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84)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84화
낭만적인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완벽한 시간이었다.
늦은 오후의 햇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곡을 연주하는 소년의 표정과 몸 동작은 오래된 꿈을 유영하는 사람처럼 부드럽고 애틋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소리에 힘이 실리고, 음악은 한창 해가 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다가 멀리 보이는 부모님에게 향하는 아이처럼 신나게 달음질쳤다.
오래전, 이와 같은 순간이 오기를 고대했던 소년이 순열하게 연주하는 악기가 내는 소리는 청명한 하늘의 색보다도 선명했다.
그런 주저 없는 태도가, 어린 시절의 그를 아는 사람이 본다면 깜짝 놀랄 만큼 훌쩍 자란 소년을 바로 어제까지도 이 곡을 열심히 연습했던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젓가락 행진곡이 원래 이렇게 좋은 노래였나?’
‘내가 쳤을 때는 엄청 시끄럽기만 했는데.’
‘피아노 잘 치니까 진짜 멋있어 보인다.’
온라온은 잘할 수 있다는 자신의 말마따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묵혜성을 완벽하게 커버했다.
두 사람이 원래부터 호흡을 맞춰오던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미소와 함께 우아한 곡선의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에 끼어든 이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역시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에 한몫했다.
“뭐야… 누구야?”
온라온과 묵혜성이 보여주는 특급 게릴라 연주에 이게 웬 떡이냐 하고 행복해하던 제작진은 처음에 크리스틴의 존재를 그리 반기지 않았다.
뭣도 모르는 사람이 괜히 한몫 해보겠다고 의욕이 앞서 제멋대로 끼어들었다가 이미 잘되고 있는 주인공 두 사람의 연주를 망치면 그것도 그것대로 또 난감했다.
피디가 어깨에 메고 있던 진홍색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내는 크리스틴의 모습을 바라보며 스태프를 시켜 현장에서 끌어낼지 말지, 대박일지 쪽박일지, 그 사이에서 고민할 때.
작가 한 명이 늦지 않게 크리스틴을 알아보고 말을 꺼냈다.
“저 사람 그 사람 아니에요?”
“누구?”
“그 여기 오는 길에 리사이틀 한다고 도로에 광고 쫙 깔려 있었잖아요. 저 사람 거기 포스터 사진에 나와 있던 사람 같은데요…….”
“그래?”
“피디님 걱정하시는 게 뭔지는 알 것 같은데, 왠지 잘할 것 같지 않아요?”
“그럼 진짜 좋기는 한데…….”
그러는 사이 악기 세팅을 대강 마친 크리스틴은 피아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활을 현에 가볍게 얹은 채 장해나를 떠올리며 언제 끼어들지 타이밍을 가늠하고 있었다.
막내 작가가 휴대폰으로 검색해 찾은 크리스틴의 사진까지 확인한 피디는 일단은 크리스틴을 두고 보기로 결단을 내렸다.
‘쪽박보다는 대박이다, 이건.’
제작진이 조금 당황해하는 그 모습을 근처에서 지켜보던 몇몇 시민은 이런 생각을 품게 되었다.
‘미리 짠 게 아닌가?’
그 순간, 크리스틴의 바이올린이 거침없이 피아노 사이로 파고들었다.
흠뻑 빠져 있던 청중을 쉴 틈 없이 변화하며 전개되는 음악 속으로 더욱 감겨들어가게 하는 매혹적인 선율이었다.
“잘하는데?”
“잘하네요.”
“와…… 진짜 혜성 씨든, 라온 씨든 저러니까 진짜 멋있다.”
“원래 악기 잘 다루면 사람이 진짜 달라 보인대요.”
“나도 피아노나 배워볼까.”
“근데 달라 보이는 거에도 한계가 있고요.”
“죽는다?”
“아쉽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음향 장비 좀 괜찮은 걸로 챙겨오는 건데.”
“일단 저 사람도 찍어두고. 나중에 방송 내보내도 되는지 무조건 허가받아 와.”
