이 딱 마주친 묵혜성이 예의 그 1픽셀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너희들 열심히 하는 거 좋아요. 그런데 못했어요.]”
“[그런 실력으로는 한국에서 아이돌 못 해요.]”
“[다른 반 애들이 하는 거 보고 무슨 생각 했어요? 그냥 너희끼리 신나면 다가 아니에요.]”
애들 못 알아먹는 거 보고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한 번씩 말해주시는 이 친절하게 괴팍한 선생님을 어떡하면 좋냐.
외관 나이 3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묵혜성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단히 유능한 멘토였다.
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온 양반인지는 모르겠지만, 4개 국어를 술술 하고 춤은 끝내주게 잘 췄다. 목소리도 좋은 게 노래도 잘할 듯하다.
무슨 이런 사기캐가 다 있어.
사실 여기 있는 모든 멘토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하고 심지어 얼굴도 잘하는 만능에 가까웠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능력치 밸런스 잘 잡혀서 골고루 잘하는 사람이 많다.
먼치킨 아이돌 묵혜성은 가장 먼저 서른 명쯤 되는 연습생을 슥슥 실력별로 분류하더니 못하는 애 중에 특히 못하는 애들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30명이 다 같이 추는 걸 딱 한 번 보고 그렇게 정확하게 분류하는 게 눈에 레이더라도 달려 있나 싶더라.
“묵 쌤 올해 데뷔 몇 년 차셨지?”
왠지 1세대 즈음의 아이돌일 것 같다는 감이 팍팍 와서 옆에서 숨을 고르던 반요한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롤모델이라면서 그것도 모르냐는 가벼운 핀잔과 함께 올해 20년 차라는 답이 돌아왔다.
“미텼다….”
오. 필터링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가 통했다. 역시 하늘 아래 구멍 없는 시스템 없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비속어를 써야 하는지 약간 자괴감이 들지만.
아무튼 그 얼굴로 데뷔 20년 차라고? 자기 관리를 빡세게 했든지, 아니면 아주 어렸을 때 데뷔를 했든지, 그도 아니면 종족이 뱀파이어든지. 셋 중 하나일 것이다.
“뭘 새삼. 크로니클은 이제 살아 있는 전설이잖아.”
“알지 알지, 킹갓제너럴 크로니클.”
이제는 익숙하게 아는 척을 하는데 마주 보고 있던 반요한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입술을 말아 올리며 난감히 웃었다.
“…내 뒤에 묵 쌤 계셔?”
“어.”
뭐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사람 뒤로 와서 말도 없이 서 있어.
그래도 들으면 안 될 나쁜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뭐 어떤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몸을 돌린 나는 재깍 인사를 올렸다.
“존경하는 묵혜성 선생님 오셨습니까.”
“연습하라고 준 시간에 잡담할 만큼 여유가 있어요?”
[게으름을 경멸하는 묵혜성은 앞으로 당신을 주시할 것입니다. 묵혜성 호감도 -2 현재 호감도 0]악! 미친 거 아니야.
오를 땐 굳이 굳이 발가락 끝만 골라서 무는 모기 양심만큼 찔끔찔끔 올랐으면서 깎을 때 이렇게 훅 깎아버리기 있기 없기?
내가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묵혜성이 선수를 쳤다.
“해봐요. 여러분이 마지막이에요.”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못하는 애 중에 그나마 잘한다고 인정받은 애들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안무를 어느 정도는 익혀서 혼자 연습해도 크게 지장이 없는 수준.
“네!”
특히 반요한은 머리가 얼마나 좋은 건지 시스템의 힘을 빌려 외운 나와 달리 순수하게 자기 힘으로 안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운 상태였다.
말은 따로 안 하지만 아마 내가 행운으로 도박해 가며 숙지하기도 전에 외웠을 것 같은데, 설정된 지능이 몇일지 참 궁금하다.
“따 따 따-닷다 땃닷땃.”
