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39)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39화
은은한 펄감이 감도는 인쇄용지에 팬클럽 이름 ‘에어리’가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오프닝에 당장 들어가도 될 것처럼 유려한 캘리그라피로 적혀 있었다.
멤버들이 곧이어 팬클럽 이름의 의미를 설명했다.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이든 공기가 필요하다. 아이돌에게는 팬이 필요하다. 비약하자면, 오르카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은 팬이다. 팬들은 공기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에어’만으로는 다소 밋밋하고 검색이 어렵다는 의견을 반영하여 끝에 와이를 붙였다.
에어리(Airy)와 페어리(Fairy)…….
우연히도 발음이 흡사하다.
고로 에어리는 오르카를 수호하는 공기의 요정이라는 의미가 최종 채택되었다.
수호천사도 아니고 수호요정이라니, 다소 마이너했지만, 오르카는 그것 나름으로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여기기로 합의를 보았다.
어쨌거나 바다에는 천사보다는 요정이 더 잘 어울리지 않는가?
그들은 온라온이 ‘에어’라는 의견을 내고 서문결이 그를 보완해 ‘에어리’라는 말을 떠올렸을 때 불현듯이 깨달았다.
그들의 머리로, 나아가 입사 기준에 수준 이하의 작명 솜씨가 포함된 게 분명한 회사 직원들의 머리로는 저 이상의 이름을 생각해 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강지우가 회의 결과를 회사에 전달하자 대번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회사도 멤버들과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시드의 희망이라 할 수 있는 주열음 이사도 이게 나쁘지 않은 이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능력은 있었으나, 직접 만들어낼 능력은 없었다.
아니면 팬들에게 팬클럽 이름 공모를 받는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알아서 괜찮은 것을 만들어 왔는데 굳이?
농부, 따까리, 어부를 거쳐 온 오르카 팬들은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그럴듯하고 예쁘고, 오르카와 어울리면서도 감동적인 의미를 가진 이름이 튀어나오자 환호했다.
– 에어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예쁘다
– 우리가 요정이야??
– 응원봉은???ㅠㅠㅠㅠ
– 얘들아 예쁜 이름 고마워♥♥♥
일단 어디 가서 말하기 창피한 이름은 아니라는 점에서 대만족이었다.
[저희 팬분들, 아, 이젠 에어리죠. 에어리 여러분은 사상 최초로 육해공 세 영역을 모두 정복하신 대단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죠.]– 라온아 왤케 우릴 자랑스러워하는 얼굴이얔ㅋㅋㅋㅋㅋㅋㅋ
– 육해공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맞넼ㅋㅋㅋㅋ 땅→바다→하늘까지 왔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강해진 기분이다ㅋㅋㅋㅋㅋㅋ
실시간으로 우호적인 댓글을 확인하고 에어리와 함께 기뻐하는 멤버들을 본 금규리도 왠지 감격하여 가슴이 두근거렸다.
팬클럽 이름이 생기니 이제까지보다 명확한 소속감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런데.
‘에어리. 에어, 리…… 에어 리……?’
이것을 한국식 이름으로 고치면.
‘이공기 씨…….’
제목에 있던 ‘이공기’의 의미를 알아낸 금규리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거에 웃다니…….
‘아, 자존심 상해.’
누군가의 시답잖은 말장난으로 인해 이공기 씨는 이후 오르카 팬들, 아니, 에어리의 애칭이 된다.
[그리고 제목에 이공기 씨라고 한 건 지우 형이에요. 한국 이름도 같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면서.] [저랑 동갑이지만, 이런 면에서는 참…… 아저씨 같지 않나요.] [난 괜찮은데…….] [요한이 형, 아저씨 같다뇨. 결이 형한테 사과해요!] [저기요! 얘한테 욕먹은 건 나거든요?!]B앱 라이브 방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던 팬클럽 이름 공개 다음에도 오르카는 한동안 즐겁게 여러 이야기를 떠들다 갔다.
‘Present’를 계기로 멤버들이 단체로 아카펠라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최근 위튜브 시청 기록에 아카펠라 관련 영상들이 가득하다는 것.(오르카는 허세나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에어리’로 간단한 아카펠라를 해 보였다. 꽤 잘했다.)
그동안 ‘해방’ 활동을 잘 마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
아까 전에 보여주었던 팬클럽 이름 캘리그라피를 쓴 것이 서문결이라는 것.