“넵.”
“야, 근데 진짜 좋다. 저 둘이 원래 뭐 피아노 친다던가? 난 그런 얘기는 못 들어본 것 같은데?”
“그건 저도 잘…….”
“일단 잘 찍어, 찍어.”
합주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아쉽게 만들 만큼 금세 끝을 맞이했다.
“앵콜! 앵콜!”
안타깝게도 묵혜성과 온라온이나, 크리스틴이나 이후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관객들의 앵콜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시선을 교환한 묵혜성과 온라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들의 호응에 정중히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크리스틴 또한 우아하게 인사했다.
“[고마워요.]”
날씨 좋은 날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봄나들이를 나왔던 한 주부는 육아로부터 오는 고단함을 한순간 잊게 해준 연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데이트를 나왔던 대학생 커플이나 지팡이를 짚고 산책로를 걷던 노인, 그 모습을 카메라로 담던 제작진도 마찬가지였다.
* * *
크리스틴은 본인의 리사이틀을 위해 잠시 한국을 찾았다고 한다.
관광차 나왔다가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크리스틴은 내가 처음에 친 드림을 멀리서 듣고 어떤 곡인지 궁금해 여기까지 왔다가, 그 뒤로 이어지는 내 연주를 듣고 반가움을 느겼다고도 했다.
잘 아는 동료의 스타일과 닮았다나 뭐라나.
그래서 도저히 참지 못하고 늘 가지고 있는 자기 악기를 꺼내 들어 우리 연주에 대범하게 난입하게 되었다는 사정이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틴이 가까이에 있던 카메라를 바이올린을 들지 않은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촬영 중인 것 같은데 두 사람은 연예인이야?]”
물어보는 게 너무 늦는 게 아닌가.
“[네. 가수예요. 케이팝! 아이돌!]”
“[오, 케이팝. 이제 알았어. 내 딸이 좋아하거든. 피아노는 취미로 하는 걸 텐데…… 그런 것치고 수준이 높은걸.]”
“[고마워요.]”
“[그럼 두 사람은 같은 그룹? 동료?]”
아무리 그래도 묵혜성이 나랑 같은 나이대로 보일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서양인의 눈에는 나나 묵혜성이나 비슷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어쩐지 말하는 투가 내내 자기보다 한참 어린, 그러니까 직장 동료의 자식 정도를 대하는 느낌이더라니.
“[아뇨. 옆에 계신 분이 저보다 거의 20년 정도 먼저 데뷔한 선배예요.]”
“[……정말?]”
“[곧 마흔입니다.]”
묵혜성의 침착한 부연 설명에 그제야 묵혜성의 나이를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된 크리스틴은 한동안 온갖 감탄사를 내뱉었다.
카메라가 그 모습을 빠짐없이 찍고 있었다.
원래 한국인을 향한 외국인의 감탄 어린 리액션은 대대로 우리나라 방송에서 인기 있는 소재였다.
앗, 위튜브에 유독 내가 한국의 것들을 사랑하는 모먼트를 모아놓은 동영상이 많은 게 그래서인가.
어쨌든 그 이후로 크리스틴은 묵혜성을 조금 더 어른 취급을 해주었다.
그래 봤자 자식에서 동생 정도로 바뀐 듯했지만.
“[이제 일정이 있어서 이만 가볼까 하는데……. 혹시 처음에 쳤던 곡의 제목을 알 수 있을까?]”
“[아, ‘Dream’이라는 저희 곡인데요. 이번 신곡이에요.]”
“[그렇구나. 재즈로 편곡된 두 번째 것도 탁월했지만, 나는 첫 번째 것도 무척이나 좋았어.]”
왜인지 그 말을 들으니 에너지를 쏟아부을 대로 쏟아부은 연주를 마치고 약간 힘이 빠져 있는 듯했던 기분이 놀라울 만큼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때, 동동거리며 내내 옆에서 끼어들 타이밍을 노리던 작가가 혹시 조금 전 연주 장면을 촬영에 써도 괜찮은지 영어로 크리스틴에게 물어봐 줄 수 있냐고 내게 요청했다.