“타다다 짝짝짝! 탓 탓 타다다 짝!”
“빰빰 쿵 휘이이이이익 착!”
우리는 열심히 입으로 박자를 세며 하트 어택 1절 안무를 해 보였다.
미친…. 반요한 저 자식 가사도 다 외웠어.
끝나고 눈 딱 마주치니까 아무 일도 없던 척하는데 가사 외우는 입 모양 다 봤다 새끼야.
춤추느라 바쁜 나도 봤는데 묵혜성이 이걸 놓칠 리가.
그는 반요한을 잠시 재어보다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부터 시작할 건가 보다.
“안무 잘 외웠네.”
이제 우리 모두가 이게 칭찬이 아니라는 걸 안다. 저건 정말 외우기만 했다는 뜻이다.
예상대로 묵혜성이 고저가 뚜렷이 느껴지지 않는 평이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이건 힘을 주는 것도 아니고 빼는 것도 아니고. 강약을 따질 거면 제대로 따져요. 그리고 이 동작에서는 이 타이밍에 무게중심을 손목 쪽으로 옮겨야지. 제대로 안 하면 괜히 다치기만 해.”
그건 제 힘이 12라서…….
“턴할 때 그렇게 느리게 돌면 도는 동안 노래 다 끝나지 않을까요? 동작 정확하게 하세요. 이 춤은 특히 몸을 가볍게 하는 게 중요한데… 지금 하는 거 보면 기름칠 덜한 묵직한 로봇 같아요.”
그건 제 민첩이 11이라서…….
“아직 표정을 신경 쓸 만큼 준비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자기가 아이돌이라는 사실은 잊으면 안 되지. 1절만 했는데 그렇게 죽을 것 같은 표정 지으면 사람들이 너 안 봐요.”
그건 제 체력이 17이라서…….
“…….”
그러다 묵혜성이 다소 찜찜한 얼굴로 다른 연습생에게 관심을 돌렸다.
또 천생가련 효과라도 제멋대로 발동됐나 싶었는데 특성 효과가 발동했다는 알림은 딱히 없었다.
마찬가지로 찝찝한 낯으로 내 시선을 피하는 반요한을 붙잡고 물어봤다.
“묵 쌤 왜 저러셔?”
“네가… 욕먹으면서 웃고 있어서.”
“?”
“혹시…. 음, 아니다. 그런 게 좋을 수도 있지. 칭찬보다 욕이 좋은 동생이라고 생각할게.”
그렇게 말한 반요한이 나와 더 말을 섞는 게 꺼려진다는 듯 옆으로 한 걸음 멀어졌다.
세상에.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갔다.
묵혜성의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뼈가 아픈 정도에 비례해 안무 이해도가 쑥쑥 오르는 걸 보며 나도 모르게 실실 웃었나 본데,
오해다. 몹시 오해다! 저 그런 상변태 아니거든요!
“묵 쌤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저 정말 그런 이상한 놈 아닙니다!”
“어, 알았어.”
알았다면서 나를 차갑게 무시하는 묵혜성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따라다니며 아니라고 오해시라고 끈질기게 해명한 뒤에야 가서 연습이나 하라는 말을 들으며 호감도 1을 겨우 회복할 수 있었다.
하. 내가 존예존멋 포스 쩌는 제나도 아니고, 우아하고 세련된 발레리나 같은 한지희도 아니고, 시원스러운 고양이상 미녀 석수영도 아니고, 고작 성격 더러운 묵혜성 호감도 때문에 일희일비해야 하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이게 뭐 하는 짓이냐는 자괴감에 휩싸여 구석 어드메에서 널브러져 있는데 쉬고 있던 묵혜성 반 연습생 몇이 쪼르르 오더니 말을 걸었다.
“너도 참 대단하다.”
“맞아. 형은 혜성 쌤 안 무서워? 나는 쌤이 헛기침만 해도 쫄 것 같은데.”
너희는 게임 할 때 NPC 무서워하냐? 일단 나는 아닌데.
