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38)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38화
“오르카 스탠바이하겠습니다!”
SBC는 ‘Present’ 무대를 중후반부에 배치했다.
오르카만 출연하는 것이었다면 훨씬 앞쪽 순서를 배정받았겠지만, 연차 높은 선배 가수들이 함께였고 가요제전의 최종 라인업이 발표된 뒤 무대의 주목도도 높아진 상태라 방송국에서도 나름 대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대 아래, 곧 타고 올라갈 리프트에 일렬로 선 오르카는 목을 풀고 호흡을 고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연말 무대라는 게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격이라 그동안에는 코앞의 무대 준비만 눈에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수용인원이 만오천 명이 훌쩍 넘는 돔에 와 현장 특유의 분위기를 실감하니, 아무리 대담한 그들이라 해도 약간은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 소리가 중간에 안 나오면…….”
“내 마이크 주면 되지.”
얼마간 마이크를 손에 든 채 벌벌 떨던 견성하를 말 몇 마디로 익숙하고 능숙하게 진정시킨 온라온이 생각했다.
‘얘는 온갖 걱정을 사서 하는 타입이란 말이지. 그런 것치고 조금만 다독여 주면 금방 진정하고.’
견성하가 그러는 이유는 온라온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처럼 말해주니 안심되는 동시에 동생에게 그런 격려를 받은 것에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사실 후자 쪽 이유가 더 컸다.
리프트를 타기 직전, 멤버들은 리더 강지우의 눈짓에 손을 모았다.
“혹시라도 넘어져서 다치지 말고 첫 연말 무대 멋있게 신나게 해치우고 오자.”
이윽고 사회자가 그들의 순서를 알렸다.
무대 위로 향할 시간이었다.
* * *
‘한다!’
금규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돌만 나오는데 뭐 볼 게 있다고 이걸 틀어놓냐며 아우성치는 가족으로부터 리모컨을 겨우 사수했다.
최근 가사를 달달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들은 ‘Present’의 전주가 흘러나오자 눈을 반짝인 금규리는 자신이 이 무대를 기다렸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얼른 손안에 있는 귤을 열심히 까는 척했다. 그러면서도 눈길은 슬쩍슬쩍 TV를 향했다.
산타 복장을 한 배세일, 권겨울, 홍서람,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진녹색 원피스를 입은 유시원과 말 그대로 트리 코스튬을 입은 투모로우와 장고, 그리고 순록 뿔 머리띠와 빨간 코 장식을 포함해 귀여운 순록 의상을 입은 오르카가 본무대와 돌출 무대를 오가며 ‘Present’를 신나게 노래했다.
시간이 부족해 편곡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지만, 한 가지 유의미하게 바꾼 구간이 있었다.
바로 후반에 떼창 구간을 넣은 것이다. 잘못했다가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 분위기가 싸늘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시드에는 행사 만렙 선배 가수들이 많았다.
[자, 다 같이 불러볼까요!]배세일이 선두에서 노련하게 현장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다른 이들도 구경만 하지는 않았다.
“나나나-” 하면서 음을 맞춰 주기도 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개구쟁이처럼 굴기도 하고, “같이 안 부르시면 저희 울어요!”, “울면 선물 못 받는데!” 장난스럽게 협박하기도 하고.
그 열정 속에서 서로 다른 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응원봉을 든 관객들이 화답했다.
그래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건 널 위한 Present
현장에 오르카의 팬은 거의 없었지만, 노래가 워낙 흥했기에 따라부르는 목소리는 돔을 어마어마하게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자기 집 거실에 있던 금규리도 그녀의 가족들도 시드 식구들이 자아내는 크리스마스 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노래 좋다.”
“나 이거 요즘 백 번은 들은 것 같아.”
“오늘 본 것 중에는 얘네가 제일 잘하네.”
“그러게 쓸데없는 아이돌 말고 저런 배세일이나 홍서람이나 권겨울 같은 가수들 많이 불러주면 좀 좋아.”
