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66)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66화
온라온이 한동안 올 생각도 하지 않았던 묵혜성의 집 앞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과정은 이러했다.
우선 체력을 바닥까지 긁어 모아 금일 스케줄을 모두 소화한 뒤 완전히 녹초가 된 온라온은 휴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어제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해 주셔도 되니까 저 그냥 좀 혼자 쉬고 싶어요.”
조금 더 구체적인 조건을 말하자면.
아무도 없으면서도 컴백이든 사생이든 다른 일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평화로운 곳에서 잠깐이라도 좋으니 머리를 비우고 쉬고 싶다는 말이었다.
다만 현재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혼자 나가는 것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애 기분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과거 우울증을 앓았던 온라온이 어제 일의 여파로 충동적으로 안 좋은 선택이라도 할까 봐 섣부른 걱정을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 거슬리는 눈길들을 피해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이영민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고 회사 직원들에게 둘러댄 후 누가 붙잡을 새도 없이 회사를 빠르게 빠져나온 온라온은 발길 닫는 대로 무턱대고 걸었다.
모자에 후드에 마스크에 안경에.
다소 수상해 보일지라도 자신이 온라온이라는 것만은 알아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건 다 동원했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유심히 지켜보는 것 같은 껄끄러운 기분이 드는 게 문제였다.
하다못해 인적이 드문 산책로를 걸어도 그러니 아마도 기분 탓일 터였다.
‘알아볼 리도 없는데.’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 했지만, 어쩌면 저 중에 몇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친구들끼리 있는 단체 메신저 방에서, 혹은 포털사이트 연예 뉴스 댓글 창에서 자신에 대해 어떤 말이든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손끝이 차게 식는 것 같았다.
‘인터넷 보지 말걸.’
그러니 밖에서는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차라리 어디 들어가기라도 해서 틀어박히고 싶은데.
숙소나 오피스텔은 어제 일 때문에 찜찜해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호텔 같은 숙소를 잡기에는, 무슨 불미스러운 소문이 날 줄 알고.
그러니까 정말로 온라온에게는 마음 놓고 갈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는 뜻이다.
온라온이 그 사실을 명확히 깨달을 즘에는 더 걸을 힘도 다 떨어진 상태였다.
이름 모를 가을 풀벌레만 우는 공원에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멤버끼리 있는 단톡방에 지금 어디인지 묻는 말이 올라왔다.
멤버들이 걱정하지 않게 이영민과 헤어진 후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는 답장을 보낸 온라온은 괜히 자기만 비뚤어진 사람이 된 것 같아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들어가야지…….”
그렇게 소소한 일탈을 단념한 온라온이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부르려 할 때.
지금쯤 비어 있을 누군가의 집 생각이 불현듯이 났다.
‘쌤, 스케줄 갔다고 했었나.’
집 비밀번호까지 애초에 공유한 사이에 잠깐 쉬고 가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보통 때였다면 이게 정말 괜찮은 생각인지 한 번쯤 더 이성적으로 숙고해 보았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기억밖에 없는 그 집은 지칠 대로 지친 온라온의 눈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안식처로 보였다.
그렇게 묵혜성이 없는 사이 그의 집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마음먹은 온라온은 확실을 기할 겸 텐 투 텐 촬영을 하며 안면을 터 둔 묵혜성 매니저에게 연락했다.
나 [형! 저 라온인데 혹시 오늘 쌤 스케줄 언제쯤 끝나요?]
묵.매니저 [지금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기는 한데.. 서울 올라가려면 좀 더 걸릴 듯??]
별 의심도 없이 술술 정보를 푼 매니저의 말에 따르면 묵혜성이 서울에 도착하기까지는 아직 몇 시간이 더 남아 있다는 듯했다.
딱 좋았다.
묵.매니저 [왜? 약속 잡을거면 혜성이형한테 일정 괜찮은지 물어봐줄까?]
나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근데 제가 이거 여쭤본 건 쌤한테는 따로 말하지 말아주세요ㅎㅎ.. 제 이번 분기 정산금 걸고 이상한 일 아닙니다]
나 [(카페 기프티콘)]
묵.매니저 [ㅇㅋㅇㅋ]
묵.매니저 [난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분기 정산금을 팔아 묵혜성 매니저의 입막음까지 완벽하게 한 온라온은 그 길로 택시를 타고 묵혜성의 집으로 직행했다.
이영민과 헤어졌다는 연락을 보낸 뒤로 언제 들어오냐며 줄곧 걱정하던 회사도 묵혜성 집에 갔다고 말하니 완전히 안심되었는지 편하게 쉬다 오라는 답을 보내왔다.
그게 묵혜성 없는 묵혜성 집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야 몹시 사소한 문제였다.
그렇게 묵혜성의 집 앞에 도착한 온라온은 드디어 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익히 아는 비밀번호를 당당히 눌렀다.
“…….”
충격적이게도.
안 열렸다.
혹시나 실수로 잘못 눌렀나 해서 한 번 더 눌러봤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비밀번호를 바꾼다, 바꾼다, 말은 했어도 아직 안 바꿨을 줄 알고 대뜸 온 거였는데.
설마 진짜로 바꿨을 줄이야.
묵혜성은 온라온의 잔소리를 듣고 비밀번호를 바꿀 성의는 있어도, 바꾼 비밀번호를 새로 알려줄 세심함까지는 없는 남자였다.
“아, 씨…….”
도무지 되는 일이 없다고, 이제 그만 꺼지라는 것처럼 삑삑거리는 것이 자못 신경질적으로 느껴지는 경고음을 세 번째로 들은 온라온이 손바닥으로 도어락을 팍 치며 한탄했다.