아, 쟤네 눈에는 일개 연습생이 전설급 선배 아이돌한테 겁도 없이 나대는 것처럼 보이려나.
난데없이 게임 속에 들어온 어젯밤부터 초코라떼랑 도넛 하나 먹고 촬영과 연습에 시달린 데다가 1등 의자에도 더 앉아 있지 못해 피로도도 60을 넘긴 상태라 성의 있게 둘러댈 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서 웃어넘기자 녀석들도 진지하게 대답을 바랐던 건 아닌지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버프도 떨어졌는데 열심이군.
기실 이곳은 단순히 게임 속이라고 생각될 만큼 조잡한 세계가 아니었다.
사람은 정말 사람 같았으며 배고픔이나 추위가 주는 괴로움도 실감 났고, 내가 음악을 듣고 느낀 즐거움도 진짜였다.
그러면서도 게임을 하고 있다는 감상은 NPC들 머리 위에 떠 있는 이름처럼 내 머릿속 한편에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몇 년 동안 한 짓이 게임밖에 없어서 그런가. 믿기 어려운 일들만 벌어지고 있어서 그런가.
어차피 게임인데. 허용되지 않는 행위라면 진작에 개발자든 신이든 어떤 초월적인 존재든 이게 무슨 짓이냐고 튀어나와서 밴이라도 먹이지 않았겠냐고.
* * *
아침 일찍 시작한 촬영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졸지 않는 연습생이 없었고, 여기저기서 배가 요란하게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3초에 한 번씩 들렸다.
첫날이라 그런지 기합이 빡 들어간 연습생들은 대체로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그 여파로 우리에게는 딱 자기 발로 좀비처럼 걸어갈 힘만 남아 있었다.
나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작진이나 멘토들은 그래도 짬을 내서 식사한 것 같던데 오직 연습생들만 중간에 준 도넛 하나로 버텨야 했다.
촬영이 지연되는 사이 잠깐 눈이라도 감으려 하면 어디선가 자지 말라는 스태프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런 열정페이를 플레이어가 싫어합니다.’
애초에 이거 출연료는 주나?
늦어도 너무 늦은 저녁은 숙소로 이동해서 준다고 제작진이 말했다.
100명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양이 준비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다 같이 반쯤 죽어가는 걸음으로 스튜디오를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퀘스트 완료 창이 떴다.
[메인 퀘스트 [방구석 게임 폐인이던 내가 이세계에선 아이돌?!> 완료!] [퀘스트 확정 보상으로 연습생들과 멘토들의 관심, 소정의 경험치, 금전, 나흘 동안 머물 숙소, 약간의 옷과 생필품이 든 캐리어가 지급됩니다.] [레벨 업!] [분배 가능한 스탯 포인트가 있습니다.]연습을 하면서 쌓인 경험치에다가 이번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경험치가 더해져 레벨이 올랐다.
매력에 죄다 투자하고 싶은 걸 만인에게 존경받아 마땅한 인내심으로 참아내고 이성적으로 생각을 좀 해봤다.
일단 급한 건 지능이다. 어떨 때 오르는지도 모르겠는데 이 지능이 부족하면 숙지 시도 자체가 안 되니 큰 문제였다.
또 체힘민을 초기에 주로 올렸다고는 해도 아직 한참 부족하다.
추측인데, 이 스탯들이 부족하면 안무 이해도를 100%까지 올리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춤을 추는 데 필요한 능력이 부족한데 어떻게 그 춤을 100% 이해하겠어.
그리고 매력… 하… 매력…….
말을 말자.
유일하게 지혜만이 큰 문제 없이 순조롭게 오르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올라주면 좋겠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하트 어택을 연습하는 데 주어진 사흘 동안 이 모든 걸 수준급으로 올려놓을 수는 없다.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 장기적으로 실력을 올리며 성장 서사를 밀고 나가야 했다.
그런데 이거…….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도 매력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