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56)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56화
“하제요?”
견성하가 나를 바라보았다.
‘얘가 ‘하제’라는 거 알고 채팅 보냈나?’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몇 초간 좁은 공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중간에 멈춰 선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륵 열릴 때까지 조용했다.
버튼을 누른 사람이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계단으로 갔는지, 아무도 타지 않고 다시 문이 닫혔다.
“에이, 설마.”
“난 못 봤는데.”
“채팅이 되게 금방금방 올라가서 못 봤을 수도 있긴 해.”
“맞아. 데뷔하고 나서 했던 라디오랑 비교하면 진짜, 훨씬, 빨라졌더라.”
눈치를 보아하니 멤버들 중 그 요상한 채팅을 눈여겨 본 것은 일단은 나와 강지우뿐인 듯했다.
하긴, 라디오 방송 중에는 다양한 언어가 뒤섞여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 말고도 신경써야 할 게 많았다.
DJ의 질문이라든지, 부스 밖 PD의 신호라든지.
그러니 오히려 강지우가 그걸 용케 포착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호기심이 생겼는지 견성하가 물었다.
“그 채팅에서 뭐라고 했어요?”
“그거까지는 잘…….”
이대로 넘어가면 강지우가 계속 신경 쓸 것 같아 나도 끼어들었다.
“나도 그 채팅 봤는데 별 내용 아니었어.”
“그래?”
“그냥 나 만나고 싶다, 뭐 이정도? 얘기하지 말랬는데 굳이 얘기한 누구누구들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하제가 나 아니냐는 말이 조금 나오기는 한 것 같은데. 그걸 진짜로 믿는 사람이 보낸 거 아닐까.”
실은 제로니 뭐니 하는 것 이외에 이쪽으로도 가능성을 꽤 두고 있었다.
닉네임 같은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해 저번 채팅과 이번 채팅이 동일 인물이 보낸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내용만 따지자면, 그 채팅은 좋아하는 아이돌과 어떤 특별한 관계가 되기를 바라는 팬이 보낸 것일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했다.
내 자의식이 과잉된 게 아니라 실제로 우리 위튜브 채널이나 SNS 공식 계정으로 들어오는 것 중 비슷한 류의 댓글을 여러 번 본 적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설마 진짜로 말한 사람 없지?”
“솔직히.”
솔직히?
“하루에도 열 번씩 길 가는 사람 붙잡고 우리 막내가 이만큼 대단하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다 근질근질한데, 막내한테 절연당하기 싫어서 열심히 참고 있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답에 가볍게 통과를 주니 강지우가 크게 기뻐했다.
딱히 따지듯 물어본 것도 아닌데 다른 멤버들도 자기 결백을 주장하려는 것처럼 제각각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뭘 자랑하고 뭘 말해?”
내가 ‘Again’의 작곡가라는 것은 여전히 나와 멤버들, 반가을 대표, 그리고 가이드 녹음을 해 준 고경윤만 아는 비밀이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곽상현이 궁금증을 표했다.
“설마 진짜 하제 작곡가가 너희 가족 중 한 명이야?”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직원들 사이에서도 ‘Again’ 작곡가 두고 말이 많았거든. 뭔가 있다고.”
참고로 자기들끼리는 ‘사실 작곡가 하제가 서문결의 부캐다.’라는 설이 가장 지지도가 높다며 곽상현이 농담처럼 덧붙였다.
“너네 표정 보니까 결이는 아니었나 보네.”
“비밀이에요.”
“1년 뒤에 알려 줄게요.”
“이제 너희끼리 비밀도 있어?”
“비밀이야……. 많죠.”
우리는 곽상현 몰래 벌였던 몇 가지 일들을 아련하게 추억했다.
숙소 세탁기가 고장 나서 물이 다 흘러넘쳤던 걸 새벽 내내 걸레로 하나하나 닦았던 일이라든지, 여름에 모기 잡다가 우드득 뜯어버린 커튼을 몰래 내다 버리고 우리끼리 새 걸 사와 낑낑거리며 새로 단 일이라든지…….
“언제는 나도 오르카라면서 섭섭하다, 야.”
찔리는 게 많은 우리 표정을 본 곽상현은 아무래도 날 잡고 우리 비밀을 싹 털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탁한 공기 냄새가 나는 주차장에 들어서니 번듯한 양복을 점잖게 차려입은 남자가 우리 차 근처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어디서 본 기억이 날 듯 말 듯…….’
약한 기시감에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에게 인사를 할까 말까 하다가 왠지 인사한 직후에 ‘아, 인사하지 말걸’ 하고 후회할 것 같아 그냥 안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상대가 돌연 우리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냥 자기 갈 길 가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예상은 적중해 남자는 정확히 우리 앞에 멈춰 섰다.
함께 있던 경호원이 한 발 먼저 반응했다.
“누구시죠.”
“오랜만이다.”
듣기 싫은 목소리를 들은 순간 이 사람이 누군지 확실히 떠올랐다.
이 작자, 트루 엔터 길준용이었다.
* * *
길준용이 온라온을 찾아온 목적은 과거 일을 직접 사과함으로써 트루 일체에 대한 이미지 회복 및 온라온을 설득해 오현진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같은 목적으로 몇 번 회사를 통해 온라온에게 접근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시드가 트루라면 거들떠도 안 보고 법정에서나 보자고 쳐내 버리자 피할 수 없도록 직접 찾아온 것이다.