집주인이 스케줄 때문에 집을 비운 틈을 타 무인 호텔처럼 즐기고 가겠다는 최후의 계획이 다 헛것이 되었다.
기대와는 달리 굳게 닫힌 문앞에 선 온라온은 이번에야말로 모든 의욕이 팍 꺾여 버렸다.
‘그래. 차라리 여기 있자.’
해가 지니 건물 안에 들어와 있어도 조금 쌀쌀하기는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시선에 노출된 밖을 계속 의미없이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여기서 생각이나 조금 정리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게 그나마 현명해 보였다.
그러나 몸이 피곤한데 사고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금세 다리가 아파진 온라온은 문 앞에 쭈그려 기대앉았다.
거추장스러운 모자나 마스크 같은 것을 풀어 옆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이후에는 돌이 된 것처럼 미동도 없었다.
웅크린 그 상태로 중간에 깜빡 졸기까지 해, 묵혜성이 돌아오기 전에 조금만 있다 간다는 게 그대로 시간이 훅 지나 버렸다.
그게 바로 묵혜성이 온라온을 향해 이런 의아한 물음을 던지게 된 경위였다.
“너 여기서 뭐 해?”
정신이 반쯤 빠져나가 있던 상황에서 귀에 익은 음성을 듣고 퍼뜩, 놀라 일어나려던 온라온이 비틀거리며 반쯤 일으켰던 몸을 도로 푹 수그렸다.
“아으…….”
너무 오래 앉아 있던 탓에 다리에 피가 안 통해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묵혜성의 부축을 받고 겨우 똑바로 선 온라온은 공연히 막돼먹은 짓을 하다 들킨 기분에 시선을 피하며 처음의 질문에 답했다.
“비밀번호 바꾸셨네요.”
“네가 바꾸라고 했잖아. 지금 그게…….”
대답이냐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약간은 따지듯이 말하려던 묵혜성은 대꾸하는 목소리만큼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맹랑하던 온라온의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일단 들어가자.”
“아니에요. 저 쌤 얼굴 봤으니까 그냥 갈게요.”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려다 실패한 게 없던 일인 양 온라온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평소 반짝반짝하던 눈이 신경 쓰이게 풀죽은 걸 본 묵혜성은 생각을 바꾸지 않고 바꾼 비밀번호를 입력해 손쉽게 문을 열었다.
“내 얼굴 하나 보려고 이 시간에 여기까지 와서 기다린 건 아닐 거 아니야.”
정확히 말하자면 기다린 게 아니라 피하려다 실패한 거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
“있다 가. 숙소에는 조금 쉬다가 데려다줄게.”
회사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먼저 말 안 걸면 묵묵히 있는 묵혜성과 같이 있는 것이 차라리 괜찮을 것 같았다.
온라온은 마음을 고쳤다.
“그럼 실례합니다.”
힘없이 안으로 들어간 온라온이 얇은 외투를 소파에 툭툭 벗어두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묵혜성이 물었다.
“밥은 먹었고?”
* * *
“잘 먹었습니다.”
낮에 샐러드랑 주스 한 팩 먹고 나서 더 들어간 게 없던 위장에 매운 떡볶이를 쏟아 넣고 나니 생리적인 포만감이 들었다.
내가 마땅히 먹은 게 없다는 걸 눈치채고 빈속에 매운 거 먹으면 탈 난다고, 주문할 때만 해도 나를 말리던 묵혜성은 막상 내가 매워하면서도 꿀떡꿀떡 잘 먹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근데 너무 저만 먹은 것 같아서 죄송한데요.”
“너 먹으라고 시킨 거야. 나는 오는 길에 차에서 밥 먹었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하고 시계를 본 묵혜성이 물었다.
“내일 스케줄 없어?”
“네. 원래 멤버들끼리 찍으려던 거 하나 있었는데 일단 나중으로 보류돼서…….”
모종의 사유로 월요일에 있는 지상파 음악방송도 결방이라 있던 스케줄이 취소된 내일은 통으로 쉬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럼 늦었으니까 오늘은 자고 가. 회사에는 내가 연락해 줄게.”
묵혜성의 담백한 호의에 양심이 콕콕 찔려 왔다.
“죄송합니다. 저 사실 쌤 안 계실 때 허락 없이 들어와서 쉬다 가려고 했습니다…….”
그제야 내가 거기서 그러고 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된 묵혜성이 미간을 조금 모았다가, 도로 풀면서 말했다.
“비밀번호 다시 알려줄게.”
“아뇨. 안 그러셔도.”
“나 있을 때든 없을 때든 들어와도 괜찮아.”
“아무리 제가 양심이 없어도 차마 그럴 수는.”
최소한의 예의범절을 되찾은 내가 손을 내젓자, 묵혜성이 이미 일은 일대로 저지르려던 마당에 무슨 말이 이렇게 많냐는 듯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숙소 생활 힘든 거 알아.”
“어… 그렇지는 않은데요.”
“멤버끼리 두루두루 사이좋으면 숙소 생활 하는 게 좋은 면도 있겠지만, 무의식중에 쌓이는 스트레스가 아예 없지는 않을 거야. 가능하면 이번에 독방 쓸 수 있는 숙소로 옮겨달라고 해.”
그렇게 조언하듯 말한 묵혜성이 내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문자로는 괜찮다면서.”
“네.”
“안 괜찮아 보이는데.”
이 양반이 이런 세심한 분이 아닌데 오늘따라 나한테 궁금한 게 많으시다.
“안 괜찮은 게 아니라…….”
말을 신중하게 고르고 있자니 묵혜성이 주제를 돌렸다.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봐도 돼.”
“물어보다뇨?”
“네가 겪은 거, 웬만하면 나도 다 겪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