나는 작가의 말을 그대로 옮겨주었다.
“[오, 그래요. 물론이죠.]”
다행히 크리스틴은 흔쾌히 승낙하며 명함을 한 장 꺼내 작가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 명함이에요. 방송된다면 여기 있는 메일로 연락 부탁해요. 방송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한국에서 내 공연이 있는데 그것도 같이 홍보해 주면 좋고요.]”
“오케이, 오케이. 땡큐 베리 머치!”
작가는 크게 기뻐하며 명함을 챙겼다.
딸에게 자랑하겠다며 SNS에 올릴 사진까지 우리와 한 장 찍은 크리스틴은 제작진과 짧은 인터뷰를 하더니 자기 갈 길을 갔다.
* * *
함께 온 매니저처럼 호텔에 그냥 박혀 있는 게 아니라 습관적으로 악기를 챙겨 나와 보길 잘했다.
한껏 고양된 기분이 된 크리스틴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자나…….]”
다행히 상대방은 치솟을 대로 치솟은 크리스틴의 기분이 식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안녕, 해나.]”
“[무슨 일이야?]”
“[나 네 아들 만났어.]”
사실 크리스틴은 온라온이 장해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다.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장해나의 집에 방문했을 때 어린 온라온을 잠깐 본 적 있기도 하고.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잘생긴 온라온의 외모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투명한 갈빛 눈이 장해나를 쏙 빼닮은 탓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조금 전 온라온을 모른 척한 것은 시도 때도 없이 발동되는 크리스틴의 장난기 때문이었다.
‘인터뷰도 했고. 나중에 방송 보면 놀라겠지?’
한편 뜻밖의 말에 장해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뭐?]”
“[예쁜 숲이었는데, 웬 잘생긴 남자랑 젓가락 행진곡을 꼭 너처럼 연주하고 있길래 나도 같이 연주했어. 애가 참 잘생겼고, 연주도 잘하더라. 널 많이 닮은 것 같아. 참, 촬영 중이었는데 네 아들 케이팝 가수였니? 제시카가 알면 좋아할 거…….]”
장해나는 크리스틴의 말을 오래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미안, 크리스틴. 지금 좀 바빠서 끊을게.]”
“[뭐? 해나? 해나!]”
전화는 매정히 끊어졌고, 크리스틴은 동그래진 눈으로 통화가 종료되었다고 나오는 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해져 중얼거렸다.
“[뭐야……?]”
* * *
“배고프다. 우리 밥 먹으러 가요.”
“그러자.”
중간중간 노점에서 파는 핫도그나 솜사탕 같은, 활동 중이니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군것질을 좀 하기는 했지만 결국 처음에 목적했던 아점은 아직 먹지 못한 상태였다.
넓은 숲을 내내 사람들 시선을 받으며 걸어 다니고, 예정에 없던 피아노 연주까지 열심히 하고 나니 정말이지 배가 고플 대로 고팠다.
우리는 촬영 협조를 구해 놓은 한 돈까스 맛집으로 이동해 과연 소문이 날 만한 맛인 돈까스를 말끔히 해치웠다.
그런 다음 근처 오락실에 들려 끝까지 분량을 알차게 뽑아낸 다음 묵혜성의 집으로 돌아가며 마이크를 잠시 꺼둔 사이.
묵혜성이 물었다.
“왜 아까 말하지 않았어?”
“네? 뭘요?”
“네가 해나 누나 아들이라고.”
아, 기막힌 우연에 너무 놀라서 잊고 있었다.
이 사람도 어머니를 알고 있다는 걸.
“그냥요. 팬이라고 말하는 게 방송에는 더 멋있게 나가지 않을까요? 어머니의 팬인 아들이라니, 엄청 멋있잖아요.”
말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던 묵혜성은 이내 서툴고 어색한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텐 투 텐 촬영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