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83)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183화
마술사의 묘기처럼 변화무쌍한 피아노 선율을 사랑하는 사람을 안다.
어린 나는 살짝 열어놓은 문틈으로 때로는 시냇물처럼, 때로는 강물처럼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를 지루할 틈 없이 들으며 자라났다.
엄마가 연주를 마치고 나오는 걸 거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다가, 그대로 잠드는 게 한때의 일상이었다.
나 역시 같은 것을 좋아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영롱한 소리 그 자체를 1만큼 좋아했다면, 그 소리를 거침없이 자아내는 사람은 100만큼 사랑했다.
그런데 나는 욕심이 많아 듣는 걸로는 만족하지를 못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엄마, 나 이거 연주해 보고 싶어요.”
어쨌든 이건 나름대로 큰 마음을 먹고 한 부탁이었다.
피아노를 잠깐이라도 배우거나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실제로 쳐 보기까지 했을 만한 곡이다.
양손 검지만으로 흰 건반을 경쾌하게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곡은 뒤로 갈수록 점점 풍성하고 어려워진다.
이 곡의 또 다른 특징은 혼자서는 칠 수 없는 연탄곡이라는 점이다.
물론 편곡하기에 따라 혼자 칠 수 있겠지만, 둘이서 치는 걸로 훨씬 유명하다.
널리고 널린 악보 중에 굳이 그걸 콕 집어 가져간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 같이하고 싶어요.
피아노를 치는 사람에게 그 악보를 들고 간 것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가져온 악보를 오래도록 잠잠한 눈길로 보시던 엄마는 한참 만에 큰 결심을 한 사람처럼 유난히 차분한 목소리로 내 부탁에 응했다.
“그래. 한번 해보자.”
사실 엄마가 굳이 직접 가르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학원에 보내거나 다른 선생님을 붙여도 됐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직접 시간을 내어 나를 가르쳤던 건.
사랑해야 하는 아이에게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전하고 가르침으로써 억지로 애정을 붙여보려던 엄마 나름의 노력이었던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렸던 탓에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내 옆의 보조 의자에 앉았는지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엄마가 나를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는 게 좋았다.
사실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 엄마는 그다지 가르치는 일에 소질이 없었다.
다행히 내가 아는 최고의 연주자에게 기껏 레슨을 부탁한 것이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나는 피아노 연주에 아주 소질이 없지는 않아서 그 별로인 설명을 최선을 다해 알아들었다.
레슨 때면 엄마는 내게 의식적으로 다정하게 말하고 또 다감하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서로가 노력하는 시간이었다.
“하제야, 손톱은 여사님한테 부탁해서 미리 깎아오라고 했잖아.”
“죄송해요. 깜빡했어요…….”
“……손 이리 줘. 깎아줄게.”
그 사실을 눈치챈 나는 레슨 날까지 일부러 손톱을 자르지 않고 길러 간다든지 하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어린애 같은 짓도 여러 번 했다.
어쨌거나 위태로운 레슨은 나와 엄마가 예상했던 것보다 길게 이어졌다.
“마음 가는 대로 당겨 버려도 괜찮지만, 흐름은 끊기지 않게 해.”
“네.”
그러나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
“미안해, 하제야. 엄마가 미안해.”
아이의 눈에 어른이 견디지 못하고 우는 게 얼마나 비참한 모습으로 비치는지 아는가?
“아니에요. 이제 혼자 연습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러니……?”
“네. 열심히 연습할 테니까 나중에 같이 연주해 주세요.”
그러나 나와 엄마가 나란히 앉는 일은 이후 두 번 다시 없었고, 레슨은 당연히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이후로 피아노가 있는 방의 문은 틈 없이 굳게 닫혀, 나는 두 번 다시 가슴을 울리는 연주를 들으며 잠들 기회를 얻지 못했다.
엄마의 일이 바빠졌다는 게 이유였지만, 진짜 이유는 내게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슬펐다.
그 사람이 나를 끝내 포기한 게 마치 내 잘못인 것만 같아서.
* * *
“라온아.”
“아, 네.”
묵혜성의 물음에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일단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여기서 안 치고 지나가는 것도 바보짓이다.
초록빛 숲과 고운 색의 피아노, 그리고 절세미남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그림이 잘 나오는 건 당연하고.
적당히 고양이의 춤 같은 곡을 쳐도 제작진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럴듯하게 편집해 줄 것이다.
“휴우…….”
신시사이저가 아니라 이런 업라이트 피아노 앞에 앉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건반을 내리누르는 무게부터가 달랐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벅찼다.
“누나, 혹시 손톱깎이 있어요?”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빠르게 손톱깎이 하나를 찾아왔다.
“여기 있어. 자르게?”
“네. 조금 긴 것 같아서.”
“내가 해줄까?”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어차피 며칠이면 금세 자라는 게 손톱이기 때문에 나는 옛적에 배웠던 것처럼 손끝의 살이 손톱보다 앞으로 튀어나오도록 손톱을 바짝 깎았다.
