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7)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7화
하트 어택 무대 영상이 공개된 이후 정말 의외로 ‘4분 59초 아련남’으로 내 이름이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었다.
무대 영상에서 내 분량은 그게 전부라고 해도 좋을 수준이었는데도.
이래서 사람들이 원샷 원샷 하는구나 새삼 실감했다.
‘아련한가?’
내 얼굴이 나온 4분 59초에 재생 바를 멈춰두고 한참 동안 들여다봤는데 잘 모르겠다.
조명 때문에 눈에 유독 맑은 빛이 돌아서 그런가.
내 눈에 안 차는 이 얼굴이 눈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컷팅된 보석처럼 정말 예쁘게 생겼으니까.
다음 날부터는 일주일에 걸쳐 1분 PR 영상이 공개됐다.
하루에 15명 정도씩 공개되는 모양이었고, 나는 나도 모르는 내 영상이 언제 어떻게 내 앞길에 비를 뿌릴지 몰라 불안하고 초조한 나날을 보냈다.
1분 PR 영상 속에서 연습생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어필했다.
귀여운 인형 옷을 입고 뒤뚱뒤뚱 춤을 춘 연습생, 의상을 차려입고 사극을 패러디한 연습생, 닮은 캐릭터 사진을 들고나온 연습생, 전통 무용을 보인 연습생, 스케치북을 들고나와 한 장 한 장 넘기며 자기소개를 한 연습생, 마법학교 옷을 입고 나온 연습생 등등.
내가 봤을 때 여러 의미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반요한과 서문결이었다.
반요한은 자기 개인기라면서 이름과 소속사만 간단히 밝히고 1분 동안 원주율을 외웠다.
3.14159265358979… 그거 맞다. 이 미친놈.
대체 몇 자리까지 외웠나 세어봤는데 소수점 아래 128자리까지 나긋나긋하게도 읊조렸다.
솔직히 반요한 저 놈은 500자리까지 외우라고 시키면 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의는 없으나 타고난 머리랑 얼굴이 다 했다고 할 수 있는 좋은 예였다.
서문결 역시 개인기라면서 비누와 조각칼을 들고나와 비누 조각을 선보였다.
“안녕하세요. 시드 엔터테인먼트 서문결입니다”라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인사한 다음에는 비누가 서걱이며 깎여나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ASMR 찍냐?
그리고 1분이 되기 직전 비누로 만든 픽하트 로고를 손에 올려 보여주면서 서문결의 1분 PR 영상이 끝났다.
“…….”
쟤들은 저 얼굴 가지고 지금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 좀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란 말이야.
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온라온’의 영상이 공개된 건 마지막 날이었다.
[개인 연습생|온라온|감성 문학 소년 #1분PR 픽 유어 하트 시즌3]제목부터 좀 많이 이상하다.
가암성? 무운학?
나랑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리는 단어 두 개가 사이좋게 붙어 있었다.
감성은 팍팍한 인생 살며 현대인답게 메마른 지 오래였고, 문학은 국어 교과서에서 본 게 마지막이다.
그걸 다 갖춘 ‘온라온’ 너란 사람, 아니, 너란 캐릭터는 대체.
한참 동안 썸네일을 바라보다가 긴장해서 떨리는 손으로 동영상을 클릭했다.
픽하트 로고 CG가 지나가고, ‘온라온’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개인 연습생 온라온입니다.]내가 모르는 ‘온라온’이 그곳에 있었다.
이 영상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는 중요한 단서였다.
그만큼 ‘온라온’의 모든 것을 꼼꼼히 뜯어봤다.
일단 얼굴. 학생증 사진으로도 보았던 얼굴이지만 이렇게 움직이는 영상으로 보니 또 낯설다.
원래 내 얼굴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서문결이나 징샤오 같은 연습생들과 비교해 부족하지 않을 만큼은 잘생겨서 마음이 놓였다.
나중에 매력을 올려서 급격하게 잘생겨지면 말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성형 논란을 미리 방지하기에 충분하달까.
그런데 저 얼굴을 이렇게 밍밍하게 만들어 놨단 말이지?
다시 한번 속으로 개스템을 대차게 욕했다.