[결이는 사람이 그냥 예술적이에요.] [얼굴부터 예술적이죠.] [하하, 나는 결이 형이 그려준 그림 있다.] [뭣. 서문 화백! 저한테도 주세요!] [형, 싫다고 말해!] [싫어.] […….] [형, 저도 안 돼요?] [돼.] [야, 서문결. 너 진짜 이럴래?]– 내리동생편애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서문결.. He is ORCA
– love you
[여러분 팀 내 불화 아니구요. 조합만 바꿔가면서 하루에 한 번씩 이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 참, 제가 리더로서 잘 중재를 해야 하는데 권위가 없어서…….] [누가 들으면 본인은 안 싸우시는 줄 알겠어요, 강지우 씨!] [예……. 아무튼 매일 싸우니까요, 일일 행사니까요…….] [자랑할 게 없어서 매일 싸우는 걸 자랑하냐!] [뭐라고? 반지 빼? 어? 함 빼봐?] [여러분, 저기 지우 형이랑 요한이 형이 싸우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희 친해요.] [빼봐라! 그날로 너랑은 절교니까!] [저희 친해…….] [너, 너, 너어어! 어떻게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너한테는 그냥 장난이야?!] […….]– 요한씨 우리 쥬는 마음이 무척 여린 친구예요.. 살살해주세요…
– 자기가 먼저 반지 빼냐고 해놓고 절교하자는 말들으니까 찐상처받은 표정 뭔뎈ㅋㅋㅋㅋㅋㅋ
[……아무래도 ‘친해져요, 오르카’ 시즌 2가 필요한 것 같죠, 성하 씨?] [혼자만 결이 형 그림 받고 아무 말도 없던 비겁한 라온 씨랑은 할 얘기 없어요.] [뭔 소리야! 전에 우리 그룹 이름 정할 때 보여 줬잖아!] [얘들아…… 조금만 진정 좀.]– 5명있는데 4명이 싸우고 다른 한명은 원인제공하셨는데욬ㅋㅋㅋㅋㅋㅋㅋㅋ
– 댕온.. 둘다 소리 못 지르고 웅냥웅냥거려서 귀엽기만 해..
– 뜻밖의 친르카시즌2떡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저앞에서 저거 보고 계실 직원분은 무슨 죄인지 복인지ㅋㅋㅋㅋㅋㅋ
왕왕 싸우다가도 서로 안기고 치대고 웃으니 팬들도 진지하게 불화설을 걱정하는 대신 함께 깔깔 웃으면서 난장판이 되어가는 라이브 방송을 지켜볼 수 있었다.
오르카 때문에 처음 접속해 본 B앱 라이브는 금규리에게 신세계였다.
옆에 있는 멤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가 몸을 바로 했다가 말랑말랑한 자기 뺨을 아무 생각 없이 조물조물하는 온라온의 사소한 모먼트 하나하나를 보다 보니 광대가 절로 치솟았다.
눌린 횟수가 기록으로 남는 하트를 열심히 누르다가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생겼을 때는 재빨리 화면을 캡처하기도 하고, 높은 확률로 다른 팬들의 것에 묻혀 오르카가 미처 볼 틈도 없이 금세 쓸려 내려갈 것을 알면서도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실시간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옆에 있는 직원의 퇴근을 위해 이제는 가야 한다며 오르카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라이브 방송이 종료될 때까지의, 그 모든 시간이.
마냥 좋았다.
* * *
라이브 방송까지 모두 마치고 숙소로 복귀한 우리는 바로 음식 판을 벌였다.
강지우가 미리 재워 두었던 등갈비를 완성해서 내놓고,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넉넉하게 사 온 과자와 음료수도 포장을 뜯어 상에 늘어놓았다.
“해방 활동 잘 마친 거 너무 장하고, 대견하고 고맙다! 내년에도 열심히 하자! 오르카를 위하여!”
저 구식 건배사…… 옛날 일 생각나네.
“위하여!”
그래도 지금은 그저 신났다. 물론 우리가 들이켠 것이 진짜 술은 아니고 탄산음료였다.
‘술 마시고 싶어…….’
내년이면 나만 미성년자다 이거지. 혹시 몰라 미국 법까지 찾아봤는데 거기는 오히려 음주 가능 연령이 만 21세 이상으로 한국보다 높더라. 젠장!
다들 몸의 피로 같은 건 잠시 잊고 즐겁게 과자를 까먹고 살짝 매콤한 강지우표 등갈비를 뜯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거 봐. 아까 지우 형 성량 미쳤다고 글 올라온 거 엄청 많아.”
“이야, 라온이는 또 실검 갔네.”
“왜?”
