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37)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37화
“라온아.”
“응?”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 강지우가 샵에 가기 전 머리를 감고 나온 내게 대뜸 와서 쾌활하게 말했듯, 오늘은 해외에서 들여온 소중한 빨간 날, 크리스마스였다.
물론 내 삶에서 주말이나 빨간 날의 의미 따위 사라진 지 오래였고, 크리스마스 역시 게임에서 이벤트 빵빵하게 하는 기념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살다 보니 누군가한테 크리스마스 인사를 받는 날도 다 오는군.’
감회가 새로웠다.
어쨌든 이따가 접속 보상은 꼭 챙기고…….
잠깐만, 나 지금 인사를 받기만 하고 안 돌려줬잖아.
“형도 메리 크리스마스.”
나를 깨워놓고 주방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강지우가 내 쪽을 보더니 산뜻하게 웃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따 와서 먹을 거 준비.”
과연 자글자글 끓였다가 지금은 식히는 중인 소스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 옆에는 밤사이 핏물을 빼고 미리 데쳐 둔 등갈비가 있었다. 부지런하기도 하다.
“집에 오면 자정일 텐데.”
“뭐 어때. 가끔은 야식도 먹어줘야지.”
오늘 팬클럽 이름을 발표하는 라이브 방송을 마친 뒤 우리끼리 숙소에서 조촐한 파티를 할 예정이었다.
올해의 공식적인 스케줄을 모두 무사히 마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다음부터는 휴가였다. 연말 무대 준비로 갑자기 바빠진 것을 고려해 원래 이틀이었던 휴가 기간이 30일까지로 대폭 늘어났다.
“다 됐다.”
충분히 식은 소스와 고기를 열심히 버무린 뒤 숙성시키기 위해 베란다에 내놓은 강지우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고생했어.”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의미 없이 틀어둔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던 다른 멤버들도 새벽부터 시작된 강지우의 요리가 얼추 끝난 것을 확인하고 그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몇 마디 던지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갈 준비 하자.”
* * *
아침 일찍 고척하늘돔으로 가 리허설을 한 후, 샵으로 가서 한껏 멋을 낸 우리는 가요제전 출근길에 있던 포토월 행사를 훌륭하게 치렀다.
기자들이 사정없이 팡팡 터뜨리는 플래시 세례에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서 3초 정도는 눈을 똑바로 뜨고 있을 수 있었다.
출근한 이후에는 때때로 스태프에게 불려 나가거나 특별 출연하는 원로 가수에게 인사하러 갈 때를 빼고 대기실에 박혀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소속사 선배들이랑은 대기실을 따로 배정받았다. 만약 12명이 한 대기실을 써야 했다면…….
‘으, 상상만 해도 부담스럽다.’
오늘 모인 수많은 가수 중 우리가 제일 후배였다.
마주쳤을 때 반갑고 살갑게 인사할 만큼 아는 사람도 딱히 없다.
이번 가요제전에 픽하트3 출신 아이돌 중 어떤 형식으로든 출연하는 건 우리뿐이고, 멤버 다섯 명 중 네 명의 첫 회사가 시드라 달리 알고 지내는 아이돌 친구도 없었다.
나는 트루 출신 아니냐고? 아니다. 내 기억에 없으니까 아니다. 아무튼 아니니까, 걔들이랑 엮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같은 그룹으로 데뷔할 뻔한 체이서나 다른 SS 출신 아이돌과 친분이 있는 강지우가 그나마 대외 활동을 했다.
지켜보고 있자니 혼자서 다른 멤버들의 것까지 대신해 총 5인분의 사교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역시 난 내향인 맞는 거 같은데.’
진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생각을 하며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수 여러 개를 요령껏 손과 팔에 끼워 넣는데, 저편에서 이샛별이 혼자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샛별도 나를 알아봤는지 걷는 속도를 조금 늦췄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만난 이샛별은 여전히 6등성 별처럼 곧 꺼질 듯 가냘픈 인상이었다.
“초코라떼 좋아하세요?”
나는 살짝 뜨거울 만큼 따끈한 캔 음료를 이샛별에게 내밀었다. 이렇게 많이 들고 있는데 하나쯤 권하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고마워요.”
이샛별은 잠시 고민하다가 받지 않는 게 더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내가 내민 캔 음료를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데뷔 축하해요.”
“아, 감사합니다.”
곧 그룹 해체를 앞둔 사람한테 데뷔를 축하받으려니 조금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이샛별이 속한 유어스는 활동 종료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12월 29일에 있을 KBC의 연말 가요프로그램인 가요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것이 유어스로서 하는 마지막 방송 출연일 것이다.
그리고 30일에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한 뒤, 31일에 완전히 해체.
내가 유어스의 팬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냐면, 최근 연예란 뉴스만 보면 유일하게 남은 픽하트 데뷔 그룹 유어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한 달 전, 검찰은 픽하트 시즌 2와 3의 순위 조작 사실을 최종 발표했다. 지갈새, 아니, 조인수 PD를 비롯해 문제가 된 제작진은 현재 기소된 상태이다.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지난여름, 이샛별은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말하자면 꽤 긴데.
나는 이샛별 덕분에 탈 없이 시드에서 데뷔할 수 있었다.
* * *
지난 6월.
온라온과 이샛별은 남들의 눈을 피해 만났다.
한쪽은 최근 2년 사이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여자 아이돌. 다른 한쪽은 한창 주가 상승 중인 남자 아이돌 연습생.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제대로 스캔들이 날 만한 조합이었지만, 주위에 그들을 찍는 카메라가 없는 것은 온라온이 스킬로 확인했다. 근처를 지나는 사람도 딱히 안 보였고.
“정말 연락해 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런데 저를 왜…….”