오르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비밀로 하던 금규리는 속으로 아이돌이 왜 쓸데없냐고 반발했지만. 그 이야기를 굳이 소리 내어 하지는 않았다.
가족들도 대단한 악의가 있어 하는 말은 아니었다.
화면에 온라온의 모습이 단독 샷으로 비치자 TV를 보던 가족들이 감탄했다.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생긴 애가 다 있다니.”
그 시각 가요제전을 시청하던 모든 이들이 한 생각이었다.
“실제로 보면 더 잘생겼어.”
나는 쟤들한테 관심이 없다고 어필하듯 새침하게 답한 금규리의 노력이 무색하게, 평소 연예인에 큰 관심을 두지 않던 딸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대놓고 물어봤다.
“너 쟤네 좋아해?”
내심 뜨끔한 금규리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번에 방송국 근처 지나가면서 우연히 봤어.”
다행히 크게 어색하지 않은 목소리 덕에 가족들은 이상함을 느끼지 않고 무대에 마저 집중했다.
오르카를 좋아하는 것을 왜 숨겨야 하는지는 그녀 자신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를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게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학생 때야 그렇다 쳐도, 성인이 되어서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은 주류에서 벗어난 거라고 여겨온 금규리 자신의 기존 인식이 작용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공연히 씁쓰레했던 마음은 대기권을 돌파할 듯한 성량을 보인 강지우의 뒤를 이어 성당 종탑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처럼 낭랑하게 울리는 온라온의 목소리를 듣자 언제 그랬냐는 듯 풀어졌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지.’
* * *
짧은 시간에도 성실하게 준비한 무대에 대한 반응이 생각 이상으로 뜨거웠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도 가요제전 ‘Present’ 무대와 관련한 키워드들이 잠깐이지만 여럿 올랐다.
“하이고, 추운 날 고생하셨습니다잉.”
“가요제전은 저희도 처음인데 좋았어요. 나중에 또 이런 무대 할 기회 있었으면 좋겠네요!”
“나는 회사 아티스트들끼리 콘서트 여는 게 그렇게 부럽더라. 우리도 나중에 그거 하자. 합시다!”
“얘들아, 너네도 고생했다. 다들 잘하더라.”
원래도 TV 출연에 그다지 욕심도 관심도 없는 시드의 선배 가수들이 갑작스러운 연말 무대 요청에 성실하게 응한 것은 이후 보복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갓 데뷔한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누가 따로 말해준 것은 아니지만 선배들이 베푼 후의를 어렴풋이 느낀 오르카는 진심을 담아 몸을 숙였다.
“선배님들이랑 한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에이, 우리 사이에 영광까지야.”
“새해 복 많이 받고 열심히 해.”
전 출연진들이 나와 인사하는 엔딩 무대까지 마친 시드 가수들은 그대로 퇴근길에 올랐다.
이제부터 회사로 가 첫 B앱 라이브를 해야 하는 오르카만 빼고.
“아이고 죽겠다.”
“조금만 더 참아.”
“숙소 가면 지우 형이 한 등갈비가 기다리고 있다!”
“고기! 과자! 탄산!”
“파티!”
곧 눈 앞에 펼쳐질 자극적인 음식 생각으로 체력과 함께 죽었던 의지를 되살리며 회사에 도착한 오르카는 편안한 사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촬영 장비가 세팅된 연습실에 들어섰다.
“얘들아, 말조심. 표정 조심. 댓글 조심.”
직원의 마지막 당부와 함께 방송이 시작됐다.
* * *
데뷔 후 첫 라이브 방송에 ‘해방’ 활동이 끝난 이후 떡밥에 목말랐던 팬들의 기대감은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오늘 방송에서 팬클럽 이름까지 공개할 거로 생각하니 흥분은 두 배가 되었다.
가요제전이 끝나자마자 방문을 닫고 들어간 금규리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전날 예고했던 시간인 밤 10시가 되자 오르카가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는 B앱 알림이 왔다.
