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1)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1화
대략 정신이 아득해진다.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앞만 보다가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단 지금 나한테 돈이 얼마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교통비는 진작 다 썼고.
뭐라도 나올까 싶어 주머니를 뒤졌더니 합숙 동안 잊고 있던 학생증만 나왔다.
나는 학생증을 자세히 보았다.
[온라온|한라공연예술고등학교유효기간 02/19 (month/year)
생년월일 00/01/30]
처음 받은 날에는 생년만 확인하고 촬영에 들어가서 자세히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일이 나랑 똑같아 누가 물어보더라도 헷갈리지 않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생증을 뒤집어 보니 검은색 네임펜으로 무언가 적혀 있었다.
[home address: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앞쪽의 영어는 깔끔한 글씨로 적혀 있었지만, 부산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모 아파트의 상세 주소를 적어놓은 뒤쪽의 한글 필체는 조금 삐뚤빼뚤했다.
굳이 여기 적혀 있다는 건… 이게 플레이어 캐릭터의 집 주소인가?
만약 집 주소가 맞다고 해도 내가 여기 파주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 상황에 별 쓸모는 없었다.
학교 문제도 뒤늦게 떠올랐다.
학교에 다닌 지 너무 오래돼서 그동안 상상도 못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18살은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했다.
설마 군대 말고 학교도 다시 다녀야 해?
끔찍한 생각에 앞날이 한층 더 막막해지려 할 때였다.
이 타이밍에 시스템이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플레이어 캐릭터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설정인 듯하다.
학생증은 있는 걸로 봐서 다니다가 중간에 그만둔 게 아닐까. 나처럼.
어쩐지 단서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추리 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어쨌든 다행이었다.
그래도 시스템인데. 이런 걸로 사기는 안 치겠지.
학생증을 빤히 들여다보던 나는 아직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은 학생증에 체크 카드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혹시나 해서 핸드폰에 하나 깔려 있던 은행 앱에서 잔고를 확인했다.
다행히 지문으로 보안을 해제할 수 있었다.
[저축예금 잔액 10,000원]장난하냐. 이런 잔고는 일부러 맞춰서 넣은 게 아닌 한 딱 만 원으로 떨어질 수가 없는데.
이 또한 시스템의 농간이라는 것에 전 재산 만 원 건다.
아, 내 혈압.
조금 뒤에 버스가 도착해서 일단 타고 봤다. 자고로 인생은 직진이다.
– 삑, 학생입니다.
이제 잔액 8,900원….
다행히 학생증의 카드 기능은 해지되지 않은 듯했다.
1,100원을 내고 버스의 히터 바람을 만끽하다가 견디기 어려울 만큼 허기가 질 때쯤 내렸다.
좀생이 같은 자식들. 1시에 보내면서 점심밥도 안 주냐. 정 없게.
보나 마나 돈 아낀다고 그랬겠지.
지나가다 보인 노점에서 3개에 1,000원 하는 붕어빵 한 봉지를 계좌이체로 사 들고 아무 생각 없이 먹으며 걷다 보니 한적한 시민 공원이었다.
공원 정자에서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다리도 아프겠다, 평상에 앉아 마지막 붕어의 꼬리를 뜯어 먹는 도중이었다.
장기판을 구경하던 어르신 하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젊은 애가 대낮에 여기서 뭐 해?”
“그냥 좀….”
“옳다. 너 엄마랑 싸우고 집 나왔지?”
어르신의 시선은 옆에 세워 둔 캐리어를 향하고 있었다.
“……안 싸웠는데요.”
“집 나오면 개고생인 거 몰라? 적당히 하고 얼른 들어가.”
들어갈 집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내가 말이 없자 어르신이 다시금 말을 붙였다.
“너 장기는 좀 둘 줄 아냐?”
“제가 소현초등학교 장기부 짱이었어요.”
“그럼 할 것도 없어 뵈는데 나랑 한판 두자. 저 노인네들이 나랑은 안 둬준다.”
“왜요?”
“너무 잘해서 재미가 안 난대.”
어르신이 놀고 있는 장기판과 장기 말을 앞으로 끌어다 놓으셨다.
“그렇다면 이 온라온이 소현초 장기부의 명예를 걸고 도전하겠습니다.”
“오냐. 한번 해봐라.”
* * *
장기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라 초반에 좀 헤매기는 했지만 3국째에 완승하며 소현초 장기부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다.