그러는 사이 얘기가 퍼져 나갔는지 주위에 사람들이 원 모양으로 몰려들어 있었다.
“이렇게 많이 들어주실 만한 실력이 아닌데…….”
“자신 있게 해.”
“그래도 제가 진짜 오랜만에 치는 거거든요.”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파둔 나는 본격적으로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드림을 연주하며 손을 풀었다.
드림은 은근하게 느껴지는 부조화가 매력적인 곡이다.
그런 노래를 약간 흐트러진 상태의 피아노로 연주하니 묘한 매력이 있었다.
우리 타이틀곡의 멜로디나 코드 정도야 서문결이 작업하던 걸 참고차 옆에서 계속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훤히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 곡을 홍보하겠다는 목적을 잊지 않고 있었다.
1절과 브릿지 이후의 부분을 연결해서 치니 주위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청중을 향해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앉아, 결코 잊을 수 없는 곡인 젓가락 행진곡의 초반부를 짧게 쳤다.
아, 역시.
혼자서는 칠 맛이 안 났다.
“쌤, 이 곡 아세요?”
“알지.”
나도 묵혜성이 이 곡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왜냐하면…….
며칠 전 방송을 준비하며 조사하다가, 묵혜성이 자신의 솔로 콘서트에서 어머니와 함께 이 곡을 연주하는 오래된 영상 하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저 혼자 하니까 느낌이 잘 안 사는 것 같은데, 같이 칠까요?”
내가 의자의 왼쪽에 붙어 앉아 있었기 때문에 묵혜성은 내 오른편에 앉았다.
“악보도 없는데 마음 가는 대로 가죠!”
“구해 오라고 하면 되는데.”
“아니에요. 제가 쌤한테 맞출 수 있어요.”
“그래?”
“진짜예요. 방송 나가도 창피하지 않을 정도로 잘할 수 있어요.”
“알았어.”
곧, 숨죽인 청중들의 기대 속에서 연주가 시작되었다.
재즈는 기본적인 테두리 속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장르이다.
한 사람 덕분에 그 장르에 익숙한 나와 묵혜성의 합은 처음 해 본 거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잘 맞았다.
사실 내가 다 맞춰주고 있는 거지만.
이 곡을 마침내 함께 치게 될 날에 엄마가 어떻게 연주할지 수백, 수천 가지의 경우의 수를 상상하는 게 내 낙이었으니까.
그런데 피아노 주위를 둘러싼 구경꾼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이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두 사람이 치는 피아노 소리에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한 바이올린 소리 하나가 능청스럽게 끼어들었다.
상황을 자기 나름대로 파악한 구경꾼들 사이에서 짧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뭐지? 누구지? 깜짝 카메라? 제작진이 준비한 사람인가? 근데 이 곡은 내가 조금 전에 치자고 한 건데? 근데 왜 이렇게 잘해? 이건 언제까지 쳐야 하지?’
손끝에 집중하느라 오히려 백지처럼 비어 있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휘몰아쳤다가 사라졌다.
직관이 시키는 음을 옳게 지목하기에도 바빴다.
얼마 뒤, 곡이 끝났다.
다행히 묵혜성도 의문의 바이올리니스트도 내게 자연스럽게 맞춰주었다.
아무리 춤추며 운동을 한다고는 해도 피아노를 치는 데 필요한 섬세한 근육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아 손가락부터 팔까지 다 저릿했다.
그래도 기분은 끝내주게 좋았다.
선선한 바람이 땀에 젖은 이마를 부드럽게 헤집고 지나갔다.
‘아, 바이올린은 누가…….’
고개를 돌리니 진한 초콜릿 색 머리를 하나로 묶은 외국인 여자가 얼굴 아래쪽에 받쳤던 바이올린을 느슨하게 내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살짝 벌렸던 외국인 여자는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멋진 연주였어요!]”
쌍 엄지를 치켜든 내 감탄에 여자도 기쁜 목소리로 응했다.
“[두 사람도 멋졌어. 나를 부르는 음악을 참을 수가 없어서 그만, 실례했네.]”
“[아니에요. 정말로 대단했어요. 저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길래…….]”
“[오, 나는 해나의 동료야. 크리스틴이라고 해.]”
해나.
여기서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익숙한 이름에 나는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게 내려앉았다.
갑자기 사촌 누나의 이름을 들은 묵혜성도 조금 놀란 듯했다.
“[안녕하세요, 크리스틴. 저를 아세요?]”
의례적인 인사 뒤에 이어진 내 물음에 크리스틴의 표정에 약간의 난감함이 묻어났다.
“[연주 방식이 해나와 똑같아서. 나는 네가 해나의 팬인 줄로만 알았는데. 혹시 내 생각이 틀렸나?]”
아무래도 크리스틴은 내가 그 사람 아들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는지.
“[아니요. 당신이 맞아요.]”
왜인지 웃음이 새어 나왔는데, 이상하게 보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저 그분 팬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