[오르카(ORCA)가 라이브를 시작했습니다.오르카(ORCA): 이공기 씨, 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방송 제목이 전날 공지했던 것과 달랐다.
‘설마 이공기가 팬클럽 이름은 아니겠지…….’
이공기라는 심상치 않은 단어를 본 금규리가 은은한 불길함을 느끼며 곧바로 알림을 연타해 방송에 들어갔다.
잠시 뒤, 벽을 등지고 모여 앉은 신수 훤한 얼굴 다섯이 태블릿 화면 가득 떠올랐다.
갑자기 핸드폰 화면 밝기가 30 정도 높아진 것 같았다.
‘핸드폰 말고 태블릿으로 켜길 잘했다.’
금규리의 눈이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앞줄 오른쪽에 자리한 온라온에게 꽂혔다.
[이제 되는 건가?] [어, 숫자 늘어난다.] [알림이 늦게 간 분들도 계실 테니까. 한 1분만 더 기다릴게요.] [저희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니까 심심하시죠.]온라온이 그렇게 말하며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카메라 가까이 훅 다가온 탓에 금규리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물렸다.
온라온은 자기가 멤버들이 얼굴을 가린 것을 알고 몸을 다시 뒤로 뺐지만 느닷없는 얼굴 공격에 당한 가슴은 한동안 벌렁벌렁했다.
– 안심심해ㅠㅠㅠㅠㅠ
– 오늘 무대 너무너무 잘봤어!
– 오르카안녕!!! 메리클쓰마스!!
– 라오니 표정이 넘 기엽닼ㅋㅋㅋㅋㅋㅋㅋ
– 내 코멘트를 보면 볼을 만져
– 숨만쉬어도좋아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창을 읽기 위해 시선을 멀리 있는 화면에 고정시킨 오르카 멤버들은 자신들이 라이브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를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카메라 뒤쪽에 위치한 스태프의 꾹 참는 웃음소리가 얼핏 들렸다.
[아무튼 저희가 심심하지 않게 해드릴게요.]그렇게 선포한 멤버들은 미리 약속한 것처럼 ‘Present’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10시 1분이 되었을 때, 노래를 멈췄다.
제일 듣기 좋은 부분에서 끊겨서 금규리는 눈치 없이 지나간 1분을 욕했다.
‘조금만 더 느리게 지나가지…!’
뭐, 매정하게 끊어버린 오르카를 욕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인사 먼저 드리겠습니다!] [On and on, ORCA!] [안녕하세요. 오르카입니다!] [와아아아아! 첫 비앱!] [저희도 보고 싶었어요!] [얘들아, 일단 좀 앉고…….]시작부터 오디오가 안 비었다.
첫 B앱 라이브여서인지, 곧 발표된 팬덤 이름 때문인지, 끝나고 있을 파티 생각 때문인지, 텐션이 장난 아니었다.
– 얘들아 왤케 신나썽ㅋㅋㅋㅋㅋㅋㅋㅋ
– 이공기가 뭐야?? 설마 그게 팬클럽 이름은 아니지ㅠㅠㅠㅠㅠㅠ 아니라고 말해줘ㅠㅠㅠㅠㅠㅠㅠㅠ
– 나 오늘 생일이얌
– 사랑해
– 비앱 자주켜줘ㅠㅠㅠ
– 팬덤명부터 빨리 알려줘
[다들 크리스마스 선물 받으셨어요?] [저희가 온 게 선물이죠? 다 알아요. ……죄송합니다.] [와, 진짜 많이 들어오고 계시네요.] [늦은 시간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방송을 켤 생각은 아니었는데…….]원래 25일에 크리스마스 선물 컨셉으로 방송을 하기로 계획했던 것은 맞지만, 가요제전 스케줄 때문에 원래 이른 저녁 예정이었던 방송 시간이 늦은 밤으로 밀렸다.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강지우가 출력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