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7)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7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자 연습생들의 시선이 모였다.
“여러분, 마지막으로 반장으로서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네에.”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요 며칠 고생을 좀 했거든요. 왜인지는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하는데요.”
다소 시건방진 문장이었지만 나 잘났다고 하려고 꺼낸 이야기는 아니다.
연습생들도 그걸 느꼈던지 기분 나쁜 기색 없이 내 말을 잠자코 들어줬다.
그래. 너네가 반장으로 뽑아놨으면 말은 들어줘야지.
“제가 무슨 큰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하나만 약속해요.”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은 진심이다.
고작 그 조그만 보상 받으려고 개고생을 했겠냐?
애초에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내가 진짜 바라는 건.
“중간에 포기하지 말기. 적어도 음악이 끝나기 전까지는 포기하거나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번 꿈을 포기했던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우리 연습 열심히 했잖아요. 그렇게만 하면 저희 다 같이 무대 올라갈 수 있어요.”
중요한 부분만 쉬운 영어로 되풀이해 말해주니 영문을 몰라 하던 외국인 연습생들이 말뜻을 알아듣고 미소를 지었다.
돌발 퀘스트가 일찌감치 완료됐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어제 자기 전까지만 해도 명확한 수치로 표시되어 있던 게 지금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아무런 확신을 주지 않으려는 듯 [??/32]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만큼 노력했으면 단독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하더라도 무대에는 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현실은 노력으로만은 헤쳐 나갈 수 없는 공간이지만 여기는 게임 속이고 플레이어 캐릭터를 이런 곳에 떨어뜨렸으면 나름 희망적인 전개가 펼쳐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에.
‘…이거 과몰입인가?’
그런 생각을 할 때, 누군가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온라온 왜 분위기 잡냐!”
“무게 잡는 거 하나도 안 어울려!”
“옳소!”
아 진짜, 이 NPC 새끼들이!
“기껏 생각해서 말했더니 사람들이 왜 그래?!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랬어.”
“난 갈색 머린뎅.”
“나는 금발.”
“아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이 실실 웃으면서 내 어깨나 등을 툭툭 쳤다.
웃는 얼굴이었다.
연습생들의 호감도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왠지 보고 싶지 않아서 바로 꺼버렸다.
“우리 파이팅 한 번 하고 시작하자.”
누군가 한 말에 서른 명이 넘는 연습생이 우르르 일어나서 손을 모았다.
“혜성 반 파이팅!”
“파이팅!”
한결 풀린 분위기.
자기는 이런 건 나중에 하면 더 못하는 편이라면서 김준우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
응원과 격려의 박수가 김준우의 등 뒤로 쏟아진다.
“웨스 뮤직 김준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떨리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작동시키고, 소속사와 이름을 밝히며 인사를 하고, 연습한 춤과 노래를 보였다.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만족한 듯 옅게 미소 짓는 연습생.
중간에 큰 실수를 한 것이 서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는 연습생.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로 뒤이어 앞으로 나가는 연습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연습생.
촬영을 마친 연습생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누군가 숨죽여 더운 눈물을 흘리는 친구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잘했어.”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없는 혼자만의 싸움에서 돌아온 동료에게 건넬 말은 다만 그뿐이었다.
* * *
흰 스크린을 앞에 둔 넓은 회의실.
가장 먼저 와서 앞쪽에 앉아 있던 걸그룹 출신의 20년 차 솔로 가수 제나를 보고 막 들어서던 7년 차 보이그룹 유피테르의 이창연이 꾸벅 인사했다.
“어, 제나 누나.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창연이 안녕. 나 오늘 아침부터 애들 어떨까 기대가 되더라고.”
“어… 누나는 애들 연습하는 거 못 봤죠?”
“응. 오늘 보는 게 그냥 처음이야.”
“기대를… 음, 뭐라 해야 하지.”
“안 하는 게 낫겠어?”
제나의 말에 이창연이 직접 보라 하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잠시 뒤 9년 차 걸그룹 로제타의 한지희와 20년 차 보이그룹 크로니클의 묵혜성이 차례로 들어왔다.