보상이 달다.
한 판 더 어떠시냐고 하고 싶다.
내가 생각보다 잘해서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은 어르신이 험험,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셨다.
서로 비등비등하던 전 판부터 와서 구경하던 할아버지 한 분이 물었다.
“고놈 참 잘 둔다. 누구한테 배웠어?”
“인공지능이랑….”
“인공지능?”
제가 이래 봬도 모바일 장기 게임 토너먼트 대회 3위도 찍어본 머리 좋은 게임 폐인이란 말이죠.
그때 다른 어르신 한 분이 저편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야, 고수종이 왔다.”
“뭐?”
“저기 오네.”
누군가 싶어서 다들 이러나, 사람들을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과연 여기 모여 있는 어르신들과는 뭔가 다른 기운이 느껴지는 노신사가 저만치서 뒷짐을 지고 걸어오고 있었다.
[고수종]뭐가 다르냐면, 일단 옷차림부터 다르다.
남색 체크무늬 조끼를 흰 목티 위에 입고 회색 모직 코트를 걸친 조합이 예사롭지 않았다.
‘멋쟁이시네.’
약간 골프 치면서 땅값 얘기하는 부동산 부자 같은 느낌이랄까.
“격조했소.”
“오랜만에 본다.”
“날이 좀 풀렸길래 나와봤지.”
익숙한 얼굴인 듯 먼저 와 있던 어르신들이랑 인사를 나누던 할아버지가 엉거주춤 일어나 있던 나를 보며 물었다.
“이 친구는 뭐야?”
“아, 가출했대.”
“가출 아니라니까요!”
“아니기는. 여기서 노인네들이랑 시간 낭비 허지 말고 빨랑 들어가서 뜨신 국에 밥 말아 먹어.”
“그게요. 가출은 아니지만 갈 데가 없습니다….”
어르신들의 눈빛이 지랄 작작 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하고도 참 어이가 없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고수종 할아버지가 점잖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내기 장기 한판 둘까?”
“내기요?”
“내가 이기면 집에 곱게 돌아가는 거지.”
“제가 이기면요?”
“나왔으니 갈 데도 없을 거 아니야. 우리 집에서 재워주마.”
할아버지 말씀이 끝남과 동시에 퀘스트가 발생했다.
[돌발 퀘스트 발생! [재야의 고수: 고수종을 꺾어라>]무려 타이틀이 재야의 고수다. 왜 이런 데 계시는 건데요.
[▶ 퀘스트 설명: 고수종이 당신에게 내기 장기를 제안했습니다. 그에게 승리를 거두고 오늘 밤 잘 곳을 쟁취하세요.▶ 확정 보상: 지능 +10, 임시 거처(고수종 집)
▶ 실패 시: 별도 안 보이는 밤하늘을 이불 삼아 하룻밤을 보냅니다.] [Y/N]
“네! 합시다! 수락한다!”
얼른 대답하자 옆에 있던 어르신이 혀를 끌끌 찼다.
“저 봐. 저렇게 냉큼 받아들이는 거 보면 가출한 거 맞다니까.”
아, 아니라니까요. 억울하다.
아무튼 장기판이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하게 벌어졌다.
다른 판으로 장기를 두던 어르신들까지 이쪽으로 와서 구경했다.
고수종 할아버지는 보통이 아니었다.
조금만 긴장을 늦춰도 어디선가 내 생명줄이 깎여나가고 있었다.
집중하느라 쌀쌀한 공기 속에서도 이마에 진땀이 배어 나왔다.
또 곤란한 것은 내가 고민하는 기색을 내보일 때마다 한마디씩 하시는 어르신들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어려서 그런 듯싶었다.
이걸 둬라. 저걸 둬라. 저건 버려야 한다. 니 이러면 다 이겨놓고 진다. 그거 잡지 말고 저쪽 거 잡아라. 병을 올려라. 하이고 잘하다가 띨띨하게 두지 말고 나와 봐라….
…안 되겠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어르신들!”
“어엉?”
“제 인생의 길잡이, 이순신 장군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까지는 묵혜성이라는 분이었지만 원래 롤모델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바뀌는 거 아닌가.
“이순신 장군?”
“네! 수많은 명언을 남기신 분이지만, 지금 이 순간 특히 생각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바로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입니다. 압니다. 이놈이 갑자기 뭔 헛소리를 나불거리는가,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죠.”