제대로 된 사과를 받을 거라는 기대는 한 톨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 자식들이 이 상황에 이르러 무슨 소리를 할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온라온은 만남을 수락했다.
길준용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거 봐. 이렇게 오는 걸 무시할 애는 못 된다니까.’
그런 오산은 멤버들을 먼저 돌려보낸 뒤 매니저와 급하게 부른 변호사만 대동하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가게에서 트루 무리와 마주 앉은 온라온의 첫마디에 산산이 부서졌다.
“혹시 착각하고 계실까 봐 미리 얘기하는 건데, 저는 사과 받을 생각 여전히 없습니다.”
“뭐?”
“또 당신들한테는 면죄를 위한 어떤 보상도 받지 않을 거고. 용서도 물론, 안 해요.”
군더더기 없는 거부였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럴 거면 대체 왜 나온 거야?
자기도 몰래 인상을 찡그렸던 헌트레드 멤버 이은규는 온라온의 북풍보다도 더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고 어깨를 움찔, 떨었다.
“이 자리에 나온 건 내 나름의 예의예요.”
물론 온라온이 예의를 지키는 대상은 트루 따위가 아니었다.
‘그 애였다면 좋든 싫든 이 자리에 나와 직접 일을 매듭 지었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냥 안 하고 말 사과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서로를 위해 좋겠죠.”
가차없는 말에 안 그래도 불편해하던 헌트레드 멤버들이 고개를 더더욱 떨궜다.
온라온이 보기에 이중에서도 진심으로 반성하는 사람이 두어 명 정도는 정도는 있는 것 같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과거 괴롭힘의 정도가 비교적 덜해 가해자보다는 방관자 쪽에 가까웠던 한국인 멤버와 외국인 멤버 한 명이 조용히 사과했다.
“…….”
저런다고 해서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반성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훨씬 나았다.
사과에 긍정으로 답함으로써 면죄부를 줄 생각이 없던 온라온은 그들에게 무미건조한 시선만 한 번 줄 뿐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좌불안석인 오현진처럼 자기 미래가 걱정돼서, 혹은 길준용 손에 이끌려 억지로 끌려나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당신들이 아무리 미안해하고 아무리 후회해도 나는 사과 절대 안 받아요.”
온라온과 온하제의 영혼이 다시 바뀌는 게 아닌 한, 당사자가 아닌 현재의 온라온이 트루를 용서할 자격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각자 감당하면서 사세요.”
어차피 다른 사람이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본인 업보잖아?
‘카르마다, 이 자식들아.’
“그럼 더 할 말 없으신 것 같으니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런 일로 다시 볼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온라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리고, 곽상현과 변호사도 그를 따라 룸을 나갔다.
“……뭐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그들을 뒤따라 나온 길준용을 본 곽상현이 온라온의 앞을 막았다.
“너희가 우리 건드리고도 이 업계 발 붙이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예?”
“아직 초짜들이라 잘 모르나 본데, 전화 한 통이면 너네 방송 출연 못 하게 다 막아 버릴 수도 있어!”
본색을 드러낸 길준용의 상스러운 협박에 아직 룸 안쪽에 있던 헌트레드 멤버들이 움찔 떨었다.
그러나 더한 존재에게 목숨을 위협받았던 경험이 숱하게 있는 온라온은 정작 놀란 기색 하나 없이 태연히 대꾸했다.
“저 지금 녹음하고 있는데요.”
“뭐…….”
“농담이에요.”
“네가 지금 날 가지고 놀아?”
“그럼 지금부터라도 할까요?”
온라온이 정말로 휴대폰을 꺼내 톡톡 조작하니, 길준용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거 봐라?’
“그리고 트루 엔터 요즘 망했다는 소문 돌아서 당장 재계약부터 곤란해졌다던데. 저희 걱정보다는 당사 걱정 먼저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곽상현의 도발에 길준용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트루가 망해가고 있다는 건 아닌 게 아니라 사실이었다.
“어린 것들이…….”
“어쨌든 그쪽 사정은 잘 알겠고요, 재판 준비 잘 하세요.”
조금 쌀쌀하게 느껴지는 공기가 뺨에 와닿는 밖으로 나온 온라온이 녹음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걸 본 곽상현이 물었다.
“녹음했어?”
“네. 혹시 뭐 내가 나중에 사과 받아 줬다, 어쩐다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자 곽상현이 온라온과 똑같이 녹음 앱이 켜진 자기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사실 나도 했다.”
“저도 했습니다.”
“이열.”
온라온이 가볍게 웃으며 조금 전 양옆을 든든히 지켜주었던 매니저와 변호사에게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마주 엄지를 들어준 곽상현이 이내 물었다.
“……괜찮냐?”
본인이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만나기는 했는데, 사과하러 나온 인간들 태도도 영 아니고 그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봐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온라온은 그다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네. 괜찮아요.”
그게 곽상현과 변호사는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어떻게 저러지.
“정말로요. 저 사람들은 이제 제 인생에 아무것도 못 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행복하기만 할 거거든요.”
온라온의 다짐 같은 중얼거림에 곽상현은 말없이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