그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5년 차 걸그룹 세렌디피티의 석수영과 4년 차 보이그룹 플루토의 주안이 함께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모인 픽하트 멘토들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춤과 노래, 양쪽 모두를 훌륭하게 해낼 줄 아는 만능돌이라는 점이었다.
랩 포지션 연습생들을 맡았던 주안의 경우에는 랩까지 할 줄 아는 식이다.
전원이 현역으로 뛰고 있는 아이돌인 만큼 연습생들을 더 잘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었다.
제나를 제외하고 연습생들의 실태를 고스란히 지켜봤던 멘토들이 장난스레 웃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오늘 걱정이다, 걱정이야.”
“걱정되는 애들이 좀… 많지.”
“너네도 그래?”
“응. 우리 쪽은 랩하는 애들이 많잖아. 노래를 너무 힘들어하더라. 아예 노래는 포기한 애들도 있었어. 그러면 안 된다고 해도….”
주안이 말끝을 흐렸다. 포기라는 말에 ‘나 때는 말이야’를 얼마든지 시전할 수 있는 연차인 묵혜성과 제나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허허 웃은 한지희가 묵혜성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도 혜성 선배 쪽은 분위기 괜찮았다면서요? 거기 애들이 거의 막 선배 찬양하고 다닌다던데. 뭘 했길래 그래요?”
“그 정도는 아니야.”
묵혜성의 말에 제나가 작게 웃었다.
“아니라고는 안 하네.”
“나도 개인적으로는 혜성 선배 쪽이 제일 기대돼. 그때 누구였지, 아무튼 한 명이 특히 분위기 살리고 그랬잖아. 그 분위기 유지했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나쁘지 않아. 어떤지는 직접 보고.”
제작진이 슬슬 진행해 달라는 신호를 보냈기에 이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한 멘토들은 본격적으로 심사에 들어갔다.
“옥도윤이, 잘하지. 얘는 춤을 여유롭다고 해야 하나, 편하게 춰.”
“아이고 태원아, 중간에 멈춰버리면 어떡하니.”
“얘 누구지? 소라? 지금 보니까 살짝 한국 연습생 느낌 난다.”
“윤재. 노래는 깔끔하게 잘 부르는데 춤이 아쉽네.”
“샤오…. 얘는 솔직히 춤은 보기 힘든데, 끝까지 웃으면서 열심히 하니까 귀엽다. 뽑아주고 싶어.”
수십 명의 평가 영상이 빠르게 지나갔다.
열심히 연습한 걸 알고 있는 자기 반 연습생이 실수할 때는 멘토의 입에서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춤을 놓친 연습생이 당황해서 엉뚱한 짓을 할 때는 웃음이 다문 입술 사이로 피실피실 새어 나오기도 했다.
눈에 띄는 것은 혜성 반 연습생들이었다.
열등반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명이 있을 만큼 실력이 떨어지는 연습생들을 모아놓았음에도 전체적으로 기세가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그러고 보니 혜성 선배 반 친구들은 중간에 멈추는 법이 없네. 잘하든 못하든 일단 노래가 끝날 때까지 해.”
“얘네는 기본자세가 돼 있는 거지.”
“쟤네도 스스로 알 거 아니야. 제일 못해서 혜성 선배한테 간 거. 근데도 포기 안 하고 하는 게 너무 뭉클하다.”
“장하다, 장해.”
멘토들은 점점 지쳐가는 와중에도 뻐근한 목을 두드리며 연습생들을 신중하고 꼼꼼하게 평가했다.
앞선 시즌들을 통해 이 한 번의 평가로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안녕하세요. 개인 연습생 온라온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온라온의 영상이 71번째로 재생됐다.
혜성 반의 다른 연습생들이 그렇듯 샛노란 색 연습복을 입은 온라온을 본 멘토들이 깨달음을 얻은 듯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아, 얘지. 그때 특이했던 걔.”