‘온라온’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흰 와이셔츠의 단추를 목 끝까지 꼼꼼하게 다 채우고, 넥타이를 꽉 조여 맸으며 조끼와 마이까지 잘 챙겨 입었다.
학생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단정한 차림이었으나 언뜻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정확히 언제 촬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몸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야위어 보였다.
내가 빙의하며 초기화돼서 스탯이 낮은 게 아니라, 체힘민 같은 건 원래 바닥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온라온’은 조용히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저는 시를 준비했습니다.]…제법 자연스러웠던 자기소개에 비해 억양이 확연히 어색하다.
네이티브 한국어라기보다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운 것 같은 발음이었다.
왜지? 이 얼굴로 외국인은 아닐 테고, 외국에서 살다 왔나? 학생증에 온라온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개스템아, 기본적인 신상 정보 정도는 알려달란 말이다.
화면 속에서는 떨리는지 입으로 짧게 호흡한 ‘온라온’이 첫 구절을 읊조리고 있었다.
[새하얀 달이 되고 싶다. 푸른 별을 삼십 일 동안 맴돌아도 지치지 않게.]이번에는 다시 어색함 없이 사뭇 부드러운 말씨였다. 정과 망치를 들고 제 언어의 모난 부분을 하염없이 깎아낸 것 같았다.
나는 숨죽인 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속삭임을 들었다.
[푸른 파도가 되고 싶다. 절벽을 천 일 동안 두드려도 지치지 않게.]나는 ‘온라온’이 어떤 마음으로 저 말을 자아냈을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저 말을 이 세상에서 제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일 것이다.
문장은 직설적이고 투박했으며 정서는 체념보다 희망에 가까웠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천 번이 뭐냐, 만 번도 넘게 무정한 절벽을 두드렸을 터였다.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게 잘 쓴 시도 아니고, 얼굴을 제외하면 눈에 확 띄는 재미도 딱히 없지만, 속삭이는 것에 가까운 나직한 목소리 덕분에 듣기는 좋았다.
서툰 한국어를 이만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려면 문장을 얼마나 벼려야 했을까. 그러는 사이에 마음은 또 얼마나 깎여나갔을까.
“…….”
지금 이런 걸 추측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게임 캐릭터일 뿐인데. 게임 캐릭터.
픽하트 로고로 만든 무늬가 인쇄된 화려한 색채의 뒷배경 속에서 ‘온라온’ 혼자만 흑백 세계 속 인물 같았다.
1분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암송을 멈춘 ‘온라온’이 처음으로 카메라를 곧게 응시하며 말했다.
[저의 내일을 잘 부탁드립니다.]끝이다.
다른 연습생들은 뒤에 같은 소속사 연예인들이 응원 메시지도 보내주고 하던데 이 영상은 1분 PR이 끝나자마자 매정히 끝났다.
그것이 온라온이라는 개인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 같았다.
나는 다음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기 전에 정지 버튼을 눌렀다.
“…….”
머리가 복잡하다. 이 노답 빙의에 뭔가 숨겨진 답이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직감은 일단 뒤로 해도.
“누구세요…….”
×나 누구세요다, 진짜.
이, 이미지 어떡하지. PD랑 작가가 이 새끼는 뭐냐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런 영상을 찍어 놓고 촬영장 가서 그런 행동을 한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써먹을 수 있는 반전 캐릭터라고 좋아했을까, 이 미친놈은 뭐냐고 황당해했을까.
‘이제라도 좀 얌전하게 굴어봐?’
그때 책상에 놓아둔 핸드폰에 알림이 연달아 왔다.
[새끼여우] 너 누구세요? [새끼여우] 혹시 프로그램 시작하기 전에 어디 머리라도 박았니? [새끼여우] 아니면 너 쌍둥이야? [새끼여우] 설마 이중인격?혹시 누가 폰을 볼 때를 대비해서 여우새끼가 아니라 새끼여우로 저장해 뒀는데, 바꿀까.
[새끼여우] 모르는 사람이 빙의했다고 해도 믿을 듯미, 미친 개소름.