“잘생겼다고.”
“이젠 놀랍지도 않다…….”
“소속사 콘서트 진짜로 하면 좋겠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팬클럽 이름 요정 같고 귀여운 것 같아요.”
견성하의 말에 감자칩을 바삭바삭 씹어먹던 반요한이 대꾸했다.
“글쎄. 요정이 과연 귀엽기만 할까?”
묘하게 삐딱한 어조였다.
“이 형은 또 뭐가 문제죠?”
“가만 보면 사람이 굉장히 꼬였어.”
견성하의 말에 내가 맞장구쳤다.
“말해봐. 팬들이 왜 요정인데?”
“예를 들면……. 신데렐라에서, 요정 할머니가 와서 신데렐라한테 호박 마차도 주고, 드레스도 주고, 유리구두도 주잖아요.”
‘얘 지금 요정 할머니 보고 귀엽다고 하는 건가…….’
“응. 그래서?”
“아무튼 요정은 엄청 도움이 되면서도 귀여운 거라고요! 팬들이 우리한테 해주는 거랑 똑같이!”
귀엽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견성하의 말을 듣던 반요한이 상큼하게 지껄였다.
“너 예시가 되게 트윙클하구나.”
“트윙클하다는 게 뭔데요?!”
“트윙클하다는 건 말이야…….”
반요한이 오늘따라 재수 없게 지적인 낯짝으로 뜸을 들였다.
“그러니까…….”
트윙클하다는 게 이렇게 거창하게 뜸 들일 말이었나?
“트윙클하다는 거지!”
분위기에 취한 건지 제정신인데 저러는 건지 모르겠군.
“끄학하하! 반요한 탄산 마시고 취했…….”
뒤로 벌렁 드러눕기까지 하며 신나게 웃던 강지우의 코끝이 살짝 찡긋거리더니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옆으로 데굴 굴러 벌떡 몸을 일으킨 강지우가 반요한의 멱살을 잡았다.
‘자, 잡았어? 멱살을?!’
“이 자식…….”
강지우의 뜨거운 눈길을 받은 반요한이 아랑곳없이 사이다를 호로록 마셨다.
“흐흥….”
설마 저 사이다…….
“지 혼자만 사이다에 술 타서 마시고 있었잖아!?”
“에이. 모른 척해주라아. 우리 사이에!”
“옆에 애들도 있는데 형이 돼서!”
“그래서 별로 섞지도 않았다구. 딱 반의반의 반만 넣었는데.”
“그걸 몇 잔째 마시고 있는데!”
“이제 석 잔?”
“그래도 생각보다는 덜…….”
“첫 잔에는 반을 탔고, 둘째 잔에는 반의반을 탔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이도 처마셨다.
“미친놈이…….”
“지우야. 우리 한번 같이 미쳐 보지 않을래?”
반요한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한 번 의식하고 나니 녀석에게서 술 냄새가 폴폴 풍겼다.
“그, 그럼 따악 한 잔만…….”
“따악 한 잔은 무슨! 똑같은 인간들이!”
잠시 뒤, 몹쓸 20대들에게 그냥 대놓고 마시라 한 뒤에야 겨우겨우 하던 얘기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호박 마차! 드레스! 유리구두! 그래.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반요한이 사이다 잔, 아니, 술잔을 식탁에 탁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이번에도 동어반복으로 허무하게 끝나는 건 아니겠지.
“그걸 네 앞에 살포시 놓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그렇지?”
반요한이 잔에 사이다를 아슬아슬하게 흘러넘치지 않을 정도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 호박 마차를 네 머리 위에 떨어뜨릴 때도 여전히 요정이 귀엽기만 할까?”
“이…….”
“잘 들어! 요정은 네 앞에 호박 마차를 대령해 줄 수도 있지만, 수틀리면 네 머리 위에 그걸 떨어뜨려서 널 꽥, 하고 단번에 보내버릴 수도 있다, 이거야! 방심하지 말라고!”
뚝… 뚝…….
약간의 알코올 냄새와 단내가 섞인 액체가 머리카락을 푹 적시고 얼굴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맛있는 향기가 나서 나도 모르게 입가 근처에 흐른 걸 핥았다가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반요한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이 몰인정하게 미친 새끼가 말로 하지 그걸 왜 내 머리에 쏟는데?!”
[부적절한 언어 사용으로 비속어 필터링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남은 시간 00:59:59)]넌 꺼져!
그날 밤, 나는 소원을 빌었다.
저 새끼 위에 꼭 썩은 호박이 우수수 떨어지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