어르신들이 음, 음, 하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어르신들의 치열한 장기 인생이 녹아 있는 수많은 조언은 마치 저더러 딱 살아남기만 하라고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구역 일인자! 터줏대감 고 수 자 종 자 할아버지를 상대하고 살아남는 게 네 최선이라고요!”
고수종 할아버지가 허허 웃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살아남기만 하다가 지는 게 제 한계가 되어버리죠! 그러니 저는 제 의지로 사지로 걸어 들어가겠습니다. 어르신들은 제가 어떻게 역경을 헤쳐나가는지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출한 얼라가 혓바닥은 미끈미끈하기도 하다.”
“아 가출 안 했다니까요!”
“그려그려. 하고픈 대로 다 해봐라. 이제 우리는 참견 안 한다.”
[[개를 고양이라고 해도 믿을> – 업적 획득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업적 달성 조건: 헛소리로 누적 100명을 설득)]이 개스템이? 진짜 헛소리를 하는 게 누군데.
아무튼 주위가 고요해진 덕분에 훨씬 집중해서 수를 놓을 수 있었다.
참견을 그만둔 어르신들은 사내놈이 매가리가 없어 보인다며 비닐봉지에서 군밤이나 약과 같은 주전부리를 하나씩 꺼내 내 입에 넣어주셨다. 맛있다.
“…….”
하지만 결국 위기는 찾아왔다. 이대로면 진다. 그런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아, 안 되는데. 이 날씨에 노숙할 생각을 하니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다행히 내게는 이 난관을 타개할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전화 찬스! 써도 되겠습니까?”
“전화 찬스?”
“네. 장군님도 홀로 싸운 게 아니라 믿음직스러운 동료와 함께 가혹한 전장을 헤쳐….”
“말 많다. 하고 싶으면 딱 한 번만 해봐.”
“옙.”
헤어지기 전에 룸메이트들과 번호 교환 정도는 다 해둔 상태였다.
휑하던 주소록에 한국에서 쓸 수 있는 핸드폰이 없다는 나가세 리츠를 제외하고 3명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그중 반요한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분명히 나는 못 보는 수를 이 지능캐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몇 번의 신호음 뒤에 저편에서 반요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배터리가 이제 5%밖에 남지 않아서 빨리 끝내야 했다.
– 여보세요?
“안녕, 내가 정말 존경하고 신뢰하는 요한이 형.”
– …….
“여보세요?”
– 좀 당황스럽게 부담스러워서. 왜 전화했어?
이 새끼가 좋은 말을 해줘도.
하지만 아쉬운 쪽은 내 쪽이다.
장기판을 찍은 사진을 반요한에게 보냈다.
“지금 톡으로 보낸 것 좀 봐봐. 내가 이거 꼭 이겨야 하는데, 딱 한 명한테만 전화할 수 있거든. 형 믿고 전화 건 거야.”
[반요한이 자신을 신뢰하는 당신에게 뜻밖의 감동을 받습니다. 호감도 +2 현재 호감도 21]이봐, 착각하지 마.
널 믿는 게 아니라 네 지능을 믿는 거라고.
잠시 뒤 반요한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완벽하고 혁신적인 수를 알려줬다.
“와, 형 천재다. 완전 반갈공명.”
– 그런데 갑자기 웬 장기?
“그냥 내기 장기.”
– …너 막 돈 걸고 하는 거 아니지?
“아냐. 이기면 재워준대.”
–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히 말…….
뚝.
“…아, 배터리 나갔다.”
뭐, 할 얘기는 다 했고 집이 없는 상황을 설명하기도 뭐하고.
일단 대국에 다시 집중했다.
“다 됐어?”
“네. 이제 제게 약점은 없습니다.”
“두고 봐야 알 일이지.”
“계속하겠습니다.”
“그래라.”
그리고 지능 스텟이 999인 게 분명한 놈 덕분에 뚫은 활로를 통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다음에 보면 찐한 포옹으로 은혜를 갚아야겠다. 비록 반요한이 내 포옹을 보답으로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장군!”
“하이고, 졌다. 졌어.”
“고생하셨습니다.”
“이야. 명국이었다.”
[돌발 퀘스트 [재야의 고수: 고수종을 꺾어라> 성공!] [퀘스트 확정 보상으로 지능 +10 및 임시 거처(고수종 집)이 지급됩니다.]주름진 미소를 지은 고수종 할아버지가 말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따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