반드시 얼굴을 보고 말해야 한다는 용건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렇게 말하는 듯한 온라온의 눈을 마주 본 이샛별은 심호흡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샛별이 떨리면서도 가능한 한 침착한 목소리로 해준 이야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트루를 포함해 여러 연예기획사를 거치며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최종적으로는 개인 연습생이 되어 픽하트 시즌 2에 출연했던 이샛별은 현재 알트와 관련된 소속사, 타크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맺고 있었다.
“조인수 PD님은 데뷔하고 싶으면 타크와 계약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만일 이샛별이 타크 엔터와의 계약에 응하지 않는다면, 데뷔권 안에 있는 그녀의 순위를 조작해서라도 떨어뜨리겠다는 말이었다.
이번이 마지막 데뷔 기회라고 여겼던 이샛별은 그 부당한 제의를 거부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러겠는가. 함부로 거역했다가는 앞으로의 연예계 생활도 가시밭길이 될 것이 뻔한데.
그러나 유어스 데뷔 멤버 자리를 빌미로 이샛별이 묶이게 된 계약은 한 번 이슈가 되었던 권겨울의 건과 비슷한, 오히려 그때보다 더 심각하게 악질인 계약이었다.
그리고 이샛별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개인 연습생 신분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온라온 또한 과거의 그녀와 비슷한 상황일 거라 짐작했다.
정답이었다.
조인수 PD를 비롯한 픽하트 관계자들은 모 회사에서 데뷔를 청탁받은 연습생 한 명을 제외하고 이샛별과 같은 조건으로 온라온을 데뷔조에 넣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픽 유어 하트에서 데뷔를 포기하라고 라온 씨를 설득할 생각은 없어요. 라온 씨는 그걸 원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알려드리고 싶은 거예요. 다른 길도 있다고.”
“방법이 있나요?”
“반드시 통할 거라고 장담하지는 못해요. 그래도 시도해 볼 수는 있겠죠.”
그때만큼은 이샛별도 연약해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혼자 고민한 후 결심을 굳힌 것이 분명한 눈빛이었다.
“저는…….”
“…….”
“다른 길로 가보고 싶어요.”
온라온의 의사를 확인한 이샛별은 온라온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여전히 트루에 묶여 있는 것 같다는 거짓 정보를 살짝 흘렸다.
온라온이 나서서 거부할 수는 없으니 제작진 측에서 알아서 포기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녀가 한때 몸담았던 트루가 어떤 회사인지 잘 알고 있기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뮤직박스와 긴밀한 관계인 타크 엔터는 그 이야기를 픽하트 쪽에 보고했다.
정보가 사실이라면 온라온이 브레이커로 데뷔해도 타크와 계약할 가능성은 작았고, 그럼 데뷔 내정 멤버를 떨어뜨려 가며 온라온을 데뷔시킬 이유가 사라진다.
해당 사안을 보고받은 픽하트 제작진은 곧장 트루 엔터에 사실을 확인했다.
온라온이 자기들에게 묶여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지만, 그가 탈락해 트루에 복귀하기를 원한 길준용은 일단 다 밀어두고 사실이라는 식으로 답했다.
이쪽도 이샛별과는 의도부터 다른 이유로, 온라온이 픽하트에서 데뷔하는 것은 막고 싶었기 때문이다.
트루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만에 하나 온라온이 픽하트에서 데뷔할 것을 우려해 예의 그 사기캐 논란까지 퍼뜨리고 만다.
나중에 해당 논란을 수습해 주는 조건으로 온라온을 회사로 데려올 작정이었다. 몸집에 비해 하는 짓이 참 졸렬했다.
조인수 PD가 양심 아닌 양심을 보이며 그 일은 말짱 도루묵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픽하트는 온라온을 놓아줬다.
그러나 픽하트가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온라온의 시드행 기사가 떴다.
아니, 트루가 아니라 난데없이 시드라니?
감쪽같이 속아 온라온을 놓아준 것을 알게 된 뮤직박스는 트루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그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두 집단은 그대로 틀어졌다.
뮤직박스나 트루나, 기가 막힌 자승자박이었다.
* * *
다시 생각해도 열 받는군.
뮤직박스도, 트루도, 다 망했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논란 글도 트루에서 올린 것 같은데…….
이샛별이 아니었다면 나는 조작 이슈로 활동이 중지된 브레이커에 한동안 묶여 있어야 했겠지.
그러면 오르카로 데뷔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예전에 이미 전화상으로 감사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이는 이샛별에게도 위험 부담이 적잖게 있는 일이었을 테니, 직접 얼굴을 보고 인사하고 싶었다.
따로 불러내기도 뭐하고, 활동 기간이 겹치는 것도 아니라 그동안은 좀처럼 볼 기회가 없었는데 우연히 기회가 생겨 다행이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이샛별이 얼굴을 옅게 붉히며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다음에 제가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꼭 도와드릴게요. 꼭이요.”
괜찮다고 말하던 이샛별은 내가 강하게 주장한 끝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가볼게요.”
“들어가세요.”
언제 누가 들을지 모를 장소에서 길게 이야기를 할 만한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곧 헤어졌다.
대기실로 돌아와 뽑아온 캔 음료를 멤버들과 스태프들에게 나눠준 나는 이샛별에게 준 것과 같은 초코라떼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샛별은 왜 본인이 곤란해질 것까지 감수하며 나를 도운 걸까?
나를 도와서 이샛별이 얻을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심……은 절대 아니고.’
같은 처지인 나를 동병상련해서 도와주고 싶다고 느낀 건가.
아무래도 마음이 약해 보였으니까.
호감도 알림이라도 떴다면 뭐라도 더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니야. 그건 없는 거라고 생각하자.’
그러고 보니 래리 이 자식.
아직도 안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