“맞네. 얘네.”
“기대된다.”
멘토들은 흐뭇하게 웃으며 온라온의 평가 영상을 지켜봤다.
전체적으로 낮은 체력, 힘, 민첩 등의 스탯과 경험 부족에서 오는 미흡함은 분명 존재했다.
그럼에도 온라온 개인의 센스가 그를 신경 쓰지 않도록 만들었다.
중간에 멈칫거리는 게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연습한 게 느껴지는 춤.
체력이 낮은 탓에 숨이 쉽게 차 유난히 거친 숨소리가 많이 섞여 들어간 노래에는 하트 어택만의 느낌이 살아 있어 은근히 귀를 잡아끌었다.
스탯 부족으로 고음이 겨우겨우 올라가는 하이라이트 부분을 제외한다면 듣기 좋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노랫소리였다.
한 멘토는 그 정도야 큰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웬만한 남자 연습생은 저 음 근처에 가지도 못할 만큼 음역대가 높은 곡이 하트 어택이었으니까.
많은 단점, 그리고 그 많은 단점들을 보란 듯이 덮어버리는 천부적인 자질.
마침내 음악이 멈췄다.
다른 연습생들이 그랬던 것보다 세 배쯤 힘들어 보이는 낯을 한 온라온이 활짝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으로 영상이 끝났다.
“잘했다. 말로 잘 설명은 못 하겠지만, 그냥 아이돌 같아요.”
주안이 가장 먼저 평했다.
앞서 실력이 낮은 연습생들을 워낙 많이 봐서 잘했다는 평가의 기준이 다소 낮아지기는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제나가 입을 열었다.
“라온이 얘는 눈앞에 있으면 눈이 가는데 안 보이면 잘 생각이 안 나.”
“생각이 안 난다고요?”
“그래. 이상하게 볼 때는 ‘아, 얘 느낌 괜찮다’라고 생각하면서 봐도 잠깐 지나면 어떤 얼굴이었는지, 무슨 표정이었는지, 전혀 머릿속에 안 남는다?”
한지희가 제나의 말을 받았다.
“나도 무슨 얘긴지 알 것 같아. 그런데 보는 그 순간에는 되게 매력이 있어. 뭐든 자기 색깔을 자연스럽게 입혀놓거든. 그래서 다른 노래랑 춤도 막 시켜보고 싶어.”
“맞아.”
“근데? 그거에 비해서 너무 금세 잊혀. 대체 왤까.”
제나와 한지희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석수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어, 저도 그래요. 저번 멘토 평가 때 했던 언니 노래도 있잖아요. 헬로 월드. 그걸 부르는데 귀를 사로잡는 음색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좋아서 그때 얘는 잘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응.”
“그동안 아예 까먹고 있었다가 오늘 이거 보고 그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났어요. 맞다, 그때 그랬지. 이런 애가 있었지.”
“그러니까. 애 자체가 뭔가… 하룻밤 꿈 같다고 해야 하나.”
“맞네. 원래 꿈을 꾸는 순간에는 생생한데 깨어나고 나면 느낌만 남아 있고 서서히 잊히잖아.”
“우리는 보는 사람 기억 속에 되도록 오래오래 남아 있어야 하는데 이건 좋은 게 아니지.”
“뭐가 문젤까….”
시스템의 적극적인 간섭을 모르는 멘토들이 온라온의 문제를 고민했다.
그사이 묵혜성은 움직이지 않는 화면 속 카메라를 정지시키기 위해 가까이 다가온 온라온을 응시했다.
‘…닮았네.’
연습실에서 곧잘 웃는 걸 볼 때마다 조금도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비교적 표정 없는 얼굴로 멈춘 모습을 보니 그의 기억 속 누군가와 퍽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묵혜성이 드물게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멘토들은 알아서 이야기를 잘들 나누었다.
묵혜성 말 없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묵혜성의 묵은 침묵의 묵이 분명했다.
“그럼 정한 거지?”
“네. 온라온 연습생 등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