그냥 한 말이겠지만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나] 왜? [나] 나 차분하고 믿음직스럽고 얌전한 반장인 거 잊으심? [새끼여우] ㅎㅎ.. [새끼여우] 자아 성찰의 시간을 좀 가지는 편이 좋겠다ㅎㅎㅎ나는 속된 말들을 여러 번 썼다가 지웠다.
아무튼 상대적으로 성격이 괜찮은 김준우한테도 비슷한 내용의 톡이 온 걸로 봐서 나로서는 절대 저 ‘온라온’을 흉내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TV를 보다가 어느샌가 옆에 온 고수종 할아버지도 나와 화면 속 ‘온라온’을 보더니 “쌍둥인가? 너 안 닮아서 참해 보인다”라는 팩트를 날리셨다.
…아무리 봐도 ‘온라온’처럼 하는 건 무리겠지? 그냥 살던 대로 살자.
* * *
1분 PR 영상이 모두 공개된 이후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100명의 연습생을 두고 여러 말이 오가고 있었다.
– 왜 이렇게 창의성들이 없냐 저놈의 마법학교 교복 찢어버리고 싶음
┗ 왜 이렇게 화났어
┗ 똑같이 못생긴 것들이 똑같이 입고 나와서 똑같은 짓을 하는데 화가 안 나게 생겼어?????
– 옥도윤하세요 여러분 엔딩 눈웃음 걔 맞아요
– 1,2에도 방송 시작 전에 과거 썰 떠서 나가리된 애들 ㅈㄴ 많은데 이번에도 똑같네ㅋㅋ 하차해~
┗ 나온 게 시그널송이랑 PR 영상밖에 없는데 과거 다 털리는 애들 개불쌍
┗ 무서워서 연예인하겠냐ㅋㅋㅋㅋㅋ
┗ 착하게 살아야지 그러니까
– 지금 웃어둬라.. 첫방하는 순간부터 너넨 밤잠 제대로 못 잠ㅋㅋㅋ
┗ 기 존나 빨려
┗ 이미 늙은 듯ㅠㅠㅠㅠ
– (사진) 준우 학교 진짜 열심히 다니고 너무 착했던 애예요. 선생님들이랑 애들이 다 준우 너무 좋아했고 제 친구라 잘됐으면 좋겠어서 사진 올려요. #픽하트3 #김준우
– (움짤) 1,2도 그렇고 너무 비주얼 잘나면 떨어짐
┗ ㄹㅇ 특히 2에서 떨어진 애들 중에 예쁜애 개많았어
┗ 비주얼만 있으니까 떨어지지
– 픽하트3 ASMR 삼총사: 자작시의 온라온, 원주율의 반요한, 비누 조각의 서문결
┗ 반요한이 찐임 40초쯤 듣고 있으면 그때그시절 수학시간처럼 눈 감겨
┗ 온숨아(=온라온은 숨만 쉬어도 아련하다는 뜻)
┗ ㄹㅇ 이 팍팍한 프로그램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슬슬 걱정될 정도
┗ 서문결 어디 생활의고수에 나와야 하는 거 아님? 1분 만에 비누랑 조각칼로 예술품 하나 뚝딱하는 거 보고 허미 개놀랐네
┗ 근데 얘네 다 자기 PR에는 별생각 없는 듯
┗ 기억에 남으면 됐지. 되도 않는 멜로 눈깔 장착하고 드라마 따라 하는 애들보단 나음
┗ 이런 애들 특: 징샤오가 대륙청춘영화 대사 따라 하는 건 별생각 없음 이중잣대 오졌죠
┗ 걘 얼굴이 되잖아 ㅅㅂ아
┗ 왜 욕질이야 ㅅㅄㅄㅂ
┗ 얘네 셋 상암 목격썰 뜸. 온이 엄청 추워했는데 결이 핫팩 주고 반이 많이 춥냐고 물어봤다고 함
┗ 아닌데요 반ㅇㅎ 춥냐고 물어본 게 아니라 길 막지 말고 빨리 가라고 한 게 팩튼데요
┗ 님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 입 모양으로 봤을 때 그랬음 암튼 그럼. 제가 맞으니까 댓 더 달지 마세요 그 샛기 생각하면 빡치니까
┗ 미친놈일세
┗ ㅂㅁㄱ
2차 합숙을 하루 앞둔 어느 날이었다.